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여자
안트예 라비크 슈트루벨 지음, 이지윤 옮김 / PADO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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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예 라비크 슈트루벨의 Blue Woman(원제 Blaue Frau)은 “한 사건”을 다루지만, 그 사건을 둘러싼 세계의 작동 방식을 더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 작품이 2021년 독일 도서상(Deutscher Buchpreis)을 받았다는 사실은 단지 훈장이라기보다, 동시대 독일어권 문학이 어떤 질문을 가장 예민하게 붙들고 있는지 보여주는 좌표에 가깝다. 심사평이 이 작품을 ‘부조리와 폭력에 맞서는, 취약하지만 맞서는 힘으로서의 문학’에 가깝게 규정한 것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줄거리는 비교적 명료하게 시작한다. 체코 ‘리제게비르게(거인산맥)’ 인근에서 자란 아디나는 베를린에서의 어학 과정 중 사진가 리키를 만나고, 리키의 연결로 독일 북동부 우커마르크 지역의 한 문화시설에서 실습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서독 출신의 문화정치인”에 의한 성폭력 이후, 아디나는 자신의 말을 ‘신뢰받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되며 유럽을 가로질러 헬싱키에 닿는다. 그곳에서 에스토니아 출신 정치학자이자 EU 의회 인사로 설정된 레오니다스를 만나 잠시 기대지만, 이 관계 역시 단순한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권력의 표면을 드러내는 쪽으로 진행된다. 


이 작품의 장점은 성폭력을 “사건의 크기”로만 밀어붙이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사건 이후에 시작되는, 더 일상적이고 더 구조적인 단계—신고가 무력화되는 방식, 주변의 무심한 회피, 타인의 ‘합리적’ 조언이라는 형태로 돌아오는 통제—를 길게 배치한다. 괴물은 칼을 들고 나타나지 않는다. 괴물은 절차의 얼굴을 하고, 적당한 단어를 고르고, 피해자의 언어를 ‘불편한 진술’로 격하시킨다. 여기서 아디나의 이동은 오디세이아적 모험이라기보다 피난에 가깝다. 목적지가 분명해서가 아니라, 한곳에 머무는 순간 다시 ‘보이지 않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떠나는 이동이다.


동·서유럽의 권력 비대칭은 이 소설이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는 이유다. 출판사 소개와 여러 해설이 공통으로 짚듯, 아디나의 경험은 체코–독일–핀란드–에스토니아라는 지리적 경로를 따라 “동유럽 여성에 대한 성·계급적 착취”와 “서구 민주주의의 제도적 맹점”을 겹쳐 보이게 만든다. 


경제학 용어를 빌리면, 중심-주변 구조가 개인의 몸에 각인되는 방식에 대한 서사화다. 값싼 노동력과 이동 가능한 젊음이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절하되는지, 그리고 그 평가절하가 성별 권력과 결합할 때 얼마나 손쉽게 폭력의 면책으로 번역되는지 보여준다. 이때 레오니다스가 인권을 말하는 정치인으로 설정된 점은 의미심장하다. 인권 담론이 무용하다는 선언이 아니라, 담론이 개인을 구원하는 방식은 종종 제도와 위계의 언어에 의해 제한된다는, 불편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관찰이다. 


제목이자 상징인 ‘푸른 여자’는 이 소설을 단순한 사회소설로 고정시키지 않는 장치다. 심사평이 “신화적 존재인 Blue Woman과의 대화”라 언급한 것은, 이 형상이 트라우마의 환영이면서 동시에 문학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 형식(말하기의 재구성)임을 시사한다.


문득, 고전으로 치면, 오비디우스의 필로멜라를 떠올리게 된다. 폭력은 신체만이 아니라 목소리를 빼앗고, 말할 수 없음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폭력이 남긴 결과다. 다만 슈트루벨은 그 원형을 도덕극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피해-가해’의 단순 도식 대신, 말이 막히는 시간 자체를 서사의 리듬으로 삼는다. 그래서 읽는 이는 사건을 이해하기보다, 이해가 좌절되는 감각을 먼저 경험하게 된다. 즉, 이 소설은 사건을 친절한 설명으로 정리해 독자가 납득하거나 공감해 빠져들도록 이끌기보다, 피해자가 겪는 말문 막힘과 판단의 흔들림을 독서라는 필터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옮겨 놓는다. 독자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의 윤곽을 따라가면서도, 결정적 순간마다 언어가 미끄러지고 확신이 흐려지는 감각을 이야기와 함께 겪는다. 그 결과 ‘사건의 요약’을 얻는 대신, 사건이 남긴 혼란과 침묵의 무게를 손끝으로 먼저 체감하게 된다.


아마 많은 독자가 그러하듯 이 작품은 쉽게 정리하기 어렵다. 분명한 호평 포인트는 있다. 소설은 동정의 과잉을 경계하면서도 냉소로 도망치지 않고, 개인의 상처를 유럽의 정치·기억·권력의 지형과 연결해 확장한다. 


 반대로, 그 건조함과 층위의 많음 때문에 감정적 몰입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장벽 자체가—“말해도 믿지 않는 세계”를 견디는 방식으로서의 장벽—이 소설의 핵심 장치라는 점에서, 쉽게 흠으로만 보기도 어렵다.


다만,

Blue Woman은 ‘치유의 서사’ 또는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작품이 말하는(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정상성의 폭력’은, 주변이 평소처럼 일하고 웃고 회의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그 평온함이 피해자에게는 또 하나의 압력으로 작동하는 상황 그 자체였다. 사건은 개인의 삶을 무너뜨렸는데, 조직과 공동체는 무슨 문제 있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며, 그에 맞추지 못하는 사람만 뒤처지고, 남겨진다. 소설은 그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2차적 손상—침묵을 강요받는 분위기, 사건을 개인의 불운이나 오해로 축소하는 말투, ‘잊고 넘어가라’는 조언의 형태로 주어지는 통제—를 차분하게, 그래서 더더욱 깊게 박히는 칼날처럼 보여주고 있다.


이는, 폭력 이후에도 세계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들, 그 정상성의 폭력을 해부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창한 구원이나 허울 좋은 소소한 행복으로 상처를 봉합하려는 일시적 처치나 마약이 아니라면, 적어도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태도로, 그런 형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작업을 끝까지 덤덤하고 묵묵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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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돼 나왔으면 했는데 나와서 좋았어요. 올해 만화 중 제일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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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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