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곰돌이님의 서재 (곰돌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03 Nov 2026 08:04:37 +0900</lastBuildDate><image><title>곰돌이</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38014177507993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곰돌이</description></image><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10월에, 책들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600337</link><pubDate>Thu, 29 Oct 2026 14: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60033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7787&TPaperId=176003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32/50/coveroff/893203778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4038&TPaperId=176003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927/49/coveroff/8932404038_3.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3856&TPaperId=176003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84/0/coveroff/s26213843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70X&TPaperId=176003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0/coveroff/s55293478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540&TPaperId=176003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77/55/coveroff/8937462540_2.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600337'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시작은 튀르키예 작가 쥴퓌 리바넬리의 &lt;세레나데&gt;였다. 독일계 미국인 노교수 막시밀리안 바그너가 59년 만에 이스탄불에 도착해 그를 수행하게 된 마야에게 긴 시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 한가운데에 스트루마호가 있다.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피해 루마니아를 떠나 팔레스타인으로 가려던 수백 명이 이 배에 올랐고, 바그너의 아내 나디아도 그 안에 있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영국은 아랍인들의 반발 등을 우려해 유대인의 이주를 제한했고, 튀르키예 정부 역시 이들의 상륙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배는 이스탄불 앞바다에서 오랫동안 발이 묶이고 만다.<br><br>배 안에서는 먹을 것이 떨어지고, 아기들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구조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그 외침은 육지에까지 닿았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배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허가를 받은 이스탄불의 유대인 단체가 스트루마호에 식료품과 약품을 날랐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는 자신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용기를 내지 않았을까. 배에서 내릴 수 있기를 얼마나 소망했을까. 또 다른 누군가는 눈앞에 육지를 두고도 내릴 수 없는 현실이 오히려 절망스럽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 마음들을 다 알 수가 없다. 바그너가 하루빨리 나디아를 만나 예쁜 집으로 데려가고만 싶었다고 했던 그 말에 콧잔등이 시큰해져 짐작만 해 볼 뿐이다.<br><br>“이 일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군요. 몇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나디아를 만나는 게 세계 정치문제가 돼버리다니.” (&lt;세레나데&gt;, p. 396)<br><br>스트루마호는 한때 다뉴브강에서 가축을 실어 나르던 낡은 배였다. 그 배가 사람들을 태우고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려 했던 것이다. 중부유럽에서 흑해까지 이어지는 다뉴브강.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길이었고, 때로는 제국의 경계가 되기도 했다. 이 강을 따라서는 또 어떤 사람들이 지나갔고,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그렇게 이탈리아 작가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lt;다뉴브&gt;를 만나게 된다. <br><br>다뉴브강은 한 줄기의 강이지만,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를 두고 오랜 논쟁이 이어져 왔다. 여러 나라를 가로지르며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품은 강이라서일까. 그 시작을 두고 여러 가설이 나왔는데, 퇴적학자 아메데오는 다뉴브강이 아무도 잠그지 않은 한 수도꼭지에서 생겨난다는 가설까지 내놓았다. 아메데오는 직접 그곳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에게 이 탐사는 단순히 강의 시작점을 확인하는 일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기 안에 갇힌 생각에서 벗어나 바깥을 바라볼 구실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언제나 답을 찾아가는 길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제자리에서 맴돌 때도 있으니까. 