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곰돌이님의 서재 (곰돌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06 Apr 2026 07:12:14 +0900</lastBuildDate><image><title>곰돌이</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38014177507993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곰돌이</description></image><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내 이름은 빨강 1 - [내 이름은 빨강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90260</link><pubDate>Wed, 01 Apr 2026 12: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902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9796&TPaperId=171902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424/16/coveroff/8937479796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9796&TPaperId=171902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 이름은 빨강 1</a><br/>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br/></td></tr></table><br/>약속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책을 펼쳤다.<br>시간을 떼우듯 읽고 싶진 않았지만, 마음보다 내 손이 먼저 움직였으니 도리가 없다. 점점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앉은 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흠, 식상한 표현이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그랬으니까.<br><br>오르한 파묵의 책에 관심이 생겨 몇 권을 사두었는데, 작년에 《눈》을 읽고 완전히 홀딱, 정말 홀딱 빠졌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터키의 낯설고도 쓸쓸한 풍경이 이제는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그 이야기에 깊이 잠겨 있었다. 아, 이럴 때 김밥 꽁다리 먹는 것만큼이나 기분이 진짜 좋다! 겨울이면 떠올릴 책이 생겼다는 소소한 기쁨까지 준 그의 책은, 앞으로도 꾸준히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최근 《순수 박물관》을 훑다가, 다음을 기약하고 가장 읽고 싶었던 《내 이름은 빨강》을 드디어 펼쳤다. 이 소설은 16세기 오스만 제국,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화가들이 세밀화를 그리던 시절의 풍경과 사람들을 담고 있다.<br><br>그리고, 이 책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다 알 만한 도입부.<br><br>“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 버렸다. 그러나 나를 죽인, 그 비열한 살인자 말고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br><br>나도 이 언저리에서 강렬함만 확인하고 책을 내려놓았기에, 터키어로 ‘검정’을 뜻하는 카라가 나고 자란 이스탄불에서 마주하는 아련함과 낯선 것들, 가슴 한편이 저며오는 느낌, 흩날리는 눈밭 속에서 옛 연인을 떠올리는 순간… 그리고 그녀의 집에 여전히 서 있는 보리수와 밤나무를 바라보며 푸르른 여름날을 떠올리는 풍경까지, 이렇게 서정적인 장면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br><br>이 책이 이슬람 회화와 서양 회화를 다룬다고 해서,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카라의 선명한 옛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내 속울림까지 덩달아 일렁였다. 머릿속은 등장인물의 설명으로 가득 차고, 막연하게 멀게 느껴지던 거리감도 금세 좁혀졌다.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을 건드린다. 괜히 내 사랑 이야기도 슬쩍 얹고 싶게 만든다. 오르한 파묵이 담아내는 ‘사랑’에 있어서는, 나는 그가 사랑하는 순간조차 이미 그 사랑이 사라진 뒤의 시간을 예감하며 인물의 감정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랑하는 순간보다, 그 사랑을 기억하는 시간을 더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리움에 사무친 카라를 떠올리게 할 만큼, 작품의 시작을 참 잘 열어주었다.<br><br>십이 년 만에, 눈 덮인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그 아름다운 얼굴!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나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앞쪽의 다른 세상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나? 미소를 지은 걸까? 슬픈 미소를 짓고 있는 걸까? 어리석은 말아, 내 심장 박동에 따르지 말고 좀 천천히 가란 말이다! 나는 안장 위에서 몸을 돌린 채 그리움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얀 나뭇가지 뒤로 가냘프고 우아한 그녀의 신비로운 얼굴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을 타고 가는 나와 창문에 기대선 그녀의 모습이 휘스레브가 쉬린의 창가로 다가가는 장면, 숱한 화가들에 의해 수천번도 더 그려진 그 장면(그러나 내 등 뒤에는 슬픈 나무 한 그루가 더 있었다.)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나는 나중에, 그녀가 보낸 편지 속에 든 그림을 보고야 알았다. 그 둘의 유사성을 깨달았을 때, 나는 우리가 몹시 아끼고 좋아했던 그 책 속의 그림처럼 사랑으로 활활 타올랐다. (p. 75)<br><br>아니 근데 사람도 아니고 색깔이 화자가 돼서 말한다? 아직 2권은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1권만 해도 33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정말 다양한 화자가 등장한다. 사람만 말하라는 법 있나! 개도 말하고, 새도 말하고, 나무도 말한다. 앞서 언급한 검정을 뜻하는 카라 외 뭐뭐뭐 많지만, 어쨌든 다채롭게 펼쳐진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 머릿속만 개방형 모드로 켜두면 된다. 아참, 화자가 많다고 정신 사나운 게 아니라, 오히려 다음에 등장할 화자가 들려줄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대략적인 소개는 이정도에서 멈추고, 어쨌든 살인사건으로 시작되었으니, 왜 죽었고, 왜 죽였는지가 궁금하다. 죽은 시체가 말하고, 개도 말하고 새도 말할 판이니, 살인자도 직접 등장해 입을 연다. 그의 직업은 세밀화가다. 사건의 세부적인 상황이나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는 방식이 화가답다. 거장의 작품이나 그 작품이 품고 있는 의미를 당연히 독자가 알 거라 여기면서 얘기하는데, 나로선 참 머쓱해질 따름이다. 그래도 괜찮다. 다행스럽게도 친절히 설명해 주니 말이다. <br><br>이 소설에서는 고전 페르시아 서사시도, 이슬람 세밀화 전통도, 서양 회화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중에는,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아름다운 책을 갖지 못하게 화가를 죽이려 했다는 사람 이야기도 나온다. 사랑하듯 집착하고, 결국 파괴로 이어지는 마음. 아름다움을 가두려는 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강박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강렬한 욕망과 집착의 심리와 비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일상의 작은 질투나 욕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스친다. 오르한 파묵이 그려낸 인간 심리는 그래서 낯설지가 않다. 물론, 나와 다른 시선과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또한 존재할 것이다.<br><br>아마 이런 다채로운 인간의 시선과 감정이 바로 여러 장으로 나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슬람 세밀화가 한 작품 안에서 여러 화가의 붓질로 완성되듯 구성된 이 소설은, 화자들이 각각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에서 여러 인물 시선을 번갈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덕분에 단일한 관점에 갇히지 않고, 여기저기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순히 사건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서로 겹친 삶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고, 선택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할 때가 많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자기 방식대로 삶을 그려 나간다. 겹겹의 시선과 흔적은 쉽게 설명되지 않고, 오래 음미해야 조금씩 어렴풋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림은 이성의 침묵이며 응시의 음악이다(p. 122)”라는 문장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br><br>1권을 다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눈》의 주인공 카(Ka)가 떠올랐다. 종교와 정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랑에는 완전 젬병이었던 그의 찌질함 덕분에 의외의 재미를 느꼈듯, 이 작품 역시 예상과는 다른 방향에서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강렬한 도입부 때문인지 무겁게만 갈 줄 알았는데 중간중간 은근히 웃기고, 화자가 바뀔 때마다 “이번엔 또 누구야?” 하며 읽게 되는 맛이 있다. 《눈》에서 인물들이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던 순간들과, 《내 이름은 빨강》에서 화가들이 전통과 새로운 화풍, 동양과 서양의 시선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br><br>오르한 파묵은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머무는 인간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나는 그 끝없이 흔들리는 시간, 고독한 집착, 머뭇거리다 결국 선택하지 못하는 인간의 두려움 같은 솔직한 내면 때문에 그의 책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솔직함과 오만함은 생각보다 가까운 경계에 있다. 자기 경험과 관점을 보편적 진리처럼 믿으면, 가끔은 오만하게 받아들여지니까. 하지만 그의 글에서는 절제가 느껴진다. 자기 인식은 분명하면서도, 굳이 남을 재단하는 데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내가 오르한 파묵에게 끌린 이유다. 그 감각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다. 그냥 취향에 잘 맞는 작가라고 말하면 될 것을, 괜히 말이 길어졌다. <br><br>에잇! 다 떠나서, 16세기 이스탄불, 특히 화가들 사이에 오가는 은밀한 시선과 대화를 따라 그 시대를 상상하고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재밌다. 대부분의 소설처럼 줄거리를 모른 채 하나씩 알아가며 읽어야 더욱 즐거운 작품일 것 같아서 줄거리를 최대한 숨기고 ‘재미’를 전하고 싶었는데, 잘됐는지는 모르겠다.<br><br>이제 2권으로 넘어가야지. ㅋㅋ]]></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424/16/cover150/8937479796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4241659</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뭇 산들의 꼭대기 - [뭇 산들의 꼭대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72588</link><pubDate>Wed, 25 Mar 2026 16: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725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531530&TPaperId=171725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64/41/coveroff/k6325315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531530&TPaperId=171725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뭇 산들의 꼭대기</a><br/>츠쯔졘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0월<br/></td></tr></table><br/>이제 곧 꽃망울이 여기저기 톡톡 터질 거다. 그럼 나는 또 출근길에 괜히 핸들 꺾고 싶어지겠지. 그냥 계속 가보고 싶을 테지. 이유도 없이, 어디 갈 것도 아니면서. <br><br>블라인드 사이로 햇빛이 한 줄기 들어온다. 그 빛 하나로 방이 따뜻해진다. 얇은 숄 하나 가볍게 두르고 츠쯔젠의 책을 펼쳤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좀 멍해진다. 이럴 때는 내가 책을 읽는 건지, 책이 나를 읽는 건지 잘 모르겠다. 느릿하게 읽어 내려간다. 한 줄씩, 게으르게. <br><br>중국 변방, 오래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화려하고 명망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남쪽과 달리, 북쪽의 룽잔진은 스무여 가구 남짓이 모여 밑바닥 삶을 이어가는 공간이다. 도축을 하는 사람, 비석을 깎는 사람, 가장 위에 있는 사람, 그리고 아래에서 버티는 사람. 각기 다른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 가운데에는 순진한 사람도 있고, 눈앞의 이익과 손해를 저울에 올리듯 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변죽이 들끓듯 쉽게 달아오르고 또 쉽게 식어버리는, 그 가벼운 태도 속에서 인간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인물들의 삶은 17개의 장으로 나뉘어 이어진다.<br><br>갓 내린 아이스커피 한 잔을 쭉 들이키자 정신이 조금 돌아온다. 한 장, 두 장. 속도가 붙는다. 콧구멍에서 피식피식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잠은 다 달아나 있다. 시동이 제대로 걸렸다. 칼로 벤 고리버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마치 떨어지는 노을 같다고 하는 감성과 칼끝에서 진동하는 싱그러운 풀 냄새가 집 안에 향수병을 달아놓은 듯하다는 후각을 자극하는 사실적인 묘사, 후루룩후루룩 바닥을 드러내도록 탕면을 먹어 치운 도축업자 신치짜와 그의 부인 왕슈만의 불구덩이 같은 첫날 밤 이야기가 투박하고 거칠지만, 정제되지 않은 무드가 묘하게 좋다. 며느리 인물이 영 못마땅해 아들을 대신해 억울함에 치를 떠는 노인, 신카이류. 그가 왜 본명 신융쿠가 아닌 ‘도망’이라는 뜻을 지닌 신카이류로 불리게 되었는지의 사연부터 스쳐 지나갈 법한 오리와 말, 돼지까지도 제 몫을 톡톡히 하는 세계가 쏟아지는 잠을 다 가져갔다.<br><br>이 집은 시계도 필요 없다. 계절도 상관없이 아침 6시면 일어나고 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는 삼식이 신치짜가 온종일 지친 몸을 녹여주도록 뜨거운 물에 발 담그면 딱 밤 9시다. 시간은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흐른다. 신치짜는 자식을 원하지 않았지만, 부인의 부탁으로 ‘신신라이’라는 아이를 입양하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신신라이는 비뚤어지고, 결국 가장 거친 자리로 흘러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여기서 멈췄다면 좋았을 텐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br><br>처음엔 맑은 국물처럼 담백하다. 익숙하고 편안해서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 그런데 안성탕면이 순식간에 핵불닭볶음면으로 변했다. 혀끝이 얼얼해질 만큼 강한 장면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삼키기도 애매하고, 뱉어내기도 어려운 감정들.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확, 온도를 올려버린다. 그 온도 속에는 쉽게 말로 풀 수 없는 선택들도 섞여 있다. 누군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그 여파는 오래도록 남는다. 손바닥만 한 자리에서도 사람 사는 일은 끊이지 않는데, 하물며 끝이 보이지 않는 땅이라면 그 안에 쌓인 이야기는 얼마나 많겠는가. <br><br>이 작품은 좋은 사람을 보여준다기보다, 그냥 사람을 그대로 꺼내 놓는다. 그래서 읽다 보면 감정이 하나로 정리가 잘 안된다.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자꾸 남는다. 특히 염습사 리쑤전의 시선이 그 결을 더 짙게 만든다. 삶과 죽음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바라보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인물들이 더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 안에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함, 존엄과 이기심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다. 병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젊은 여자를 염습하게 된 리쑤전은, 그녀의 남편이 정성껏 준비한 꽃으로 가득한 관을 마주한다. 생전에 아내가 좋아했다던 꽃을 하나하나 그려 넣은 정성을 보며, 리쑤전은 잠시 부러움을 느낀다. 동시에, 깊은 애도를 건넨다. 그러다 문득, 반신불수의 남편을 위해 새와 꽃을 들여놓으며 살아온 자신의 삶이 떠오른다.<br><br>“생이 어찌 이리 불공평하죠. 당신은 생긴 것도 이렇게 예쁜데 이렇게 정다운 삶을 살다가 하늘이 부르셨잖아요. 나는 생긴 것도 그냥저냥 한 데다 고생이란 고생은 잔뜩 했는데 몸은 또 왜 이렇게 멀쩡한지. 내가 당신을 대신해 갔더라면 좋았을텐데요. 안타깝게도 하늘은 나를 원치 않네요. 당신은 가서 꽃의 신이 될 수 있는데 나는 가서 뭘 할 수 있을까요?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요? 하늘에는 먼지가 없잖아요.” (p. 87) <br><br>삶의 불공평함을 받아들이는 체념과, 자신을 별것 아닌 존재처럼 느끼는 감정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한편, 어떤 가족은 막 숨을 거둔 할머니의 반지를 두고 싸운다. 누군가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계산을 한다. 리쑤전은 그런 인간을 보며 씁쓸함과 허무함을 느낀다. 그런데, 그녀 역시 불륜이라는 모순된 선택을 한다. 불공평하고 뒤엉킨 삶 속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걸, 이런 장면들이 계속해서 확인시켜 준다. 이해가 되다가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해서 쉽게 밀어내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로 남는다. 나 역시 불완전한 존재로서, 누군가의 선택을 쉽게 판단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를 더 생각해보려고 했다.<br><br>광부의 미망인 옌포 역시 그렇다. 그녀는 말수가 적었지만, 자신의 말을 대신해 주는 것이 있었다. 반 척 높이에 구리로 만든, 입이 긴 찻주전자였다. 그 주전자에는 한 번도 차가 떨어진 적이 없었고, 옌포가 건네는 한 사발의 차는 만 마디 말을 대신하는 것만 같았다. 광부의 미망인이라는 삶, 짜리몽땅한 키와 새카만 얼굴 때문에 재혼 상대로는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던 옌포지만, 그녀의 차를 마셔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괜찮은 여자라고, 장가들어도 좋을 사람이라고. 어쩌면 사람을 이해하게 만드는 건 많은 말이 아니라 이런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존재하며 마음을 건네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옌포 역시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다. 물건을 슬쩍하는 버릇이 있다. <br><br>이따금 중국 소설을 읽어보는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가인 위화나 류전윈과는 결이 다르지만, 현실을 꽤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비슷하게 느껴진다. 다만 츠쯔젠은 그걸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기억처럼 천천히 들려주는 쪽에 가깝다. 