탈합치 - 예술과 실존의 근원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이근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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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마르면 물을 마신다. 우리는 현재의 '목마름'이라는 상태에 그저 머무르지 않고, 물을 마시는 행위로써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탈-합치'를 실천한다.


러한 탈합치 논리를 진화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인간은 이전 상태의 부족함에 갇혀 있지 않았고, 그 상태로부터 탈-결속하여 기존에 충족하고 누리던 것들과 간극을 벌였다. 이러한 간극은 곧 가능성을 의미하며, 인간은 이러한 가능성을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이루어냈다. 탈합치의 과정이 있지 않았다면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여전히 유인원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간극을 생산하는 탈합치는 기존의 규범(합치되어 있던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고, 어쩌면 부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규범의 보편성, 정합성 등은 집단을 하나로 묶어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착화된 기성 체제에 안착하는 것은 그것에 실재하는 결함 또한 은폐한다는 점에서 쇄신의 가능성을 없앤다. 자기 정체성 속에 갇히는 실존, 자기 보존적 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발전의 길을 막아버린다.


안정을 위해 집단을 하나로 묶는 것, 다시 말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것은 사유의 완전한 합치를 이루어 간극이 만들어질 틈을 없애 집단 무의식의 상태를 만든다. 유의미한 이견이 나올 수 없는 사회, 생동감 없는 삶의 집적체는 의미들을 고정시키고 사물화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합치를 경고하며 '탈합치'의 사유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집단 무의식에서 벗어나는 것, '반동'하는 것 등이 모여 형성된 '탈합치들의 연합'은 이데올로기의 균열을 만들고, 그러한 균열에서 비롯된 기존의 단점들을 보완해 나가는 제2의 삶을 이룩할 것이다.


흔히 철학은 보편에 다가가는 학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줄리앙의 '탈합치'는 굉장히 진보적이고, 보편의 안락함과의 절연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꼰대스러움'에 대한 날카로운 반박을 만나볼 수 있는, 줄리앙의 근거 있는 패기를 보여주는 저서이다.


*이 콘텐츠는 출판사(교유당)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음을 명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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