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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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요나손의 데뷔작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아직도 베스트셀러이다. 나 또한 그 책을 재미있게 읽어 이번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이 책은 표지가 전작과 마치 시리즈처럼 보일 정도로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읽으면서 전작과 비교하게 되었다. 여러 유사점이 보이는데, 핵폭탄이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나 문체가 비슷하다. 그리고 두 책 다 유머와 풍자로 가득차 있다. 차이점은 전작의 주인공이 신작의 주인공보다 더 많은 나라를 다니며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책을 쓴 시점에서 신작의 주인공이 100세보다 젊었기 때문인 것 같다. 또 전작에서 100여년에 걸친 근현대사의 요약을 볼 수 있었다면, 이 책에서는 좀 더 다양한 분야가 등장한다. 전작의 주인공이 맨몸으로 세계를 돌아다닌 떠돌이라면, 이 책의 주인공은 상대적으로 진득하니 한 자리에서 공부한 사람 같다고 할까. 두 개의 소설은 별개의 이야기이므로 어느 책을 먼저 읽든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이 소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인 놈베코는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이다. 놈베코는 똑똑하지만 흑인 여자라는 이유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흑인 전용 거주지역의 공동화장실에서 일한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일을 그만두고 그 지역을 떠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놈베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무기 연구 엔지니어의 차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 엔지니어의 하녀가 된다. 엔지니어는 멍청하지만 집안 덕분에 좋은 학교를 나온 뒤 아랫 사람들을 부려먹으며 지위를 공고히 하는 사람이다. 머리가 좋은 놈베코는 핵폭탄 연구에 관여하게 되고, 그 후에 많은 일들에 연루된다.
이 책에서는 사실과 허구가 공존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핵을 보유했다가 해체한 것이나 인종차별이 심한 것 등 책의 시대적 배경을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했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누가 봐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허구 중에서도 가장 허구에 가까운 인물들이 실제 있었던 또는 있음직한 사건들을 엮어간다. 주인공들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실제와 다르지만 결과는 사실과 어울어진다. 이러한 이야기 흐름은 책 곳곳에 나오는 풍자와 유머가 더 해져 웃음을 유발한다.
그리고 다른 소설들에서 그림을 그리듯 생생하게 묘사하거나 사실적인 설명을 자세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그보다 사건의 전개에 조금 더 신경을 쓴다. 그래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처럼 이 책에서도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든가 사고를 당하거나 그런 기괴하고 황당한 일들도 생기지만, 그리 잔인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소설 전체에서 가득히 느껴지는 허구감과 유머, 빠른 전개 때문이다.
이 책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은 각 파트를 시작할 때 나오는 짧은 글귀들이었다. '현재란? 희망의 왕국과 실망의 영토가 갈라지는 영원의 그 부분', '인간을 알면 알수록, 난 더욱 개들을 사랑하게 된다' 와 같은 주옥 같은 문장들이 나온다.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지만 빨리 읽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 책도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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