사실 꼭 답을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잠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거나 바깥 풍경을 보고 있다 보면, 내 안에서만 맴돌던 생각도 슬쩍 딴 데로 새곤 한다.<br><br>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마라, 라고 설교하던 때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느 정도는 틀렸다. 그랬다가는 자기 안에 갇혀 별점을 치다가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그의 두려움에서 나온 찌꺼기와도 같은 연기에 휩싸인 우상, 저녁기도에서 어서 썩 꺼지라고 명하는 이 악몽에서처럼 어둠 속에 도사린 허망한 이 우상에게 향을 피우게 된다. (p. 29)<br><br>이 책은 베네치아의 시의원 마우리치오 체코니가 제안한 &lt;여행 건축: 호텔의 역사와 유토피아&gt;라는 주제의 전시회에 함께하자는 초대장에서 시작한다. 여행의 건축학이라니. 어디 여행이라는 게 계획대로만 흘러가던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하는 게 여행인데 말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이고 삶이라는 이야기를, 마그리스는 초대장 한 장에서부터 슬쩍 꺼내 놓는 게 아닐까 싶다.<br><br>9부로 나뉜 책에서 1부만 들여다봤는데도 카프카, 괴테, 첼란, 셀린, 헤겔, 횔덜린,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등 여러 인물이 언급된다. 지금까지 읽으면서 든 생각은, 마그리스가 인물이나 역사를 하나의 이름으로 정리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어떤 면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다른 면까지 긍정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반대로 한 가지 면만으로 그 사람을 다 설명할 수도 없을 테니까. 살아온 시대와 내린 선택, 그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얽혀 있으니 말이다. 이런 모순과 간극을 여러 인물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처럼 읽히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 잠시 쉼을 얻기도 했다.<br><br>사실 우리는 고아나 다름없이 살아간다고, 횔덜린은 「다뉴브 강의 수원에서」라는 시에서 말했다. 강은 삶의 흐름처럼 햇살에 반짝이며 흘러가지만, 빛나는 그 인상은 눈이 부신 시선이 만들어낸 시각적 환상이다. (...) 강은 늙은 도인道人과 같다. 강변을 따라가며 큰 바퀴 위에서도, 바퀴살 틈새에서도 가르친다. 여행마다 여유로운 시간, 나태, 흘러가는 물결 등, 적어도 남쪽의 한 조각이 있다. 자신의 강변에 있는 고아들에게 무관심한 채, 다뉴브 강은 바다를 향해, 위대한 확신을 향해 흘러간다. (p. 23)<br><br>마그리스가 어떤 생각을 하는 작가인지 엿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나기도 한다. 뜻밖에도 오래전 한 시인과 여인의 사랑 이야기다.<br><br>4세기 로마의 시인이자 수사학자였던 아우소니우스는 368년 게르만 원정에 나선 로마군을 따라갔다. 원정에서 승리한 뒤 그는 여성 노예 한 명을 얻었고, 그녀에게 비술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쉰여덟의 아우소니우스는 비술라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었지만 비술라는 그를 따라 로마까지 왔다. 게르만인의 금발과 눈을 지녔으면서도 로마식 옷을 입고 그곳의 생활에 익숙해진 그녀. 아우소니우스는 비술라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의 출생이나 독일의 강과 숲을 부정하라고 하지 않았다.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다고 해서 이전의 자신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을까.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그리스가 서로 다른 문화의 만남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물론, 늘 조화로운 만남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다른 것들이 부딪히는 순간마다 선택해야 할 일도 생긴다. 다뉴브를 따라가는 동안 마그리스는 또 어떤 이야기들을 이어갈까. 아직 갈 길이 (매우) 멀다.<br><br>모든 민족에게는 자신의 때가 있는 법이고, 절대적으로 더 우월하다거나 열등한 문화는 없으며, 다만 민족들이 각기 다른 시기에 번영하고 쇠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여 확실하게 배우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으로 안전하다 말할 수 없을 뿐이다. 삶을 살아가고 읽는다는 것은, 모든 시기와 모든 국가에서 일어난 ‘인간의 정신사’를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강을 따라 삼각주까지 가다 보면 여러 다양한 사람과 민족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보게 될까. 아니면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이 모두에도 불구하고 하나 된 인류의 합창을 듣게 될까. (p. 43) <br><br>관심이 가는 것마다 따라가다 보면 끝이 없다. 갖가지 사유를 좇으며 그 안에 담긴 본질까지 알아내 빈약한 영혼을 살찌우겠다는 욕심도 그닥 없다. 내 발등에 떨어진 일 처리하기도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자꾸 따라가게 되는 건, 그 안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다뉴브강을 따라 중부유럽에서 발칸으로 관심이 이어졌고, 마침 발칸을 배경으로 한 영화 &lt;킹 페타르: 세계대전의 서막&gt;을 보게 됐다. 1915년 겨울, 세르비아군과 피란민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 불가리아의 협공을 피해 알바니아 산맥을 넘어 후퇴해야 했다. 눈앞에 화면을 채우는 건 눈과 추위 속에서 산길을 걷다 쓰러지는 사람들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을 보고 있자니, 그 겨울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었다. <br><br>영화 속에서 만난 세르비아의 페타르 1세 국왕은 실제로 젊은 시절 존 스튜어트 밀의 &lt;자유론&gt;을 세르비아어로 옮겼을 만큼 자유주의적 신념을 품었던 인물이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이야기하던 사람이 포화가 빗발치는 전선에서 병사에게 듣는 자유는 ‘고통받을 자유’뿐이었다. 