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곰돌이님의 서재 (곰돌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06 Jun 2026 08:37:08 +0900</lastBuildDate><image><title>곰돌이</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38014177507993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곰돌이</description></image><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염소의 축제 2 (무선) - [염소의 축제 2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310404</link><pubDate>Mon, 01 Jun 2026 00: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3104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08X&TPaperId=173104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27/59/coveroff/895461308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08X&TPaperId=173104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염소의 축제 2 (무선)</a><br/>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br/></td></tr></table><br/>35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한때 라파엘 트루히요 독재 정권의 핵심 권력자였으나 이제는 모든 것을 잃고 병든 채 누워 있는 아버지 아구스틴 카브랄을 내려다보는 우라니아. 얼어붙은 눈동자가 마주한 것은 단지 병든 노인이 아니다. 그 시선 끝에서, 35년 전 인간의 영혼까지 길들였던 권력의 기억이 되살아난다.<br><br>거대한 서커스장. 사람들의 등에 보이지 않는 줄을 꽂아 조종하는 인형술사로서의 트루히요. 그 무대 위에서 가장 비참한 줄인형들은 역설적으로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장관과 관료들, 우라니아의 아버지인 아구스틴 카브랄 같은 인물들이다. 트루히요라는 줄잡이가 줄을 조금만 팽팽하게 당겨도 공포에 질리고, 다시 느슨하게 풀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탐욕스럽게 춤을 춘다. 줄이 끊어지는 공포보다 줄에 매달려 사는 굴욕을 견디는 것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아니, 뻔히 알면서도 끝내 ‘염소’의 변덕스러운 손가락 끝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세계에서 트루히요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언론과 수치심이다. 그는 사람을 무너뜨린 뒤 다시 손을 내민다. 그러면 사람들은 모욕받았다는 사실보다,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무엇보다 치가 떨리는 건, 트루히요가 쥔 줄이 인간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가족’과 ‘성(性)’에까지 꽂혀 있다는 점이다. 부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그들의 아내나 딸을 요구하고, 부하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이들을 제물로 바친다. <br><br>한편, 우라니아는 자신의 애칭인 ‘우라니타’라고 불러주는 유일한 친척인 고모를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견뎌온 이들의 대화는 같은 언어에 닿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상대의 상처 주변만 맴돈다. <br><br>“그 일이 내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br><br>“우라니타, 적어도 네게는 전화위복이 되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넌 지금 위치에 있지 못했을 거야. 반면에 우리에게는 재앙이 되었지.” (p. 19)<br><br>트루히요가 친 그물에서 빠져나간 자와 남겨진 자의 대화는, 서로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 지나온 삶이 너무 달라서 어딘가 계속 서글프게 어긋난다. 14살 때 도미니카 공화국을 떠나 미국에서 번듯한 엘리트로 성공했으나 자신의 가장 깊은 아픔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우라니아와, 반대로 정권의 찌꺼기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눈에 보이는 사회적, 경제적 고초만 이야기하는 고모. <br><br>그래, 이제는 말해야만 한다 우라니아. 오래 침묵했던 이유를, 그리고 침묵으로밖에 버틸 수 없었던 시간들을. <br><br>그러나 혹시라도 그 고백이 치유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붕괴로 이어지면 어쩌나 우려스러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숨죽여 들여다봐야 했다. 나에게 우라니아는 과거를 회상하는 인물이라기보다, 현재 속으로 걸어 들어온 과거 그 자체였다. 악몽 같은 시간을 어떻게든 지우고 잊어보려 일과 공부, 그리고 책을 붙잡고 단 한 순간도 ‘생각’에 빠질 틈을 주지 않으려 했던 우라니아의 날들. 그렇게 시간은 멈춘 듯이 흘렀다. <br><br>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우라니아는 컵을 들지만, 텅 비어 있다. (p. 364)<br><br>이처럼 철저히 외면해 온 우라니아의 과거는, 35년 전 독재자의 숨통을 끊으려 했던 이들의 역사와 맞물리는 순간 더 이상 개인의 비극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1권에서 암살단이 독재자를 향한 거사를 앞두고 차 안에서 과거를 되짚는 사이 정권의 악행들이 조각처럼 흘러나왔다면, 2권은 트루히요의 내부 집무실과 핵심 관료들의 시선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야말로 ‘트루히요의 긴 팔’이 조종하는 추악한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br>아직 정권이 무너지지 않아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타들어 가는 공포 속에서, 암살자들의 이름이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한 명씩 호명되는 장면을 읽는 동안, 이들에게 씌워진 대역죄인이자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은 내 안에서 거꾸로 읽히고 있었다. 만만한 제물에 책임을 씌우고 본보기로 처벌하면서, 그 안에서 국민에게 어떤 교훈을 남기려는 독재자들의 모습은 어딜 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br><br>제아무리 날조와 수치심으로 인간을 지배하던 트루히요라 할지라도, 국민의 영혼을 쥐고 있는 교회와의 불화와 미국의 냉혹한 외면 앞에서는 무력했다. ‘신과 트루히요’라는 기만적인 축제가 끝나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서커스장의 천막도 걷힌다. 다 드러난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다. 이제 무대 뒤조차도 권력이 작동하는 또 하나의 무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독재라는 건 거대한 폭력인 동시에, 각자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비겁함이 얽혀서 지탱해 온 시간이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사람이 망가지는 순간보다, 망가진 자기 모습을 끝내 견디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비린내 나는 피와 달콤한 향수가 뒤섞인 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보는 것은 지옥을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인간이 한 사람으로 존재하기보다 역할 속에서 살아가도록 길들여진 세계를, 달리 말할 방법이 없다. <br><br>어떤 시간은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한 사람의 전부가 되지는 못한다. 우라니아는 지옥 같은 세계가 씌운 역할로부터 멀어지고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채 잊으려고 애썼던 세월이 너무나 길었다. 상처는 우라니아가 지나온 시간의 일부일 수는 있어도, 우라니아의 이름일 수는 없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27/59/cover150/895461308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275955</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5월, 책 읽기 딱 좋은 계절이다.
앞에 어느 달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95583</link><pubDate>Mon, 25 May 2026 05: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9558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39764&TPaperId=172955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542/6/coveroff/895443976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4755&TPaperId=172955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790/27/coveroff/s49213987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495X&TPaperId=172955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310/50/coveroff/893240495x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4941&TPaperId=172955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310/17/coveroff/8932404941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652&TPaperId=172955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096/40/coveroff/8937463652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95583'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5월, 책 읽기 딱 좋은 계절이다.<br><br>앞에 어느 달을 갖다 붙여도 어울릴 문장이겠지만, 5월이니까 한번 적어봤다.<br><br>작년 5월 내 생일날 나에게 주는 선물로 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를 샀었는데, 이번에는 식구가 조금 더 늘었다. 새 책을 들이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법. 아직 첫 페이지도 열어보지 못한 책들이 태반인 마당에, 내가 덥석 도전해도 될까 싶은 책들이 줄줄이 이어져 위압감이 없지 않아 있다. <br><br>하지만 뭐, 글자가 나를 잡아먹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든 ‘축하의 명분’으로 모인 책들이다. <br><br><br><br>저메이카 킨케이드 《지금, 그리고 그때》<br><br>나는 남의 감정에 꽤 영향받는 인간이라, 일상에서든 책에서든 같은 말도 꼭 상처처럼 던지는 사람을 마주하면 금세 피로해진다. 이런 감정은 꼭 젖은 솜처럼 달라붙는다. 달라져야지, 몇 번이고 되뇌어봐도 별도리가 없다. 그래서일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는 무심한 문장들이, 나를 붙잡곤 한다. 그래서 킨케이드의 신간 소식이 반가웠고, 다시 또 만났다.<br><br>제목에 미래를 뜻하는 단어는 빠져있다. 내가 느낀 킨케이드라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믿을 수 없는 시간이라 여기는 사람에 가까워서, 미래 대신 ‘지금’과 ‘그때’에 더 의미를 둔 걸까, 하는 별 중요하지 않은 혼자만의 넋두리를 덧붙여본다. 킨케이드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자전적 성격이 짙고 카리브해 앤티가섬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중년 여성의 삶을 전지적 시점으로 쓴 소설이다. 작곡가인 남편 미스터 스위트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내 미시즈 스위트. 행복한 결혼생활?<br><br>지금 내 아내인 저 여자, 하지만 처음 만났던 그때는 그저 빼빼 마른 소녀였지. 전지가위를 기다리는 삐져나온 나무의 삐져나온 나뭇가지 혹은 잡초처럼, 진정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치워버려도 되는 존재. 아, 그래, 저 여자에게서 벗어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p. 34)<br><br>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며 속으로 삼키는 이 잔인한 생각만 들여다봐도 이들의 관계가 전혀 달콤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녹턴뿐이었다. 이 곡에 〈이 결혼은 끝장이야〉라는 제목을 붙이며 온갖 방식의 분노를 집어넣고,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시한폭탄처럼 자신들의 관계가 파국에 이를 것임을 알려준다. 안 그래도 책 소개 글을 읽어보니 미시즈 스위트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이후로, 어머니를 떠올리며 글을 써 내려간다는데? 여기서 어머니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다. 나를 버리고 간 망할 엄마다.<br><br><br><br>하인리히 뵐 《여인과 군상》<br><br>최근 《천사는 침묵했다》를 읽었는데, 어쩐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나라도 제대로 읽어보고 난 뒤 천천히 읽어봐야지 했는데 어디 그게 맘처럼 쉽나. 고민이야 평상시에도 숱하게 하는 게 고민이니, 책 사는 데서라도 덜 하자 싶어, 그냥 샀다. <br><br>소설은 화자가 ‘레니 파이퍼’라는 48세 독일 여성의 삶을 추적하는 보고서 형식으로 시작된다. 1941년, 하사관과 단 사흘간의 결혼생활 끝에 전쟁 미망인이 된 레니는 연금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있다. 하나뿐인 아들마저 감옥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화자는 레니를 아는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고 서류를 뒤져가며 그녀의 삶을 복원해 나간다.<br><br>소설의 시작점은 1970년대 초반이지만, 이야기는 곧 레니의 어린 시절과 제2차 세계대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화자는 왜 하필, 이토록 무너져 버린 레니의 삶을 그토록 집요하게 좇는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세상이 보는 레니와 실제의 레니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br><br><br><br>막스 프리슈 《슈틸러》<br><br>또! 또! 또! 하나라도 진득하게 읽어보고 나서 사도 될 것을, 책이 어디 도망이라도 가는 것도 아니고, 선착순으로 손들고 사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렇게 성급한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호모 파버》를 인연으로 이 책까지 책장에 날름 채워 넣었다.<br><br>방금 집어 든 《여인과 군상》이 주변 사람들의 기억 조각들을 모아 ‘레니’라는 한 여자의 삶을 외부에서부터 짚어 들어간다면, 이 책 《슈틸러》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시작된다. 감옥에 갇힌 한 남자가 “나는 슈틸러가 아니다!”라고 처절하게 외치며, 세상이 강요하는 ‘슈틸러’라는 이름과 정체성을 온몸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br><br>사람들은 자꾸만 그를 6년 전 행방불명된 스위스인 조각가 ‘아나톨 슈틸러’라고 부르고, 자신을 미국인 ‘화이트’라고 주장하는 이 남자는,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아니, 그런데, 그 와중에 30센티미터가 조금 못 되는 자기 구두로 감방 크기를 재보는 게 아닌가? <br><br>길이 3.10미터, 폭 2.40미터, 높이 2.50미터... <br><br>이 대목에서 앞서 펼쳐봤던 《호모 파버》가 머릿속을 스친다. 비행기가 사막에 비상 착륙하는 난리통 속에서도 엔진 결함을 숫자로 계산하고 있던 그 남자! 막스 프리슈의 주인공들은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상황에 안 맞게 이성적이고 치밀한 건지 모르겠다.<br><br><br><br>미셸 투르니에 《마왕》<br><br>제목을 보는 순간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괴테의 시에 영감을 준 게르만 신화와 유럽의 식인귀 전설, 그리고 소년 예수를 어깨에 태워 강을 건넌 성 크리스토프의 생애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덕분에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슈베르트의 긴박한 반주 소리와 함께 아이를 유혹해 데려가는 존재라는 이미지가 겹치면서, 소설이 어떤 분위기로 흘러갈지 어렴풋이 느껴볼 수 있었다.<br><br>이야기는 ‘아벨 티포주’라는 기이한 남자의 일기로 시작된다. 말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말이 엄청 많다. 물론 초반이 일기 형식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말이 너~무 많다. 더욱이 자신을 세상의 징후를 읽어내는 특별한 존재라 믿으며 지극히 사소한 것들까지 장엄한 서사처럼 떠들어댄다. 망상증인가? ㅋㅋㅋ <br><br>사실 이 지독한 집착의 뿌리에는 어린 시절 기숙학교에서 만난 절대적 권력자, ‘네스토르’가 있다. 같은 학생이었지만 티포주에게는 신이나 다름없던 존재. 세상의 모든 우연을 자신들만의 특별한 운명으로 해석하는 법을 가르쳐준 그는, 티포주의 자아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인 것 같다.<br><br>초반에는 약간 “뭔 소리지?”라며 미간에 살짝 힘을 주고 읽게 할 만큼 몰입력을 요하는데, 이게 단순히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소설들과는 결이 좀 다르다. 오히려 한 남자의 내면을 아주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기분이라 전개가 묘하게 흥미롭다. <br>나중에는 전쟁의 발발과 함께 징집되고, 나치의 엘리트 교육 기관인 ‘나폴라’에서 소년들을 선발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다는데, 슈베르트의 마왕과 성 크리스토프의 생애 그리고 티포주의 기괴함까지 이 삼박자가 본격적으로 읽기 전 약간의 흥분을 주는 데는 틀림없다.<br><br><br><br>시어도어 드라이저 《아메리카의 비극》<br><br>대공황이 터지기 전, 성공과 돈에 눈먼 인간들의 탐욕이 절정에 달해 있던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어릴 때부터 초라한 현실과 번쩍이는 상류층 세계 사이의 간극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란 ‘클라이드 그리피스’는 거리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전도하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가난과 궁핍을 견디기보다 어떻게든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난 청년이다. 호텔 벨보이 일을 하며 번쩍이는 옷차림과 돈 냄새, 부유한 젊은이들의 삶을 가까이서 본 뒤부터는 더더욱 그렇다.<br><br>‘저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라는 감각만을 따져본다면, 슈테판 츠바이크의 《우체국 아가씨》 속 크리스티네가 떠올랐다. 단 한 번 맛본 화려한 세계 때문에 평범한 일상이 더없이 초라하고 견디기 힘들어져 버린 크리스티네처럼, 클라이드 역시 호텔의 돈 냄새를 맡은 순간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게 아닐까. <br><br>이 얼마나 화려한가! 정말로 부자라는 것이, 또 이 세상에서 출세한다는 것이, 한마디로 돈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그것은 곧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자기와 같은 다른 사람들의 시중을 받는 것을 뜻했다. 이런 모든 사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것은 가고 싶을 때 가고, 가고 싶은 곳에 가며, 가고 싶은 방식대로 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p. 91)<br><br><br><br>오노레 드 발자크 《사촌 퐁스》<br><br>슈테판 츠바이크가 이 작품을 발자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했다고 하니 요거 은근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군! 