중국 소설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사람도 의외로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근데 이번에 읽은 《뭇 산들의 꼭대기》는 좀 놀랐다. 갑자기 수위가 확 올라간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거칠고, 잔인한 장면도 나오고, 읽으면서 “어... 여기까지 간다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분위기가 깨지는 건 아니고, 여전히 특유의 맑은 서정성은 살아 있다. 다만 그 안에 좀 더 날 것 같은 감각이 섞였다. 그래서 더 강하게 남는다. <br><br>쿰쿰한 곰팡내가 배어 있는 구석진 곳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따사로운 햇살을 기다린다. 그 사람을 향한 츠쯔젠의 순한 마음씨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자꾸 마음이 동요한다. 이전에 읽은 그녀의 《가장 짧은 낮》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시든 풀과 차가운 눈뿐일 때가 더 많다고 말하던 그녀. 그런 시선을 지닌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 인물들은 다들 자기 방식대로 버티며, 자기 몫의 통증을 안고 살아간다. 만약 고단하고 서글픈 풍경만 이어졌다면 가슴 한편이 뻐근해지고 조금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츠쯔젠의 글은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을 슬쩍 건드린다. 괜히 아는 척했다가 불똥이라도 튈까 외면했던 기억처럼 찔리는 마음까지 드러나, 조금은 남부끄러워진다. 그런 걸 정확히 건드린다. <br><br>내린 비에 숲은 한층 더 푸르렀고 공기 역시 예전처럼 맑은 향기를 사방에 퍼트렸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 달라 누구는 구주소나무 향기를 맡았다 하고 누구는 백합 향기를, 누구는 자작나무 향기를, 누구는 들국화 향기를, 누구는 호제비꽃 향기를 맡았다고 했다. 무료하기 짝이 없을 때 사람들은 향기를 놓고 입씨름을 하곤 했다. 마치 자신의 후각이 인정받지 않으면 자기 코가 무시당하는 것과 같다는 듯이. (p. 395)<br><br>계절이 다르듯, 인생에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삶은 생각처럼 잘 흘러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오늘도 누군가는 버티고, 누군가는 괜찮고, 누군가는 무너진다. 공평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많다. 그러나 한쪽만 계속되지는 않는다. 좋은 날이 오면 또 아닌 날도 오고, 그렇게 번갈아 가면서 흘러간다. 다들 제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은 가슴 속에 맺힌 걸 꺼내고 싶어지는 순간만큼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란 하늘의 시편이 아니라 범속한 사람들의 즐거움과 눈물이라는 문장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왜 한동안 놓아두었던 책을 다시 펼쳤는지. 그 마음을 따라 다시 한 장을 넘긴다.<br><br>끝으로,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을 덧붙여본다. <br><br>침대에 누워 조용히 쉴 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창밖 하늘을 보고 속으로 세상은 이렇게 따사로운 햇볕으로 찬란한데 왜 내 세계에는 늘 서릿발만 날릴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없이 비탄스러웠다. 나는 소설 속 비천한 인물들이 각자 자신만의 상처를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견뎌냈다. 그러기가 쉽지 않지 않은가. 내가 요양할 때 내 붓끝의 인물들 역시 따라서 ‘동면’했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더더욱 세세하게 그들의 고충을 헤아릴 수 있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64/41/cover150/k6325315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9644150</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후리 - [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56426</link><pubDate>Tue, 17 Mar 2026 21: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564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48637&TPaperId=171564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906/47/coveroff/893744863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48637&TPaperId=171564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a><br/>카멜 다우드 지음,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정부(군부 중심)와 이슬람주의 세력 간의 충돌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알제리 내전. 이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점과 번역가 류재화님이 옮기셨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고민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작년에 샤를로트 델보의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를 통해 경험한 류재화님의 섬세한 감각이 깊이 인상에 남았기 때문이다. 참혹한 현실 속, 그때의 기억을 지닌 사람들의 말해질 수 없는 슬픔과 트라우마, 그리고 감정의 흔들림이 마치 잔잔한 빛살처럼 가슴에 스며들어 시처럼 읽혔다. 읽다가 숨이 멎는 듯한 순간도 있을 만큼 그 정서적 울림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고, 이번 알제리 작가 카멜 다우드의 《후리》에서도, 류재화님의 세심한 번역 덕분에 원작이 담고 있는 고통과 감정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br><br>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 흩날리는 하얀 천. 알제리 내전의 잔혹함과 달리,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이 책의 표지만으로도 전하고 싶은 뜻을 헤아려보게 된다. 한 조각 천이지만, 숨죽인 세상 속에서 자유를 향해 흔들리는 저항이 담겨 있는 듯했다. 전쟁과 비극 속에서도 길을 찾아 나서는 인간의 굳센 마음과, 동시에 처연한 마음을 함께 느꼈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각 부가 고통이 밀려오고 마음이 아려오는 순간에 숨구멍이 되어주듯 여러 장으로 나뉘어 있어, 천천히 숨을 고르며 읽을 수 있었다. <br><br>“난 한 권의 책이야. 서서히, 내가 너를 위해 빛을 밝혀 줄게. 왜냐면 내 안의 언어가 마침내 나 아닌 다른 출구를 찾아냈거든. 그게 뭔지 알아? 바로 너한테 있는 두 귀야”<br><br>‘오브’라는 이름의 여성이 자신의 뱃속 아기에게 속삭인다. 그녀가 내는 소리는 분명 내 귀에는 닿지 않을 말일 것이다. 다섯 살 때 테러리스트들에게 목이 잘린 뒤 성대가 손상되어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온갖 손짓과 몸짓과 표정이 결합해 터져 나오는 그 소리에서 부드럽고 고운 숨결이 느껴진다. 불안의 흔적처럼 차디찬 떨림까지도. 사랑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그녀의 가슴은, 기억이 금지된 곳의 이야기를 드러내려 한다. 이는 침묵을 강요하고 잊으려는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 것이다. 존재 자체가 증언인 그녀가 기억을 되살리려 하기 때문이다.<br><br>이곳, 내 머릿속에선, 내 기억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단어들이 줄줄이 나와. 바깥 세상을 마주할 때 내 안의 언어는 정교함의 경이, 그 자체야. 그 안에서 저 옛날이야기가 꿈틀거리며 되살아나. 그 경이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거의 모든 것이 태양 없이도 빛날 거야. (p. 20)<br><br>오브의 뱃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녀의 어머니 하디자는 유명한 변호사다. 한 간호사 부부에게 입양되어 자란 그녀가 내전 중 학살로 일가족을 잃고 홀로 생존한 오브를 입양했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목숨을 건 일인 이 나라에서, 오브를 어떤 마음으로 키워냈을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혼자서 딸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마음이 어땠을지, 나는 그 불안과 두려움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딸을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그녀의 마음은 분명 느껴진다. 하디자는 딸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성대 이식과 후두 복원을 꿈꾸며, 세계 각국의 의사들을 찾아다닌다.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그녀는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려 한다. 사람을 구하는 판결을 위해 법정에서 강하고 열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하디자가, 목소리를 잃은 딸을 바라보는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오브가 마음으로 속삭이는 혼잣말을 들여다보는 동안,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 이 이야기가 소설로 탄생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브의 목에 남은 내전의 상처만큼 끔찍한 현실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br><br>오브의 현재 삶을 따라가 본다. 내전에서 희생당한 생존자들에게 국가가 내민 조건은 연금을 받느냐, 아니면 관청에서 지급하는 상업 시설을 얻느냐였다. 오브는 연금 대신 미용실의 소유주가 되었다.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를 안겨주는 듯 보였지만, 그 겉모습 뒤에는 침묵이라는 무거운 대가가 숨어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에게 받은 손에 쥔 세 알의 약. 목구멍 속으로 삼키면 언제든 뱃속의 아이, ‘후리’를 천국으로 보낼 수 있다. 짧은 원피스만 입어도 생명이 위태로운 이곳에서, 오브는 단 하나, 아이를 이 위험한 세상에 내놓을 수 없다는 결정을 붙들고 있다. <br><br>뭘 원해? 여기 와서 죽은 살덩이가 되고 싶어? (p. 66)<br><br>아직 콩알만 한 후리에게는 설명이 필요하다. 귀가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작은 생명을 향해, 어떤 때에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 오히려 살리는 일이 되어버리는 이 잔인하고 기막힌 현실을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오브는 한 아이에게 닿을 설명을 준비하듯, 우리를 또 다른 여성들의 삶으로 데려간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쉽게 품을 수 없는 곳, 사방에서 위험이 도사리는 어둠 속을 지나고 있는 여성들의 삶으로. <br><br>오브의 미용실에서 함께 일하는 두 여성, 침묵을 지키는 하난과 재치 있고 유쾌한 메리암. 나름의 사정을 지닌 이들의 삶이 그저 연약하고 애처로운 숨결처럼만 묘사되었다면, 그 삶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은 때때로 버겁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르다. 세 여성 모두 자기 안에 분명한 언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언어는 때로 위로가 되고, 잔잔한 미소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반가웠던 나는 잠시 오브의 미용실 단골손님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을 원한다면 조용히 함께 앉고, 잊히지 않는 과거를 꺼낸다면 함께 분노하고 싶다. 서로를 조금씩 흔들어 주며 마음이 굳지 않도록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애처로운 시선 대신, 하난과 메리암에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 오브에게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의 강인함이 든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난과 메리암의 삶을 향한 절실함을 깊이 이해했을 오브는 주변을 세심하게 바라볼 줄 아는 여성이다. 조각난 고향의 기억을 온몸에 남긴 그녀. 문신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염색한 머리로 히잡을 쓰지 않는 여자들은 반드시 교정되어야 한다고 흥분하는 일부 이슬람 신도 남자들을 향해, 세 여성이 터뜨리는 웃음. 이야기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남성 중심의 알제리 사회에서 그 반란의 기쁨이 담긴 웃음을 마주하고서, 내가 어찌 통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제서야, 오브는 나에게 아무도 기억하지 않거나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br><br>“난 내 꿈속에 머물고, 그 꿈속에서 다른 이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내 발자국은 야자수 가지에 쓸려 사라진다”<br><br><br>얼마 전, 늦은 밤 내 방 창문 밖에서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숨을 죽인 채 혹시라도 이어질지 모를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소리였다. 하지만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 충돌 소식이 연일 뉴스를 통해 전해지다 보니, 세상의 먼 전쟁 이야기가 내 일상 속 작은 소리에도 스며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혹시 우리나라에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예전 같으면 엉뚱한 생각처럼 여겼을 상상이지만, 이제는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든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전쟁이 나 피난을 가야 한다면 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싸야 할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에서 시작해, 이런 계산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모든 것이 아쉬우면서도 한없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허무함으로 이어졌다. 나의 생명이 마치 보증수표라도 되는 것처럼 오직 일상만을 걱정하고 있던 그 순간, 여러 감정이 뒤엉켰다. 그리고 안전한 양지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는 나와, 매 순간이 살얼음판 같은 누군가의 하루가 겹쳤다. 나 자신을 향해 비위가 뒤틀리는 듯한 불편하면서도 부끄러운 감정이 올라왔다.<br><br>비극과 고통을 담은 이야기는 반복해서 읽을수록, 그 안에서 인간이 겪는 삶과 죽음, 두려움과 결심이 조금씩 더 가까이 느껴진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만이 아니라, 오늘 하루가 녹록지 않아 숨조차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틈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들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 읽게 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처와 고통 속에 남겨진 목소리를 느껴주는 것뿐이다. 나는 그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며 읽어주고 싶다. 다 알고 있다고 믿는 눈을 하고 바라보는 대신에 말이다. <br><br>내 안에 무엇이 죽어 있는지, 무엇이 살아 있는지 알려면 내 몸을 더듬거려야 해. 그래야 어떤 부분이, 또 어떤 다른 부분이 더이상 숨을 안 쉬고 있는지 알 수 있어. (p. 24)]]></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906/47/cover150/89374486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9064754</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amp;lt;나라 없는 사람&amp;gt; 중에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41278</link><pubDate>Tue, 10 Mar 2026 08: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4127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3475&TPaperId=171412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7/54/coveroff/895460347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lt;나라 없는 사람&gt; 중에서...<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7/54/cover150/89546034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75409</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최근에 세계문학 단편선을 종종 사 모으고 있었다. 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36914</link><pubDate>Sun, 08 Mar 2026 03: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3691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032812&TPaperId=171369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55/98/coveroff/k582032812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7281&TPaperId=171369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518/0/coveroff/893742728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896&TPaperId=171369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83/94/coveroff/8954613896_3.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4863&TPaperId=171369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6/7/coveroff/8954624863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725X&TPaperId=171369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909/70/coveroff/897275725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최근에 세계문학 단편선을 종종 사 모으고 있었다. 책을 처음 펼칠 때면 새 책을 만나는 설렘에 몇 편을 단숨에 읽고, 한동안 애정을 담아 이리저리 들춰본다. 하지만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른 책들이 눈에 들어오면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옮겨 가고, 읽다 만 단편집들은 책장 한켠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읽지 못한 책들이 조금씩 밀려가는 느낌이 은근하게 마음을 눌러 온다. 그래서 비교적 얇은 편에 속하는, 흑인 문학의 거장 랭스턴 휴스의 작품을 다시 꺼내 들었다.<br><br>41편의 단편 중 맨 처음에 실린 「달빛 아래의 몸뚱이들」에는 아프리카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선원들이 등장한다. 그중 주인공은 열여덟 살, 스스로 바다를 택한 소년이다. 지긋지긋한 가난에 찌든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선원이 된 모습이라기보다는, 바다 그 자체를 숨 쉴 수 있는 피난처로 삼고, 화물선의 좁은 공간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안식과 자유를 발견한 사람처럼 보였다. 