그 앞에서 페타르 왕은 끝내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자니 발칸의 역사를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고, 책장에 꽂혀 있던 이보 안드리치의 &lt;드리나 강의 다리&gt;를 펼쳤다. 영화에서 본 전쟁은 그 땅이 겪어온 긴 세월 가운데 한 시기였다. 소설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br><br>망각은 모든 것을 치유시켜주었으며 노래는 망각의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노래 속에서 오직 사랑하는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br>그렇게 하늘과 강과 산 사이 카사바에서 대를 이어간 세대는 혼탁한 물결이 휩쓸고 간 것에 그다지 슬퍼하지 않는 태도를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삶은 끊임없이 닳고 소모되지만 그러면서도 역시 지속되고 ‘마치 드리나 위의 다리처럼’ 단단하게 서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라는 카사바의 무의식적인 철학이 그들에게 스며든 것이었다. (p. 117)<br><br>새 신발에 뒤꿈치가 콱 깨물려도 괜찮겠거니 하며 계속 걷다가, 도저히 아니다 싶어 양말을 젖혀보면 이미 많이 까져 있다. 삶에도 그런 일이 있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거나, 뒤늦게 알아채거나, 알면서도 별일 아니겠거니 여긴 것들이 어느새 덩치를 키우고 있다. 미리 뒤꿈치에 밴드라도 하나 붙여두었으면 될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제 뜻대로만 살 수 없다며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여긴 방향들을 조금씩 지우기도 하고, 실리를 좇는 기회주의자이자 몇 가지 요령만을 갖춘 겁쟁이가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은 유연해진 것이라고 위안이라도 삼아 본다.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보는, 별거 아닌 하루다. 그런데 그 뒤늦음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에 닿고 나면, 내가 뭘 안다고 그랬을까 싶어진다. 훨씬 큰 힘에 떠밀려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그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지나왔을까. 사실, ‘어떻게’랄 게 있을까 싶다.<br><br>역사라는 이름 아래 몇 줄 줄거리로 요약되기 전에, 그곳에는 각자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책이나 영화로 만난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도 많다. 익숙하고 비슷한 이야기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 안에 있던 사람에게는 처음이자 단 한 번의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책을 통해 만난 사람들, 영화 속 그 겨울에 쓰러진 사람들에게도 한 사람 몫의 하루가 분명 있었을 텐데, 그 하루들은 대부분 이름도 없이 끝났다.<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421/11/cover150/89546352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4211101</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91785</link><pubDate>Sun, 25 Oct 2026 15: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917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3821&TPaperId=175917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01/47/coveroff/s1921384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3821&TPaperId=175917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베를린 알렉산더 광장</a><br/>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권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05월<br/></td></tr></table><br/>“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그때 대답이 들려왔다. 이게 바로 형벌이야”<br><br>지금 막 4년의 형기를 마친 사내가 교도소 담장 밖으로 나왔지만, 여름 외투 하나 걸친 그는 이내 풀썩 주저앉고야 만다. 자유를 얻은 사람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주저앉는 것이라니. 왜? 무엇 때문에? 그는 지금 담장 안으로 되돌아가고만 싶다. 그러나 형을 다 마쳤으니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 속으로, 저 많은 사람들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막막함과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이 사내의 불안함을 눈치챈 어느 붉은 수염의 유대인이 다가와 던지는 한마디.<br><br>“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눈과 발이오. 세상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하고, 세상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하니까요.”<br><br>사흘이 지났다. 출소한 사내, 프란츠 비버코프는 이제 겨울 외투에 모자까지 쓰고 활력을 찾은 모습이다. 이번만큼은 진실하게 살아보겠다 맹세한다. 그러나 그가 다시 마주한 세상은 결심만으로 건너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새사람이 되어보겠다는 건 프란츠의 마음이고, 세상이 그를 대하는 방식은 별개의 문제다. 그가 어떤 죄목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는지, 그리고 나온 이후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새사람? 