책 소개 글에 “유행에서 뒤처진 노총각이자 식충 취급을 받는 퐁스의 비극적 일대기”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시작부터 인간 취급이 영 박하다. 뭘 얼마나 잡수시길래 식충소리까지...<br><br>부르주아적 물질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던 184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젊은 시절 예술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로마 유학까지 다녀온 작곡가이자 지금은 대중극장의 지휘자로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주인공 실뱅 퐁스는,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옷을 입고 다니는 노총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먼 친척 집들을 전전하며 ‘식충’ 소리까지 듣는 궁색한 처지의 인물이다.<br><br>상상해보라, 1844년에 스펜서를 입은 사람의 출현은, 마치 두어 시간 동안 나폴레옹이 부활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p. 8)<br><br>겉보기엔 그저 친척 집 식탁을 전전하는 ‘프로 수저러’ 같지만, 퐁스 선생에겐 다 계획이 있다. 한 끼 식사값, 낡은 외투를 새로 맞출 돈까지도 아껴 예술품을 사들이는 것이다. 남들은 근사한 저녁 식사에 쓸 돈으로, 퐁스는 예술품 한 점을 꿈꾸는 인간이랄까. <br><br>보물이 대놓고 “나 보물이다~” 하고 굴러다닐 리 없으니, 퐁스 선생은 극장 업무 외의 시간을 죄다 작품을 찾아다니는 데 바친다. 일찍이 유학 시절부터 다져온 안목 덕분에 그의 집은 어느새 온갖 걸작들로 빼곡해진다. 정작 본인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스펜서를 입고 친척들의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말이다. 게다가 웃을 때 드러나는, 희고 튼튼한 치아는 상어도 부러워할 만했다고 하니, 저작기능도 타고 나셨군! 식도락가에게 이보다 더한 축복이 또 있을까 싶다.<br><br>보통 전지적 시점이라고 하면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느낌인데, 이 소설은 화자가 내 옆에 딱 붙어서 팔짱을 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느낌이라 파리 한복판에서 퐁스의 뒤를 몰래 밟고 있는 스토커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소설의 앞부분은 순수한 영혼인 퐁스 선생을 알아가는 재미로 평화롭게(?)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책 소개 글을 참고하니 퐁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충격을 받고 몸져눕는가 보다. 흑흑.<br> <br>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평생에 걸쳐 수집해 온 예술품들이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라는 것! 이 사실이 드러나자, 사람들이 하이에나처럼 모여든다는데 아휴, 징글징글하다 정말. 발자크는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애정보다 돈이라는 사실을 들춰내려는 걸까. <br><br><br><br>옌롄커 《딩씨 마을의 꿈》<br><br>결국 여기에서도 사람을 움직이는 건 돈이었다. 피와 맞바꾼 돈 때문에 죽음이 코앞에 닥쳐와도 멈추지 못하는 욕망이라니.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소박한 꿈은 결국 마을 전체를 재앙으로 몰아넣는다. <br><br>갑자기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서 근룡이와 방씨를 따라 얼떨결에 매혈하러 가던 허삼관도 떠오른다. 하지만 그 인간적인 온기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최근에 읽은 옌롄커의 《물처럼 단단하게》에서는 인물들이 풍기는 강렬함을 통해, 후끈, 아니 거의 화끈거리는 감정들을 느꼈었는데, 이번에도 꽤 지독한 인간 군상을 보여줄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이번 책장엔 인간 욕망 파멸 세트가 잔뜩 모였다.<br><br><br><br>마지막으로, 《사촌 퐁스》에서 발견한 몹시 위험한 문장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br><br>“실제로 어떤 고민도, 어떤 우울도 마음에 뜨는 뜸과 같은 기벽 앞에선 저항하지 못한다. 어느 시대에서나 ‘쾌락의 술잔’을 들이켜지 못하는 이들이여, 무엇이든(벽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수집하라. 그러면 행복이라는 금괴를 잔돈으로 얻을 것이다” (p. 19)<br><br>아니, 행복이라는 금괴를 잔돈으로 얻을 수 있다니. 이보다 실속 있는 기쁨이 또 있을까. 비워도 자꾸만 채워지는 장바구니 아닌가... 흠, 그래 좋다. 안 그래도 읽고 싶은 책만 잔뜩 쌓였는데, 앞으로도 ‘마음의 뜸’이라 생각하며 책을 사겠다. 끄떡끄떡.<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49/18/cover150/k90213886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491808</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염소의 축제 1 (무선) - [염소의 축제 1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90281</link><pubDate>Thu, 21 May 2026 23: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902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071&TPaperId=172902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27/59/coveroff/89546130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071&TPaperId=172902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염소의 축제 1 (무선)</a><br/>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br/></td></tr></table><br/>서른다섯 해 동안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고향, 산들바람과 바닷소리가 들려오는 거리에 ‘미스 카브랄’이 섰다. 아니, 잔혹한 비극의 땅에 발을 내디뎠으니, 오랫동안 누구도 부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그 이름으로 불러야겠다. 우라니아.<br><br>열네 살의 나이에 고향을 떠났던 아이는 이제 마흔아홉의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조차 외면했던 그녀는 왜 이제야 돌아왔을까. 뒤늦은 연민일까, 끝내 끊어내지 못한 피의 이끌림일까. 평생을 절대 권력의 가장 충직한 사냥개이자 맹신자로 살며 온갖 영욕을 맛보았던 아버지는, 이제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한 채 병상 위에 무력하게 누워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그 파멸을 내려다보는 우라니아의 서늘한 시선은 연민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지독하고, 증오라 부르기엔 너무나 시리다.<br><br>넌 그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넌 계속해서 혼자 말해야 해. 네가 30년 넘게 매일 그랬던 것처럼. (p. 185)<br><br>분명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없을 그 잔인한 기억들이, 세월을 뚫고 카리브해의 눈 부신 햇살 아래로 들춰지기 시작한다. 어릴 적 기억을 따라 위태롭게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심장을 마구 뛰게 만드는 우라니아의 그 시절의 기억 속에는, 단지 개인의 과거를 넘어 도미니카 공화국 전체를 뒤덮은 비극이 자리하고 있었다.<br><br>첫 장부터 압도적인 분위기로 숨죽이게 할 만큼 몰입력이 대단하다. 특히 트라우마로 가득 찬 ‘과거’를 향해 스스로 던지는 인물들의 내면 고백, 저자가 배치해 둔 독특한 문장들이 내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속으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보통 자신의 기억을 회상할 때는 1인칭을 쓰기 마련인데,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자꾸만 자기를 ‘너’라고 부른다. 우라니아뿐만 아니라 도미니카 독재정권 아래에서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겪은 인물들에게, 과거의 기억은 너무나 끔찍하고 파괴적인 역사적 상처였던 것이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자신을 부르는 이 지독한 역설. <br><br>소설은 3인칭으로 건조하게 흘러가다가도, 갑자기 2인칭 ‘너는’으로 가슴을 훅 찔러 들어오는 문장들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그 시점의 균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감정 속으로 더 깊숙이 끌려 들어갔고, 가슴 한구석이 서늘할 정도로 슬퍼졌다. 이야기를 읽고 있다기보다, 바로 옆에 나란히 선 채 그들이 외면해왔던 기억들을 함께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깊은 내면에 숨겨둔 상처를 억지로 끄집어내느라, 자신을 얼마나 아프게 다그치고 있을지가 문장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br><br>초반부터 할 말이 왜 이렇게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이 뒤로 교차하며 펼쳐질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의 심리와 암살자들의 긴박한 이야기까지 남았는데, 이번 리뷰는 어째 막판에 무 자르듯 잘라야 할 것 같다.<br><br>당시 도미니카가 처한 고립된 국제 정세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절대 권력자 트루히요의 내면이 드러나는 장면도 꽤 흥미롭게 읽었다. 현재의 우라니아 시점과 35년 전의 과거가 교차하는데, 과거 속 트루히요가 목욕을 하면서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검열을 받는 라디오 속 세상은 국민을 현혹하고 독재자의 눈을 가리기 위한 뻔한 거짓 승리 소식만 가득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으로 인해 실제로는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왕따가 된 상태인데, 독재자 혼자 욕실 안에서 그런 방송을 들으며 가짜 우아함과 통제력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셈이다. 그가 통제 못 하는 것은 단 하나, 빌어먹을 방광이다.<br><br>재미있는 건 소설 속 트루히요가 자기 안의 ‘검은색’을 경멸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안에 흐르는 아이티 혈통은 죽도록 혐오하면서도 정작 라디오 속 기만적인 세상 뒤에 숨어 완벽한 척 허세를 부리는 모습, 여기에 제 목숨 하나 보전하겠다고 미신에까지 매달리는 그 지독한 열등감과 기괴한 집착을 들여다보자니 참 없어 보이기 짝이 없었다. 제아무리 절대 권력자라 떵떵거려도, 라디오의 거짓말 뒤에 숨은 실망스러운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명치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파국의 서막을 본인 또한 이미 직감하고 있지 않았을까? 더위를 식혀주는 인공적인 찬바람조차 ‘가짜 바람’이라며 집무실에 에어컨조차 두지 않았을 만큼 예민한 사람이니 말이다.<br><br>‘염소’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30년 세월이 넘도록 철권통치한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의 별명이다. 겉으로는 대단히 고결하고 전지전능한 지도자인 척했지만, 뒤로는 수많은 여성을 유린했던 그의 추잡한 성적 탐욕과 징글징글한 권력욕을 ‘발정 난 염소’에 비유해 비꼬아 부른 것이다. 그 뒤에 붙은 ‘축제’는 절대 권력자가 벌였던 광란의 지배 역사와 동시에 그 독재를 끝장내기 위해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준비한 거사를 뜻한다. 이렇게 제목의 의미를 알고 나니 확실히 다르게 와닿는다. 하지만 읽기 전에는,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은 작가라는 생각만 있었을 뿐 선뜻 손이 가는 제목과 표지는 아니었다. 딱히 그런 걸 많이 따지는 편은 아닌데도 어딘가 껄쩍지근한 느낌이 있었달까 ㅋㅋㅋ 원래는 리뷰도 안 남기고 읽었다는 흔적만 남길 생각이었는데, 이렇게까지 할 말이 많아질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br><br>이제 2권으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27/59/cover150/89546130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275930</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천사는 침묵했다 - [천사는 침묵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82909</link><pubDate>Sun, 17 May 2026 23: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829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698&TPaperId=172829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625/43/coveroff/89364646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698&TPaperId=172829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천사는 침묵했다</a><br/>하인리히 뵐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9년 07월<br/></td></tr></table><br/>전쟁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끝났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의 삶. 폐허 속에서 그들은 사랑하고, 굶주리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하루를 이어간다. 현재의 풍경 위로 과거의 기억이 겹쳐지며 순간순간 묘한 혼란을 준다. 그럼에도 전쟁터에서 도망쳐 나온 한 남자의 위태로운 발걸음을 따라가게 된다. 그의 이름은 한스 슈니츨러.<br><br>저 멀리 어떤 형체가 그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어떤 살아 있는 얼굴보다 더 사람 같았던 먼지 쌓인 석조 천사상이었다. 한스는 기묘한 희열을 느낀다. 전쟁터에서 그는 사람을 서로 죽여야 할 대상으로만 보았을 것이다. 혹은 이미 영혼이 빠져나간 ‘죽은 표정’으로만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천사상은 그를 그저 가만히 응시해 준다. 인간의 흔적을 간직한 그 미소에서, 너무 오랜만에 누군가의 따스한 시선을 느낀 걸까.<br><br>하지만 입김을 불어 먼지를 털어내자, 희열은 금세 사라진다. 서서히 드러나는 번들거리는 니스칠과 조악한 도금의 흔적. 전쟁이 끝난 뒤에도 결국 다시 돌아가야 할 세계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는 어쩌면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건지도 모르겠다.<br><br>나는 “이 도입부가 참 좋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정신없이 잔해뿐인 거리를 떠돌던 한스는 어느 순간 폭격으로 무너진 자기 집 앞에 서 있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p. 29) 그런데 돌아온 곳엔 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도입부가 좋건 안 좋건,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가 싶다. 이 폐허 속에서 무슨...<br><br>탈영병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학교가 전부였던 학생이기도 했다는 사실과 마주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기 위해 수없이 이름을 바꿔야 했던 한스. 다른 이의 신분 뒤로 자신의 진짜 얼굴을 숨긴 채 돌아온 그를 맞이한 건, 그가 버려야 했던 이름만큼이나 처참하게 지워진 집의 흔적이었다. 그는 과연 ‘한스’로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누군지도 모를 타인의 그림자로 돌아온 것일까.<br><br>소설 속에서 과거 전쟁터로 나가기 전, 한스가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가 유독 마음을 힘들게 했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죽음의 공포 그 자체보다, 서로가 서로의 두려움과 슬픔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애쓴다고 달라질 수 없고, 감춘다고 감춰지지 않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한단 말인가. 왜 그런 때가 있지 않나. 지금 가장 두렵고 막막한 건 분명 나 자신인데, 그런 나를 바라보는 가족이 더 가슴 아파할까 봐 오히려 그 마음이 더 견디기 힘든 순간들.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 속 이야기인데도, 참 현실적인 슬픔으로 다가왔다.<br><br>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지금의 한스에게서는 가족이나 지난 삶을 향한 그리움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랬었지.’ 정도에서 머문다. 그리움이나 슬픔도 마음의 에너지가 남아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듯, 한스는 영혼까지 싹 다 타버린 걸까.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통이 너무 깊으면 본능적으로 ‘진짜 나로서 느꼈던 기억들’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가둬버리는 것처럼.<br><br>이 소설은 ‘전쟁 이후’의 삶을 비춘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라는 그 선언만으로 이들의 비극을 단정 짓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본래의 삶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면, 포성이 멈췄어도 그것은 전쟁 중인 상황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도망칠 곳도, 가짜 이름으로 숨어들 곳도 없다.<br><br>유령 같은 존재가 된 한스는, 자신처럼 겨우 숨만 쉬며 살아가는 한 여성을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레기나.<br><br>서로 상처를 들추지 않으려는 듯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그녀가 머무는 작은 방 한구석에 “영영 머물러도 되냐” 묻는 한스와 그것을 담담히 수락하는 레기나의 기묘한 동거. 더는 누구의 삶도 감당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기에 가능한 관계일지도 모른다. 폐허 속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다정함이란, 이런 걸까.<br><br>“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지?”<br>“드디어 나한테 그런 의논을 하니까 기뻐.” (p. 90)<br><br>원초적인 생존 본능만 남은 세계에서, 다시 인간적인 감정과 관계가 생겨나는 순간. 누군가와 다시 ‘생활’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레기나의 대답이 유독 인상 깊었다. 전쟁이 인간의 감정 자체를 어떻게 소진시키는지를 오래 바라본 소설이었기에, 한스와 레기나의 만남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br><br>이 작품은 시작부터 온갖 매캐한 악취로 코를 찔렀다. 제대로 된 건물 하나 없이 폐허가 된 도시, 고여 있는 물은 피부에 닿기만 해도 병에 걸릴 것처럼 썩어 있고,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로 가득 찬 공간에는 숨 막히도록 짙은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저자는 이 모든 상황을 번드르르한 것으로 덮거나 어설프게 칠하는 것을 질색이라도 하는 것처럼, 진짜 이름을 버리고 타인의 유령이 되어야 했던 배급제 시절의 절박함과 저마다의 방식으로 비루하게 혹은 처절하게 버텨내는 다양한 군상들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br><br>“도무지 슬퍼할 수조차 없어. 