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벙 테마 소설집
박솔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오늘이 중요한가, 내일이 중요한가?’이다. 내일을 대비하지 않고 오늘을 살려니 불안하고 내일을 대비하며 오늘을 살려니 아깝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오늘을 탕진하며 산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불안해진다. 내가 너무 많이 탕진한 걸까봐. 탕진하고 탕진하고 또 탕진해서 내일을 위한 밀알 한 알도 남아 있지 않을까봐.

 

그러나 최진영의 「囚」를 읽으면서 이 ‘탕진’이 맞는 거라는 확신이 좀더 확고해졌다.

 

"내가 기다리던 ‘때’라는 것이 대체 어떤 때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대로 늙으면 요양원에나 들어가야 할 텐데 그렇다면 나는 청춘을 팔아 요양원에 들어갈 돈을 모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요양원에도 못 들어가고 집도 가족도 없이 부랑자로 살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시간은 질병과 피로로 쌓이고 돈은 아무리 벌어도 삽시간에 사라지는데…… 어째서지? 월세가 자꾸 오른다. 대체 왜? 무리해서라도 은행 빚을 져야 하나? 다들 그런다고 하니 그래야 하나? 내 돈으로 집 얻나, 은행이 얻어주지. 은행 돈이 내 돈이지. 그렇게들 말한다. 은행이 무슨 구세군인가? 우리 모두 불우이웃인가? 이자와 월세가 뭐가 다르지? 빚을 져서 살 곳을 마련하는 게 언제부터 당연해졌지? 세상은 왜 이런 식으로 굴러가지? 요양원에는 나보다 부모님이 먼저 간다. 우선 그 돈을 마련해야 한다. 청춘을 팔아 부모님의 요양원비를, 중년을 팔아 코앞에 닥친 내 노년의 요양원비를 벌어야 한다. 황혼은 어떨까. 멋질까? 가장 멋진 때니까 젊을 때 개고생해서 준비하는 게 당연한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때일까? 그런데 어제도 뉴스를 봤다. 일흔 넘어 자살한 노인에 대한 뉴스였다. 그와 비슷한 뉴스를 일주일 전에도 봤고 보름 전에도 봤다. 이상하다. 다들 오르기에 무언가 끝내주는 게 있을 줄 알고 평생을 바쳐 오르고 보니 그 끝은 텅 빈 허공이더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정말 이상하다. 다들 이렇게 사나? 아닐 텐데. 그럴 리 없는데. 모두들 한결같이 멍청할 리는 없지 않나. 춥다. 따뜻한 물을 맘껏 쓰고 싶다. 집도 차도 없고 방은 차가워서 다들 내게 질렸나? 시간은, 겨울 외투 안주머니 한구석에서 납작 뭉치는 먼지 같은 것이다. 대체 쓸모가 없다. 아니다. 시간은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바빠 죽겠고 짜증 나 죽겠고 내가 너 땜에 못 살겠다고. 그럼 우리에겐 뭐가 있지? 스트레스와 빚이 있지. 우린 무엇으로 살지? 마이너스 통장과 각종 암 보험 가입자로 살지.”

 

청춘을 팔아 부모님의 요양원비를 대고, 중년을 팔아 내 요양원비를 벌어야 한다면 차라리 나는 지금 청춘을 사는 쪽을 택하겠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아래 문장도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어쩌면 이리도 현대인과 궁핍을 잘 묘사하는지. 어쩌면 최진영은 제2의 최서해인지도 모르겠다.

  

"되도록 많이 벌어야 한다. 문을 열고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 야근도 하고 주말 근무도 해야 한다. 돈 때문에 싫은 소리 하기도 우는소리 듣기도 싫다. 많이 벌어 풍족하게 살고 싶어서는 아니다. 입만 열면 돈이 없어 죽겠다고 말하는, 돈 때문에 다투고 마음 상하는, 돈이 원수라면서 돈을 신처럼 떠받드는, 돈이면 다 되고 결국 돈으로 외로워지는 사람들의 손과 입과 주머니를 돈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서다. 그래야 내 마음이 고요해지기 때문이다. 불화도 평화도 돈으로 이룩된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가난하더라도 돈에 휘둘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과 관계를 이루는 거룩한 사람들. 그들이 부럽다. 그들의 부모와 자식이 부럽다. 나는 언제나 돈 걱정을 하며 살았다. 아니, 돈 걱정을 하는 사람들 틈에서 살았다. 모두가 앞장서서 돈을 걱정하니 내 몫으로 남겨진 걱정은 없었다. 나는 기생충처럼 그들의 걱정을 걱정할 뿐이었다. 착한 그들은 강요와 폭력이 아닌 걱정과 불행으로 나를 지배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 안개처럼 나를 에워싸고 축축하게 적셨다. 그 속에서, 나는 필요 이상으로 춥고 무거워졌다. 매일 빛을 꿈꾸었다. 입자이고 파동인 빛. 자유롭고 가벼운 빛. 따뜻하고 찬란한 빛.”

 

“자, 나는 충분히 설득당했다. 문을 열고 벽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돈이 불러오는 비명 같은 위기감과 불안, 모멸감과 비참함은 차고 넘친다. 넘쳐 나를 뒤덮는 이 더러운 과잉…… 을 털어내려면 나가서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데, 나가고 싶지 않다.”

 

최진영의 말대로 “사는 것은 즐겁지만 종종 아주 많이 즐겁지만 버리는 것만큼 홀가분하기는 힘들”다. 어쩌면 사는 것은 “크게 화내지 않고 자잘한 짜증을 자주” 내는 팀장을 견디는 일이다. 그러나 최진영은 말한다. 벽이 사라지더라도 문에서 나가고 말고는 나의 선택이며 나의 자유라고.

 

순간의 선택이 삶을 만들어간다. 나는. 오늘도 좀, 탕진하며 살아야겠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바빠 죽겠고 짜증 나 죽겠고 내가 너 땜에 못 살겠다고. 그럼 우리에겐 뭐가 있지? 스트레스와 빚이 있지. 우린 무엇으로 살지? 마이너스 통장과 각종 암 보험 가입자로 살지.

입만 열면 돈이 없어 죽겠다고 말하는, 돈 때문에 다투고 마음 상하는, 돈이 원수라면서 돈을 신처럼 떠받드는, 돈이면 다 되고 결국 돈으로 외로워지는 사람들의 손과 입과 주머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