거칠게 느껴지는 선원생활도 그들에게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마치 영화 《부력》 속 불법 원양어선에 선장과 그의 부하들이 육지에 내려, 소금기 가득한 몸을 대충 씻고 벌거벗은 채로 기다리는 여성의 방으로 달려가는 장면처럼, 혹은 작년에 정주행하면서 재미있게 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작품인 《보물섬》의 프리퀄로 제작된 미드 《검은해적》에서 선원과 해적들이 고단한 일상을 달래듯 창녀촌을 찾는 장면처럼, 본능적인 쾌락이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열여덟 살 소년도 그 속에서 특별한 것 없는 한 명의 선원으로 지내다가 ‘누누마’라는 소녀를 알게 된다.<br><br>방랑벽이 있는 열여덟 살에게 세상은 아름다웠다. 선원이 된 첫해 나는 식당에서 일을 했다. 가지고 있던 교재들일랑 모두 뱃전 너머로 던져 버리고 몇 달 동안 부모님에게 편지도 한 장 쓰지 않았다. 내 생각에 그때껏 내가 알던 사람들은 내게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자유였다. 바다는 나를 어머니처럼 맞아 주었고 웨스트일래너라는 화물선은 내 안식처가 되었다. ( 「달빛 아래의 몸뚱이들」, p. 8)<br><br>날들이 가고 밤들이 지나갔다. 다시 날들이 가고 밤들이 지나갔다. 광활한 아프리카의 무연한 하늘은 별들이 총총하게 들어찼다가는 뜨거운 태양이 떠올랐다. 웨스트일랜호는 조용히 침묵하듯 떠 있었다. ( 「달빛 아래의 몸뚱이들」, p. 12)<br><br>백인 선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장난스럽게 농담을 건네는 누누마와의 관계는 문란하거나 저질스럽게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청춘 멜로의 한 장면처럼 부드럽게 흐른다. 서로를 이해하며 필요할 때 의지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조심스럽게 맞물린다. 소년은 한때 누누마를 사랑한다고 믿었고, 세월이 흘러 거의 잊힌 지금, 그녀와의 기억이 이 이야기를 쓰게 만들었다 고백한다. 이어지는 단편 「눈부신 그 사람」에서도 같은 화물선 웨스트일래너호와 선원들이 등장하지만, 이 이야기가 같은 소년의 시선인지, 혹은 또 다른 선원의 기억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야기는 선실을 담당하는 한 선원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가 우연히 승객 중 데이지 존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일기장을 보게 된다. 그 안에는 선원 중 가장 잘생긴 에릭 긴트에 대한 호감뿐 아니라, 외로움과 고독이 은밀하게 담겨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일해 온 선교사 부부의 딸인 온순하고 순종적인 그녀에게 호감 가는 남자가 생긴 것이다. 일기장을 처음 본 선원은 입이 새털인 것이 분명하다. 입이 한가하면 답답해 죽나보다. 이미 선원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싹 퍼졌다. 배 후미에 있는 선원들 숙소에서 각자 침대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서 시시덕거리며 한 여성의 은밀한 속사정을 떠들어 대니 말이다. 그런데, 한가해도 너무 한가해 보이는 선원들의 모습이지 않은가? 부릴 화물이 거의 없는 탓에, 배는 한참을 정박해 있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다시 항해를 시작한다. 바다의 고요 속에서 소소한 소란과 수다, 그리고 은밀한 호기심은 그렇게 배 위에서 느릿한 시간 속에서 퍼져나간다.<br><br>컬럼비아 대학 자퇴 후 잠시 화물선에 올랐던 저자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는 아닐까라는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랭스턴 휴스가 흑과 백으로 나누어진 삶에서 어떤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로움을 얻고 싶었던 갈증을 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껄껄껄 웃어대는 선원들을 따라 거리낌없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지만, ‘지금 웃어도 되는 걸까’ 싶은 복잡함이 마음 한쪽에 남아 특유의 여유로움이 온전히 즐겁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흔들흔들하는 배가 멀미를 일으키지 않고 잔잔하게 다가온다. 욕이 섞인 농지거리를 주고받는 선원들의 장난 역시 불쾌하지 않다. 아마도 저자는 고된 삶의 면면을 거칠게 드러내기보다는, 상륙해 항구를 거닐고 농부들과 섞여 어울리는 선원들, 해 질 무렵 선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항구 처녀들과 산책로를 걷는 장면 등 고된 삶의 연속인 나날 속에서도 서글픔을 감춘 그들만의 생기와 문화를 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의도가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든 듯하다.<br><br>태양이 바다 너머로 떨어지자 다카르 항에 어둠이 찾아온다. 니스나리옹의 브루사드 호텔의 작은 정원 카페. 원주민 음악, 분수, 흑인 웨이터들, 담배 연기, 포도주, 별들. 여기저기 테이블에 흩어져 앉아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선원들과 흑인 소녀들, 몇 명의 프랑스 여인들이 보인다. 뚱뚱한 가게 주인은 손을 마주 부비며 흥청대는 가게 분위기에 고무되어 있다. 프랑스 여인들 중 한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지만 뉴어크 출신의 마이크가 부르기 시작한 &lt; 왜 내가 너 때문에 울어야 하나&gt;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갑판장은 테이블 위에 대자로 뻗어 잠이 들었다. 제리는 분숫가에서 춤을 추고 있다. 취한 사람들의 웃음과 주정소리가 작은 정원을 가득 채운다. (「눈부신 그 사람」, p. 26)<br><br>바다에서 일주일을 같이 생활하다 보면 그리스인, 서인도 제도 흑인, 아일랜드인, 포르투갈인, 미국인 등으로 잡다하게 구성된 선원들끼리 꽤 친해지기 마련이다. 날씨가 따뜻하면 선원들은 후갑판에 모여 서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바다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끼리도 아주 친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타국의 항구에서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그들은 마치 형제들처럼 똘똘 뭉친다. 물론 언제나 형편없는 음식을 내놓는 주방장과 설전을 펼칠 때도 모든 선원은 하나로 뭉친다. 바다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로 치자면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서로 피를 나눈 형제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꼬마 숫총각」, p. 31)<br><br><br>제법 묵직한 덩치를 자랑하던 책들 중 하나를 골라 겨우 몇 편만 읽었을 뿐인데, 왠지 숙제를 마친 듯 후련한 기분이 든다. 리뷰를 올릴 때마다 별점을 매겨야 하는 것도 참 곤욕스러운 일 중 하나인데, 페이퍼는 그 곤욕스러움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한몫한 걸까? 끝으로 최근에 구매한 네 권의 책을 기록해 본다. 다음에 펼쳐질 읽을거리가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br><br><br><br>레이먼드 카버 『대성당』<br><br>‘미국의 체호프’라 불리는 레이먼드 카버의 열두 편의 단편이 실린 책이다. (사실, 나는 정작 둘 다 아직 안 읽어봤다.)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책이었는데, 얼마 전 박완서 작가님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다가, 똭! 등장하는 게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변영주 감독님이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고, 손에 넣고 싶었던 책이기도 해서, 이건 분명 나에게 보내진 ‘사라’는 우주적 신호였다. 한동안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비우기를 연거푸 반복했지만, 결국 이번에는 사버렸다. 저번 페이퍼에 뚱책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인 것처럼 올려놓았는데,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얇은 책들이 줄줄이 놓여 있다. 덩치에 좀 질렸나? 낄낄. ㅋㅋㅋ 일단, 분위기라도 느껴볼 겸, 맨 처음에 실린 「깃털들」을 읽어봤다. 새 자동차, 두 주 정도 캐나다로 여행을 원하며, 반면에 아이들은 원하지 않는 부부인 잭과 프랜이 등장한다. 어느 날, 직장에서 알게 된 버드라는 친구에게 저녁 초대를 받게 된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평범한 일상일 뿐인데, 두 사람이 풍기는 느낌은 뭐랄까, 뭔가 묘하게 불편하다. 흠...<br><br>“우리 달달한 과자를 가져가자.”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프랜이 말했다. “아니다. 뭘 가져가든 난 신경 안 쓸래. 이건 당신 체면치레니까. 법석 떨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난 안 갈 거야. 라즈베리 커피링을 만들 수는 있어. 아니면 컵케이크나.”<br><br>“디저트는 준비하겠지.” 내가 말했다. “디저트도 정하지 않고 식사 초대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p. 15)<br><br>저녁 초대가 달갑지 않은 듯하면서도 그렇다고 완전히 거절할만큼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은 두 사람의 대화는, 읽는 내내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버드의 집으로 가기 위해 교외로 나서는 길에서 잭은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운전하며 드라이브의 즐거움에 빠진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진 목초지와 낡은 축사, 그리고 천천히 이동하는 젖소떼를 바라보며 “참 그림 같은 풍경”이라고 말하지만, 프랜은 그 말에 공감하기는커녕 짧게 “깡촌이네.” 뚝 잘라 말한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 감정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프랜의 반응에도 잭은 크게 맞서지 않고, 그녀를 이해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또 한편으로, 이 부부는 아이를 갖는 문제를 언젠가는 하게 될 일처럼 미뤄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버드의 집에 있는 생후 8개월 된 아기가 혹시 이들 부부에게 어떤 감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만드는 요인이 될까 봐, 괜히 나 혼자 은근히 긴장감이 돌았다. 버드 부부는 안정적이고 평온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결국 이 날의 저녁 식사는 주인공 부부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결말로 이어진다. 쌉싸름하다.<br><br><br><br>존 치버 『팔코너』<br><br>에제키엘 패러것. 영락한 집안의 차남으로 중년의 대학교수이자 마약중독자이다. 동시에 유일한 형제인 형을 죽이고 팔코너 교도소 독방동에 수감된 734-508-32번 죄수.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푸른 하늘이 자신에게 허용된 유일한 자유 공간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는 이제 사기꾼과 살인자는 동료로, 폭력과 인권유린이라는 채찍을 휘두르는 교도관들은 관리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br><br>출판사의 소개 글을 여기까지 읽고, 더 내려가면 스포일러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예감에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고 스크롤을 쭉쭉 내려보다가, 먼저 읽고 리뷰를 남겨주신 폴스타프님의 조언: “출판사 소개 글은 읽지 말고 읽길 바란다.”를 발견했다. 폴스타프님께 땡투를 날리고, 망설임 없이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실제 변호사인 저자가 억울하게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을 변호하며 겪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을 읽은 이후,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책은 오랜만이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혹시라도 스포일러가 될까 소심하게 뒤표지를 들여다봤다. “희망과 구원의 가능성을 고찰하는 작품”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자기 죄의 무게를 실감하게 만드는 상상할 수도, 굳이 만나야 할 이유도 없었던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 갇혀 지내게 된 그가 들려줄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것이 될까. <br><br><br><br>저메이카 킨케이드 『내 어머니의 자서전』<br><br>작년에 읽은 책 중 손꼽히는 작품중 하나는, 카리브 문학의 거장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미스터 포터』였다. 주인공의 할머니가 맞이한 죽음, 차가운 파도가 몰아치는 순간의 그 슬픔과 고요가 아직도 마음을 붙든다. 글이 이렇게 날카롭고도 시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정도로 여운이 길었다. 나중에 이 책 속에 담긴 그녀의 기록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통찰과 언어의 힘이 또 얼마나 깊숙이 나를 흔들지 기대된다.<br><br>내가 스스로에게 말하기 시작한 이유는 나의 목소리를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는 내게 다정하게 들렸고, 나를 덜 고독하게 해 주었는데, 나는 고독했고 나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였나? 내 어머니는 죽었고,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p. 21)<br><br>무슨 일이 일어났고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나는 즉각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나마, 분별없게나마 나는 몇 마디 말을 통해 내 생활을 변화시켰다. 아마 내 생명까지 구했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나는 늘 스스로에게든 남들에게든 내 상황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을 극도로 의식하고, 스스로의 욕구에 그토록 관심을 갖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신경을 쓰고, 나의 불만을, 나의 즐거움을 자각하게 된 계기는 그 때문이다. 뚜렷한 목적 없는 이 어린애다운 고통의 표현으로부터 내 인생이 바뀌었고 나는 그 점을 마음에 새겼다. (p. 28)<br><br><br><br>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죔레는 거기에》<br><br>원래 『죔레가 사라지다』라는 제목으로 예약 구매한 책이, 막상 손에 쥐니 『죔레는 거기에』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새로운 제목이 훨씬 마음에 든다. 올해 아흔두 살, 세월의 무게가 온몸에 배인 노인 카다 요제프와 그의 노견 죔레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라슬로는 긴 호흡과 난해함으로도 유명하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이 노인과 개라는 설정 덕분인지 비교적 편안하게 읽힌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줄거리와 역자 후기를 읽어보면 세대 간 갈등, 가치관의 충돌,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이 배경으로 깔려 있지만, 아직은 숲의 가장 높은 지대에 살고 있는 요제프와 죔레의 세계는 고요함을 뿜어내고, 조금은 여유롭다. 그러나 평온함 뒤에는 긴장이 숨어 있다. 헝가리 아르파드 왕가의 벨러 4세, 칭기즈 칸의 후손이자 왕위 계승자인 것을 숨기고 사는 요제프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을 둘러본다. 군주제를 재건하려는 추종자들, 무장봉기를 꿈꾸는 집단, 또 다른 정치적 세력까지 뒤얽혀 있다. 지금은 말할 수 없는 이유로, 1945년에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 결정을 지금까지 단단히 지켜온 요제프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br><br>그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자신이 바라는 것은 그들이 이해해주는 것이라고, 그 이유는 이제 이 삶이 지쳤기 때문이며, 벌써 세 번째 만남이라는 이 시점에서 그는 그들에게 신뢰가 간다고 여기기에 솔직하게 고백하는데, 아주 작은 노력조차도 육체적으로 자신을 지치게 하며, 이제 그만하고 놓아도 된다는, 마지막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한 사람의 인생으로는 아흔한 해면 충분하지 않느냐?, 그는 너무도 많은 것을 보았고, 너무도 많은 일을 겪었으며, 너무도 다양한 것들을 견뎌야 했지만, 그는 결국 그것들을 이겨냈고, 가족과 종교적 계율과 사랑하는 조국이 그에게 요구한 대로 품위를 지키며 살아왔으나, 이제는 이만하면 되었다고, 매일 음식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잠자리를 들고, 제때 일어나지만, 그것은 단지 모든 것이 제 궤도를 따라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라면서, (p. 28)<br><br>당신들이 발견한 사실, 즉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과 여기에서 우리가 이렇게 만난다는 사실은 일곱 겹으로 봉인된 비밀로 남아야 하오, 알겠지만 누구도, 아무도 이것을 알아서는 안 되며,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알아서는 안 되오, (p. 31)<br><br><br><br>(헥헥)<br>작정하고 페이퍼를 작성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 혼자 신나게 이 말 저 말 말보따리를 풀어놓고 말았다. 뭐, 늘 그렇지만.<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909/70/cover150/897275725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9097016</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29543</link><pubDate>Wed, 04 Mar 2026 13: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295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5713&TPaperId=171295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46/53/coveroff/8972754676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5713&TPaperId=171295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a><br/>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08월<br/></td></tr></table><br/>어르신과 햇살에 데워져 따뜻한 숨을 품고 있는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본다. 눈앞에 산과 들은 초록초록 신록의 물결로 넘실거린다. 살랑이는 바람에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를 얹어보고 눈부신 풍경 속에서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마음을 위로하듯 서로의 침묵에 기대어본다. 어르신은 말씀이 없으시고, 나 또한 굳이 말을 보태지 않는다. 말 대신 나누는 침묵 속에서 숨을 고요히 맞춰본다.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lt;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gt;를 펼치자,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그녀가 자연으로부터 얻은 위로가 어떠하였는가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가장 깊은 위로를 건네는 것은 결국 바람과 나무와 흙이라는 듯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며 나의 오래 묵은 마음도 겨울을 벗어본다. <br><br>믿음과 기회를 잃은 채 얼어붙은 희망 속에서 성장이 멎어 버린 듯했던 한 소녀가 세월이 흘러 삶의 소소한 즐거움의 놀이터가 되어주는 작은 마당을 가꾸며 맨손으로 흙을 주무른다. 손톱 밑이 까맣게 물든 자기 손을 들여다보며, 며칠만 이 흙을 간직하면 열 손가락 끝에서 푸릇한 싹이 돋아나지 않겠느냐고 엉뚱한 상상을 하는 나이 든 여인에 이르기까지의 긴 세월. 저 멀리 산등성이에 겹겹이 쌓인 초록의 결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나는 따뜻한 빛을 가만히 받아들이듯 그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우리 할머니였다면 옆구리 쿡 찔러서 눈치 한번 쓱 주고 싶을 만큼 솔직하면서도 통통 튀는 매력을 지닌 분께서 이곳저곳 뚫고 올라오는 잡초를 매일 뽑아내며 몸을 쓰는 동안, 평생 이고 지고 살아온 수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얼마나 세차게 소용돌이쳤을까. 