우습지 않아?” (p. 75)]]></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625/43/cover150/89364646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6254391</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양장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71153</link><pubDate>Mon, 11 May 2026 22: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711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930674&TPaperId=172711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05/81/coveroff/k0329306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930674&TPaperId=172711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양장본</a><br/>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4년 04월<br/></td></tr></table><br/>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는 작가의 진솔한 고백이 담긴 서문이 좋으면, 본문의 마지막 장까지 그 울림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의 서문은 유독 더디게 읽혔다. 별로여서도, 거창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과한 몰입일지 모르겠으나, ‘그때의 나’를 자꾸만 불러내는 솔직한 말들이 다음 문장과 문단으로 쉽게 넘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다.<br><br>목구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가 내려간다. 작가와 나만의 은밀한 공감이자 소통이었을까. 심리적 연대였을지도.<br><br>그 뜨거운 온기가 좀 가시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 봤던 것 같다. 여전히 무언가를 단정 지어 말하는 일에는 주춤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내가 배워야 할 수많은 것 중에 운이 좋게 깨달은 게 하나 있다. 타인의 고통을 살피기에 앞서 우선 나 자신을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 내 안의 고통과 슬픔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스스로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본 뒤에야 비로소 타인의 아픔을 ‘내 방식대로 함부로’ 껴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br><br>그저 읽는 것으로 그칠 뿐인 사람이라는 것이 겸연쩍어 읽는 것조차 피했던 시간을 지나, ‘아는 것’만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택하며 한 장씩 읽어 내려갔다. <br><br><br>이브 엔슬러. 극작가이며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그녀가 서문에 ‘사유’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속도를 줄이는 것과 되돌아보고, 보고, 진정으로 다시 보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이 책을 설명했다. 일단 속도를 줄이고 되돌아보는 것에 나는 걸려들었다. 이제 남은 건, 보고, 진정으로 다시 보는 일일 테다. <br><br>작가는 전 세계 고통이 머무는 자리를 직접 찾아갔고, 그곳에서 만난 소외되고 짓밟힌 존재들의 목소리를 이 책에 담아냈다. 너무나 참혹해서 사실이라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도록 참 쉬운 말로 쓰였다. 보라는 걸 테지. 많은 사람이 봐주길.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유하길. 그리고 그 아픈 이름들을 잊지 말아 달라는 듯 간절함이 문장 곳곳에 남아 있다.<br><br>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 가장 잔인한 배신을 당했던 아이가, 커서 전 세계의 비명이 들리는 곳을 찾아다니며 남의 상처를 어루만진다는 것. 자신을 파괴했던 고통의 기억을 뒤로하고, 이제는 타인의 부서진 삶을 수습하러 다니는 이브 엔슬러의 행보에 경이로움과 동시에 나는 왜인지 안쓰러움이 좀체 가시지 않았다.<br><br>이미 오래전 자궁암 3~4기를 지나온 그녀를 보며, 나는 자꾸 이제는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너무 오래 자기 몸보다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온 사람 같아서. “나는 암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내 몸 안에 살고 있지 않았으니까”(p. 192)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과거의 자신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뒤늦고도 간절한 위로는, 어쩌면 타인을 구원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의 몸 안으로 온전히 돌아오는 일이었을지도 모를 텐데...<br><br>그런데도 이브 엔슬러는 멈추지 않는다. 나는 자꾸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사람은 왜 끝까지 남의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갈까. 어쩌면 그녀에게는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는 그 치열한 여정 자체가, 어린 날의 상처를 마주하고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필사적인 몸짓이자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단 하나의 길이 아니었을지.<br><br>우리는 함께 숨을 들이마신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고. 그리고 우리는 그 숨에 소리를 보탠다. 다른 소리들이 따라온다. 하나씩 차례로, 한 명, 한 명. 이윽고 우리는 몸짓을 보탠다. 발을 구른다. 주먹으로 친다. 사납게 팔을 휘젓는다. 여자들은 이제 두 발로 서, 저 깊은 곳 아래 있는 슬픔을, 분노를, 공포를 끌어올려 포효한다. ( p. 162)<br><br><br>며칠 전 본 영화 &lt;파라다이스 하이웨이&gt;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감금당한 채 세상과 단절되어 지낸 꼬마 여자아이 레일라. 목숨을 건 위태로운 도주 중 잠시 머문 휴게소에서 레일라는 자기 또래의 남자아이를 만난다. 가족들과 트럭에서 북적거리며 지내는 그 아이는 레일라에게 참 해맑게도 자기 일상을 조잘거린다. 그런데 대화 도중 레일라의 표정이 묘해지는 순간이 있다. 소년은 ‘외로움’이라는 게 대체 어떤 느낌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사랑 속에서만 자라왔다는 걸 깨달았을 때다.<br><br>단 한 번도 혼자 있어 본 적 없다는 소년의 그 천진한 얼굴을 바라보며 레일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평생 외로움과 공포가 공기처럼 당연했던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 내게는 삶 자체였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존재조차 모르는 생소한 감정이라는 사실이 레일라의 그 복잡한 표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br><br>이브 엔슬러의 &lt;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gt;를 읽으며 ‘타인의 아픔을 헤아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 장면이 떠올랐다. 이브가 말하는 ‘슬픔을 껴안는 행위’는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누군가에겐 숨 쉬듯 평범한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야 겨우 닿을 수 있는 ‘파라다이스’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잔인한 간극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 것 말이다.<br><br>쏘지도 날지도 못하는 매미들에게 <br>유일한 방어책은 <br>수백만 마리가 일제히 함께 날아 오르는 것. (p. 243)<br><br>결국 중요한 건 타인의 고통이 내 삶 바깥의 이야기로만 남지 않게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소년과, 외로움 말고는 세상을 배워본 적 없는 레일라. 그 둘 사이의 거리를 함부로 이해했다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든 가늠해 보려 오래 시선을 두는 마음. 이브 엔슬러는 평생 그런 마음으로 타인의 고통 앞에 서 있으려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글을 썼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05/81/cover150/k0329306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8058122</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내 어머니의 자서전 - [내 어머니의 자서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62157</link><pubDate>Thu, 07 May 2026 10: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621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7281&TPaperId=172621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518/0/coveroff/89374272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7281&TPaperId=172621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 어머니의 자서전</a><br/>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김희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br/></td></tr></table><br/>읽고 싶은 책이 계속 늘어나다 보니, 이왕이면 대략 짐작되는 이야기는 조금 미뤄두고, 새로 알아가는 즐거움 쪽으로 마음이 더 뺏기곤 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미 알고 있는 세계로 다시 들어가게 만드는 소설이 누구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는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소설이 그런 쪽에 가깝다. 카리브해의 풍경, 남보다 못한 애증의 혈연, 식민지 경험의 흔적. 어떤 이야기일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그 문장만큼은 쉽게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br><br>죽음보다 더 깊은 고통을 마치 당연한 일상처럼 풀어내는데도, 어떤 문장들은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화를 내고 울부짖으며 쏟아내도 이상하지 않을 처절한 순간에도, 제 갈 길을 똑바로 가는 사람처럼 비명 한번 없이 냉소가 흐르는 담담함. 감정적으로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 그 무심한 태도가 못내 마음에 남았던 걸까. 그렇게 나는 다시 수엘라라는 아이의 삶과 마주하게 되었다.<br><br>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받는 상처는 상처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수엘라. 태어나 처음으로 읽어낸 말이 자신을 억압하는 ‘대영 제국’이었던 아이. 아프리카의 피를 이어받았으나 카리브해 원주민의 지워진 흔적까지 짊어져야 했던 수엘라는, 같은 처지인 사람들 틈에서도 ‘우리’였던 적이 없는 이방인이자 생의 밑바닥에서도 끝내 스며들지 못한 채 밀려난 섬이었다. 제국도, 이웃도, 그 어떤 타인도 그녀를 온전히 품지 않았기에 일찌감치 직시했을 것이다. 이 세계에는 처음부터 자신을 위한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음을.<br><br>남의 손에 키워지며 겪은 멸시와 설움이 어찌 가볍겠냐만, 수엘라에게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태어남과 동시에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 그것은 이미 자신에게 사랑 같은 건 없다는 것과 같았으므로. 그런 수엘라에게 유일하게 다정한 것은 자신의 목소리뿐이다.<br><br>우리의 모든 것은 의심 속에 붙잡혀 있고 패배자인 우리는 비현실적인 모든 것, 인간적이지 않은 모든 것, 사랑 없는 모든 것, 자비 없는 모든 것을 규정한다. 우리의 경험은 스스로에 의해 해석될 수 없다. 우리는 그 진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의 신은 올바른 신이 아니며, 천국과 지옥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적절하지 않다. (...) 적법하지 못한 자들, 가난한 자들, 비천한 자들의 믿음이었다. (p. 45)<br><br>세월이 흘러 생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에 이르러,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마음으로 이 문장을 마주하니 말문이 막힌다. 눈이 멀도록 찬란한 카리브해의 햇살 아래, 그 무심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존재를 ‘사랑 없는 모든 것’으로 정의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삶. 누구나 나름의 한계를 지니고 산다지만, 수엘라의 세계는 유독 서늘하다. 지배자가 정해놓은 질서에 순응하거나 보이지 않는 구원에 기대어 삶을 버티는 사람들 틈바구니 너머, 자신을 설명할 단어조차 없는 암흑 속에 머물러야 했던 그녀에게 행복이나 안온함 같은 보편적인 가치들은 들리지 않는 먼 나라의 말처럼 아득하기만 하다.<br><br>자신이 겪는 고통을 설명하려면 결국 지배자가 만든 단어와 논리를 빌려와야 한다는 것, 그래서 고통을 말할수록 오히려 그것에서 멀어지는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 분명 내가 겪은 일인데도, 내뱉는 순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 낯선 기분. 이 막막함 속에서 수엘라는 지배자가 정해놓은 해답(사랑, 신, 구원)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기를 거부한 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캄캄한 의식 속에 머물며 자신만의 비참한 진실을 응시하기로 한다.<br><br>그녀의 목소리는 이 해석 불가능한 고통의 현장을 우리 역시 똑바로 바라보라고 요구하는 듯했다. 이 물러섬 없는 태도는 결국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온기, 그 근원적인 결핍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꿈속에서조차 발뒤꿈치만 보여주던 어머니. 그녀를 향한 허기에 비하면, 세상의 비정함은 오히려 견딜 만한 것이었을까. 이제 나는 궁금해진다. 이토록 철저히 버려진 세계 위에서,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어머니의 ‘자서전’을 그녀가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지 말이다.<br><br><br>사랑은 나를 무너뜨렸을 것이다.<br>사랑은 항상 나를 무너뜨렸다.<br>사랑 없는 분위기에서 나는 잘 살 수 있었다.<br>이 사랑 없는 분위기에서 나는 내 인생을 살 수 있었다. (p. 35)<br><br>삶에 없었던 사랑. 세상이 허락하지 않은 그 다정함을 찾아 헤매기보다, 끝내 그 결핍을 끌어안은 채 자신의 삶을 견뎌내는 수엘라. “나는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p. 26)라며 되묻는 아득한 물음 앞에서는, 그녀에게 지독한 결기를 읽었던 내 마음이 무색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제 그곳에는 일흔 해의 세월을 통과해 온 노년의 수엘라가 서 있다.<br><br>“꼭 사랑받고 행복해야만 살 수 있는 건 아니야. 이 메마르고 질긴 상태로도 인간은 존재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수엘라의 생존 의지에서 서늘한 수긍의 지점을 발견할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고통을 덜어낼 수 없어 차라리 몸의 일부로 받아들인 누군가라면, “아, 내 삶에도 이런 해석 불가능한 구석이 있지.”라며 수엘라, 그리고 킨케이드와 마주해 어설픈 위로조차 끼어들 틈 없는 적막 속에 머물게 될 수도 있고.<br><br>어떻게든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으로 자신을 들볶는 일에 지쳐갈 때, 오히려 지독하게 무심한 문장들이 차라리 서글픈 안심이 될 때가 있는 것처럼, 킨케이드의 글을 읽는 동안 수엘라의 삶과 고통이 훑고 지나간 자리를 그저 가만히 응시했던 것 같다. 메마른 생의 연장처럼 보이기도 했던 그 삶을.<br><br>어떤 구원도 약속되지 않은 허허벌판 위에서 오직 자신의 숨소리에만 의지한 채 생을 지속했던 사람. 어쩌겠는가. 누구에게도 섞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그 지독한 무심함이야말로, 수엘라가 경계 밖의 생 위에서 자신을 지켜낸 유일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끝내 그녀를 살아가게 만든 것은 구원이 아니라 부재였을지도.<br><br>”그저 그 얼굴, 내가 영원히 산다 해도 결코 보지 못할 그 얼굴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p. 10)]]></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518/0/cover150/89374272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5180040</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물처럼 단단하게 - [물처럼 단단하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51593</link><pubDate>Fri, 01 May 2026 00: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515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077286&TPaperId=172515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01/2/coveroff/s89570772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077286&TPaperId=172515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물처럼 단단하게</a><br/>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02월<br/></td></tr></table><br/>얼마 전, 위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lt;인생&gt;으로 잘 알려진 장예모 감독의 &lt;원 세컨드&gt;를 봤다. 영화의 무대는 끝도 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 척박한 땅에서 고된 노동을 견디는 이들에게 명절보다 설레는 날은 영화 상영일이다. 모래바람을 뚫고 오토바이에 실려 온 필름 통이 도착하고서야 비로소 빛의 세계가 열리던 시절, 영화는 두 달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귀한 축제였다.<br><br>바글바글 모여든 사람들의 땀 냄새 섞인 공기 속에서도 스크린의 불빛만을 기다리던 간절한 눈빛들. 누구랄 것도 없이 달려든 마을 사람들이 흙먼지에 오염된 필름을 귀한 보물인 양 정성스레 닦아내는 모습은, 지극한 정성을 넘어 엄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반동으로 몰려 노동 캠프에 갇힌 주인공이 선전 영화 속 찰나의 순간, 단 ‘1초’뿐인 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사막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그 어떤 거창한 혁명의 구호보다 인간적이고 뜨거웠다.<br><br>옌롄커의 소설 &lt;물처럼 단단하게&gt;는 그 숭고한 ‘인간애’의 자리에 ‘욕망’을 밀어 넣는다. 똑같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누군가는 단 1초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파멸을 무릅쓰고 사막을 건넜다면,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본능을 정당화하는 훨씬 편리한 명분으로 혁명을 앞세운다. 작가는 그 거창한 명분 뒤에 숨은 인간의 민낯을 아주 작정하고 들춰낸다.<br><br>이번에 처음 읽게 된 옌롄커의 작품. 제법 두툼하다. 독서대에 책을 고정하는데, 표지에 들어간 옌롄커의 얼굴이 읽는 내내 강제 오픈되는 바람에 그 다소곳하면서도 사색적인 시선 처리를 실시간으로 감당하며 한 장씩 넘겨 내려갔다.<br><br>주인공 가오아이쥔은 자신을 숭고한 혁명가의 자식이라 정의하며 스물두 살에 입대한다. 원한다면 군 복무를 이어나갈 수도 있었지만 ‘고향에서 진짜 혁명을 일으키겠다’라고 밝히며 4년 만에 제대한다. 그런데 그의 속내를 까 보면 참 일차적이다. 