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평점 :
[스틸 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1920년대에 태어나 17살에 대학에 입학해 예술과 고전, 영문학을 공부했다는 저자의 약력을 보며,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책 스토너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을 사랑했던 스토너가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던 이유는 무얼까.
[스틸 라이프]는 가이 대븐포트가 정물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여름 과일 광주리, 운명의 두상, 사과와 배, 토리노의 형이상학적 빛 등 총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소재에 대한 생각들이 자유롭게 연결되어 있고, 각각의 제목과 살짝 어긋나는 듯한 본문의 내용으로 인해 긴장감이 살짝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질서는 그 자체로는 사소한 것들을 무작위로 모아 놓은 것이다”
- 헤라클레이토스-
정물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첫 장부터 니체와 데 키리코의 토리노가 언급된 마지막 장까지 책을 읽다 보면 정물은 단지 이야기를 위한 소재일 뿐, 이 책을 통해 진정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평생을 학문과 탐구의 길을 걸어온 저자의 깊고 넓은 사유의 세계 그 자체이다.
“이 책은 예술과 문학에 나타난 정물 전반에 대해 다루는데 정물이라는 소재가 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 가장 넓게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하여 고대에서 중세, 중세에서 현대, 미술사에서 자연사,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대중 소설까지 대화를 주고 받 듯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결코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는 않는 이유는, 부지런 한 정도에 따라 한 페이지 내에서 시공을 넘나드는 샛길을 얼마든지 만들어가며 흥미 진진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다. 많은 양을 한 번에 읽기 보다는 머리맡에 두고 한 페이지씩 아껴 읽는 것을 추천한다. 책이 제안하는 수많은 샛길들을 충분히 돌아다닌 뒤 다음 페이지를 넘겨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