우리 외할머니도 꽃과 식물을 유난히 사랑하셔서 정원을 곱게 가꾸는 분이신데, 안부 전화를 드릴 때마다 늘 무언가를 뽑고 계신다. 애당초 쇠심줄 같은 고집을 꺾을 생각조차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니, 허리 아픈데 그만 쉬시라고 하면 “뽑는 동안에는 안 아프다”라고만 하신다. 아마도 잡초를 뽑는다는 것은 단지 풀을 솎아 내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 응어리를 하나씩 드러내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잡초라도 뽑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손길을 쉽게 말릴 수 없다.<br><br>그동안 내가 읽어온 박완서 작가의 작품들은 대체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건네받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경청하는 이의 마음에 가까웠다면, 이 책은 조금 달랐다. 나 역시 이야기 속에 슬며시 발을 들여, 한 마디쯤 보태도 괜찮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이 책에 담긴 몇 편의 영화에 대한 짤막한 감상과 그녀에게 영향을 준 여러 권의 책 이야기 덕분에 거리감이 좁혀져서인 것 아닐까 싶다. 생각지도 않게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레이먼드 카버의 &lt;대성당&gt;이 불쑥 등장하여 반가운 마음이 앞서 장바구니에 슬며시 담고, 언젠가 그 책을 펼쳐 들었을 때 그때의 나는 또 어떤 감상을 얻게 될지 궁금해지면서 잠시 생각은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다. 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책 구경만 또 실컷 했지만, 그마저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br><br>지금의 젊음을 당연하게 여기며 건방을 떠는 나 역시, 시간이 흐르면 번화가의 화려한 불빛이 그저 어지럽게만 느껴질 날이 올 것이고, 목적지를 잃은 사람처럼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는 순간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세월의 흐름이 두렵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시간은 무언가를 빼앗아 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믿는 방향 감각은 어쩌면 상처를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얻는 또 하나의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걸 일러주는 박완서 작가의 단단함과, 사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살맛 나는 순간들이 조용히 곁을 내주고, 쉬엄쉬엄, 편안한 호흡으로 읽히도록 이끈다. 저자의 책을 하나 둘 야금야금 읽어왔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한다기보다는 어떤 문장에서 나의 마음이 붙들릴지, 어느 대목에서 오래 묵은 생각이 조용히 흔들릴지 그저 천천히 받아들이고만 싶을 뿐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어르신과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마치 만개한 꽃으로 가득한 마당에 나와 있는 것처럼 마음 한편이 포근하다. <br><br>외침으로써 위로받고 치유받고 싶었다. (p. 24)]]></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46/53/cover150/8972754676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465374</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악마의 시 2 - [악마의 시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11038</link><pubDate>Tue, 24 Feb 2026 14: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110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284&TPaperId=171110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65/76/coveroff/895468828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284&TPaperId=171110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악마의 시 2</a><br/>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09월<br/></td></tr></table><br/>“세상은 현실이야. 우리는 현실 속에서, 바로 여기서 살아야 해. 계속 살아야 한다고”<br><br>지브릴은 그토록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고 바랐던 신을 보게 된다. 비록 기대했던 전능한 신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신성한 ‘말씀’의 축복을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의심을 버리고 나니 새로운 결심이 빈자리를 채웠다. 천사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겉모습이 아니라 실체가 보인다. 이 도시를 구하리라. 이 도시, 진짜 런던. 악의 힘이 얼마나 완강한지 실감할 수밖에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도시의 주민들을 바라보며 선을 널리 펼치겠다는 결심을 더 굳혔다. 앞서 1권에서 내출혈로 죽을 고비에 처했다가 회복과 동시에 ‘믿음’을 잃었던 지브릴. 비행기 추락사고 이후 천사의 모습으로 변신한 무신론자 영화배우 지브릴 파리슈타가 천사의 역할로 활동했던(?) 꿈에서 더 나아가 현실에서도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환상이 더 이상 환상이 아니라고? 대천사 지브릴의 존재에 대해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도 그의 꿰뚫는 시선을 떨쳐버리지는 못한다.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개운해지면서 꼭 해야만 하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힘을 전달받아 대천사 지브릴과 하나됨을 느낀다. 오호! 분명 그럴싸한 변화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앗! 영 기대치에 못 미치는 현실이 이어진다. 게다가 지브릴의 머리 뒤에 환하게 비치던 황금빛 후광마저 꺼져버렸다. 뭐지?<br><br>여기 이렇게 천상의 존재가 나타났건만, 눈부신 빛과 선을 뿜어내는, 빅벤보다도 거대한, 템스강 양쪽에 발을 걸칠 수도 있는 거인 같은 대천사가 나타났건만, 저 조그마한 개미들은 여전히 교통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다른 운전자들과 말다툼을 벌일 뿐이었다. ˝나는 지브릴이다.˝ 그의 목소리는 강변에 늘어선 빌딩들을 뒤흔들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흔들리는 건물에서 지진을 피하려고 뛰쳐나오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눈멀고 귀먹고 잠든 자들. (p. 71)<br><br>최악의 바람둥이 영화배우 지브릴을 애인으로 둔 알리의 이야기도 조금 해야겠다. 그녀의 어머니는 바람이라면 자신의 죽은 남편만 떠올려도 진절머리가 나는데, 소중한 딸의 애인이 최악의 바람둥이 영화배우, 그것도 이제는 회까닥 돌아버려 천사라고 말하는 지브릴인 것이 못마땅하다. 지브릴에게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란 힘든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으로밖에 안 보이니 말이다. 알리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찾아보지만, 연속적인 꿈은 여전했고,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언어인 아랍어로 된 시를 읊어대는 등 결국 ‘천사’를 또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영화계의 슈퍼스타였던 지브릴에게 다시 영화를 찍을 기회가 찾아온다. 인도 라자스탄의 시소디아 왕조에서 따온 이름인 것으로 보이는 유명한 영화감독 ‘시소디아’를 만나게 된 것인데, 시소디아는 지브릴의 요양 기간 동안에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상자를 가져와 중국식 사탕옥수수부터 봄베이식 요리까지 골고루 맛보게 해주며 회복을 돕는다. 화려한 제국이면서도 외부의 침략을 많이 받은 라자스탄의 역사처럼 시소디아는 지브릴에게 다시 한번 화려한 영화계에 발을 담그도록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느낌상 평탄하게 잘 굴러가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어쨌든 지금은 알리가 집을 비워야 할 때 지브릴의 곁을 지켜주는 고마운 사람의 모습이다. 단지 혀만 짧을 뿐이다.<br><br>“괘괜찮아요. 돗돗 돌아올 때까지 여기 잇잇 있을게요. 지지브릴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건 오히려 틋틋 특권이니까.” (p. 80)<br><br>이래나저래나 지브릴은 살만한 것 같은 분위기인데 애처로운 우리의 염소? 악마? 참차는? 머리에 뿔이 달린 털복숭이 악마이지만, 어딘가 애처롭게 느껴지는 참차의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해 본다. 이런저런 과정을 겪고 난 뒤, 다시 인간의 모습을 찾은 참차! 지금 그는 자신이 살던 집 골방에 틀어박혀 언젠가 자기 부인과 함께 읽었던 단편 소설을 떠올린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나 구멍 크기만 봐서는 내상이 얼마나 심한지 가늠할 수 없어.”라고 말한 소설 속 인물의 말을 떠올리며 세상의 온갖 눈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 시작한다. 나와 당신이 타인의 삶을 헤아려보듯이 말이다. 평범한 삶을 회복하겠다는 소망과 모순되는 현실의 일면들에 주저앉아버린 시간을 갖고 난 뒤에 참차는 분명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br><br>일상생활의 진부함과는 전혀 양립할 수 없는 그 모든 일이 날이 갈수록 어쩐지 터무니없게만 느껴졌다. 얼굴에 물을 끼얹고 이를 닦고 무엇이든 진하고 뜨거운 것을 마시고 나면 제아무리 끈질긴 악몽도 저절로 잊히듯이. (p. 174)<br><br>참차의 삶을 들여다보는데 결국 우리네 삶과 다를 바 없는 모습에 동질감과 측은함이 밀려왔다. 나는 실제로 용기가 부족하고 무언가를 바꾸려 한다기보다는 관조하며 인정하는 태도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서 참차의 삶에 더 관심을 두고 읽었다.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결국엔 원하는 삶에 가까워졌지만, 내 맘처럼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삶이 아니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비행기 사고를 당했고, 또 기적처럼 살아났고, 그러나 그 기적이 불행의 씨앗이 되어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던 그의 삶도 참 고단하다. 뿔 달린 악마의 모습을 했을 때, 사람들은 참차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편견을 갖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은 채 상처를 주었다. 그때 그가 선택한 건 ‘순응’이었다.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듯 구태여 숯검정 같은 속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 더 짠하다.  <br><br>예전의 삶을 재창조하려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 사실을 되돌릴 수 없음을 이해한 것이다. 참차는 골방에만 틀어박혀 온갖 괴물들이 튀어나오는 텔레비전 채널을 마구 돌려본다. 마치 언젠가는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며 점점 빠르게만 변화하는 세상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수많은 비극 속에서 영국 땅에 자리 잡았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의 의식적인 노력과 속세에 초연해진 듯한 모습은 무언가 휩쓸고 지나간 뒤 남은 좌절감과 고독함을 더 드러냈다. 그러나 참차는 허무와 패배의 감정에 그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그가 세상에 다시 뛰어들게 만든 것,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나 역시 처한 상황을 타인과 연관 지어 더 깊게 파고들고 괴로워하고 분노하는 것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한다고 생각해서 비우려고 하는 쪽이다 보니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온 참차의 발걸음이 내 마음을 개운하게 해주었다. 어쩌면 지브릴을 만난 뒤로 겪은 시련으로 인해 그의 존재 자체가 참차에게는 최악의 인연처럼 여겨지겠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삶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함을 얻게 되었을 수도 있다! 살다 보면 여러 갈래의 길이 나타나는데, 분명한 것은 선택은 내 몫이라는 것이다.<br><br>워낙에 이야깃거리가 많아 인상 깊었던 것 한두 가지만 더 말해보자면, 이 소설은 막바지에 이르러 1666년 런던 대화재 사건부터 1879년 대영제국과 줄루 왕국 간에 일어난 줄루 전쟁까지 과거의 역사를 연결 지어 현재 런던의 한 카페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으로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이곳에 지블리와 참차가 있다. 사방에서 연기가 자욱하고 불길이 치솟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각자 본성을 드러내는 선택을 한다. 실제로 런던 대화재 사건은 영국 시민들이 악마의 숫자 666이라 하여 분명 이것은 신이 내린 재앙이라 보고 가톨릭교도를 공격하기도 했다고 한다. 빵집에서 일어난 불이 도시로 번졌던 것인데 말이다. 그러나 이런 재앙 속에 인간의 위대함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재건 작업을 위해 시민들이 연대하였고 정치 시스템은 여러 목소리를 수렴하였다. 결국 질서가 무너지고 공포로 가득 찬 분열한 사회 속에서도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듯한 이 장면이 2권의 핵심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온갖 환상과 기괴한 설정에 정신없이 따라가게 만들지만, 결국 헤매며 따라갔던 내 두 발이 딛고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니 말이다. 지브릴의 꿈속 이야기 중에 대천사 지브릴의 계시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인도 농촌 마을에 사는 소녀 아예샤가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걸어서 메카로 순례를 떠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거부와 수용, 만류와 설득이 오가면서 위기와 기회가 공존했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종교적 신념의 충돌을 담았다. 단순히 신념 차이로만 바라보기에는 종교적 대립이 사회적 요인과 얽히면서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지 조금은 갑갑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야만 했다. 물론, 각자의 신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종교 권력의 문제만을 드러냈다기보다는 분열한 세계를 포용하는 손길의 중요성을 보여준 것으로 읽혔다.<br><br><br>저자의 도발적이고 위험한 발상이 누군가에게는 자극으로 다가갈지도 모르겠지만, 언어의 자유를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떨까? 나 또한 이 책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지 종교와 관련한 이야기가 주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루슈디의 다른 소설보다 특정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살아온 삶, 살아가는 삶, 그리고 살아내야 하는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고 느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지배에 따라 움직이며 현혹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 소설에서는 환상과 종교와 관련한 믿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우리 삶에서 통제력을 상실하거나 삶의 균형이 무너지게 만드는 것은 많지 않은가. 거창한 것뿐 아니라 매스컴 등 사소한 일상과 연결되는 것들에서 너무나 쉽게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정신 사나움? 나는 오히려 이런 설정과 역사와 신화가 섞인 복잡한 이야기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우리는 하늘에 헬리콥터들이 몰려오던 모습을 목격했고, 여기저기서 물대포가 사람의 머리를 향하고 있던 모습도 보았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하고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배척당하는 사람을 보았다.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한 일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의 모습도 함께 보았다. 온통 분노에 휩싸이고 온갖 사건이 줄을 잇는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 용기를 내는 것이 점점 갈수록 두려워져만 가는데, 누군가 우리를 향해 전속력을 다해 돌진한다. 목소리를 잃고 가장 힘겹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대신해 주는 이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우리를 향해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를 주시하는 자들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 염려되어 아슬아슬하기만 한대, 그럼에도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바라보니, 분명 그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살만 루슈디도 마찬가지다.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는 자기 위안을 삼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씩씩하게 목소리를 내는 그의 용기가 값지다.<br><br>나의 지적 수준이 루슈디의 발뒤꿈치에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눈만 끔벅거리며 읽는 순간도 종종 있었지만,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 시대의 설화라든지 그가 영향받은 작가와 작품들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에 개인적으로 루슈디의 작품 중 가장 읽기 수월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쉽게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 책이었다. 만약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어봤더라면 그의 다른 책으로 손이 쉽게 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혼자 내적 친밀감을 쌓고 나름 팬심을 가진 상태라 평균 이상의 ‘좋음’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안개 속을 거치면서 끝끝내 밖으로 나오는 수고와 노력을 할 수 있었다. 2권의 후반부로 가면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이야기, 마치 상상 속 이야기가 현실 세계로 빠져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뒤죽박죽 정신을 흔들어 혼란스러움을 겪은 독자의 널뛰는 감정에 ‘죽음’이라는 경건함과 장엄함을 느끼게 하는 주제가 담긴 서사가 더해지면서 코끝을 찡하게 만들어준다. 아주 잘 읽었다. 작품 바깥의 소음에 휩쓸려 소홀히 대하기에는 너무 아깝고 소중한 작품이라는 번역가 김진준 님의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br><br>삶을 되비추는 거울인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삶의 모든 원망과 다툼, 그리고 질투심을 씻어내려 준다는 것을 경험했던 살만 루슈디. 복수를 용서로 극복했던 사람.