1년 8개월 동안 여자 구경도 못 했다는 둥 본능적인 허기를 운운하는 모습을 보니, 이 남자의 원대한 꿈은 숭고한 이념보다 억눌린 결핍과 욕망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br><br>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진실해야 합니다. (p. 17)<br><br>가오아이쥔의 이 천연덕스러운 자문자답을 마주했을 때만 해도 ‘그래, 인간이라면 그래야 마땅하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려 했으나, 뒤이어 나오는 고백들이 가관이다. 권력의 핵심인 지부 서기의 딸이라서 아내를 선택했다는 말부터, 풍채가 남다른 아내를 묘사하며 굳이 마오쩌둥을 거론하는 뻔뻔한 솔직함까지.<br><br>그의 들끓는 열정은 고향에 오자마자 엉뚱한 곳에서 폭발한다. 샤훙메이라는 여자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해버린 것! 사실 그녀는 초면이 아니었다. 우연히 철길에서 마주쳤을 때, 가오아이쥔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보란 듯이 맨발을 드러내며 발가락 플러팅(?)으로 묘한 살냄새를 풍겼던 구면의 여성이었던 것. 이 지독한 첫 만남의 잔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재회했으니, 불이 붙는 건 시간문제였다. <br><br><br>시대의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시간, 가오아이쥔은 옌롄커가 곳곳에 심어둔 불온함 속에서 자기 욕망을 부지런하게 몰아붙인다. 단단하게 굳은 대의를 비틀고 예리한 칼날로 현실을 쓱 그어버리는 파격. 멈추지 않는 이야기 그 틈새로 튀어나오는 상징들을 알아채는 재미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은 울분 속에서, 살만 루슈디의 책들이 남기곤 하던 분노와 희열이 뒤섞인 특유의 잔상이 떠오르기도 했다.<br><br>아니 왜, 가진 게 쥐뿔도 없어 판이라도 뒤집어보려 근거 없는 패기 하나로 거친 역사에 몸을 던지는 무모함을 볼 때 말이다. 집안 배경도 출셋길도 막막한 처지에서, 혁명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쫓아 가족마저 뒷전으로 미뤄두고 밖으로 나도는 매정한 뒷모습. 거기서 느껴지는 욕조차 아까운 한심함, 그러다 어느 순간엔 기어코 애처로워지고 마는 그 복잡한 심경. 휴, 인간의 민낯에 낄낄거리다가도 문득 서글퍼지는 건, 왜인지 모를 일이다.<br><br>이따금 겸연쩍을 때면, (책을 뚫고 전달되는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이라도 한 듯) “제 말을 끊지 마십시오.”라며 세상 점잖은 톤으로 엄포를 놓는 그 도둑이 제 발 저린 듯한 방어기제를 구경하다 보면 어이없는 실소가 삐져나온다. 만약 그가 결핍 하나 없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이토록 처절하게 혁명을 운운했을까, 하는 물음에 이미 답이 읽혀버린 탓일까. 그건 그렇고 혁명이란 단어는 수백 번 본 것 같은데... 아니, 아이쥔! 진짜 혁명이라는 게 있긴 한 겁니까? ㅋㅋㅋ<br><br><br>마오쩌둥의 어록을 불쑥불쑥 소환시키는 이 기묘한 서사 끝에, 나는 가오아이쥔이 온갖 생각을 쥐어짜고 요란하게 쌓아 올린 이야기 아래에서 혁명은 거창했고, 인간은 그보다 더 적나라했음을 확인했다. 옌롄커의 책들에 ‘금서’라는 딱지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도, 결국은 그가 끝내 시선을 거두지 않는 지점 때문일 것이다. <br><br>꽉 쥐고 있던 손가락을 쫙 펴는 것처럼, 이런 불편하고 노골적인 세계를 자유롭게 헤집으며 헛웃음 한 번 지어보는 것. 고상하진 않아도, 금기를 넘나드는 이야기만이 줄 수 있는 그런 솔직함을 느끼는 동안 문득 권력의 검열 아래 입을 틀어막힌 이야기 중에 얼마나 많은 수작이 묻혀버렸고, 묻히고 있는가를 생각하니, 새삼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br><br>달빛 아래, 복잡한 심사를 띄워 보내며 노래를 흥얼거리던 가오아이쥔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자신의 날뛰는 마음을 노래 가사가 이토록 고요하게 가라앉혀줄 줄은 몰랐다던 그의 나직한 고백. 나 역시 이 소설의 어느 갈피가 내 마음을 붙들 거라 예상치 못했듯이. 투박한 노래 한 줄에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의 마음. 왜인지 이 장면이 한쪽 가슴을 뜨겁게 데운다. 묘하게도 우리가 책을 읽으며 얻는 감정과도 맞닿아 있어서일 테지. 어지럽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 뒤늦은 평온.<br><br>그리고 나는 이 비루한 역사의 굴레 속에서, 작가가 끝내 손에서 놓지 못한 볼펜의 무게를 가만히 가늠해 볼 뿐이다.<br><br>“저는 죄상을 폭로해줄 투박한 심대의 볼펜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p. 212)]]></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01/2/cover150/s89570772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010209</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프레스코 - [프레스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30942</link><pubDate>Tue, 21 Apr 2026 2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309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838922&TPaperId=172309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43/9/coveroff/k1928389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838922&TPaperId=172309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프레스코</a><br/>서보 머그더 지음, 정방규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07월<br/></td></tr></table><br/>서보 머그더의 &lt;도어&gt;가 남긴 배타적인 침묵, 그리고 &lt;아비가일&gt;의 엄격한 기숙사 규율 속에서 집을 그리워하던 소녀의 날 선 긴장감이 여전히 기억에 선하다. 같은 헝가리 작가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끊임없이 주인이 바뀌며 내어주어야 했던 땅의 기억 때문인지, 이들이 빚어낸 인물들은 마음의 빗장을 깊게 걸어 잠그고 있다. 흉터가 단단해질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그제야 삭히고 삭힌 감정들을 토로하는 것처럼 들리는 이 탄식과도 같은 고백을 다시 마주하고 싶었던 걸까.<br><br>서보 머그더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늘 같은 지점에서 마음이 동요되곤 한다. 인물들이 무너지지 않으려고 세워둔 벽이 보이기 시작할 때. 아직은 그들이 선택한 방식들을 이해와는 조금 다른 자리에서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그러나 곧 알게 된다. 숨이 턱 막히다가도 한 꺼풀만 더 들춰보면 그 벽이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쌓아 올린 가장 처절한 흔적이라는 걸.<br><br>목사 집안에서 자란 ‘어누슈커’는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9년 만에 고향집으로 향한다. 올해 스물아홉 살인 그녀에게 집은 따스한 품이라기보다, 오랫동안 구석에 처박아두어 쿰쿰한 먼지가 내려앉은 옛 물건을 억지로 꺼내 보는 일에 가깝다. 종교적 규율에 막힌 숨 가쁜 공기, 단정과 엄숙으로 무장한 집안의 권위주의에 조용한 반항이라도 하듯 그녀는 격식을 갖추지 않은 채 나갈 준비를 마친다. 이런 모습이 집안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내뱉는 한마디.<br><br>“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보면 되겠지.”<br><br>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짓눌렀기에 9년 전 그날, 도망치듯 집을 나와야만 했을까.<br><br>여기에 ‘프레스코’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덜 마른 벽 위에 그려지는 이 그림은 한 번 스며들면 수정할 수 없어, 잘못 그리면 벽을 아예 깎아내야만 한다고 한다. 이미 굳어버린 벽처럼, 이 소설 속 가족 역시 뒤늦게 고쳐보려 애써도 결코 수정할 수 없는 균열을 품은 걸까. 화가인 어누슈커는 이 단단히 굳은 풍경 위에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힐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지워지지 않을 작은 금 하나를 더 긋는 데 그칠 뿐일지 궁금해진다. <br><br>초반에는 인물들의 관계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가계도를 살피듯 읽어 나가야 했다. 하지만 일단 관계의 윤곽이 잡히고 나니, 그들 각자의 삶이 지닌 모습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br><br>&lt;도어&gt;의 에메렌츠가 길 잃은 동물을 품에 들이고 손길이 필요한 여성들을 돌봤듯, 이 소설에도 타인의 허기를 제 몸으로 받아내는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어누슈커보다 열한 살 많은 언니, 연커다. 연커는 과거 자신의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마다 동생 어누슈커를 떠올리곤 했다. 엄마가 한 번도 젖을 물리지 않아 늘 차가운 젖병 꼭지에만 의지해야 했던 어린 동생을.<br><br>밖에서는 신앙적 권위를 내세우는 목사였으나, 집안에서는 가족의 숨통을 조이는 권력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연커는 ‘어린 식모’처럼 자랐다. 집안에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아 하는 성향이 강한 연커는 모든 갈등을 자기 선에서 조용히 눌러 담으려 애쓰는 사람이다. 더 안타까운 건, 결국 침묵 뒤로 숨어버릴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정작 자신도 행복 근처에 가보지 못했으면서 동생의 허기를 기억해 내는 연커. 그녀가 건넬 수 있었던 유일한 구원은 상황의 해결이 아니라 그저 차마 꺼내 놓지 못한 것들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으며 함께 아파하는 애달픈 연대였을지도 모른다.<br><br>무거운 늪처럼 끌어당기는 이야기 위로, 서늘한 바람을 확 불어넣으며 “정신 차리고 이 집안의 진짜 얼굴을 봐!”라고 속삭이는 듯한 인물이 있다. 바로 전쟁고아였던 아르파드다. 아버지가 부모를 잃은 조카를 ‘시혜’하듯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아르파드는 이 가족의 사소한 습성부터 감춰진 진실까지 하나하나 눈에 담는다. 당사자들조차 외면하고 싶어 하는 구석들을. <br><br>이 소설에는 배경으로 치우칠 인물이 단 하나도 없다.<br>오랜 세월 목사 집안의 그림자로 살았던 하녀, 커티의 삶 또한 그랬다. 그녀는 장례식에 가기 위해 서랍 깊숙이 넣어둔 ‘검은 옷’을 꺼낸다. 그것은 40년 전, 그녀가 첫 월급으로 산 유일한 사치였다. 평생 누더기만 걸치다 죽는 순간까지 남루했던 아버지를 기억하는 그녀에게, 이 빳빳한 검은 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온전한 내 것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가장 서글픈 안심이었을지도 모른다. <br><br>얼마 전 읽은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 &lt;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gt;에서, 문맥에 딱 들어맞는 ‘정확한 단어’를 찾아냈을 때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는 고백을 봤다. 일개 독자인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한 감상 글을, 공을 들여 써 내려갔을 때, 그 결과물이 제법 만족스러울 때의 천 배의 쾌감일까? 만 배쯤 될까? 나는 그 마음을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가 말한 쾌감이 꼭 쓰는 사람만의 쾌감은 아닐 것이다. 작가가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스스로를 들볶았을 고심의 흔적들, 누군가의 생을 앓아본 듯한 문장을 발견할 때면 독자인 나 또한 찌르르한 전율을 느낀다. 이 소설을 읽으며 여러 번 그런 문장을 만났다.<br><br>“이 소설은 열세 시간의 기록이다”<br><br>이 문구 하나가 내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 단순히 열세 시간의 기록일 뿐이라고? 그런데 그걸 서보 머그더가 들려준다? 고민하고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br><br>사실 낯선 땅, 타인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고선 그 속내를 다 안다는 듯 공감하는 일이 때론 스스로도 멋쩍다. 그럼에도 나는,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오는 열세 시간의 여정부터, ‘이런 얘기쯤은 해도 되겠지’ 싶은 속내를 마음 놓고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는 이들의 미처 다 드러나지 않은 삶까지 짐작해 내고, 그 통증을 함께 앓았다. 누구 하나 특별히 악한 의도를 품은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이들의 삶에는 사랑이 부족했는지. 이 지독한 정서가, 참 쓰고 아프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43/9/cover150/k1928389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8430907</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문득, 작년의 오늘이 궁금해졌다.
그날의 나는 어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17751</link><pubDate>Wed, 15 Apr 2026 09: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1775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34X&TPaperId=172177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5/76/coveroff/893746134x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710&TPaperId=172177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82/22/coveroff/8937462710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561X&TPaperId=172177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50/39/coveroff/893291561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5601&TPaperId=172177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37/51/coveroff/893291560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5069&TPaperId=172177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644/14/coveroff/8932405069_2.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17751'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문득, 작년의 오늘이 궁금해졌다.<br>그날의 나는 어떤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을까, 나조차 잊고 있던 1년 전의 나는 어떤 마음의 밑줄을 긋고 있었을까.<br><br>북플에 남아 있던 1년 전 기록을 슬쩍 들여다봤다. 그때의 나는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고 있었고, 스스로는 제자리에서 반 발자국쯤 나아갔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br><br>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몰랐으면 하는 마음, 지나쳐주길 바라는 마음. 이 모든 감정이 뒤섞여 복잡한 심경으로 지냈던 그때의 나날들이 머릿속에서 휘리릭 지나간다. 사실은 거의 멈춰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 혼자만이 알아챌 수 있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 그 정도만으로도 그때의 나에게는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지금의 나는 또 어떤가 싶어진다.<br><br>사소한 엉망 속에서도 나는 웃고, 잠깐 화를 내고, 또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걷는다. 여전히 미루고 또 미루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얼른 자동차 엔진오일도 갈아야 하는데, 이런 건 왜 이렇게 미루게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사는 일은 전혀 귀찮지 않다. 고르고, 주문하고, 박스를 뜯는 순간만큼은 이상하게 부지런해진다. 며칠 전엔 언니가 내 방에 들어와 한쪽 입꼬리를 예리하게 씨익 올리더니, 책장을 훑다가 한마디 던지고 나갔다.<br><br>“관상용.”<br><br>읽은 책보다 ‘읽으려고 했던 책’이 훨씬 많은 게 사실이기에 할 말이 없다. 어떤 책은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괜히 아껴두고 싶어진다. 지금 읽기엔 아깝고, 나중의 내가 더 잘 읽어줄 것 같은 느낌. 그 ‘나중의 나’는 도대체 언제 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쩔 땐 책을 펼치는 시간보다 책을 고르는 시간이 더 길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이야기를 읽고 싶은 게 아니라, 이야기를 고르는 기분이 좋은 건가 싶다. 근데 이렇게 주절주절 쓰고 있는 걸 보니, 확실히 ‘관상용’에 긁히긴 했나 보다. <br><br>그럼에도 책을 샀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책은 뻔히 한정되어 있는데, 기어코 또 사버렸다. 오르한 파묵을 제외하면 전부 처음 읽는 작가들이다. 먼저 읽고 리뷰를 남겨주신 분들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소박하게나마 ‘땡투’를 보내드렸다. 그렇게 또 아홉 권을 만나게 됐다. 읽을 예정인 책만 또 늘어난 셈이다. 궁금한 마음에 여기저기 앞부분만 조금씩 읽어보는 중이다. 나중에 다 읽어봐야 알겠지만, 일단 지금 막 나를 스친 이 책들의 첫인상은 이렇다.<br><br><br><br>아시아 제바르 《프랑스어의 실종》<br><br>최근에 읽은 《후리》를 쓴 카멜 다우드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알제리 작가다. 소개를 읽다 보니 알제리 여성 최초의 고등사범학교 입학 같은 타이틀보다, 알제리 이슬람 학생 총연합 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했다는 이력이 더 눈에 띈다. 그때부터 본명 대신 ‘아시아 제바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데, 자기 이름까지 지워가며 지키고 싶었던 세계는 대체 뭐였을까 궁금해졌다.<br><br>그런 작가의 이력을 알고 나서인지 “그러니까 바로 오늘,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라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저자의 실제 삶이 문장 뒤로 어렴풋이 겹쳐 보였다. 다른 아랍 여성들과 달리 프랑스에서 교육받았던 그의 이력이 이 소설 속에 어떤 그림자로 스며 있을지 상상해 보면서.<br><br>어느 바다든, 어느 바다의 파도든 자신에게 매혹적인 행복의 시간을 되돌려 주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주 가까이에서 찰싹거리는 그 물결 소리가 더 멀리서, 깊이 파묻혀 있던 과거에서 되살아나 들려오는 듯했다. (p. 20)<br><br>파리에서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고향 알제리로 돌아온 화자 베르칸. 그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훨씬 담담해서 오히려 더 마음이 쓰리다. 분명 고향 땅을 밟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서먹해 보이는 공기. 오랫동안 써온 프랑스어라는 언어가 마치 남의 옷처럼 느껴지는 그 이물감이 문장 사이사이에서 툭툭 걸린다. 고향에 왔지만 정작 내 언어는 어디에 있는지 되묻는 것 같은 그 막막함. 그러나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조차 스스로 결정하려는 그의 모습에서, 프랑스어와 고향의 언어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단호한 기색이 느껴진다. <br><br>가장 흥미로운 건 시점의 변화다. 베르칸의 직접적인 목소리와 그의 삶을 읊어주는 제3자의 시선이 묘하게 교차된다. 