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 42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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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성의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카프카의 책을 읽게된 이유는 단순하다.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중 '읽다'편에서 카프카의 성을 소개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한번 읽어볼만한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소송과 변신을 읽었었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소송은 무엇때문에 요제프k가 소송과정에 있는지 명확하지 않고 그것을 해결해보려는 k의 노력이 전혀 소용이 없는 모습을 읽어나가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결말에는 이러한 것이 해결되겠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읽었던 나는 요제프k가 죽음과 동시에 허무함과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나마 변신은 단편이고 소송과는 달리 미완의 작품이 아니라 소송보다는 쉽게 읽혔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내가 읽었던 카프카의 작품들이 나에게 큰 흥미를 주지 않았지만 그의 명성과 몇몇 리뷰를 보고 생긴 호기심으로 두권의 책을 완독하게 도와주었다. 이 책들을 읽은지 약 1년 정도 지난 지금, 나는 왜 다시 프란츠 카프카 작품을 읽게 되었을까? 프란츠 카프카의 성을 산지는 꽤 되었다. 하지만 카프카 소설의 난해함 때문에 술술읽히지 않을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게 두려웠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떠한 계기로 시쳇말로 현타가 왔다. 우울함과 무기력증이 밀려온 것이다. 그래서 멍하니 있다가 책장에 꽃혀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성을 보고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모르게 우울하니 우울한 책을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나만 우울하고 무기력하지 않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고 싶었을까?

 소송과는 달리 성은 좀 더 잘 읽혔다. 아무래도 소송을 통해 카프카의 책을 조금 이해해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소송보다는 배경이 한정되어 있어 복잡하지 않아서 그런것 같다. 성 또한 소송과 같이 주인공 이름이 요제프k이다. 요제프k가 한 마을에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을은 성의 부속되어 있고 k는 성의 토지측량사로 고용이 되서  왔지만 성에 들어갈 수도 없고 관련 관리들을 만날 수도 없다. 심지어 마을 촌장은 토지측량사가 필요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와중에 k는 자신의 권리와 토지측량사로서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노력과는 달리 계속 미궁속으로 빠진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명확하지 않는 난해함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로 인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이라는 존재는 불합리한 존재이다. k는 성의 토지측량사로 고용되었지만 자신을 고용한 성의 관리인을 대면할 수 없고 고용되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촌장 말을 빌리면 성은 토지측량사는 필요하지도 않은데 절차상의 실수로 k가 고용되었다. 가상의 세계라도 성의 k고용이라든지, 바르나바스네가 배척당하는 이유라든지 몇몇 이야기를 보더라도 성이 얼마나 불합리적인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사람들이 성에 대한 맹신을 보면 성이 종교적인 존재로도 보인다. 독자나 k 같은 경우는 성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이해할 수 없지만 마을사람들은 성을 맹신하기 때문에 성이 어떠한 짓을 해도 믿고 그렇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성을 보면서 요제프k가 항상 이해됐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약혼녀가 된 프리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르나바스네에 간 것이라든지 조수에게 폭력적이라든지 모무스의 심문을 거부한다든지 심지어 성이 거부하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성에 머물러 계속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나에게는 k가 너무 외골수로 비쳐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나의 성정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생각을 하니 k가 괴짜가 아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멋진 투쟁가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결말이 나지 않은 미완의 책이지만 책이 불타지 않고 출판하게 할 수 있었던 카프카의 친구 브로트에 따르면 카프카는 k가 투쟁을 지속하다 너무 지쳐 죽어가는 순간에 합법적으로 마을에 살게 해달라는 청구를 승인 할 수는 없지만 임시로 마을에 거주하면서 일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내용의 통지를 받는 결말을 구상했다고 한다. 정말 카프카스러운 결말이다. 하지만 나는 더 나아가 그러한 k의 투쟁으로 k는 비록 지쳐 죽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런 k의 투쟁을 보고 계몽되어 성의 불합리에 투쟁하는 결말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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