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이들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을 깨달을 때쯤이면 너무 늦는다는 것, 이 가혹함을 경험하지 않길 바라는 그의 진심이 녹아들어 있는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br><br>“우리는 아직도 숭고해질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아직도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존재다” (p. 354)]]></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65/76/cover150/895468828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0657669</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amp;lt;악마의 시 2&amp;gt; 중에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09598</link><pubDate>Mon, 23 Feb 2026 21: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10959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284&TPaperId=171095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65/76/coveroff/8954688284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lt;악마의 시 2&gt; 중에서...<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65/76/cover150/895468828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0657669</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악마의 시 1 - [악마의 시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97444</link><pubDate>Tue, 17 Feb 2026 17: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974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276&TPaperId=170974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65/74/coveroff/89546882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276&TPaperId=170974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악마의 시 1</a><br/>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09월<br/></td></tr></table><br/>“시인이 해야 할 일이지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일, 거짓을 손가락질하는 일, 어느 한 편에 서서 논쟁을 일으키고 세상을 가다듬어 잠들지 못하게 만드는 일” <br><br>AI가 아직 유머 감각까지는 학습하지 못했다며 창조적인 요소가 필요한 부분은 여전히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답게 일단 재밌다. 뭐랄까, 죽이 척척 맞는 동반자처럼 번역가 김진준 님이 루슈디만의 유머와 감각을 어찌나 맛있게 잘 살리는지 이 소설은 상상력으로 빚은 허구의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과 진심이 나의 머릿속을 마구마구 헤집으면서도 따라잡힐세라 동서남북으로 핑퐁하는 통에 쉽게 판단하고 예상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까지 더해져 정말 읽을 맛이 활활 불타오르게 했다. 혀가 어찌나 길고 넓은지 눈치코치도 없이 떠들어대며 정신을 사납게도 만들지만, 이 언어의 자유로움이 주는 경쾌함과 명랑함에 빠지면 (어르신께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루슈디가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호불호도 분명 있겠지만 나에게는 완전히 호다! 호호호! 일단, 주인공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부터 해야겠다. 부모를 잃은 고아였지만 워낙 잘생겨서 일찍이 영화계에 발을 담가 배우가 된 지브릴 파리슈타! 희대의 바람둥이 돈 조반니 못지않은 최악의 바람둥이다. 어느 날, 이유도 없이 전신에서 내출혈을 일으켜 죽을 고비에 처했다가 회복하게 되는데, 그가 깨어난 것은 참으로 다행이지만 한 가지 변화가 생기고 만다. ‘믿음’을 잃게 된 것!<br><br>알라시여, 그곳에 계시옵소서, 빌어먹을, 제발 있으시란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제 아무것도 못느껴도 상관없음을 깨달았다. 바로 이 변신의 날부터 병세가 변화를 보였고 회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신의 부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지금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의 식당에 우뚝 선 채 돼지고기를 질질 흘려가며 먹어치웠다. (p. 55)<br><br>지브릴 파리슈타는 원래 이스마일 나지무딘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출생지는 푸나, 제국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영국령 푸나였고 아버지가 봄베이의 발 빠른 도시락 배달원이었기에 열세 살 때부터 이스마일도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세월은 흘러갔고, 어느 날 한 여성으로부터 삶을 바꾸지 못한다면 생명을 되찾은들 무슨 소용이냐라는 도발적인 한마디를 듣고 난 뒤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런던으로! 지브릴 파리슈타가 아닌 턱수염을 기른 이스마일 나지무딘이라는 옛 이름으로 런던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 그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살라딘 참차’(자꾸만 참치로 보인다)를 만나게 된다. 두 번째 주인공 참차의 소개도 간략하게 해야겠다.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각종 농약과 인조 비료의 전국 최대 생산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참차는 어릴 적부터 땀 냄새가 풀풀 나고 소음으로 가득한 곳이 아닌 검은 물 건너 머나먼 곳을 동경했다. 가슴속 깊은 욕망을 더 이상 누르지 못해 도망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희망 없는 인도 땅이 아닌 파운드화가 잔뜩 쌓인 근사한 이국의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억압하는 아버지와의 거리를 두어야 하리라! 외침이 너무 컸는지 뜬금없이 아버지가 영국 유학을 제안해 그토록 원하던 런던에 가게 된다. 인도의 현실을 제대로 목격한 적이 없이 자라온 그가 영국식으로 바뀌어버린 인도인이 되었다. 말투를 바꾸는 재능이 있어 더빙 분야에서 큰 몫을 차지하며 영국의 방송 전파를 지배하게 되고, 영국인 여성과의 결혼까지 성공하게 된다. 얼굴은 감추고 목소리만 존재한 유령이라 해도 좋다. 성공과 돈과 아내가 있는데 뭐! 사반세기가 흘러 ‘용서’를 위해 다시 고향 땅 인도 봄베이로 날아온 참차. 용서를 해주려는 것인지 받으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왔다. &lt;한밤의 아이들&gt;에서 피클 국물처럼 들척지근한 향을 풍기는 주인공 ‘살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성 ‘파드마’가 있었다면, 참차에게는 그의 정부 ‘지니’가 있다. 옆에서 비위를 맞추며 부채질을 살살 해 주다가도 단번에 부챗살을 죄다 부러뜨려버릴 것만 같은 여성인 지니가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세상에 사는 것으로도 든든한 자산이라 여기는 참차가 여간 밥맛이 아니었는지 냅다 재수 없는 소리를 내뱉고 떠나버린다. <br><br>“사람들이 당신 곁에 너무 접근하지 못하게 해요, 살라딘 씨. 방어막을 열어주면 그놈들은 곧바로 당신의 심장을 찌를 테니까.” (p. 119)<br><br>그래, 다시 떠나자! 단정한 양복과 질서정연하고 만족스러운 런던에서의 삶으로! 그리하여 봄베이발 런던행 비행기에서 참차와 영화배우 지브릴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한편, 지브릴이 믿음을 잃고 부정한 돼지고기를 먹은 후 그날 밤부터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그는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존재였다. 대천사 지브릴. 천사가 된 그에게 온갖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희한하게도 잠들 때마다 중단되었던 부분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똑같은 곳, 똑같은 꿈. 지독한 악몽처럼. (이 소설의 홀수장에서는 지브릴과 참차가 마주한 현실이, 짝수장에는 천사로 변신한 지브릴의 꿈이 교차한다.)<br><br>불행하게도 이 비행기는 런던 상공에서 폭파된다. 생존자는 단 두 명이다. 지브릴과 참차! 이들이 떨어져 내려오는 과정은 절대 일반적이지 않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빙글빙글 공중 헤엄을 치며 발버둥 치고 거꾸로 선 채 비명을 지르며 도착한다. 엥? 아니, 어떻게 사람이 하늘에서 폭탄처럼 내리꽂히듯 올 수 있느냐며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겠지만, 불가능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넘치는 세상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으니 뭐, 대단히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듯? 펜을 쥔 손에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까지 쏟아내는 말과 와다다다 시끌벅적한 묘사가 이어지는데, 거의 만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부활인 것인가? 3만 피트 상공에서 떨어졌어도 살아남았다니! 낼모레면 구십 대가 되는 노파에게 발견되어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되었는데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치고 영주권이 있다고 믿어달라고 소리치는 참차만 날름 잡아간다. 그럼, 지브릴은? 지브릴도 잡혀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일단 추락과 동시에 두 사람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먼저 밝혀야겠다. 지브릴은 머리 바로 뒤에서 은은한 황금빛이 비치며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에 뭔가 질문을 하고 싶게 만들고 비밀을 고백하고 싶게 만드는 천사의 모습이고, 참차는 염소 뿔 한 쌍이 시시각각 길어지는 털북숭이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끌려가는 참차는 도와달라며 악을 쓰며 소리치지만, 지브릴은 어떤 환상에 사로잡혀 그곳에만 시선을 두고 있다.<br><br><br>지브릴의 꿈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자힐리아(이슬람 등장 이전의 무지의 시대)에서 소개되는 인물들과 이야기도 꽤 흥미롭다. 인도 영화계에서 힌두교의 각종 신들을 연기했던 무신론자 배우 지브릴 파리슈타가 아닌 이슬람교의 대천사 지브릴! 지브릴의 시선으로는 이 꿈속에서의 모든 상황과 사람들이 그저 영화 속 한 장면과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여겨질 뿐인데, 난데없이 사람들이 자신을 소환시키는 것이 아닌가? 대천사의 역할과 그 외 여러 배역을 맡은 정말 꿈속에서나 가능한 상황에 놓여있으니 일단 이 웃기는 상황에서 어리둥절하기만 하고 꿈이 창조한 자아가 느끼는 두려움에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헛일이다. 거기에다가 유일신교냐 단일신교냐 판단해 달라는 데 미칠 지경이다. 자신은 그저 악몽에 시달리는 멍청한 배우일 뿐인데, 뭘 알겠다고 자꾸만 사람들이 답을 원하는 건지 괴롭기만 하다. 환상과 환상을 오가고 신기루가 신기루를 덮쳤다. 여러 영상이 나타나 그의 머릿속을 뒤죽박죽 만들어 버리는 통에 점점 몸이 무거워지고 가슴에는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한 지브릴은 현실에서 자신이 믿음을 버린 것을 벌하려고 미치게 만들려는 것인가라는 두려움과 함께 무력함과 무지함을 느낄 뿐이다.<br><br>루슈디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아랍과 이슬람 문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장면 하나만 얘기하자면, 지브릴의 꿈속에서 등장한 장면인데, 알라트(이슬람 이전 아라비아의 여신)가 번개 창에 맞고 거꾸로 내리꽂히면서 머리가 산산이 터지고 검은 얼룩만 남기며 죽음과 함께 ‘시간’의 종언이 선포된다.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시대 인물과 이란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인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이슬람 혁명을 적절하게 섞은 것인데, 이 혁명으로 많은 이민자가 발생했고 불법 이민자로 몰려 체포되어 불법 구금까지 당한 참차의 현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참차는 누가 봐도 사람의 말 대신 “매애애애!” 소리를 내는 양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변한 데다가 이민국 요원에게 온갖 추행과 군홧발에 짓밟히는 공포의 세계가 펼쳐진 지금, 이 순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에 몸마저 부들부들 떨릴 만큼 추운 곳에 감금되어 비참함에 빠져 있다. 이 지독한 모욕과 좌절감이 언제쯤에야 끝날지 도대체 어느 곳이 목적지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어렵사리 탈출에 성공한 그는 낙심천만한 상태에서 이민자의 하숙집에서 머물게 되는데, 이제 완전한 악마의 모습을 갖춘 뿔 달린 염소인간 그 자체였고 사람들은 징그러운 괴물이 눈앞에 나타나면 놀라 자빠지기 일쑤였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 악마가 나타났다고 하겠지만 참차는 그저 억울할 뿐인데, 그런 참차에게 손길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으니, 그건 바로 동포들이었다.<br><br>운명이란 얼마나 잔인한 것이기에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세계가 이렇게 나를 거부하게 만드는가. 이미 오래전에 전령했다고 믿었던 이 도시의 성문에서 이렇게 쫓겨나야 한다니 이 얼마나 허무한 노릇이냐! 나는 벌써 오래전부터 내 동포들을 까마득히 멀게만 생각했건만 이제 와서 다시 그들의 품속으로 내던지다니 이 얼마나 비열하고 속 좁은 짓이냐! (p. 392)<br><br>하숙집의 높은 다락방에서 지내게 된 참차는 창밖을 내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밤거리를 순찰하는 공격 준비가 된 민병대, 촛불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는 미움을 받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 곳곳에 있는 공격성을 가진 성난 사람들을 바라보는 동안 참차는 꿈속에서나 봤던 악마의 모습이 따로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타향살이하는 이민자들이 뒤죽박죽 변환의 과정에서 얻은 상실감도 보았다.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 고향의 푸른 물길은 사라지고, 느긋하게 인사를 주고받을 여유조차 없는 귀신 도깨비 나라 같은 곳에서 집안의 문은 죄다 걸어 잠그고 기도나 올리는 것조차 모자라 자식들은 모국어를 쓰지 않으며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진짜 현실을 바라본다. 끝내 참차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한다. “만물은 정해진 운명의 쇠사슬에 매여 있다.”라고 말한 고대 로마 시대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를 선택한 것도 그 이유에서일 것이다. 분명 탓할 상대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악몽에서 깨어나도 근본적인 상황은 똑같았다. 반평생 인도 땅을 벗어나려 애써오며 진짜 현실을 보려 하지 않았던 참차는 이제 꿈과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쓰디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일까.<br><br>주제 의식이 분명하면서도 무거운 이 소설은 툭 하고 내뱉듯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도 실존 인물과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을 담고 있기에 허투루 읽어내리기가 어렵다. 저자의 익살스러움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의 유머는 절대 가볍지 않다. 끈적한 공기와 열기에 현기증을 일으키고 질식할 것만 같은 공간에서 깨달음과 동시에 좌절감을 느껴야만 했던 이의 심정은 도리어 처연한 가을바람 같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불경스럽게 다뤘다며 작가의 목에 수십억의 현상금이 걸리고, 불태워진 이 책을 비롯해 루슈디가 이 세상에 내보인 소설들은 어느 것이 현실이고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는 끔찍한 공포와 악몽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삶 또한 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쾌함과 동시에 착잡함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지브릴이 꿈속에서 천사들조차 그 너머로 나갈 수 없다고 하는 낙원의 경계에 있는 로테나무의 가지를 끝내 붙잡지 못한 채 꿈속에서 시를 노래하는 것처럼 그는 글을 써 내려갔으리라.<br><br>로테나무의 가지를 붙잡으려 하고, 그러나 놓치고, 내리꽂히고, 철퍼덕.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죽을 수도 없고, 지옥에서 조용한 유혹의 시를 노래했다. (p. 146)<br><br>소설 속 인물의 삶이 전부 작가의 삶을 비추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과 함께 같은 땅을 밟고, 뛰어놀고, 역사를 목격했으며, 분노를 감출 수 없었고, 말해야만 했고, 그렇기에 그 땅을 떠난,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한 개인의 삶을 조용히 비추는 조그마한 공간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읽게 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 같다. 왜 고향을 등지고 이민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려 무언가 잃어버렸지만 찾을 수 없이 헤매야만 하는 이들의 끝도 없는 우울함을 헤아려볼 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연민의 감정을 감출 수가 없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떠나 개인적으로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감명 깊게 다가온 가장 큰 이유를 말해보자면, 그는 온갖 일에 휩쓸리면서 저항할 수 없던 상황을 겪으면서도 분노를 비난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말한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 중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였던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65/74/cover150/89546882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0657463</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amp;lt;악마의 시 1&amp;gt; 중에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95899</link><pubDate>Mon, 16 Feb 2026 15: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9589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276&TPaperId=170958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65/74/coveroff/895468827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lt;악마의 시 1&gt; 중에서...