개코나, 인간이 어디 그리 쉽게 변한다니?’ 욕도 아까웠다. 그래서인지 앞서 붉은 수염의 유대인을 향한 프란츠의 대꾸 안에서 느껴진 삶의 의지와 자신감이 새삼 다시 떠오르면서 괜히 같은 말도 더 괘씸하게 다가왔다.<br><br>“당신은 발과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죠. 내게도 아직 눈과 발이 있어요. 아무도 그것을 뺏어 가진 않았죠.”<br><br>이 책은 베를린에서 시멘트 공장 노동자이자 가구 운반 인부였던 프란츠 비버코프에 관한 보고서다. 왜 하필 범죄자 프란츠일까? 그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아니아니, 알렉산더 광장 앞을 오가는 벌떼같이 많은 사람들 중 사소한 인물일 뿐이다. 심지어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선량한’ 프란츠라는 거.<br><br>갑자기 뜬금없는 작가의 TMI인데,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알프레트 되블린은 영화광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영화를 보듯 조각조각 난 장면을 머릿속으로 이어 붙이게 된다. 지금 읽고 있는 이야기만 쭉 이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전체의 풍경을 비롯한 여러 요소가 다소 이질적으로 끼어들 때가 있고, 화자의 말이 이어지다 말고 인물의 혼잣말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구분도 없이 섞이기도 한다. 현기증 날 정도는 아니다. 맨날 먹는 밥은 지겨워서 새로운 거 먹을 때 입이 즐겁듯, 그저 즐기면 될 뿐. 따라가다 보면 금세 리듬에 적응이 되고, 이 소설 특유의 공허함과 머리가 무거워지는 엄숙함에 서서히 감기게 된다. <br><br>마치 한 방향으로 바람이 부는 게 아니라 이쪽에서 불었다가 저쪽에서 불고, 거리의 먼지와 종잇조각이 정신없이 휘날리는 날의 느낌이다. 도시는 부산스럽고 활기찼지만, 프란츠처럼 전과를 안고 다시 살아보려는 사람에게 이 분주함은 기회인 동시에 언제든 자신을 휩쓸어갈 바람이기도 하다. 주머니에 얼마 안 되는 지폐를 만지작거려보기도 하고 외투 깃을 바짝 세워보지만 춥다, 더럽게 춥다. 마음이 추우니 더 춥다. 그렇게 1920년대 말 베를린이 한꺼번에 품고 있었을 활기와 불안을 느껴볼 수 있었다.<br><br>프란츠는 이것저것 팔기 시작한다. 넥타이핀을 팔다가 알렉산더 광장을 떠돌며 민족주의 성향의 신문까지 판다. 그러다 옛 전우, 지금은 연마공으로 일하다 직장에서 쫓겨난 게오르크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전쟁과 혁명, 공화국을 둘러싼 정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런데 프란츠가 꺼내놓는 건 전쟁의 승패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먹을 게 없어 농부의 감자를 훔쳐 먹었던 일, 고기와 버터조차 구하기 어려운 현실 같은 것들. 전쟁을 겪고 혁명까지 일어났는데, 정작 달라진 게 뭐냐는 거다. 건물은 높이 올라가고 도시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상이 변한다는 건 대체 누구의 삶이 변한다는 뜻일까? 거리에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헌법에 자유가 적혀 있어도 경찰의 곤봉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고 외치고 있다. 자유가 있다고 쓰여 있는 것과 실제로 자유롭게 사는 건 다른 문제라는 듯이. 겉으로는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되뇌는 프란츠. 세상이 무슨 색을 내걸든, 먹고사는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br><br>“어떤 친구가 갖고 있는 시가의 띠가 빨간색이든 금색이든, 아니면 흑백적이든 그것 때문에 시가 맛이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잖아. 중요한 것은 연초 그 자체야.” (p. 118)<br><br>빵 한 조각도 벌어야 내 입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 벌이조차 힘겨운 세상이니 목구멍에 술이 안 들어갈 수가 없고, 남는 거라고는 그다음 날의 숙취와 그사이 흘러간 세월뿐. 멀미 나는 배 위에서 아무 기둥이라도 얼른 껴안고 싶은 사람처럼, 불안한 세상 속에서 프란츠는 대단한 신념이 아니라 그저 움직이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해서 움직이는 사람으로 보였다.<br><br>프란츠는 평온함을 원한다. 깨끗해지길 원한다. 말끔히 치워지길 바란다. 무엇이? 자기 안팎의 나쁜 기운이나 불쾌한 감각이. 자기가 옳다고 믿는 상태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려는 사람처럼, 일부러 창문을 열고 차디찬 바깥바람을 쐬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자신과 안 좋게 엮인 인물이 자기가 사는 집에 왔을 땐, 그 사람을 향해 계속해서 찬물을 뿌리는 모습도 같은 맥락으로 보였다.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장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줄여 놓는 것. 나는 이게 프란츠가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차근차근 받아들일 여유조차 없는 사람처럼. 그런 그가 막상 자기한테 엄청난 일이 닥쳤을 때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해서만큼은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 대단한 생존 본능일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일까.<br><br>줄거리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적으려니 영 가슴팍이 갑갑하다. 이 책과 어울리는 표현은 아닌 것 같지만 요 며칠 정말 신나게 읽었다. 프란츠의 이야기 사이로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나 가축들이 도축되는 과정, 성경 속 이야기와 시의 한 구절이 불쑥 끼어든다. 그런데 이 구성이 참 묘하다. 어떤 장면에서는 프란츠가 겪는 엄청난 일들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일 중 하나처럼 보였다. 특별히 이상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일상처럼. 그런데 도살장의 풍경이나 성경 속 이야기가 끼어들면 방금까지 따라가던 프란츠의 삶이 갑자기 다른 무게를 갖게 된다. 