처음엔 살짝 당혹스러웠지만, 이내 이 불친절한 전환이 내게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어색함보다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뒤에 숨어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긴장감처럼. 이 묘한 시점의 차이가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지, 그리고 낯선 틈새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 덕분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무겁지 않았다. <br><br>그런데 그는 왜, 퇴직까지 앞당겨가며 이 낯선 고향으로 기어이 돌아와야만 했을까.<br><br>“다시 글을 쓰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자면 온전히 제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p. 22)<br><br><br><br>하인리히 뵐 《천사는 침묵했다》<br><br>도입부의 몇 줄만으로도 전쟁이 훑고 지나간 폐허의 냄새와 지독한 허기, 그리고 적막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전쟁 끝에 탈영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그가 마주한 세상은 뼈대만 남은 건물들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잿빛 도시다. <br><br>그는 이제 오로지 생존과 허기로 세상을 본다. 당장 배를 채울 빵 한 조각과 몸을 뉠 안전한 장소가 그에겐 그 어떤 이념보다 절실하다. 버려진 옷 주머니에서 우연히 발견한 담배를 입에 물고서 성냥불을 가진 누군가가 지나가길 기다린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그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절의 집을 멍하니 떠올려본다.<br><br>돌로 만든 천사의 얼굴은 부드럽고도 고통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p. 8)<br><br>손에 백합 한 송이를 든 채 침묵하는 천사상. 한스는 그 천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묘한 희열에 잠긴다. 전쟁이 삼켜버린 도시에서 그가 처음으로 마주한 ‘얼굴’다운 얼굴이기 때문이었을까? <br><br><br><br>안톤 체호프 《상자 속의 사나이》<br><br>단편의 매력을 처음 알게 해준 건 권여선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서서히 단편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세계문학 단편선을 한 권씩 모으다 보니 결국 안톤 체호프까지 만나게 되었다.<br><br>이 책은 여러 편의 단편이 모여 있는 구성이다. 이제 막 앞부분에 실린 &lt;굴&gt;과 &lt;아뉴타&gt;그리고 &lt;반카&gt; 까지만 읽어봤는데, 누구는 죽을 것 같은데 누구는 웃고 있고, 누구는 진심인데 누구는 이용만 한다. 인간이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는 이유로 발생하는 그 지독한 온도 차. 체호프는 그걸 요란하게 꾸미지 않고 그냥 툭 내놓는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아프게 찌른다. <br><br>굳이 비교하자면, 권여선이 뜨겁게 도려낸 자리를 체호프가 그 뜨거운 순간을 식지 않은 채로 냉정하게 응시하는 기분이다. 한낱 먼지인 나의 감상일 뿐이다. <br><br>체호프의 글에 담긴 ‘삶의 민낯’에서 내가 느낀 냉기 외에 남은 이야기들이 또 어떤 다양한 감정을 얻게 해줄지 궁금해진다. 아직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각기 다른 온도로 놓인 이야기들이 담겨있을까? 읽어봐야 알겠지. 왜인지 서늘한 가을 끝자락에 읽어 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래야겠다.<br><br><br><br>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br><br>내 기억이 맞다면 희곡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니 희곡을 좀 읽어본 사람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유일한 한 권이다. ㅋㅋ<br><br>여기에 한 권을 더 얹어보려 한다. 일단 제목부터가 좀 압도적인 느낌인데 책장을 펼치자, 아침 햇살이 거실을 꽉 채우고 있다. 모여 있는 네 가족의 대화가 참 묘하다. 분명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는데, 그 말들 속에 가시가 돋쳐 있다. <br><br>가장 가까운 이의 살결을 가장 아프게 할퀴는 그들의 대화 과정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눈치가 보일 정도다. 불씨를 덮듯이 아슬아슬하게 애써보지만 이미 뒤편엔 짙은 그림자가 깔린 기분. 닥쳐올 불행이 두려워 날을 세우는 사람들처럼 보여서 어딘가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이들이 통과해야 할 길고 긴 밤을 채우게 되는 것은 무엇일지. 4막 중 1막을 읽었을 뿐인데, 가슴팍이 이렇게도 갑갑할 수가 없다.<br><br><br><br>막스 프리슈 《호모 파버》<br><br>유네스코 소속으로 저개발 지역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주인공 발터 파버는 모든 걸 확률과 통계로만 따지는 뼛속까지 엔지니어다. 소설 시작부터 비행기가 사막에 비상착륙을 하게 되는 난리가 나는데, 이 와중에도 엔진 결함을 숫자로 계산하고 있는 이 남자를 보고 있자니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온다. 세상 모든 일을 계산기로 두드려보고 나서야 안심하는 그는 엄숙한 분위기도 싫고, 괜히 질척거리며 대화를 이어 나가는 스타일도 아닌 듯싶다. <br><br>보이는 것만 보는 인간미가 영 부족한 남자다. 그런데 읽을수록, 난 이 사람이 은근히 맘에 든다! 실생활에서 때론 이런 지독한 투명함이 더 낫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뚝뚝하고 불친절해 보일지언정, 적어도 계산기 밖의 딴마음은 품지 않을 것 같다. 사실은 우리가 모두 가끔 속에서 끓어대는 ‘단절의 욕구’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아 묘하게 정이 간다. 나만 그런가?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군.)<br><br>난 내가 지구상 최초의 인간도, 최후의 인간도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게다가 내가 최후의 인간이라고 단순하게 상상해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히스테리를 부릴 이유가 뭐란 말인가? (p. 33)<br><br>하지만 인생은 늘 계산기 밖에서 터지는 법. 그의 견고한 논리를 비웃으며 자꾸만 끼어드는 ‘우연’들이 이 소설에 기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감정 따위는 하나도 안 섞인 차가운 기계 부속품 같은 문장들 끝에 어떤 비극이 그려질 것 같아 자꾸만 어디 한번 보자? 싶은 심보를 자극한다. ㅋㅋ 읽다보니 《슈틸러》도 급 관심이 간다.<br><br><br><br>로베르토 볼라뇨 《야만스러운 탐정들 1·2》<br><br>최근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를 찍먹했다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을 좀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샀고,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로베르토 볼라뇨에게까지 이어졌다. 원래는 《2666》이 궁금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내가 쉽게 덤빌 두께가 아니라서 《야만스러운 탐정들》로 방향을 틀었다.<br><br>대학교 안 시 창작 교실을 중심으로 시인이 되려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시를 쓰고, 문학을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먼저 펼쳐진다. 이곳은 시에 대한 평가와 각자의 작품 이야기가 오가고, 때로는 서로의 문장을 두고 농담처럼 가볍게 날을 세우기도 하는 공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학 정체성을 이야기하며 ‘내장 사실주의’라는 이름을 붙인다. 어째 이름이 영 껄쩍지근하다.<br><br>이 소설은 처음 문을 열어주는 화자가 있는데, 어딘가 너무 진지해서 좀 웃기다. 건조한 웃음이랄까? 본인은 꽤 심각하게 시와 문학을 바라보는 것 같은데, 옆에서 보면 살짝 과몰입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그 와중에 폼은 또 꽤 잡는다. 누구나 ‘어린 패기’가 대기권을 뚫고 올라가는 시절이 있으니까.<br><br>딱히 누가 주인공이라는 느낌보다는 몇몇 핵심 인물들 사이로 시선이 계속 이동하는 구조처럼 느껴진다. 초반만 읽어서는 아직 무슨 이야기라고 말하기 어렵다. 여러 인물의 목소리가 번갈아 등장하기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로 딱 떨어지기보다는 계속 겹치는 말들의 흐름처럼 흘러간다. 그래서 이야기를 정리해서 이해하기보다는, 그 안의 분위기를 따라가게 된다.<br><br>초면인지라 처음엔 쭈뼛거리며 접근했건만, 읽다 보니 요거 은근히 빠져든다. 막 써 내려간 듯한 생생함 때문인지 시답잖은(?) 대화가 이어지다 말고 애매한 지점에서 재미가 터지기도 한다. 앉은자리에서 백 쪽 정도를 쭉 읽었다. 실제로 1973년 칠레에서 발생한 ‘피노체트 쿠데타’가 이들의 대화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는데, 단순한 배경이라기보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결도 어딘가 이 사건 이후의 공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혼자만의 추측을 해 본다.<br><br>화자가 고백하길, 자신은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나는 ‘충분히’ 자세한 이야기 한가운데에 있다. ㅋㅋㅋ<br><br><br><br>오르한 파묵 《하얀 성》, 《새로운 인생》<br><br>이제 앞으로 겨울이면 더 생각날 오르한 파묵. 작년에 《눈》을 읽고 홀딱 빠졌다는 재탕 삼탕의 말을 또 해야겠다. 너무나 좋았던 첫 만남 덕분에 최근 《내 이름은 빨강》까지 만날 수 있었고, 몇 권 더 품에 들였다.<br><br>한동안 나는, 명확하게 들려주는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다. 분명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었을 테지.<br><br>내게도 차츰차츰 조금씩 변화는 찾아오더라. 지금의 나는 이전처럼 또렷한 문장을 찾기보다, 오래 머무는 문장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의미를 단번에 건네받기보다는, 그 의미 주변을 맴도는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 너무 뜬구름 잡는 사람처럼 보이려나? 후훗. 어쨌든 요즘은 선명한 목소리보다, 눈 내리는 날 창밖처럼 흐릿한 이야기들에 더 오래 시선을 두게 된다.<br><br>오르한 파묵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어딘가에 완전히 발붙이지 못한 채 떠다니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게 그렇게 내 마음을 붙든다. 이유를 다 말하지 못한 채로, 그저 오래 남는 것들처럼.<br><br><br><br>작년 오늘, 김연수의 문장을 따라 ‘반 발짝’ 나아갔다고 믿었던 내가 그랬듯, 지금의 나도 이 아홉 권의 책들 사이를 헤매며 나만의 보폭으로 기분 좋게 걷는 중이다. 새 책을 만지작거리며 아직은 확실히 이해하지 못한 채 조금씩 다가가는 기분, 난 이 기분이 참 좋다. 날 선 시선, 서정적인 여운, 예리한 통찰... 이토록 다양한 감정들을 조금씩 느껴볼 수 있었던 기분 좋은 시간 역시 참 좋다. <br><br>앗! 글을 닫기 전 작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온 메시지 같은 밑줄을 다시 한번 꺼내 본다. 이 문장 하나 슬쩍 남겨두고 이제 정말 마무리 지어야겠다.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나온 한 구절이다.<br><br>“시간의 끝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가장 좋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를”<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189/20/cover150/893240477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1892036</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내 이름은 빨강 2 - [내 이름은 빨강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04305</link><pubDate>Wed, 08 Apr 2026 15: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2043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980X&TPaperId=172043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424/51/coveroff/893747980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980X&TPaperId=172043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 이름은 빨강 2</a><br/>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br/></td></tr></table><br/>한 세밀화가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누가, 왜 그랬는지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16세기 오스만 제국, 궁정에서는 서양식 원근법을 몰래 도입하려는 책이 제작되고 있었다. 전통과 새로운 시선 사이에서 흔들리며, 세밀화가들의 내면도 조금씩 드러난다. 처음에는 범인이 누구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보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br><br>이번 리뷰에는 살인사건의 전개보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선택을 보여주는 두 여성, 세큐레와 에스테르, 그리고 마음에 남는 몇 장면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br><br>일단 세큐레. 1권에서 등장한 남자 주인공 카라(검정)가 사랑하는 여자. 그녀는 내 마음을 가장 널뛰게 한 인물이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채, 사회적으로도 애매한 위치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시동생 하산과도 얽혀 있다. 그렇다고 카라에 대한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그냥 변덕스러운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럴까 싶고. 그런데 계속 따라가다 보니, 그게 그렇게 단순하게 잘라 말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제도의 경계 속에서 선택해야 하는 현실, 거기에 카라의 사랑까지 얽히니, 감정 하나로 정리되는 일이 아니었다.<br><br>그래서 이해가 될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은 전혀 못 따라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티고 있던 감정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마다 자신도 모르게 둘째 아들의 따귀를 ‘찰싹’ 때리는 장면이 그랬다. 삶이 마음대로 안 될 때, 결국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감정이 튀어버리는 것이다. 단순히 나쁜 행동이라고 잘라 말하기에는, 그 안에 그녀가 느끼는 상태가 고스란히 보이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을 옆에서 보고 있는 기분.<br><br>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 책을 통해 여러 감정을 접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좀 막혔다. 현실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패턴 아닌가. 아이들이 감정의 출구처럼 소비되는 장면을 보면서, 내가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인간의 모순을, 부모와 어린 자식의 관계 속에서 드러내니까 불편하게 받아들여졌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이 소설이 그려내는 전통과 새로운 시선, 서양과 동양, 예술과 삶의 경계가 흔들리는 틈에서, 세큐레는 당시 여성으로서 얼마나 불안정한 선택의 기로 위에 위태롭게 서 있었는지를 보여준다.<br><br>약간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를 건드리는 여성도 있었다. 유대인 상인 에스테르.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며, 때로는 속물적이기까지 하지만,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은 아니라서 오히려 덜 답답했다. 그녀는 카라와 세큐레 사이에서 오가는 편지를 배달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소식을 전하고 관계를 이어 붙인다. 감정적으로 깊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관계와 정보에는 깊숙이 개입하는 인물이다. 늘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느낌.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시선이 묘하게 불편하지만, 희한하게 이해가 갔다. 따뜻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차갑다고도 할 수 없는 사람. 정을 쌓기보다는, 필요할 때 닿았다가 떨어지는 관계처럼 존재한다. 딱 그 순간만 같은 편에 서주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사실 가까이 두고 싶은 타입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숨이 트였다.<br><br>이 소설의 사건들, 세밀화가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단순히 범인을 찾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중에서도 같은 이야기와 소재를 서로 다른 화풍으로 그린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놓고, 어느 세밀화가의 손길인지 맞혀보는 장면은 굉장히 흥미롭고, 몰입해서 읽은 장면이었다. 이슬람 회화가 서명도 없이 한 작품을 여러 명의 화가가 나눠 그리지만, 그래도 각자의 특징이 자연스레 드러난다는 점을 발견하는 재미 덕분이었다. 우리 삶 속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아주 작은 디테일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br><br>어릴 적 나는 그림을 본다는 게 결국 ‘얼마나 실제처럼 그렸는가’를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건 서양의 시선에 너무 기울어진 생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 회화가 원근을 만들고, 눈에 보이는 세계를 붙잡으려 했다면, 이슬람 회화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더 중요한 질서와 의미를 드러내려 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세밀화가들은 자신의 개성을 지우고 전통을 따르며, 독창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자연스럽게 여겼다. 자신을 한 걸음 물러놓고, 모든 것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몸짓처럼 느껴졌다.<br><br>어떤 세밀화가가 말 그림을 설명하며,<br>“세밀화가는 자신의 분노와 질주를 그리지 않는다네. 가장 완벽한 말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면서, 세상의 풍성함과 그것을 창조한 이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의 빛깔들을 보여줄 뿐이지”라고 했다.<br><br>세밀화가는 자신의 시선보다 오래된 방식을 존중하며 작품 속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세큐레와 에스테르는 각자의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하며 삶을 이어갔다. 서로 다른 길이었지만, 자아를 지워가며 살아야 했던 그들의 결은 어딘가 닮아 보였다. 자신을 지울수록 그 삶이 견뎌내야 했던 괴로움만은 유난히 선명하게 다가왔기에, 소설 속 인물들이 그려낸 인생사는 내 마음 한편을 왠지 모르게 서글프게 했다.<br><br>이슬람 회화와 서양 회화, 두 세계의 충돌뿐 아니라 결국 사람을 그리고, 삶을 다룬 소설이기에 더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경한 계절의 풍경을 바라보듯 느껴보기도 했지만, 이렇게 다양하게 느껴보기 위해 소설을 읽는 거지 싶다. 