<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65/74/cover150/89546882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0657463</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언어의 무게 - [언어의 무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79081</link><pubDate>Sun, 08 Feb 2026 15: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790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1199&TPaperId=170790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96/81/coveroff/89349811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1199&TPaperId=170790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언어의 무게</a><br/>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04월<br/></td></tr></table><br/>누구나 살다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럴 땐 세상이 그 어느 것도 궁금하지 않고 알고 싶지 않다는 듯 계속해서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만 같다는 억한 심정이 든다. 좁아진 시야 속에서 방황하는 이의 사정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괜한 원망을 해 보기도 한다. 이 책은 외부로부터 주어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찾으려 유독 시리고 아픈 날을 버텨야 했던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특별한 공감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삶의 어떤 부분이 지나가고 있음을 진지하게 느끼는 동안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지금의 나를 응원하며.<br><br>&lt;리스본행 야간열차&gt;의 저자인 파스칼 메르시어의 작품이다. 필명이다. 똑같이 두툼한 책 두 권이 희한하게 손이 잘 가지 않아 책꽂이에 방치되어 있었다. 작년에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 생일을 핑계 삼아 딱 한 권만 구매한 것이 바로 이 &lt;언어의 무게&gt;인데,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의미에 이끌렸는지 손이 가는 대로 생각 없이 집어 들어 펼쳐봤다. 대단히 긴 시간이 흐른 것만은 아님에도 이 책을 받아봤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그때는 조금은 의미심장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책을 집어삼키면서 괴로움의 시간을 죽이고 또 죽이는 용도로 희생시켰다. 이 책을 집어 든 순간 느꼈다. 늘 비장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만든 마음의 무게가 소리도 없이 증발해 버리기라도 했는지, 안개가 걷힌 것처럼 서서히 사람과 사물이 보인다는 것을. 실은 변한 건 없지만 마음이 단단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헛된 수고로만 그친 게 아니라 무언가를 했다는 것, 나의 노력이 드러나는 이 순간에 괜한 뿌듯함마저 들었다. 그래서 익숙하기만 한 소리와 그 울림을 다른 마음가짐으로 듣는 순간, 그동안 이 울림과 소리를 얼마나 그리워했는가를 깨닫는 ‘레이랜드’의 심정을 다르지만, 같은 마음으로 헤아려본다.<br><br>계단에 들어서서 여권을 넘기다가 자기 사진을 들여다봤다. 마지막으로 이 사진을 본 것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개인 서재에 있을 때였다. 그때는 미래가 없는 사람의 사진이었지만, 이제는 가능성이 다시 열린 어떤 남자의 모습이었다. (p. 7)<br><br>마치 모든 게 처음 듣는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그 마음을 다 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나 또한 삶의 새로운 시작이라 여길 만한 순간들을 떠올렸다. 이제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들까지도…. 마음에 끌리는 문장이 많아 방지턱을 넘기 전 속도를 줄이는 자동차처럼 빠져들어 읽다가 잠시 멈추고 생각하기를 반복해야만 했고, 그 덕분에 문학적 매력을 느끼면서 느긋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주인공 레이랜드의 삶의 여정은 내가 지금 어디까지 읽었는지 남은 부분의 두께를 종종 체크해 볼 만큼 지루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는 갤러리를 천천히 산책하듯 걸으며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사람의 마음처럼, 매혹적인 문장을 즐기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 만큼 인내심이 필요한 순간도 있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래도 한 줄 한 줄 정성을 다하여 읽었다. 암흑 속에서 빛을 찾은 그 순간의 안도감과 펑펑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얀 곳에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길을 걷는 고요함 속에서 찾은 생의 경이로움과도 같은 감정을 오롯이 담기 위하여 단어 하나에도 공을 들이고 고심하는 이의 마음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가끔 섬세함으로 가득한 책이 불어넣어 주는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감각기관을 활짝 열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모든 게 다 씻겨 내려간 것만 같은 이 깨끗함에 정신이 맑아져 그동안 움켜잡고 한 발짝 내딛지 못해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니 말이다. 최소한의 어휘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은 짧은 글에서 얻는 감동과는 또 다른 형태로 마음을 붙잡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br><br>레이랜드는 언제나 단어들에만 묻혀 산다. 문학적 요소로 설명하기 어려운 자기만의 것을 이어받은 단어가 금방이라도 그 순간의 풍경을 눈앞에 그려지게 만들기 위한 멈추지 않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번역가이자 출판사 사장인 그는 어릴 적 삼촌에게서 들은 아라비아어를 듣고 마법에 걸린 듯 새롭고 아름다운 것에 감동한 눈빛을 보였던 꼬맹이였다. 언어의 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자 특별하고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고 싶은 사람으로 자란 그가 61세에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다. 이 세상에서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음과 동시에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기억과 그때의 감정을 글로 담았고, 그들은 다시 레이랜드의 공간을 채우게 된다. 지나고 나서야 알고 겪고 나서야 아는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새로 시작한다기보다는 정리의 시간에 가까웠을 그에게 또 한 번의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암 진단을 받은 그의 검사 결과가 오진이라는 것. 다시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아진 것이다. 놀라우면서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행복한 감정으로 마치 인생의 전환점이자 새로운 삶을 사는 듯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이제껏 살아온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자연을 더 경험하고 무더기로 사들인 책은 바닥에 쌓였으며 필사적으로 사라지는 시간에 대한 저항을 이어 나갔다. 예전에는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볼 수 없는 것을 스쳐 지나가게 내버려두지 않는 노력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타인의 삶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지금 사는 삶이 바라던 삶인지, 상상하던 삶인지를.<br><br>이 소설은 뭐라도 적어 보고 싶은 욕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규정 검토를 하는 것이 업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업을 가진 건조한 단어와 더 가까운 사람이기에 과거의 기억을 순식간에 떠올릴 수 있게 해줄 단어를 생각해 보거나, 아니면 떠올리더라도 뭔가 새로운 단어를 고민하는 경험은 드문 일이다. 그런 나마저도 무엇이든 적어 보고 싶게 만들었다. 언어를 향한 그의 열정은 자극이 되었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생각을 나만의 글로 적는다는 것이 어려운 행위로 여겨지는 이들에게는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묘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저 편하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 레이랜드가 움켜쥔 펜 끝에서 떨어져 나오는 글자들 속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삶의 회한을 통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마음에서 한 걸음 나아가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며 심적 여유를 느껴보는 것이다. <br><br><br>이 소설 안에는 바흐의 곡이 많이 등장하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계속해서 떠올리는 레이랜드의 모습에서 내가 배경음악을 선택해 볼 수 있다면, 루이스 미겔(Luis Miguel)의 Hasta Que Me Olvides(당신이 날 잊을 때까지)를 고르고 싶다. 침착하면서도 공감 능력이 뛰어난 아내였던 리비아. 그녀가 살아있었을 때, 두 사람만의 보금자리인 트리에스테 집에서 제일 높은 층계에 나란히 앉아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언어를 고민하는 두 사람의 열정은 그 자체만으로 낭만적이었고 로맨틱했다. 세월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조금은 빛이 바랜 보석함에서 꺼내보는 그 순간들을 좀 더 깊게,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그에 맞는 단어를 고심하는 레이랜드의 심정을 헤아려보며 옛 시절의 감성이 느껴지는 루이스 미겔의 감미로운 발라드곡을 배경으로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애틋함을 담아. 리비아가 고른 화려한 샹들리에보다도 젊음으로 반짝이던 그 시간을 떠올려보는 동안 자유에 제한받지 않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던 레이랜드가 이제는 번잡하고 혼돈의 세상 속에서 점점 더 많은 현재를 잃어가며 무엇을 느껴야 했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실감했을까.<br><br>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찌 보면 용기가 필요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괴롭고 나아질 방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라면, 더욱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것들을 철저히 단속하며 모든 것을 잊게 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알맹이 없이 바깥세상에서 필사적으로 하루하루를 죽여야만 할 테니까. 그러다 보면 나로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지치고 절망도 하게 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결국엔 방향을 틀어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게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있음을 느껴보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은데, 잠시라도 개인의 일상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다시금 살아있음을 경험하도록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성과 소멸의 관계를 순리대로 연결해 보며 그간의 여정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한 조용하지만, 단단한 레이랜드의 침잠하지 않은 감성과 특정한 발음과 말의 울림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 마음에 드는 문장을 생각하는 세심함과 집요함은 그의 내면뿐만 아니라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마저 끄집어 올렸다. 특별한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들과 다른 새로운 것을 찾고 싶은 욕심이라기보다는 그 언어를 나눴던 대상이 특별하였기에 다른 그 무엇과 구별된 언어를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br><br>레이랜드의 삶의 순간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라는 중압감에서 한 발짝 물러나 오롯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면에 이어 바깥으로 방향을 틀게 할 것이며 주변을 둘러보도록 할 것이다. 친밀함을 느낄 수 있는 언어를 주고받으며 자신을 더 열어 보이고픈 욕심을 품게 할지도 모른다. 드러내 보이는 것에 서툴다면, 서로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아무런 말이 없는 침묵으로 평온함을 나눠보는 건 어떨까? 굳이 언어를 통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적당한 말을 떠올리지 못한 안타까움의 표정을 읽는 것으로도 침묵의 공간을 애틋함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으니까! 나와 당신 모두가 발견의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레이랜드의 삶 위주로 적어보았지만, 각자의 언어로 삶을 이야기하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레이랜드는 자기 삶에서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사람들과의 추억에 푹 빠져본다. 이 모든 게 다 지나갔다는 걸 잊은 듯이. 시간으로 엮인 끈을 더 가까이 잡아당겨본다. 언어와 기억이 서로 얽히면서 증발하지 않고 소소한 행복과 아름다움이 남았다. 혼란스러움 속에서 찾은 이 아름다움은 레이랜드에게 현재 주어진 삶을 지탱하게 해주지 않았을까? 아니, 삶을 견디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새 삶을 만들어가는 그의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삶!<br><br>자기 인생의 시간에 대한 질문을 새로 던져야 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시간을 마주하려고 이곳에 왔으니까. (p. 10)]]></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96/81/cover150/89349811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3968193</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amp;lt;언어의 무게&amp;gt; 중에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78428</link><pubDate>Sun, 08 Feb 2026 06: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7842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1199&TPaperId=170784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96/81/coveroff/893498119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lt;언어의 무게&gt; 중에서...<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96/81/cover150/89349811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3968193</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화이트 타이거 - [화이트 타이거 - 2008년 부커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54250</link><pubDate>Thu, 29 Jan 2026 06: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542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309201&TPaperId=170542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75/coveroff/899230920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309201&TPaperId=170542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화이트 타이거 - 2008년 부커상 수상작</a><br/>아라빈드 아디가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03월<br/></td></tr></table><br/>“나무바퀴가 덜그렁덜그렁 구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소 한 마리가 커다란 달구지를 끌고 길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달구지 위에 채찍을 든 인간은 없었습니다. 물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게죠”<br><br>세상을 어깨너머, 백미러 너머,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짐작 치며 살아가는 한 남성은 오늘도 운전대를 붙들고 주인님이 오실 때까지 마냥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발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직업을 운전기사라고 말하기에는 하는 일이 12가지가 넘는다. 날개가 있어도 날아가지 못하고 되돌아와야 한다. 그렇다. 그는 하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시작과 희망이기보다는 견뎌야 할 하루와 가까운 삶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주인의 비위는 어찌나 잘 맞추는지 샘물이 졸졸졸 내려오듯 하는 발람의 능글맞은 태도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인도 상인 집단이자 최대 부자 가문 중 하나인 파르시 집안 출신인 작가 로힌턴 미스트리는 그의 저서인 &lt;적절한 균형&gt;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br><br>“존엄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는 삶입니다”<br><br>존엄한 삶이라 하면 통제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삶이 먼저 떠올려진다. 주인에게 예속된 발람의 인생살이는 딱 이와 반대의 삶이라 말해야겠다. 식민 지배를 거쳐 인도의 비극적인 현대사에 대해서 대부분 조금씩은 알고 있기에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궁금하다? 그렇다면 발람이 제대로 알려주겠다고 한다. 멋들어진 인생이 뭔지 상상조차 못 하고 사는 사람들이 왜 가림막에 가려지고, 왜 갇혀만 지내고, 언감생심 벽을 부수고 달아날 생각을 못 하는지, 무엇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려주겠다고 한다. 대신에 내일의 희망을 바랄 만한 일이라든지 고단함에 환기가 되어줄 만한 기분이 삼삼해지는 이야기 따위는 기대하지 말란다. 고래들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는 소리만 나니 뭘 바라지 않는 게 상책이고 괜한 엄한 일이나 안 생기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절이라도 할 판이라며... 그나마 깨알같은 쾌락이라면,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주인님의 얼굴을 찰싹 때려보는 것?<br><br>모든 걸 빨아들이며 살아온 동안 가슴속에서만 문드러져 있던 심정을 담은 말 속에는 가시가 날카롭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 어차피 알려줄 거면 제대로 알려줘야지! 어설픈 건 딱 싫고 가방끈이 길지는 않아 어려운 말은 몰라도 대신에 밥숟가락 들 줄만 알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제대로 까발려주겠다며 다짐이라도 한 듯 단도직입적으로 들어오는 거친 욕설이 섞인 유머와 함께 한이 서린 울분이 쏟아진다. 그야말로 하얀 거품이 일어날 만큼 콸콸콸! 그가 버텨낸 삶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고통을 깊은 숙고로 경감시키며 그날의 하루를 맞이하였을 거라는 것이다. 