도축대 위에 올라와 있으면서도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평온한 가축들의 모습에 인간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을까. 감옥에서 나온 뒤 새롭게 살아보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프란츠의 인생도 떠올랐다. 인간이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살아보려고 애쓴다고 해서, 어떻게든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자기 앞에 놓인 일을 다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어떤 일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 채 살아가다가,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것. 더는 희망도, 절망도, 분노도 없이 유약한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이 참담함. <br><br>목에 무거운 무게추를 매단 채 알렉산더 광장의 한복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고개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벗어날 수 없고, 내려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무게에 익숙해질 수도 없는 상태로. 각자 옳다고 믿는 게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른, 누구 하나 딱 집어 마음을 주기도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이 안쓰럽다고 편들 수도 없고, 밉다고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사정이 있다고 해서 다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까지 들여다볼 필요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br><br>모든 것은 의미를 드러낼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섬뜩한 의미를. 그 숨바꼭질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 친구야. (p. 615)]]></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01/47/cover150/s1921384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014779</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오블로모프 2 - [오블로모프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73048</link><pubDate>Thu, 15 Oct 2026 10: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730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3209&TPaperId=175730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2/coveroff/893201320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3209&TPaperId=175730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블로모프 2</a><br/>I.A.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03월<br/></td></tr></table><br/>“바로 나! 내가 누굽니까? 도대체 나란 사람이 누구란 말입니까? 자하르에게 가서 물어보세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주인님!’이라고. 맞아요. 나는 주인 나으리,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지주올시다!”<br><br>그래도 사랑의 힘이 강력하긴 한가 보다. 침대 붙박이 오블로모프를 다시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걸 보면. 이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짚고 넘어갈 사람이 있다. 오블로모프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친구 슈톨츠다. 오블로모프가 생각과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가 어려운 쪽이라면, 슈톨츠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쪽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더 나은 인간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한 사람에게는 삶을 꾸려갈 능력이 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그 능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어쨌든 슈톨츠를 통해 오블로모프는 올가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br><br>오블로모프가 아무 일도 안 해봤을 법한 만년 백수처럼 보이지만, 짧게나마 관청에서 일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하면서도 또 다른 일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도무지 버텨나갈 수가 없었는지, 서류를 잘못 보내는 실수를 한 끝에 병가를 내고 결국 사직해 버렸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상황은 아니니 이를 악물고 버틸 까닭이 없었을지도? 이런 오블로모프를 답답해하면서도 슈톨츠는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자꾸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이렇게나 다른 두 사람이 오랜 친구라는 것이 꽤 의외다. 오블로모프 때문에 천불이 끓어오르려다가도 슈톨츠가 등장하면 속이 좀 뚫리는 것 같았다. 인간 개비스콘! <br><br>올가와 오블로모프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영 편치가 않다. 올가와의 만남에서는 매번 뭔가를 해야 하고, 오블로모프는 그때마다 등 떠밀려 단추를 끼워 나가면서도 빠져나갈 구실을 찾는다. 