과연 범인이 누구일까 따라가는 긴장감 속에서도 유독 기억에 오래도록 남은 장면이 하나 있다. 2권 초반에 천국과 지옥 사이 어딘가에 놓인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는데, 나는 이미 생을 마감한 자의 독백 안에서 여러 감정을 헤아려보았다. 물론 이 세계가 실제 존재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읽는 동안 잠시, 존재하는 듯 느껴졌다. <br><br>베르자흐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보이고 공간의 경계도 없다. 그러나 삶이 꽉 끼는 셔츠만 같다는 것은 오직 시간과 공간의 감옥에서 벗어나야만 깨달을 수 있다. 죽은 자들의 왕국에서 진정한 행복은 육신이 없는 영혼이라면, 산 자들의 영토에서 가장 큰 행복은 영혼 없는 육신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죽은 다음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고매한 신을 향해 기도했다. 우리에게 천국에서는 육신 없는 영혼을, 그리고 이승에서는 영혼 없는 육신을 베풀어 주십사고. (p. 57, 베르자흐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세계. 연옥을 뜻한다)<br><br>죽음과 삶의 역설 속에서, 씁쓸하면서도 묘하게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이후로, 다음을 알 수 없는 불완전한 삶과 그 안의 모순을 굳이 다 이해하려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이 문장에 마음이 더 붙들렸는지도 모른다.<br><br>나에게는 낯선 세계처럼 느껴지는 16세기 오스만 제국과 그 시대를 살아간 세밀 화가들의 감춰진 감수성까지, 꽤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오르한 파묵은 좁은 골목의 그림자, 집 안의 속삭임, 창문 너머로 흩날리는 빛까지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순간처럼 담아냈기 때문이다. 때론 날 것 그대로의 감정과 맞닥뜨려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 또한 나 자신이 피할 수 없는 내면을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통해 느낀 조용한 감정의 소통, 그게 이야기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장면은 줄거리 속 중심이 아니어도, 마음속에 오래 남아 우리를 조금 더 섬세하게, 조금 더 깊이 바라보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이름은 빨강》은 내 삶과 감정을 비춰보기에 충분했다. 물론, 재미도 있었고.]]></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424/51/cover150/893747980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4245188</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내 이름은 빨강 1 - [내 이름은 빨강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90260</link><pubDate>Wed, 01 Apr 2026 12: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902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9796&TPaperId=171902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424/16/coveroff/8937479796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9796&TPaperId=171902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 이름은 빨강 1</a><br/>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br/></td></tr></table><br/>약속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책을 펼쳤다.<br>시간을 떼우듯 읽고 싶진 않았지만, 마음보다 내 손이 먼저 움직였으니 도리가 없다. 점점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앉은 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흠, 식상한 표현이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그랬으니까.<br><br>오르한 파묵의 책에 관심이 생겨 몇 권을 사두었는데, 작년에 《눈》을 읽고 완전히 홀딱, 정말 홀딱 빠졌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터키의 낯설고도 쓸쓸한 풍경이 이제는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그 이야기에 깊이 잠겨 있었다. 아, 이럴 때 김밥 꽁다리 먹는 것만큼이나 기분이 진짜 좋다! 겨울이면 떠올릴 책이 생겼다는 소소한 기쁨까지 준 그의 책은, 앞으로도 꾸준히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최근 《순수 박물관》을 훑다가, 다음을 기약하고 가장 읽고 싶었던 《내 이름은 빨강》을 드디어 펼쳤다. 이 소설은 16세기 오스만 제국,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화가들이 세밀화를 그리던 시절의 풍경과 사람들을 담고 있다.<br><br>그리고, 이 책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다 알 만한 도입부.<br><br>“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 버렸다. 그러나 나를 죽인, 그 비열한 살인자 말고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br><br>나도 이 언저리에서 강렬함만 확인하고 책을 내려놓았기에, 터키어로 ‘검정’을 뜻하는 카라가 나고 자란 이스탄불에서 마주하는 아련함과 낯선 것들, 가슴 한편이 저며오는 느낌, 흩날리는 눈밭 속에서 옛 연인을 떠올리는 순간… 그리고 그녀의 집에 여전히 서 있는 보리수와 밤나무를 바라보며 푸르른 여름날을 떠올리는 풍경까지, 이렇게 서정적인 장면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br><br>이 책이 이슬람 회화와 서양 회화를 다룬다고 해서,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카라의 선명한 옛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내 속울림까지 덩달아 일렁였다. 머릿속은 등장인물의 설명으로 가득 차고, 막연하게 멀게 느껴지던 거리감도 금세 좁혀졌다.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을 건드린다. 괜히 내 사랑 이야기도 슬쩍 얹고 싶게 만든다. 오르한 파묵이 담아내는 ‘사랑’에 있어서는, 나는 그가 사랑하는 순간조차 이미 그 사랑이 사라진 뒤의 시간을 예감하며 인물의 감정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랑하는 순간보다, 그 사랑을 기억하는 시간을 더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리움에 사무친 카라를 떠올리게 할 만큼, 작품의 시작을 참 잘 열어주었다.<br><br>십이 년 만에, 눈 덮인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그 아름다운 얼굴!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나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앞쪽의 다른 세상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나? 미소를 지은 걸까? 슬픈 미소를 짓고 있는 걸까? 어리석은 말아, 내 심장 박동에 따르지 말고 좀 천천히 가란 말이다! 나는 안장 위에서 몸을 돌린 채 그리움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얀 나뭇가지 뒤로 가냘프고 우아한 그녀의 신비로운 얼굴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을 타고 가는 나와 창문에 기대선 그녀의 모습이 휘스레브가 쉬린의 창가로 다가가는 장면, 숱한 화가들에 의해 수천번도 더 그려진 그 장면(그러나 내 등 뒤에는 슬픈 나무 한 그루가 더 있었다.)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나는 나중에, 그녀가 보낸 편지 속에 든 그림을 보고야 알았다. 그 둘의 유사성을 깨달았을 때, 나는 우리가 몹시 아끼고 좋아했던 그 책 속의 그림처럼 사랑으로 활활 타올랐다. (p. 75)<br><br>아니 근데 사람도 아니고 색깔이 화자가 돼서 말한다? 아직 2권은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1권만 해도 33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정말 다양한 화자가 등장한다. 사람만 말하라는 법 있나! 개도 말하고, 새도 말하고, 나무도 말한다. 앞서 언급한 검정을 뜻하는 카라 외 뭐뭐뭐 많지만, 어쨌든 다채롭게 펼쳐진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 머릿속만 개방형 모드로 켜두면 된다. 아참, 화자가 많다고 정신 사나운 게 아니라, 오히려 다음에 등장할 화자가 들려줄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대략적인 소개는 이정도에서 멈추고, 어쨌든 살인사건으로 시작되었으니, 왜 죽었고, 왜 죽였는지가 궁금하다. 죽은 시체가 말하고, 개도 말하고 새도 말할 판이니, 살인자도 직접 등장해 입을 연다. 그의 직업은 세밀화가다. 사건의 세부적인 상황이나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는 방식이 화가답다. 거장의 작품이나 그 작품이 품고 있는 의미를 당연히 독자가 알 거라 여기면서 얘기하는데, 나로선 참 머쓱해질 따름이다. 그래도 괜찮다. 다행스럽게도 친절히 설명해 주니 말이다. <br><br>이 소설에서는 고전 페르시아 서사시도, 이슬람 세밀화 전통도, 서양 회화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중에는,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아름다운 책을 갖지 못하게 화가를 죽이려 했다는 사람 이야기도 나온다. 사랑하듯 집착하고, 결국 파괴로 이어지는 마음. 아름다움을 가두려는 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강박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강렬한 욕망과 집착의 심리와 비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일상의 작은 질투나 욕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스친다. 오르한 파묵이 그려낸 인간 심리는 그래서 낯설지가 않다. 물론, 나와 다른 시선과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또한 존재할 것이다.<br><br>아마 이런 다채로운 인간의 시선과 감정이 바로 여러 장으로 나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슬람 세밀화가 한 작품 안에서 여러 화가의 붓질로 완성되듯 구성된 이 소설은, 화자들이 각각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에서 여러 인물 시선을 번갈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덕분에 단일한 관점에 갇히지 않고, 여기저기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순히 사건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서로 겹친 삶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고, 선택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할 때가 많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자기 방식대로 삶을 그려 나간다. 겹겹의 시선과 흔적은 쉽게 설명되지 않고, 오래 음미해야 조금씩 어렴풋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림은 이성의 침묵이며 응시의 음악이다(p. 122)”라는 문장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br><br>1권을 다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눈》의 주인공 카(Ka)가 떠올랐다. 종교와 정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랑에는 완전 젬병이었던 그의 찌질함 덕분에 의외의 재미를 느꼈듯, 이 작품 역시 예상과는 다른 방향에서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강렬한 도입부 때문인지 무겁게만 갈 줄 알았는데 중간중간 은근히 웃기고, 화자가 바뀔 때마다 “이번엔 또 누구야?” 하며 읽게 되는 맛이 있다. 《눈》에서 인물들이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던 순간들과, 《내 이름은 빨강》에서 화가들이 전통과 새로운 화풍, 동양과 서양의 시선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br><br>오르한 파묵은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머무는 인간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나는 그 끝없이 흔들리는 시간, 고독한 집착, 머뭇거리다 결국 선택하지 못하는 인간의 두려움 같은 솔직한 내면 때문에 그의 책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솔직함과 오만함은 생각보다 가까운 경계에 있다. 자기 경험과 관점을 보편적 진리처럼 믿으면, 가끔은 오만하게 받아들여지니까. 하지만 그의 글에서는 절제가 느껴진다. 자기 인식은 분명하면서도, 굳이 남을 재단하는 데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내가 오르한 파묵에게 끌린 이유다. 그 감각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다. 그냥 취향에 잘 맞는 작가라고 말하면 될 것을, 괜히 말이 길어졌다. <br><br>에잇! 다 떠나서, 16세기 이스탄불, 특히 화가들 사이에 오가는 은밀한 시선과 대화를 따라 그 시대를 상상하고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재밌다. 대부분의 소설처럼 줄거리를 모른 채 하나씩 알아가며 읽어야 더욱 즐거운 작품일 것 같아서 줄거리를 최대한 숨기고 ‘재미’를 전하고 싶었는데, 잘됐는지는 모르겠다.<br><br>이제 2권으로 넘어가야지. ㅋㅋ]]></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424/16/cover150/8937479796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4241659</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뭇 산들의 꼭대기 - [뭇 산들의 꼭대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72588</link><pubDate>Wed, 25 Mar 2026 16: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725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531530&TPaperId=171725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64/41/coveroff/k6325315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531530&TPaperId=171725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뭇 산들의 꼭대기</a><br/>츠쯔졘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0월<br/></td></tr></table><br/>이제 곧 꽃망울이 여기저기 톡톡 터질 거다. 그럼 나는 또 출근길에 괜히 핸들 꺾고 싶어지겠지. 그냥 계속 가보고 싶을 테지. 이유도 없이, 어디 갈 것도 아니면서. <br><br>블라인드 사이로 햇빛이 한 줄기 들어온다. 그 빛 하나로 방이 따뜻해진다. 얇은 숄 하나 가볍게 두르고 츠쯔젠의 책을 펼쳤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좀 멍해진다. 이럴 때는 내가 책을 읽는 건지, 책이 나를 읽는 건지 잘 모르겠다. 느릿하게 읽어 내려간다. 한 줄씩, 게으르게. <br><br>중국 변방, 오래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화려하고 명망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남쪽과 달리, 북쪽의 룽잔진은 스무여 가구 남짓이 모여 밑바닥 삶을 이어가는 공간이다. 도축을 하는 사람, 비석을 깎는 사람, 가장 위에 있는 사람, 그리고 아래에서 버티는 사람. 각기 다른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 가운데에는 순진한 사람도 있고, 눈앞의 이익과 손해를 저울에 올리듯 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변죽이 들끓듯 쉽게 달아오르고 또 쉽게 식어버리는, 그 가벼운 태도 속에서 인간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인물들의 삶은 17개의 장으로 나뉘어 이어진다.<br><br>갓 내린 아이스커피 한 잔을 쭉 들이키자 정신이 조금 돌아온다. 한 장, 두 장. 속도가 붙는다. 콧구멍에서 피식피식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잠은 다 달아나 있다. 시동이 제대로 걸렸다. 칼로 벤 고리버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마치 떨어지는 노을 같다고 하는 감성과 칼끝에서 진동하는 싱그러운 풀 냄새가 집 안에 향수병을 달아놓은 듯하다는 후각을 자극하는 사실적인 묘사, 후루룩후루룩 바닥을 드러내도록 탕면을 먹어 치운 도축업자 신치짜와 그의 부인 왕슈만의 불구덩이 같은 첫날 밤 이야기가 투박하고 거칠지만, 정제되지 않은 무드가 묘하게 좋다. 며느리 인물이 영 못마땅해 아들을 대신해 억울함에 치를 떠는 노인, 신카이류. 그가 왜 본명 신융쿠가 아닌 ‘도망’이라는 뜻을 지닌 신카이류로 불리게 되었는지의 사연부터 스쳐 지나갈 법한 오리와 말, 돼지까지도 제 몫을 톡톡히 하는 세계가 쏟아지는 잠을 다 가져갔다.<br><br>이 집은 시계도 필요 없다. 계절도 상관없이 아침 6시면 일어나고 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는 삼식이 신치짜가 온종일 지친 몸을 녹여주도록 뜨거운 물에 발 담그면 딱 밤 9시다. 시간은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흐른다. 신치짜는 자식을 원하지 않았지만, 부인의 부탁으로 ‘신신라이’라는 아이를 입양하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신신라이는 비뚤어지고, 결국 가장 거친 자리로 흘러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여기서 멈췄다면 좋았을 텐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br><br>처음엔 맑은 국물처럼 담백하다. 익숙하고 편안해서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 그런데 안성탕면이 순식간에 핵불닭볶음면으로 변했다. 혀끝이 얼얼해질 만큼 강한 장면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삼키기도 애매하고, 뱉어내기도 어려운 감정들.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확, 온도를 올려버린다. 그 온도 속에는 쉽게 말로 풀 수 없는 선택들도 섞여 있다. 누군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그 여파는 오래도록 남는다. 손바닥만 한 자리에서도 사람 사는 일은 끊이지 않는데, 하물며 끝이 보이지 않는 땅이라면 그 안에 쌓인 이야기는 얼마나 많겠는가. <br><br>이 작품은 좋은 사람을 보여준다기보다, 그냥 사람을 그대로 꺼내 놓는다. 그래서 읽다 보면 감정이 하나로 정리가 잘 안된다.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자꾸 남는다. 특히 염습사 리쑤전의 시선이 그 결을 더 짙게 만든다. 삶과 죽음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바라보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인물들이 더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 안에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함, 존엄과 이기심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다. 병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젊은 여자를 염습하게 된 리쑤전은, 그녀의 남편이 정성껏 준비한 꽃으로 가득한 관을 마주한다. 생전에 아내가 좋아했다던 꽃을 하나하나 그려 넣은 정성을 보며, 리쑤전은 잠시 부러움을 느낀다. 동시에, 깊은 애도를 건넨다. 그러다 문득, 반신불수의 남편을 위해 새와 꽃을 들여놓으며 살아온 자신의 삶이 떠오른다.<br><br>“생이 어찌 이리 불공평하죠. 당신은 생긴 것도 이렇게 예쁜데 이렇게 정다운 삶을 살다가 하늘이 부르셨잖아요. 나는 생긴 것도 그냥저냥 한 데다 고생이란 고생은 잔뜩 했는데 몸은 또 왜 이렇게 멀쩡한지. 내가 당신을 대신해 갔더라면 좋았을텐데요. 안타깝게도 하늘은 나를 원치 않네요. 당신은 가서 꽃의 신이 될 수 있는데 나는 가서 뭘 할 수 있을까요?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요? 하늘에는 먼지가 없잖아요.” (p. 87) <br><br>삶의 불공평함을 받아들이는 체념과, 자신을 별것 아닌 존재처럼 느끼는 감정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한편, 어떤 가족은 막 숨을 거둔 할머니의 반지를 두고 싸운다. 