불행에 자신을 소진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는 태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발람이 그리 순진한 사람인 것만은 아니라는 거다. 극단적 불균형과 불평등이 낳은 구조적 문제에 인과 관계를 따지며 시간을 죽일 여유가 없는 발람은 그저 하인의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도 빛으로 반짝이는 저 높은 곳을 갈망한다. <br><br>발람은 주인님의 부름에 따라 목적지로 가기 위해 빵빵거리는 소리가 귀를 때리며 시도 때도 없이 길이 막히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과 똑같이 가다 멈추다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차 문을 두들기며 구걸하는 사람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 도로 위에 돗자리를 깔고 눕기라도 할 것 같은 가냘프고 나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도로의 혼잡과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폐쇄된 공간에서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던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며, 유일하게 아들을 학교에 보냈던 아버지와 발람을 생계 수단으로만 여기며 착취를 일삼았던 할머니, 그리고 줄줄이 땟국이 흐르는 가족들까지도.<br><br>만담꾼처럼 너불너불 털어놓는 말에 초반에는 실소가 터지기도 했지만 점점 갈수록 차마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욕망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욕망을 누르기 위해 도대체 얼만큼의 자제가 필요했을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몸에서 사리가 나올 지경이지만 눈치 아홉 단 발람은 영리함을 발휘하며 지극정성으로 주인님을 모셨다. 사타구니를 긁던 손으로 요리하는 모습에 마님께서 기겁하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의식 없이 하는 습관도 고치고, 생전 처음으로 치약을 사서 손가락으로 이를 닦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리고 서서히 발람은 타인(주인님)의 사소한 생활 방식을 습득해 가며 따라 하기 시작한다. 같은 가격이라면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이 더 그럴싸해 보였던 자신의 취향 대신 주인님의 취향을 따라 단조로운 디자인을 고르면서 말이다. 타인의 삶을 모방하는 것이 단순히 삶의 태도에 변화만 주는 것으로 그칠지 아니면 한순간에 삶을 무너뜨릴 만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br><br>발람은 치욕적이면서도 악의적인 행위를 참아내고 불합리한 일에 휘말려도 조용히 항변할 생각조차 갖지 않는다. 그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내 아버지가 그랬고 내 식구들이 전부 다 그렇게 살아왔다. 원망하기 보다는 허약한 이들을 바라보며 연민에 압도된 채 살아왔을 것이다. 민감한 촉수를 세워 올려다봐야 하는 이들의 말 한마디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이기 바빴을 테니 말이다. 그랬던 그가 평등이 보장되지 않은 곳에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내린 결정과 그로 인해 벵갈루루에 정착한 북부 인도 출신의 기업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엿보는 동안 생각이 깊어지고 씁쓸함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씁쓸함이 오히려 이야기의 현실성을 단단하게 붙잡아준다. 그럼 나는 왜 씁쓸함을 느꼈는가를 생각해본다. 단순히 측은함을 느껴서였을까? 기회와 자유의 차이일 뿐, 우리 사회에도 자본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본능을 갖게 마련이다. 이런 자기중심적으로 뒤틀린 본성이 스스로 택한 결정에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75/cover150/899230920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87532</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작년 한 해 동안 읽은 책 중에서 꼭 다시 읽어보고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27235</link><pubDate>Sat, 17 Jan 2026 15: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2723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831954&TPaperId=170272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92/94/coveroff/k762831954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030102&TPaperId=170272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16/17/coveroff/k42203010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48637&TPaperId=170272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906/47/coveroff/893744863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0537&TPaperId=170272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49/39/coveroff/893203053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51078&TPaperId=170272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652/23/coveroff/8952751078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27235'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작년 한 해 동안 읽은 책 중에서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가의 책 위주로 몇 권 구매를 했다. 물론, 처음 읽게 된 작가의 책도 있다. 앞서 읽고 평을 올려주신 분들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도움받아 고를 수 있어서 반갑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품에 들였다. 무사히 도착한 책들을 차가운 냉기로 가득한 상자 속에서 꺼내 한 권 한 권 만지작거리다가 빳빳한 종이에 지문이라도 남겨 정도 쌓고 분위기만이라도 느껴볼 겸 앞부분만 가볍게 읽어보았다. <br><br><br><br>&lt;벵크하임 남작의 귀향&gt;, &lt;헤르쉬트 07769&gt;, &lt;죔레가 사라지다&gt;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br><br>벵크하임 남작의 귀향부터!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가시덤불땅에 헝가로셀 패널 오두막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한 남성(직업은 교수)! 창문 밖에는 그의 딸이 지역 TV 방송국 취재진과 신문 기자들을 우르르 데리고 와서 무언가 받아야 할 것을 받아낼 때까지 떠나지 않을 기세를 보이며 버티고 있다. 혼외로 얻은 딸이 있다는 사실도 기억나지 않는데 19년이나 지난 뒤에 “이제 빚을 갚으시지.”라는 팻말까지 들고 와서 설쳐대고 있으니, 교수는 모든 것이 적절히 계산되고 의도된 계획 앞에 지금 무진장 심란하다. 아니, 그런데 교수의 대응 방식도 만만치 않다. 냅다 방아쇠를 당겨 사람들을 쫓아내는 게 아닌가! 아직 벵크하임 남작도 못 만났으니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전에 읽은 &lt;사탄탱고&gt;보다는 시작이 덜 무겁게 느껴진다.<br><br>자신이 마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보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므로 그는 모든 조각을 맞추려고 발작하듯 애썼으나 모든 것이 아무 의미도 없었으니 아무것도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요, (&lt;벵크하임 남작의 귀향&gt;, p. 27)<br><br>라슬로의 신작 &lt;헤르쉬트 07769&gt;는 구매 전 책 소개를 읽자마자 개인적인 취향을 자극해 이건 재미가 없을 수가 없겠다 싶어 바로 구매했다. 종말 앞에 선 인간의 정당한 태도를 고민하게 한다는 점이 내가 느낀 라슬로의 매력 중 하나인데, 그의 작품은 대체로 음울하고 불안한 심리를 다루는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헝가리 유대계 중산층에서 자란 라슬로가 보고 듣고 느낀 세상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쉼 없이 이어지고 반복되는 비극적인 언어라도 현실의 붕괴 그 안으로 진입하려는 시도 자체가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설정하려는 의지로써 읽힌다. 긴말이 필요 없다. 상당히 재미있다! 누군가 생사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를 담은 편지를 독일 연방공화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에게 보내려 한다. 보내는 이 주소를 적는 왼쪽 상단에 헤르쉬트 07769만 적은 이 수상한 편지의 목적은 확실하다. 문제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즉시 안보리를 소집할 것! 편지를 보내려는 이의 정체는 독일 튀링겐 동부 전역에 이름난 담벼락 청소 사업을 하는 독일인 보스 밑에서 일하는 ‘플로리안’이다. 일단, 그의 보스가 어떤 인물인지부터 간략히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네오나치 성향인 인물로 플로리안에게 서독의 국가를 부르라고 명령하며, 목소리가 맥이 없으면 너는 유대인이나 뭐 그런 거냐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독일인은 음악에 분명하고, 멋진 귀를 가지고 있다나 뭐라나…. 암튼, 독일에 ㄷ만 나와도 칭송부터 나오는 사람이다. 그 와중에 눈치는 또 얼마나 빤한지 자기 혼자만 재미있는 농담에 지루함을 느끼는 플로리안을 절대 그냥 못 넘어간다.<br><br>다아아앙연히 이 모든 것이 지루하지, 딱 봐도 그래! 보스는 엔진 넘어 고함을 질렀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플로리안은 목을 한 대, 보스가 농담으로 부르듯이, 찰싹 맞았다, 말 그대로, 난데없이, 한 대 찰싹, 그리고 그걸로 끝, 플로리안이 오랫동안 당연시하던 손찌검으로 막을 내렸다, 보스는 대화에 오른 이런저런 주제는 한 대 때리는 일로 마무리했고, 그는 어깨만 한 번 으쓱하고 자신의 운명이 이런 것이려니, 털어버렸다, 보스가 자신의 운명이고 그것은 바꿀 수 없기에, (p. 25)<br><br>보스의 위압적인 태도에 입도 벙긋하지 않고 기분 나쁜 내색 한 번 하지 않는 다소 순종적인 플로리안은 시민대학 강좌를 진행하는 ‘쾰러’ 선생님에게 물리학 수업을 듣고 나와 집으로 가던 중, 선생님이 전하려는 말을 뒤늦게 파악하고 벼락에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여 지금 보스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다. 세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주론적 예측에 사로잡혀 있는 플로리안과 그를 진정시키는 쾰러의 대화는 이 소설의 맨 처음 장면인 생사와 직결된 문제를 담은 편지를 플로리안이 왜 써야만 했고, 왜 독일 총리, 그것도 자연과학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보내야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해 준다.<br><br>하늘을 봐, 저 구름을 봐, 이렇게 들어오는 햇살을 봐, 이것들은 다 만져지는 실제적인 것들이야, 너는 이 모든 진공 문제니 뭐니에 너무 깊이 정신을 팔 필요가 없어, 결국 네가 아예 완전히 잠겨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특히 너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양자물리학의 무력한 실패가 아니라 제한적인 인간 정신의 파탄인 탓이야,<br><br>나는 하늘을 올려다봐도, 쾰러 선생님, 더 이상 행복하지 않습니다, 나는 두려움에 완전히 사로잡혀요, 왜냐면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 우주가 얼마나 무방비한지 느껴져서 공포에 사로잡혀요, (p. 35)<br><br>물리학 지식이라고는 어린 시절부터 읽었던 책 정도에 불과한 데다가 직업학교를 졸업한 뒤 받은 중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 있는 플로리안은 이런저런 계기로 쾰러가 멘토가 되어 매주 대화를 이어가며 지내왔다. 조금은 어리숙하고 부족하지만, 물리학적 종말론에 대한 플로리안의 고뇌는 굉장히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휴, 그건 그렇고 편지를 다시 써야 할 지경이다!! 감히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에 “젠장”이라고 적어버린 게 아닌가. 흠...<br><br><br><br>&lt;순수 박물관&gt; 오르한 파묵<br><br>최근에 오르한 파묵의 &lt;눈&gt;을 읽고 그의 책을 좀 더 검색해 보았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lt;내 이름은 빨강&gt; 외에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lt;순수 박물관&gt;이었다. 곧 약혼하고 결혼할 참인 이스탄불 상류층의 서른 살 케말과 그의 먼 친척이자 가난한 열여덟 살 퓌순의 사랑. 서로를 강하게 그리고 격정적으로 끌어안으며 희열을 위해 서로를 이용한다. 퓌순이 내지른 고함과 케말의 행복한 외마디 신음 외에, 극도의 정적에 휩싸인 방 안의 침대 위 두 남녀는 벌거벗은 채 서로를 껴안고 누워 있다.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흥분과 더없는 기쁨의 감정이 케말에게는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주고받았던 일과 오랜 세월 동안 후회할 말들과 행동일지 몰라도 내 눈엔 불순한 과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구태여 시간이 흘러 기억해 내고 꺼내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혹시라도 마음 한구석에 있던 외로움을 들먹거리며 회유하는 어조로 다가오거나 현학적인 말로 교묘히 속아 넘어가게 한다면 비난을 마구 퍼부어주겠다고 다짐하며 읽어 내려갔다.<br><br>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비밀과 불안, 두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저 잘 차려입은 손님들 가운데 몇 명에게 이상한 불안과 정신적 상처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 속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한두 잔을 마시면, 우리가 고민했던 것들이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저 순간적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p. 62)<br><br>무한하고, 어린아이 같은 섹스의 희열 이외에, 나를 그녀에게 매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은 어떻게 그녀와 그렇게 진심 어린 형태로 사랑을 나눌 수 있었을까? 사랑을 낳은 것은 섹스의 희열과 계속해서 반복되는 그 욕구였을까, 아니면 이 욕구를 낳게 하고 키웠던 다른 것들이었을까? 퓌순과 매일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었던 그 행복한 나날에는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들을 전혀 하지 않았고, 그저 사탕 가게에 들어간 행복한 아이처럼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게걸스럽게 사탕을 먹곤 했다. (p. 93)<br><br>모든 것을 잊고 사랑을 나누었던 그 순간, 창문으로 불어오는 봄바람과 지저귀는 새 소리부터 시야에 들어오는 물건 하나하나를 추억처럼 떠올리는 케말의 모습을 보자니, 공간과 사물에 대한 기억을 예민하게 끄집어내는 사람인 것 같다. 이것이 퓌순을 그리워해서인지, 퓌순과 사랑을 나눴던 그 때의 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그 어느 것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가 불안정하게 공존했던 사회적 분위기와 여전히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는 튀르키예 여성의 모습을 미화하지 않는 이 소설을, 누군가의 인생이 옳았는가 아닌가보다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시선으로 보려 한다. (아직 이 소설의 끝을 보지도 못했고...) 니샨타쉬의 세속적인 부르주아로 지내면서 그에 걸맞은 여성과의 결혼을 앞둔 케말은 퓌순을 잊겠다며 마음먹지만, 그게 그리 쉽지는 않고 이슬람의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구화된 자유로움이 드러나는 퓌순은 현실적인 욕망이나 삶에 대한 주체적인 계산 또한 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 퓌순을 계속 옆에 둘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는 케말의 모습에서 가난한 이슬람권 여성을 바라보는 평면적인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케말은 배덕감에서 쾌감을 느끼는 인간 이었단 말인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퓌순과의 만남에 죄책감과 두려움을 바꿔주는 무언가를 찾으며 지내는 그의 있는 그대로의 삶의 한순간, 꿈의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의 일부라고 느끼게 해 준 그날을 좀 더 따라가 본다.<br><br><br><br>&lt;모비 딕&gt; 허먼 멜빌<br><br>모비 딕은 평소에 읽어보고 싶었으나, 선뜻 고르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허먼 멜빌의 단편을 읽고 난 뒤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구매했다. 분량으로만 치면 바라만 봐도 심사가 고달파지지만, 허먼 멜빌의 글을 안 읽어봤으면 모를까 절대 외면할 수가 없었달까.<br><br>“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br><br>불구덩이 같은 가슴 속 열기를 좀 식히고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겸 배를 타고 나가 두루 둘러볼 생각인 남자, 이슈메일. 내가 멜빌의 글에 이끌려 모비 딕까지 덥석 들었듯, 이슈메일도 나침반 바늘의 자력에 이끌리듯 모여들게 만드는 바다에 승객으로서가 아닌 (뭐, 주머니 사정이 좋지도 않고...) 선원으로 나갈 생각이다. 시련이나 고생 따위는 딱 질색이라고 말하지만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처럼 나름 현실에 자신을 맞춰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자존심이 박박 긁히는 상황 속에서도 뭐, 별 수 있나. 고달파해야 나만 손해이니 괴로움 따위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진다고 생각할 수밖에! 바닷물 못지않게 적잖은 짠내와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쿨내를 동시에 풍기는 이 남자.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봤자 먹고 싸고 자고 남다를 게 없는 인간 세계에서 벌어진 비극에 신물이라도 난 걸까. 어찌 됐든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고래잡이 항해에 뛰어들었다. 경이의 세계로 통하는 거대한 수문이 열리고, 나 역시 마치 놀이기구를 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곧 입장하기 직전에 두근거림처럼 바다에서의 모험에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아, 그런데 출항은커녕 배에 타기까지도 영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직 여행 가방도 안 싸놓은 이슈메일이 멜빌과 닮아 말이 여간 많은 게 아니라서 포경업의 비상지이기도 하고, 미국에서 최초로 고래의 사체가 해안에 떠밀려 온 곳이라는 낸터컷 섬 얘기도 해야 하고, 지갑이 두둑하지 못하니 날씨도 더 춥게 느껴져 불안한 마음에 주머니도 괜히 일없이 뒤져봐야 하고 그 외 뭐뭐뭐뭐 다 들려줘야 하니 말이다. (헥헥) 입담이 워낙에 좋아 나름 술술 읽히게 해주니 요 맛에 보는 재미도 있다. 별 의도를 갖고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 듯하면서도 내뱉는 말 속에 철학을 품고 있는 멜빌의 글은 역시나 굿이다!<br><br><br><br>&lt;두 도시 이야기&gt; 찰스 디킨스<br><br>사실적이고, 강렬하며, 날카롭게 적힌 문장이 18세기의 런던과 파리 두 도시의 상대적인 모습을 단숨에 눈앞에서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도록 한다. 단 몇 장만 읽어도!<br><br>깊이 생각해볼 놀라운 사실 하나, 모든 인간이 서로에게 심오한 비밀이자 수수께끼라는 것. 