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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
게리 슈테인가르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게리 슈타인가르트, 미국 언론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Absurdistan의 작가. 고대하던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의 두 번째 장편임에도 작가로서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여겨진다.

147킬로그램의 몸뚱어리를 가진 미샤 바인베르크는 흡사 가르강튀아를 비롯해 문학에서 등장하는 거구의 인물들을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주인공이다. 주전부리 대장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식욕과 부자 아버지를 등에 업고서 완전한 성인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유치한 정신 세계, 미국의 대중 문화에 심취한 채 심신의 안위와 여자친구와의 사랑만 생각하면 그만인 한량의 모습... 그러나 한심스러우면서도 진심 어린 그의 따뜻하고 순진한 캐릭터는 몹시도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다문화 학위를 받고 그 속에서 편히 살고픈, 어설픈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을 축으로, 이 책은 그 다문화 사회에 내제된 기이한 모순을 드러내고, 러시아연방의 해체 후 압수르디스탄이라는 중앙 아시아의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석유 이권을 놓고 벌이는 미국 정부와 미국 회사들의 보이지 않는 한판 정치를 풍자하고, 그 큰 외압 속에 희생되는 압수르디스탄 사람들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며,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현 자본주의의 행태를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비판한다.

긴 장편이면서도, 풍자와 익살로 버무려진 캐릭터들과 그들의 인생관, 어설픈 아메리칸 드림과 소비주의의 비판, 가상의 공간을 넘나드는 글쓰기는 재밌고 술술 읽힌다. 무엇보다 물질문명의 수혜를 입었지만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다 큰 아이, 여린 감성과 방황하는 관념의 영원한 사춘기 소년, 미샤라는 주인공의 탄생에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부모의 재력과 막강한 제어 속에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의 모습이 겹쳐지는 인물이다.

슈테인가르트의 차기작 뿐만 아니라 처녀작도 몹시 기대된다. "그 밖의 누가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힙합, 그리고 21세기 오일 정치와 전쟁을 함께 묶을 수 있을까"라고 쓴 어느 미국 서평의 글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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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식인종
디디에 데냉크스 지음, 김병욱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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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충격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이다. 말로만 듣던 제국주의, 특히 프랑스 식민지 지배의 어두운 단면을 무겁지 않게 요리하고 있다. 길이도 비교적 짧고, 혹독한 역사를 은유적으로 쉽게 풀어내어, 청소년부터 누구라도 읽을 수 있을 만한 내용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니, 충격을 금치 못하겠다. 역사의 교훈을 얻을 만한 책이다.

남태평양의 섬, 누벨칼레도니. 영어명은 뉴칼레도니아. 이 천국 같은 섬의 원주민들이 1931년 파리에서 열린 엄청난 규모의 식민지박람회에 자신들의 문화를 전시하러 가는데, 박람회 조직위는 이들을 동물원에 가두고 짐승처럼 전시한다. 사실 이들은 이미 19세기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기독교 문명이 들어오고 일부일처제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박람회에서는 식인종에다 일부다처제 원주민으로 전시되고, 방문객들 앞에서 계획된 프로그램에 따라 강제로 춤을 추고 카누를 만들어야 했고, 심지어 짐승 소리를 내는 등 아주 야만적인 인간, 그야말로 식인종 행세를 강제로 해야 했다!

게다가 박람회 개막식 전에 떼죽음 당한 악어와 맞교환되어 독일로 강제 이송되어야 하다니... 그것도 무슨 이유인지도 모른 채... 정말 그들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으리라. 이 모든 게 사실이라니...

제국주의 시대의 유럽에서 식민지박람회라는 행사가 있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전세계 식민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자국민에게 전시해 보임으로써,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얻으려는 기획이다. 이런 목적이니, 응당 과장되고 왜곡된 행사였다. 순진무구한 사람들을 두 달이 넘는 여행 끝에 불러 놓고는, 동물원의 짐승처럼 전시하는 제국주의자들의 행태에 분노가 인다.

이 작품은 이런 분노를 가만히 보듬어갈 뿐, 터트리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된 묘사로 식민지박람회와 제국주의 시대의 파리를 그려낸다. 독일로 떠나게 된 연인과 부족 사람들을 찾아 나선 두 청년의 발걸음도 결코 무겁지만은 않다. 사랑의 마음이 가득한 그들의 파리 탐험은 재밌기도 하고 익살스럽다. 그들의 눈에 비친 문명사회도 그들에겐 부러워할 만한 게 전혀 아니다. 자신들의 고향땅 누벨칼레도니, 천연의 숲, 드넓은 바다와 눈부신 초호만이 그들이 진정 꿈꾸는 곳, 지상의 천국이다. 향수와 조국애에 눈물짓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정말 찡했다. 아마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아서이리라. 그리고 마지막 장면, 세상의 선과 악을 다 경험한 후 우러난 노인의 말에 잔잔한 감동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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