누군가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계산을 한다. 리쑤전은 그런 인간을 보며 씁쓸함과 허무함을 느낀다. 그런데, 그녀 역시 불륜이라는 모순된 선택을 한다. 불공평하고 뒤엉킨 삶 속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걸, 이런 장면들이 계속해서 확인시켜 준다. 이해가 되다가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해서 쉽게 밀어내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로 남는다. 나 역시 불완전한 존재로서, 누군가의 선택을 쉽게 판단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를 더 생각해보려고 했다.<br><br>광부의 미망인 옌포 역시 그렇다. 그녀는 말수가 적었지만, 자신의 말을 대신해 주는 것이 있었다. 반 척 높이에 구리로 만든, 입이 긴 찻주전자였다. 그 주전자에는 한 번도 차가 떨어진 적이 없었고, 옌포가 건네는 한 사발의 차는 만 마디 말을 대신하는 것만 같았다. 광부의 미망인이라는 삶, 짜리몽땅한 키와 새카만 얼굴 때문에 재혼 상대로는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던 옌포지만, 그녀의 차를 마셔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괜찮은 여자라고, 장가들어도 좋을 사람이라고. 어쩌면 사람을 이해하게 만드는 건 많은 말이 아니라 이런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존재하며 마음을 건네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옌포 역시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다. 물건을 슬쩍하는 버릇이 있다. <br><br>이따금 중국 소설을 읽어보는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가인 위화나 류전윈과는 결이 다르지만, 현실을 꽤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비슷하게 느껴진다. 다만 츠쯔젠은 그걸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기억처럼 천천히 들려주는 쪽에 가깝다. 중국 소설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사람도 의외로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근데 이번에 읽은 《뭇 산들의 꼭대기》는 좀 놀랐다. 갑자기 수위가 확 올라간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거칠고, 잔인한 장면도 나오고, 읽으면서 “어... 여기까지 간다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분위기가 깨지는 건 아니고, 여전히 특유의 맑은 서정성은 살아 있다. 다만 그 안에 좀 더 날 것 같은 감각이 섞였다. 그래서 더 강하게 남는다. <br><br>쿰쿰한 곰팡내가 배어 있는 구석진 곳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따사로운 햇살을 기다린다. 그 사람을 향한 츠쯔젠의 순한 마음씨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자꾸 마음이 동요한다. 이전에 읽은 그녀의 《가장 짧은 낮》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시든 풀과 차가운 눈뿐일 때가 더 많다고 말하던 그녀. 그런 시선을 지닌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 인물들은 다들 자기 방식대로 버티며, 자기 몫의 통증을 안고 살아간다. 만약 고단하고 서글픈 풍경만 이어졌다면 가슴 한편이 뻐근해지고 조금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츠쯔젠의 글은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을 슬쩍 건드린다. 괜히 아는 척했다가 불똥이라도 튈까 외면했던 기억처럼 찔리는 마음까지 드러나, 조금은 남부끄러워진다. 그런 걸 정확히 건드린다. <br><br>내린 비에 숲은 한층 더 푸르렀고 공기 역시 예전처럼 맑은 향기를 사방에 퍼트렸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 달라 누구는 구주소나무 향기를 맡았다 하고 누구는 백합 향기를, 누구는 자작나무 향기를, 누구는 들국화 향기를, 누구는 호제비꽃 향기를 맡았다고 했다. 무료하기 짝이 없을 때 사람들은 향기를 놓고 입씨름을 하곤 했다. 마치 자신의 후각이 인정받지 않으면 자기 코가 무시당하는 것과 같다는 듯이. (p. 395)<br><br>계절이 다르듯, 인생에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삶은 생각처럼 잘 흘러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오늘도 누군가는 버티고, 누군가는 괜찮고, 누군가는 무너진다. 공평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많다. 그러나 한쪽만 계속되지는 않는다. 좋은 날이 오면 또 아닌 날도 오고, 그렇게 번갈아 가면서 흘러간다. 다들 제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은 가슴 속에 맺힌 걸 꺼내고 싶어지는 순간만큼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란 하늘의 시편이 아니라 범속한 사람들의 즐거움과 눈물이라는 문장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왜 한동안 놓아두었던 책을 다시 펼쳤는지. 그 마음을 따라 다시 한 장을 넘긴다.<br><br>끝으로,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을 덧붙여본다. <br><br>침대에 누워 조용히 쉴 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창밖 하늘을 보고 속으로 세상은 이렇게 따사로운 햇볕으로 찬란한데 왜 내 세계에는 늘 서릿발만 날릴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없이 비탄스러웠다. 나는 소설 속 비천한 인물들이 각자 자신만의 상처를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견뎌냈다. 그러기가 쉽지 않지 않은가. 내가 요양할 때 내 붓끝의 인물들 역시 따라서 ‘동면’했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더더욱 세세하게 그들의 고충을 헤아릴 수 있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64/41/cover150/k6325315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9644150</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후리 - [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56426</link><pubDate>Tue, 17 Mar 2026 21: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564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48637&TPaperId=171564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906/47/coveroff/893744863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48637&TPaperId=171564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a><br/>카멜 다우드 지음,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정부(군부 중심)와 이슬람주의 세력 간의 충돌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알제리 내전. 이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점과 번역가 류재화님이 옮기셨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고민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작년에 샤를로트 델보의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를 통해 경험한 류재화님의 섬세한 감각이 깊이 인상에 남았기 때문이다. 참혹한 현실 속, 그때의 기억을 지닌 사람들의 말해질 수 없는 슬픔과 트라우마, 그리고 감정의 흔들림이 마치 잔잔한 빛살처럼 가슴에 스며들어 시처럼 읽혔다. 읽다가 숨이 멎는 듯한 순간도 있을 만큼 그 정서적 울림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고, 이번 알제리 작가 카멜 다우드의 《후리》에서도, 류재화님의 세심한 번역 덕분에 원작이 담고 있는 고통과 감정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br><br>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 흩날리는 하얀 천. 알제리 내전의 잔혹함과 달리,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이 책의 표지만으로도 전하고 싶은 뜻을 헤아려보게 된다. 한 조각 천이지만, 숨죽인 세상 속에서 자유를 향해 흔들리는 저항이 담겨 있는 듯했다. 전쟁과 비극 속에서도 길을 찾아 나서는 인간의 굳센 마음과, 동시에 처연한 마음을 함께 느꼈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각 부가 고통이 밀려오고 마음이 아려오는 순간에 숨구멍이 되어주듯 여러 장으로 나뉘어 있어, 천천히 숨을 고르며 읽을 수 있었다. <br><br>“난 한 권의 책이야. 서서히, 내가 너를 위해 빛을 밝혀 줄게. 왜냐면 내 안의 언어가 마침내 나 아닌 다른 출구를 찾아냈거든. 그게 뭔지 알아? 바로 너한테 있는 두 귀야”<br><br>‘오브’라는 이름의 여성이 자신의 뱃속 아기에게 속삭인다. 그녀가 내는 소리는 분명 내 귀에는 닿지 않을 말일 것이다. 다섯 살 때 테러리스트들에게 목이 잘린 뒤 성대가 손상되어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온갖 손짓과 몸짓과 표정이 결합해 터져 나오는 그 소리에서 부드럽고 고운 숨결이 느껴진다. 불안의 흔적처럼 차디찬 떨림까지도. 사랑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그녀의 가슴은, 기억이 금지된 곳의 이야기를 드러내려 한다. 이는 침묵을 강요하고 잊으려는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 것이다. 존재 자체가 증언인 그녀가 기억을 되살리려 하기 때문이다.<br><br>이곳, 내 머릿속에선, 내 기억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단어들이 줄줄이 나와. 바깥 세상을 마주할 때 내 안의 언어는 정교함의 경이, 그 자체야. 그 안에서 저 옛날이야기가 꿈틀거리며 되살아나. 그 경이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거의 모든 것이 태양 없이도 빛날 거야. (p. 20)<br><br>오브의 뱃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녀의 어머니 하디자는 유명한 변호사다. 한 간호사 부부에게 입양되어 자란 그녀가 내전 중 학살로 일가족을 잃고 홀로 생존한 오브를 입양했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목숨을 건 일인 이 나라에서, 오브를 어떤 마음으로 키워냈을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혼자서 딸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마음이 어땠을지, 나는 그 불안과 두려움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딸을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그녀의 마음은 분명 느껴진다. 하디자는 딸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성대 이식과 후두 복원을 꿈꾸며, 세계 각국의 의사들을 찾아다닌다.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그녀는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려 한다. 사람을 구하는 판결을 위해 법정에서 강하고 열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하디자가, 목소리를 잃은 딸을 바라보는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오브가 마음으로 속삭이는 혼잣말을 들여다보는 동안,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 이 이야기가 소설로 탄생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브의 목에 남은 내전의 상처만큼 끔찍한 현실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br><br>오브의 현재 삶을 따라가 본다. 내전에서 희생당한 생존자들에게 국가가 내민 조건은 연금을 받느냐, 아니면 관청에서 지급하는 상업 시설을 얻느냐였다. 오브는 연금 대신 미용실의 소유주가 되었다.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를 안겨주는 듯 보였지만, 그 겉모습 뒤에는 침묵이라는 무거운 대가가 숨어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에게 받은 손에 쥔 세 알의 약. 목구멍 속으로 삼키면 언제든 뱃속의 아이, ‘후리’를 천국으로 보낼 수 있다. 짧은 원피스만 입어도 생명이 위태로운 이곳에서, 오브는 단 하나, 아이를 이 위험한 세상에 내놓을 수 없다는 결정을 붙들고 있다. <br><br>뭘 원해? 여기 와서 죽은 살덩이가 되고 싶어? (p. 66)<br><br>아직 콩알만 한 후리에게는 설명이 필요하다. 귀가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작은 생명을 향해, 어떤 때에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 오히려 살리는 일이 되어버리는 이 잔인하고 기막힌 현실을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오브는 한 아이에게 닿을 설명을 준비하듯, 우리를 또 다른 여성들의 삶으로 데려간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쉽게 품을 수 없는 곳, 사방에서 위험이 도사리는 어둠 속을 지나고 있는 여성들의 삶으로. <br><br>오브의 미용실에서 함께 일하는 두 여성, 침묵을 지키는 하난과 재치 있고 유쾌한 메리암. 나름의 사정을 지닌 이들의 삶이 그저 연약하고 애처로운 숨결처럼만 묘사되었다면, 그 삶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은 때때로 버겁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르다. 세 여성 모두 자기 안에 분명한 언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언어는 때로 위로가 되고, 잔잔한 미소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반가웠던 나는 잠시 오브의 미용실 단골손님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을 원한다면 조용히 함께 앉고, 잊히지 않는 과거를 꺼낸다면 함께 분노하고 싶다. 서로를 조금씩 흔들어 주며 마음이 굳지 않도록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애처로운 시선 대신, 하난과 메리암에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 오브에게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의 강인함이 든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난과 메리암의 삶을 향한 절실함을 깊이 이해했을 오브는 주변을 세심하게 바라볼 줄 아는 여성이다. 조각난 고향의 기억을 온몸에 남긴 그녀. 문신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염색한 머리로 히잡을 쓰지 않는 여자들은 반드시 교정되어야 한다고 흥분하는 일부 이슬람 신도 남자들을 향해, 세 여성이 터뜨리는 웃음. 이야기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남성 중심의 알제리 사회에서 그 반란의 기쁨이 담긴 웃음을 마주하고서, 내가 어찌 통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제서야, 오브는 나에게 아무도 기억하지 않거나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br><br>“난 내 꿈속에 머물고, 그 꿈속에서 다른 이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내 발자국은 야자수 가지에 쓸려 사라진다”<br><br><br>얼마 전, 늦은 밤 내 방 창문 밖에서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숨을 죽인 채 혹시라도 이어질지 모를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소리였다. 하지만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 충돌 소식이 연일 뉴스를 통해 전해지다 보니, 세상의 먼 전쟁 이야기가 내 일상 속 작은 소리에도 스며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혹시 우리나라에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예전 같으면 엉뚱한 생각처럼 여겼을 상상이지만, 이제는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든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전쟁이 나 피난을 가야 한다면 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싸야 할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에서 시작해, 이런 계산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모든 것이 아쉬우면서도 한없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허무함으로 이어졌다. 나의 생명이 마치 보증수표라도 되는 것처럼 오직 일상만을 걱정하고 있던 그 순간, 여러 감정이 뒤엉켰다. 그리고 안전한 양지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는 나와, 매 순간이 살얼음판 같은 누군가의 하루가 겹쳤다. 나 자신을 향해 비위가 뒤틀리는 듯한 불편하면서도 부끄러운 감정이 올라왔다.<br><br>비극과 고통을 담은 이야기는 반복해서 읽을수록, 그 안에서 인간이 겪는 삶과 죽음, 두려움과 결심이 조금씩 더 가까이 느껴진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만이 아니라, 오늘 하루가 녹록지 않아 숨조차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틈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들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 읽게 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처와 고통 속에 남겨진 목소리를 느껴주는 것뿐이다. 나는 그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며 읽어주고 싶다. 다 알고 있다고 믿는 눈을 하고 바라보는 대신에 말이다. <br><br>내 안에 무엇이 죽어 있는지, 무엇이 살아 있는지 알려면 내 몸을 더듬거려야 해. 그래야 어떤 부분이, 또 어떤 다른 부분이 더이상 숨을 안 쉬고 있는지 알 수 있어. (p. 24)]]></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906/47/cover150/89374486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9064754</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amp;lt;나라 없는 사람&amp;gt; 중에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41278</link><pubDate>Tue, 10 Mar 2026 08: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4127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3475&TPaperId=171412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7/54/coveroff/895460347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lt;나라 없는 사람&gt; 중에서...<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7/54/cover150/89546034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75409</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최근에 세계문학 단편선을 종종 사 모으고 있었다. 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36914</link><pubDate>Sun, 08 Mar 2026 03: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3691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032812&TPaperId=171369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55/98/coveroff/k582032812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7281&TPaperId=171369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518/0/coveroff/893742728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896&TPaperId=171369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83/94/coveroff/8954613896_3.