밤에 대도시에 들어설 때면 숙연하게 떠오르는 생각 하나, 저기 시커멓게 옹기종기 서 있는 모든 집들이 나름대로 비밀을 품고 있으리란 것, 저 모든 집의 모든 방도 나름대로 비밀을 품고 있으리란 것, 저곳의 수십만 가슴 속에 뛰고 있는 심장들도 저마다의 생각 속에서는 가장 가까운 심장에게조차 비밀스러운 존재란 것! 무엇인가 경외로운 것, 심지어 죽음 자체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p.  28)<br><br><br><br>&lt;흥분이란 무엇인가&gt; 장웨이<br><br>기회가 닿으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폴스타프님의 리뷰를 읽고, 주저 없이 모셔 왔다. 옌롄커와 위화 과가 아니라 츠쯔젠에 가깝다는 말씀에 어떤 느낌일지 짐작은 조금 가지만, 뭐든 읽어봐야 알 수 있으니 가장 먼저 실린 「대추나무 지킴이」와 표제작 「흥분이란 무엇인가」부터 읽어봤다. 그런데, 책 제목이 좀... ㅋㅋ 한 장, 두 장 책장은 넘어가고 이내 미소가 지어진다.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지만, 작년 12월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석에 앉은 전직 대통령이 ‘통닭 계엄론’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고 기가 찼던 기억, 그리고 예능에 나와서 맥주는 통닭이랑 먹어야 탈이 안 난다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한 것까지 떠올라 사람 참 한결같다며 헛웃음 짓다가, 모진 삶 속에서도 균형을 알고 조화를 이루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그야말로 정말 환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이야기를 읽으니, 마음까지 산뜻해지는 것 같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장웨이 탓이다!) 시대적 혼란을 잊게 할 만큼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 느껴지는 시골 소년 네 명이 나누는 대화에는 실컷 소리 내 따라 읽다가도 마음 한편이 쓰라리기도 했지만 말이다.<br><br>인민공사 사원 모임이 시작되었을 때 다전쯔를 비롯해 그녀와 같이 어울려 다니는 처녀 몇 명은 어둑어둑한 그림자 속에서 한참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중이었다. 몇 번이나 누군가의 제지를 받고서야 겨우 잠잠해졌으나 그것도 잠시, 얼마 안 돼 또 히히 하하 웃음이 터진다. 스웨터 뜨개질을 하며 웃고, 가장자리 레이스 처리를 하면서 웃고, 땅바닥 풀주기를 비틀며 웃고... 손을 가만히 두지 않는 건 물론, 입도 쉬지 않는 그녀들이었다. ( 「대추나무 지킴이」, p. 7)<br><br>“이게 인삼하고 거의 비슷한 보약이여. 많이 먹어도 안 되고. 울 아부지 말이, 젊은이가 많이 먹으면 코피 난단다.”<br>“어메— 진짜, 향기 좋네!” 징둥이 더덕을 씹으며 말하자 장유취한도 말했다.<br>“모름지기 ‘삼(蔘)’자가 들어가는 건 다 천연 보양식이지. 해삼, 인삼, 현삼⋯⋯ 또 ‘당(黨)삼.’ 공산당원이라야 먹을 수 있는 삼.” (「흥분이란 무엇인가」, p. 184)<br><br><br><br>&lt;후리&gt; 카멜 다우드<br><br>알제리 내전 동안 일어난 참혹한 비극을 담았다는 것에서 고민 없이 바로 구매한 책이다. 기억을 금지하는 곳의 이야기를 드러내며 기억을 되살리려는 작가 카멜 다우드의 메시지가 담긴 2018년의 알제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티 없이 맑고 파란 하늘에 휘날리는 하얀 천을 담은 표지가 온몸을 바람에 맡긴 듯 자유롭게 다가오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스치는 바람에도 쓰라린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추위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처럼, 온몸이 멍에 들어버린 것처럼 아파진다.<br><br>내가 네게 말은 하고 있지만, 네가 듣는 내 목소리는 소리가 아냐. 종잇장을 넘길 때 나는 소리, 겨우 그 정도겠지. 게다가 바다를, 개들을, 한 척의 배를, 야자수들을, 아니면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 내 얼굴을 정의 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니. 정의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일 뿐이잖아. 다 안심하기 위해 필요한 거지. (p. 15)<br><br><br><br>비탄 없는 완전한 삶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 지구상에 존재할까?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저마다 다른 삶의 궤적이 때로는 새로운 하루가 저 멀리 내려오는 것처럼, 또 때로는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것처럼 먹구름에 휩싸이듯 했다. 어디에서도 토로할 수 없는 내면의 고뇌를 가진 인물의 삶 속에 내 삶을 비추는 지점들이 분명 있었다. 어떤 경계에 서서, 그 경계선 너머 무언가를 혼자 그려보는 동안 느꼈던 고독은 상황과 환경이 달라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내가 별다른 재주는 없지만 나한테 잘 맞는 재미있는 책 고르는 재주만큼은 있는지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을 느끼면서 꽤 만족스럽게 있었다. 읽었다? 아니다! 읽었다고 말하기도 뭐할 만큼의 분량만 읽어서 맥락을 잘못 짚은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하긴, 그럼 뭐 어떤가. 즐겼으면 그만이다. 일상의 고단함에 보상처럼 다급함 없이 안으로 향하는 감각에 평화로움을 느껴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았다!<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58/23/cover150/k94203440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582386</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백년보다 긴 하루 - [백년보다 긴 하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21682</link><pubDate>Wed, 14 Jan 2026 23: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216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61X&TPaperId=170216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88/5/coveroff/893290961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61X&TPaperId=170216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백년보다 긴 하루</a><br/>친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br/></td></tr></table><br/>최근에 박완서 작가님의 &lt;기나긴 하루&gt;를 읽으면서 얼마나 삶의 무게와 고민이 깊은 하루이길래 제목마저 기나긴 하루가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이번에는 백 년보다 더 긴 하루란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이 소설은 카자흐스탄의 초원에 있는 간이역에서 성실한 노동자인 ‘예지게이’가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까잔갑’의 장례를 위해 끝없이 펼쳐진 사막 위에 장례 행렬을 인도하며, 지난 삶을 회상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이 사는 광대하고 척박한 사막, 사로제끄 마을은 세계대전의 참상으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마지막 종착역처럼 머무는 곳이자, 오래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거쳐 가는 곳이라고 여겨질 만큼 고립되어 있으며,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꼭 있어야 할 나무 한 그루, 개울 한 줄기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고작 네다섯 집만 남은 곳에서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그리고 공상 과학적 성격을 띤 외계 문명과의 접촉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전통 방식에 따라 장례를 치르기 위해 낙타 등에 올라 장지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다른 한 곳에서 벌어지는 외계 행성 자원 탐사 프로젝트, 참 묘하다. 이게 조화가 맞는 거냐는 의구심을 갖게 되지만 읽다 보면 상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br><br>주고받은 말 한마디에도 좋은 감정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데, 까잔갑과 예지게이와의 관계가 그러했다. 두 사람이 함께 간이역에서 일하게 된 것은 예지게이의 딱한 사정을 알아보고 긴말도 없이 손길을 건넨 까잔갑 덕분이었다. 이제는 삶의 비극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잔갑의 충고가 그 어느 것보다 값진 것이 아닐 수 없는 예지게이는 어느 날, 전쟁 포로였던 아부딸리쁘와 그의 가족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까잔갑이 건넨 손길처럼 예지게이도 이들에게 손길을 건넨 것이다. 맘처럼 살아지는 삶이 아니다 보니 아부딸리쁘 가족에게 시련이라도 닥치면 예지게이는 그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면서 괜히 자기 때문에 외부와 동떨어진 간이역에서 불행을 겪는 것은 아닌지 속은 속대로 상하고 애만 태운다. 뜻 없이 건넨 도움에도 괜한 의구심부터 갖는 그야말로 진심이 가치를 잃었다고 말하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괴리감이 살짝 느껴졌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따뜻한 손길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히 아는데도 때론 예지게이가 오지랖이 넓은 사람처럼 보였다. 자기 집이라도 번듯하고 여유가 있는 데다가 속 썩을 일이 없어서 남의 일에 자기 일처럼 괴로워하고 속을 끓여대는 것도 아니고, 거참! 게다가 까잔갑에게 선물로 받아 기르게 된 낙타 ‘까라나르’가 겨울만 되면 발정 난 야수가 되어 제 주인도 못 알아보고 날뛰어 초원 끝으로 사라지고 암낙타에 올라타 버리기나 하는 판국이니 말이다. 언제쯤 한시름 놓는 날이 오려나 기다려지는 건 이 집 식구뿐만 아니라 다 마찬가지니 한숨이 나온다만, 내 눈에 보이는 고통과 불편도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로제끄 마을 사람들이다. 지친 낙타들이 서로 길게 뻗어 머리를 낮춘 채 서로에게 몸을 바짝 붙이고 누워 쉬듯이, 다 함께 서로의 존재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삶의 시작과 끝, 그리고 죽음이라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 속에서 마음이 평온해지기 위해 예지게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체념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그런 모습이 강인함으로 다가오면서도, 실없는 낙관으로 보이기도 해 고단함에 울음을 삼킨 웃음처럼 체념과 바람이 뒤섞인 씁쓸함으로 바라보게 된다. <br><br>이제는 그 시절을 회상하기도 어렵다. 젊은이들은 이렇게 그들을 비웃었다. “어리석은 양반들 같으니라고, 당신네들은 당신의 삶을 망친 겁니다. 그런데 뭘 위해서였죠?” 하지만 분명히 어떤 목적은 있었다. (p. 137)<br><br>가장 좋은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이라 봤자 전쟁이 끝난 뒤에 형편이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는 것 말고는 그저 서로 건강하고 너무 덥지 않으며 또 너무 춥지 않은 계절만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특별하다고 붙일 게 거의 없다. 제 식구끼리 투닥거리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아니, 그럴 시간이 어딨나! 짐승들을 신경 써서 돌봐야 하고 난롯불 시중도 들어야 하며 해가 떨어지기 전에 지쳐 일찍 자는 것이 상책이니 말이다. 그래도 누구에게나 평생을 두고 기억할 만한 것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현기증을 느낄 만큼 숨 막힐 듯한 더위에 죽을 둥 살 둥 기를 쓰고 일을 하던 기억부터, 타는 듯이 가물던 날에 보상처럼 내려지던 빗줄기에 너도나도 아이들과 모두 하나가 되어 줄기차게 쏟아지는 폭우 아래를 냅다 달리고 소리 지르며 가슴이 뿌듯해진 채, 서로의 눈빛이 오갈 때마다 그저 기쁘고 고마워했던 값진 기억처럼 말이다. <br><br>삶 속에서 느끼는 무의미함과 허무를 극복해 나가는 대안으로 연대와 다정함을 내세운 이야기가 조금은 진부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고, 방대한 이야기에서 지루함도 살짝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매력을 잃지 않는 뒷심이 있는 소설이라고 느껴졌다. 요즘 시대 에겐남은 명함도 못 내밀 저자의 섬세함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고 잔잔한 모래바람을 맞으며 한숨을 수놓는 듯한 이 섬세함은 애가 타게 만드는 거듭되는 고난을 들여다보는 독자의 마음을 한없이 지치게 두는 것조차 마음에 쓰이는지, 깜깜한 어둠을 지나 멀리서 동이 트는 경이로운 모습에 어제와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힘, 포기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었던 생각을 고쳐먹게 해주는 힘마저 불어넣어 준다. 그러나 때론, 마음에서 우러난 타인의 고마운 말 한마디조차 아무런 힘이 되지 않을 만큼 깨진 창문 같은 심정일 때가 있지 않은가. 바로 이런 마음까지 읽어내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이라도 잊지 말라는 듯 소리 없이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위로가 되어주는 인물이 등장하는 점에서, 저자의 연륜이 느껴지고 넉넉한 배려와 두루두루 살피는 섬세함을 느꼈다. 그리고 영화 속 씬스틸러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옛 전설은 독자 스스로 천천히 ‘삶의 가치’를 사유할 시간을 갖는 필요성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br><br>그렇다. 이 소설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제때 내려놓지 못하고 버려야 할 때를 놓친 고통에 빠진 예지게이의 모습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내려놓는 것을 ‘잃다’와 ‘버리다’ 그 자체만을 의식해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던 나의 과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제 주인에게서 벗어나려 엄청난 힘으로 날뛰는 낙타 까라나르가 쏟아지는 채찍질에도 멈추지 않고 눈길을 달리는 통에 개처럼 끌려가는 예지게이가 쥐고 있는 고삐 끈을 풀기 전까지는 방법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얼굴이며 배가 눈에 쓸려 얼얼한데도 놓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고삐를 놓는 예지게이의 모습에 무기력감과 공허감에 빠지게 하는 이 장면을 저자는 어떤 마음으로 써 내려갔을까. 무엇을 말해주고 싶었을까. 누구나 아픔을 덜어줄 길이 보이지 않고 살아갈 도리가 없다고 여겨지는 순간을 피할 수 없는 일과 맞닥뜨리게 되지만, 지구는 계속 돌고 기차는 운행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타락한 세상에서 움켜잡고 앞만 보며 달려가지 말고, 뒤도 한번 돌아보라는 메시지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극복이 어려운 나약한 자신을 참을성 있고 끈기 있게 묵묵히 곁을 지켜준 사람의 얼굴도 제대로 한번 들여다보라고 말이다. <br><br>사방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이 외롭고 삭막해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끝도 없이 펼쳐진 이 사막이 모든 잡념을 다 털어내도 다 받아줄 것 같은 위안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삶의 전반에서 느낄 수 있는 자극들이 모두 사라진 곳에서 잠시 생각을 비워내고 머리를 식혀보는 순간을 가지며 내 삶을 위에서 조망하듯 들여다보는 것이다. 넘을 수 없는 장애물에 가로놓여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나날들, 건너가지 말아야 할 강을 기어코 건너버려 속을 끓이고, 해결책이라고는 내 마음의 단념이면 되는 것을 그게 그 무엇보다도 어려워 혼란스럽고 괴롭기만 했던 나날들을 떠올려본다.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더한 시련이 닥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온정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밤이 지나 동이 트는 것처럼 내 마음이 환하게 떠오르기도 하는 알 수 없는 삶에 온몸이 후끈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행복감이 밀려오는 모든 순간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자연이란 그런 곳이다. 어느 것에서도 찾지 못한 해답을 말없이 안겨주고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맡겨도 언제라도 두 팔 활짝 벌려 안아주는 곳. 예지게이가 어릴 적 파도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던 그 순간과 마주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나 역시 미처 다 맡기지 못한 마음속 잔재를 어디선가 생각지도 못한 바람이 불어와 가져가 버린 그 순간을 떠올려 볼 수 있어 마음이 참 편안했다.<br><br>옛날 노래와 옛날이야기, 그리고 옛 기억. 감동을 주고 생각을 채워주는 자신에게 더 친근한 것들을 떠올리며,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에 익숙한 대로 불편함도 제각각, 좋은 것도 제각각, 생각도 제각각인 채로 공존하며 살아간다. 앞으로의 삶과 미래보다는 지나간 옛것들을 더 많이 떠올리며 삶의 경험이 준 것을 이야기하는 부모님과 이에 반해 새로운 것,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더 이야기하는 나와의 관계가 점점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을 만큼 다른 방향으로만 길을 잘못 들어 휩쓸려버린 것처럼 되어버린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에게 가치 있는 삶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의 인생살이를 들여다보는 동안 내 부모 또한 길을 잃고, 앞일조차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막막한 길을 걸어가는 길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이 망아지 같은 녀석을 어떻게 키우셨나 싶어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내가 태어났을 때 어떤 기쁨으로 나를 안아 올렸는지 기억도 못 하는 내가 어느새 훌쩍 자라 마음을 굳게 닫은 채 부모님이 애가 타는 마음으로 나를 향해 문을 두드리도록 하였는가를 후회하면서 말이다.<br><br>옛날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노래를 불렀는지. 노래란 그 하나하나가 온전한 한 페이지의 역삽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들을 상상하고 그들을 보고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할지도 모르죠. 그들처럼 고통을 받고 사랑도 하고…. 그게 바로 그들이 자기네들 스스로를 위해 남긴 일종의 기념비인 겁니다. (p. 236)]]></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88/5/cover150/893290961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880503</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amp;lt;백년보다 긴 하루&amp;gt; 중에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15141</link><pubDate>Sun, 11 Jan 2026 22: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01514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61X&TPaperId=170151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88/5/coveroff/893290961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lt;백년보다 긴 하루&gt; 중에서...<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88/5/cover150/893290961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88050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