그러다 마땅한 변명거리가 떠오르면 그 자체가 적잖이 기쁜 오블로모프다. 물론 이렇게 해서라도 관계를 이어 나가려 하는 것은 올가를 사랑하고, 그녀가 보여주는 삶의 방향은 자신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다만 그 방향을 향해 마음을 먹는 것과 실제로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오블로모프에게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거다.<br><br>사실, 올가도 오블로모프가 다시 침대 붙박이 시절로 돌아가지 않도록 애쓰며 만남을 이어가는 중이다. 매사 쉽게 쉽게 넘어가는 게 좋아 읽지도 않고 서류에 서명하는 바보 천치 같은 인간에게 어떻게든 생의 활력을 불어넣으려니 속이 타들어 갈 만도 하다. 그런데도 보고 싶고, 만나면 좋고,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행복한 모양이다. 그런데 왜인지 두 사람의 사랑은 불꽃이 언제 연기만 남기고 사라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br><br>오블로모프에게 사랑이란 뭘까. 사랑하는 마음이야 있을 테지만, 그 마음만으로 되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결혼을 생각하면 그에 딸린 온갖 일들이 따라오고, 올가의 마음에 발맞춰 자기 감정을 키워가는 일도 오블로모프에게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녀가 기쁨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며 오블로모프가 도리어 시샘을 느꼈다는 대목이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은 그 감정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어쩌면 오블로모프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던 마음마저 오래전에 잃어버린 건 아닐까. <br><br>“행복이란 얼마나 허약하고 미덥지 못한 것이란 말인가!” (p. 74)<br><br>그런데 올가와는 결이 다른 여성이 등장한다. 새로 지낼 집 문제로 찾아간 곳에서 만난 여주인, 미망인 아가피야 마트베이브나. 호사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낡고 소박한 옷차림, 순박한 두 눈에 억센 두 팔로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 어랏? 올가와 함께 있을 때의 오블로모프를 생각하면 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뭔가 자연스럽고, 편안하단 말이지! 마치 기름칠이 잘 된 톱니바퀴가 매끄럽게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온종일 일만 하느라 앉을 새도, 딴생각할 새도 없이 살아온 아가피야. 그런 그녀의 삶에 오블로모프가 등장하면서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던 집안일에도 활기가 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재채기와 사랑은 뭐라더라?<br><br>160여 년 전의 러시아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뭐,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삶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들 보이지 않는 밤을 뚫고 저마다의 방향으로 가듯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짐작만 칠 뿐이다. 곤차로프가 그려낸 여러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며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하다가,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순간에 다다르기도 했다. 지주랍시고 영지 문제를 자기 손으로 처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오블로모프는, 어떤 사람인지 깊이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도움을 청하며 이렇게 말한다.<br><br>“어린애에게 이야기한다 생각하시고 말씀을 해주시고 또 충고를 해주셨으면 합니다······”<br><br>갑갑한 마음도 더는 들지 않더라. 그 순간엔 이 사람의 인생이 그저 짠하게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연약한 ‘구석의 것’을 내보이면서까지 뭔가 해보려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가만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가진 게 없어 억하심정만 늘어나는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 귀에다 속삭이거나 글 한 줄 받아 적게 하거나, 아니면 그냥 제 이름을 서류에 적기만 해도 베개처럼 호주머니가 빵빵해지는 작자들”을 보며 욕지기가 나고, 뼈 빠지게 일해봤자 뭐 하냐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판국이다. 순한 마음을 지녔지만, 가진 것도 스스로 간수하지 못하는 오블로모프는 날강도들에게 먹잇감이 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오블로모프를 보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도 시원찮을 판에 무력하기만 하니 말이다.<br><br>온종일 드러누워 남이 가져다주는 커피나 마시고 빵이나 뜯어 먹으며, 남이 출근하는 모습이나 바라보고 사는 지주라니. 호되게 욕하면서 읽을 것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또 마냥 흘겨보지 않게 되니 환장하겠다. 오블로모프의 선함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한계까지 이해하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으려 했다. 한계에 갇혀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할 때가 있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부딪히고 실수하고 아프더라도 마음에 불을 확 지피고 멈추지만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좀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그 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지는 그의 몫이겠지만.