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4863&TPaperId=171369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6/7/coveroff/8954624863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725X&TPaperId=171369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909/70/coveroff/897275725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최근에 세계문학 단편선을 종종 사 모으고 있었다. 책을 처음 펼칠 때면 새 책을 만나는 설렘에 몇 편을 단숨에 읽고, 한동안 애정을 담아 이리저리 들춰본다. 하지만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른 책들이 눈에 들어오면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옮겨 가고, 읽다 만 단편집들은 책장 한켠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읽지 못한 책들이 조금씩 밀려가는 느낌이 은근하게 마음을 눌러 온다. 그래서 비교적 얇은 편에 속하는, 흑인 문학의 거장 랭스턴 휴스의 작품을 다시 꺼내 들었다.<br><br>41편의 단편 중 맨 처음에 실린 「달빛 아래의 몸뚱이들」에는 아프리카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선원들이 등장한다. 그중 주인공은 열여덟 살, 스스로 바다를 택한 소년이다. 지긋지긋한 가난에 찌든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선원이 된 모습이라기보다는, 바다 그 자체를 숨 쉴 수 있는 피난처로 삼고, 화물선의 좁은 공간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안식과 자유를 발견한 사람처럼 보였다. 거칠게 느껴지는 선원생활도 그들에게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마치 영화 《부력》 속 불법 원양어선에 선장과 그의 부하들이 육지에 내려, 소금기 가득한 몸을 대충 씻고 벌거벗은 채로 기다리는 여성의 방으로 달려가는 장면처럼, 혹은 작년에 정주행하면서 재미있게 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작품인 《보물섬》의 프리퀄로 제작된 미드 《검은해적》에서 선원과 해적들이 고단한 일상을 달래듯 창녀촌을 찾는 장면처럼, 본능적인 쾌락이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열여덟 살 소년도 그 속에서 특별한 것 없는 한 명의 선원으로 지내다가 ‘누누마’라는 소녀를 알게 된다.<br><br>방랑벽이 있는 열여덟 살에게 세상은 아름다웠다. 선원이 된 첫해 나는 식당에서 일을 했다. 가지고 있던 교재들일랑 모두 뱃전 너머로 던져 버리고 몇 달 동안 부모님에게 편지도 한 장 쓰지 않았다. 내 생각에 그때껏 내가 알던 사람들은 내게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자유였다. 바다는 나를 어머니처럼 맞아 주었고 웨스트일래너라는 화물선은 내 안식처가 되었다. ( 「달빛 아래의 몸뚱이들」, p. 8)<br><br>날들이 가고 밤들이 지나갔다. 다시 날들이 가고 밤들이 지나갔다. 광활한 아프리카의 무연한 하늘은 별들이 총총하게 들어찼다가는 뜨거운 태양이 떠올랐다. 웨스트일랜호는 조용히 침묵하듯 떠 있었다. ( 「달빛 아래의 몸뚱이들」, p. 12)<br><br>백인 선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장난스럽게 농담을 건네는 누누마와의 관계는 문란하거나 저질스럽게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청춘 멜로의 한 장면처럼 부드럽게 흐른다. 서로를 이해하며 필요할 때 의지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조심스럽게 맞물린다. 소년은 한때 누누마를 사랑한다고 믿었고, 세월이 흘러 거의 잊힌 지금, 그녀와의 기억이 이 이야기를 쓰게 만들었다 고백한다. 이어지는 단편 「눈부신 그 사람」에서도 같은 화물선 웨스트일래너호와 선원들이 등장하지만, 이 이야기가 같은 소년의 시선인지, 혹은 또 다른 선원의 기억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야기는 선실을 담당하는 한 선원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가 우연히 승객 중 데이지 존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일기장을 보게 된다. 그 안에는 선원 중 가장 잘생긴 에릭 긴트에 대한 호감뿐 아니라, 외로움과 고독이 은밀하게 담겨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일해 온 선교사 부부의 딸인 온순하고 순종적인 그녀에게 호감 가는 남자가 생긴 것이다. 일기장을 처음 본 선원은 입이 새털인 것이 분명하다. 입이 한가하면 답답해 죽나보다. 이미 선원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싹 퍼졌다. 배 후미에 있는 선원들 숙소에서 각자 침대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서 시시덕거리며 한 여성의 은밀한 속사정을 떠들어 대니 말이다. 그런데, 한가해도 너무 한가해 보이는 선원들의 모습이지 않은가? 부릴 화물이 거의 없는 탓에, 배는 한참을 정박해 있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다시 항해를 시작한다. 바다의 고요 속에서 소소한 소란과 수다, 그리고 은밀한 호기심은 그렇게 배 위에서 느릿한 시간 속에서 퍼져나간다.<br><br>컬럼비아 대학 자퇴 후 잠시 화물선에 올랐던 저자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는 아닐까라는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랭스턴 휴스가 흑과 백으로 나누어진 삶에서 어떤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로움을 얻고 싶었던 갈증을 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껄껄껄 웃어대는 선원들을 따라 거리낌없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지만, ‘지금 웃어도 되는 걸까’ 싶은 복잡함이 마음 한쪽에 남아 특유의 여유로움이 온전히 즐겁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흔들흔들하는 배가 멀미를 일으키지 않고 잔잔하게 다가온다. 욕이 섞인 농지거리를 주고받는 선원들의 장난 역시 불쾌하지 않다. 아마도 저자는 고된 삶의 면면을 거칠게 드러내기보다는, 상륙해 항구를 거닐고 농부들과 섞여 어울리는 선원들, 해 질 무렵 선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항구 처녀들과 산책로를 걷는 장면 등 고된 삶의 연속인 나날 속에서도 서글픔을 감춘 그들만의 생기와 문화를 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의도가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든 듯하다.<br><br>태양이 바다 너머로 떨어지자 다카르 항에 어둠이 찾아온다. 니스나리옹의 브루사드 호텔의 작은 정원 카페. 원주민 음악, 분수, 흑인 웨이터들, 담배 연기, 포도주, 별들. 여기저기 테이블에 흩어져 앉아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선원들과 흑인 소녀들, 몇 명의 프랑스 여인들이 보인다. 뚱뚱한 가게 주인은 손을 마주 부비며 흥청대는 가게 분위기에 고무되어 있다. 프랑스 여인들 중 한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지만 뉴어크 출신의 마이크가 부르기 시작한 &lt; 왜 내가 너 때문에 울어야 하나&gt;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갑판장은 테이블 위에 대자로 뻗어 잠이 들었다. 제리는 분숫가에서 춤을 추고 있다. 취한 사람들의 웃음과 주정소리가 작은 정원을 가득 채운다. (「눈부신 그 사람」, p. 26)<br><br>바다에서 일주일을 같이 생활하다 보면 그리스인, 서인도 제도 흑인, 아일랜드인, 포르투갈인, 미국인 등으로 잡다하게 구성된 선원들끼리 꽤 친해지기 마련이다. 날씨가 따뜻하면 선원들은 후갑판에 모여 서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바다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끼리도 아주 친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타국의 항구에서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그들은 마치 형제들처럼 똘똘 뭉친다. 물론 언제나 형편없는 음식을 내놓는 주방장과 설전을 펼칠 때도 모든 선원은 하나로 뭉친다. 바다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로 치자면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서로 피를 나눈 형제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꼬마 숫총각」, p. 31)<br><br><br>제법 묵직한 덩치를 자랑하던 책들 중 하나를 골라 겨우 몇 편만 읽었을 뿐인데, 왠지 숙제를 마친 듯 후련한 기분이 든다. 리뷰를 올릴 때마다 별점을 매겨야 하는 것도 참 곤욕스러운 일 중 하나인데, 페이퍼는 그 곤욕스러움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한몫한 걸까? 끝으로 최근에 구매한 네 권의 책을 기록해 본다. 다음에 펼쳐질 읽을거리가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br><br><br><br>레이먼드 카버 『대성당』<br><br>‘미국의 체호프’라 불리는 레이먼드 카버의 열두 편의 단편이 실린 책이다. (사실, 나는 정작 둘 다 아직 안 읽어봤다.)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책이었는데, 얼마 전 박완서 작가님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다가, 똭! 등장하는 게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변영주 감독님이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고, 손에 넣고 싶었던 책이기도 해서, 이건 분명 나에게 보내진 ‘사라’는 우주적 신호였다. 한동안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비우기를 연거푸 반복했지만, 결국 이번에는 사버렸다. 저번 페이퍼에 뚱책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인 것처럼 올려놓았는데,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얇은 책들이 줄줄이 놓여 있다. 덩치에 좀 질렸나? 낄낄. ㅋㅋㅋ 일단, 분위기라도 느껴볼 겸, 맨 처음에 실린 「깃털들」을 읽어봤다. 새 자동차, 두 주 정도 캐나다로 여행을 원하며, 반면에 아이들은 원하지 않는 부부인 잭과 프랜이 등장한다. 어느 날, 직장에서 알게 된 버드라는 친구에게 저녁 초대를 받게 된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평범한 일상일 뿐인데, 두 사람이 풍기는 느낌은 뭐랄까, 뭔가 묘하게 불편하다. 흠...<br><br>“우리 달달한 과자를 가져가자.”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프랜이 말했다. “아니다. 뭘 가져가든 난 신경 안 쓸래. 이건 당신 체면치레니까. 법석 떨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난 안 갈 거야. 라즈베리 커피링을 만들 수는 있어. 아니면 컵케이크나.”<br><br>“디저트는 준비하겠지.” 내가 말했다. “디저트도 정하지 않고 식사 초대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p. 15)<br><br>저녁 초대가 달갑지 않은 듯하면서도 그렇다고 완전히 거절할만큼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은 두 사람의 대화는, 읽는 내내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버드의 집으로 가기 위해 교외로 나서는 길에서 잭은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운전하며 드라이브의 즐거움에 빠진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진 목초지와 낡은 축사, 그리고 천천히 이동하는 젖소떼를 바라보며 “참 그림 같은 풍경”이라고 말하지만, 프랜은 그 말에 공감하기는커녕 짧게 “깡촌이네.” 뚝 잘라 말한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 감정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프랜의 반응에도 잭은 크게 맞서지 않고, 그녀를 이해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또 한편으로, 이 부부는 아이를 갖는 문제를 언젠가는 하게 될 일처럼 미뤄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버드의 집에 있는 생후 8개월 된 아기가 혹시 이들 부부에게 어떤 감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만드는 요인이 될까 봐, 괜히 나 혼자 은근히 긴장감이 돌았다. 버드 부부는 안정적이고 평온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결국 이 날의 저녁 식사는 주인공 부부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결말로 이어진다. 쌉싸름하다.<br><br><br><br>존 치버 『팔코너』<br><br>에제키엘 패러것. 영락한 집안의 차남으로 중년의 대학교수이자 마약중독자이다. 동시에 유일한 형제인 형을 죽이고 팔코너 교도소 독방동에 수감된 734-508-32번 죄수.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푸른 하늘이 자신에게 허용된 유일한 자유 공간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는 이제 사기꾼과 살인자는 동료로, 폭력과 인권유린이라는 채찍을 휘두르는 교도관들은 관리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br><br>출판사의 소개 글을 여기까지 읽고, 더 내려가면 스포일러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예감에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고 스크롤을 쭉쭉 내려보다가, 먼저 읽고 리뷰를 남겨주신 폴스타프님의 조언: “출판사 소개 글은 읽지 말고 읽길 바란다.”를 발견했다. 폴스타프님께 땡투를 날리고, 망설임 없이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실제 변호사인 저자가 억울하게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을 변호하며 겪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을 읽은 이후,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책은 오랜만이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혹시라도 스포일러가 될까 소심하게 뒤표지를 들여다봤다. “희망과 구원의 가능성을 고찰하는 작품”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자기 죄의 무게를 실감하게 만드는 상상할 수도, 굳이 만나야 할 이유도 없었던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 갇혀 지내게 된 그가 들려줄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것이 될까. <br><br><br><br>저메이카 킨케이드 『내 어머니의 자서전』<br><br>작년에 읽은 책 중 손꼽히는 작품중 하나는, 카리브 문학의 거장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미스터 포터』였다. 주인공의 할머니가 맞이한 죽음, 차가운 파도가 몰아치는 순간의 그 슬픔과 고요가 아직도 마음을 붙든다. 글이 이렇게 날카롭고도 시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정도로 여운이 길었다. 나중에 이 책 속에 담긴 그녀의 기록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통찰과 언어의 힘이 또 얼마나 깊숙이 나를 흔들지 기대된다.<br><br>내가 스스로에게 말하기 시작한 이유는 나의 목소리를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는 내게 다정하게 들렸고, 나를 덜 고독하게 해 주었는데, 나는 고독했고 나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였나? 내 어머니는 죽었고,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p. 21)<br><br>무슨 일이 일어났고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나는 즉각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나마, 분별없게나마 나는 몇 마디 말을 통해 내 생활을 변화시켰다. 아마 내 생명까지 구했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나는 늘 스스로에게든 남들에게든 내 상황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을 극도로 의식하고, 스스로의 욕구에 그토록 관심을 갖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신경을 쓰고, 나의 불만을, 나의 즐거움을 자각하게 된 계기는 그 때문이다. 뚜렷한 목적 없는 이 어린애다운 고통의 표현으로부터 내 인생이 바뀌었고 나는 그 점을 마음에 새겼다. (p. 28)<br><br><br><br>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죔레는 거기에』<br><br>원래 『죔레가 사라지다』라는 제목으로 예약 구매한 책이, 막상 손에 쥐니 『죔레는 거기에』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새로운 제목이 훨씬 마음에 든다. 올해 아흔두 살, 세월의 무게가 온몸에 배인 노인 카다 요제프와 그의 노견 죔레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라슬로는 긴 호흡과 난해함으로도 유명하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이 노인과 개라는 설정 덕분인지 비교적 편안하게 읽힌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줄거리와 역자 후기를 읽어보면 세대 간 갈등, 가치관의 충돌,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이 배경으로 깔려 있지만, 아직은 숲의 가장 높은 지대에 살고 있는 요제프와 죔레의 세계는 고요함을 뿜어내고, 조금은 여유롭다. 그러나 평온함 뒤에는 긴장이 숨어 있다. 헝가리 아르파드 왕가의 벨러 4세, 칭기즈 칸의 후손이자 왕위 계승자인 것을 숨기고 사는 요제프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을 둘러본다. 군주제를 재건하려는 추종자들, 무장봉기를 꿈꾸는 집단, 또 다른 정치적 세력까지 뒤얽혀 있다. 지금은 말할 수 없는 이유로, 1945년에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 결정을 지금까지 단단히 지켜온 요제프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br><br>그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자신이 바라는 것은 그들이 이해해주는 것이라고, 그 이유는 이제 이 삶이 지쳤기 때문이며, 벌써 세 번째 만남이라는 이 시점에서 그는 그들에게 신뢰가 간다고 여기기에 솔직하게 고백하는데, 아주 작은 노력조차도 육체적으로 자신을 지치게 하며, 이제 그만하고 놓아도 된다는, 마지막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한 사람의 인생으로는 아흔한 해면 충분하지 않느냐?, 그는 너무도 많은 것을 보았고, 너무도 많은 일을 겪었으며, 너무도 다양한 것들을 견뎌야 했지만, 그는 결국 그것들을 이겨냈고, 가족과 종교적 계율과 사랑하는 조국이 그에게 요구한 대로 품위를 지키며 살아왔으나, 이제는 이만하면 되었다고, 매일 음식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잠자리를 들고, 제때 일어나지만, 그것은 단지 모든 것이 제 궤도를 따라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라면서, (p. 28)<br><br>당신들이 발견한 사실, 즉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과 여기에서 우리가 이렇게 만난다는 사실은 일곱 겹으로 봉인된 비밀로 남아야 하오, 알겠지만 누구도, 아무도 이것을 알아서는 안 되며,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알아서는 안 되오, (p. 31)<br><br><br><br>(헥헥)<br>작정하고 페이퍼를 작성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 혼자 신나게 이 말 저 말 말보따리를 풀어놓고 말았다. 뭐, 늘 그렇지만.<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909/70/cover150/897275725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909701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