<br><br>1권을 읽을 때만 해도, 도대체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는 인간의 이야기로 무슨 할 말이 쏟아지려나, 게다가 2권씩이나? 하는 생각에 갸우뚱했다.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지금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들의 삶을 다각도에서 들여다보게 됐다. 그중에서도 발밑이 어디에 닿을지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불안과, 매일 벌어지는 낯선 상황에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해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을 꽉 채워야만 했던 이의 심정이 꽤 가깝게 다가왔던 것 같다. <br><br>인생이란 게 참 무거운 것이구나 하는 걸 또 한 번 차갑게 들이마셔본다. 예전의 난 어쩜 그리도 안일했던지, 큰 고민도 없이 얼마나 성큼성큼 내디뎠던지. 그렇게 내 인생을 한 번 훑어보다가 2권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정작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이 되레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는 걸 느꼈다. 에잇, 보드카 한 잔이 급 땡기는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2/cover150/893201320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2230</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오블로모프1 - [오블로모프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65772</link><pubDate>Sun, 11 Oct 2026 14: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657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3195&TPaperId=175657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2/coveroff/893201319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3195&TPaperId=175657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블로모프 1</a><br/>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03월<br/></td></tr></table><br/>흰 바탕에 &lt;오블로모프&gt;라는 제목과 작가 이름 정도만 덩그러니 적힌 표지. 왠지 러시아 문학의 묵직한 이야기와 웃음기 싹 빠진 인간사가 빼곡히 적혀 있을 것만 같아 괜히 읽기 전부터 허리를 한 번 펴고 앉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자 각 잡힌 분위기가 한 번에 무너졌다.<br><br>침대. 그것도 아주 편안해 보이는 침대.<br><br>부드럽고 신축성 좋은 잠옷을 입은 삼십 대 남자가 침실이면서 서재이고 거실이기도 한 방에 누워 있다. 오블로모프다. 이 인간, 누워 있는 것이 일상이다.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그런데 생각만 한다. 방 안을 둘러보면 더 가관이다. 곳곳에 먼지는 쌓여 있고, 거미줄은 죽죽 이어져 있고, 널브러진 접시에 먹다 흘린 빵 부스러기까지... 이걸 누가 치우느냐? 오블로모프가 부르면 언제든 하인 자하르가 투덜대며 와 줄 거다. 그런데 자하르도 만만치 않다. 주인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공중제비 두 바퀴쯤은 너끈히 돌 것 같다. 집구석이 이게 뭐냐며 청소를 좀 하라고 하자 자하르는 태연하게 대꾸한다.<br><br>“치워봐야 또 쌓일 텐디유 뭐.”<br><br>아니, 그럼 안 치우겠다는 거잖아? 서로 말로 이겨 먹는 데는 도가 튼 주인과 하인, 이 둘이 붙어 있으니 집안이 멀쩡할 리가 없다. 오블로모프가 한 번 호되게 나무라면, 처지가 처지인지라 자하르는 이내 걸쭉한 사투리를 쏟아내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br><br>“가슴이 찡한 말도 재간이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겨. 심장을 칼루다 도려내는 것 같어······ 내 집, 내 채소밭, 거기서 두 발 쭉 뻗구 누워보았으면!”<br><br>한때 부유했던 오블로모프 가문은 이제 가세가 기울어 다른 귀족들 사이에서도 잊힌 처지다. 아직 지방에 영지도 있고 재산도 남아 있지만, 오블로모프는 영지를 직접 돌보는 일도, 자기 삶을 꾸려가는 일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늙은 하인들은 지난날의 기억을 귀한 보배처럼 간직하고 있다. 주인인 오블로모프 역시 그 시절의 흔적처럼 살아가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그는 여전히 침대 위에 있다. 아니, 그래서 언제 일어날 건데? 세수는 또 언제 할 거냐고! 눈앞의 거미줄이 거슬려 죽겠으면 그냥 가서 치우면 안 되는 거야? 하아, 일단 환기 좀 시키면 안 될까? 먼지가 뽀얗게 앉은 가구를 보고 있자니 내 목이 다 칼칼한 것 같다.<br><br>그. 러. 나.<br><br>오블로모프 본인은 또 별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근심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골 영지에서는 해마다 흉년이나 수입 감소 같은 좋지 않은 소식이 날아오고, 살고 있는 집까지 비워야 할 상황에 처한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을 해결하려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블로모프에게 움직인다는 것은 귀찮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절망에 가깝다. 집에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보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그들은 하나같이 주옥같은(발음 조심) 소리를 늘어놓고 갈 뿐이다. 그런데 오블로모프의 게으름보다 더 궁금한 건 따로 있다. 농노제 폐지를 앞두고 낡은 귀족 사회가 흔들리던 19세기 러시아에서, 곤차로프는 왜 하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br><br>이 책보다 수십 년 뒤에 나온 체호프의 &lt;구스베리&gt;를 최근에 읽다가, 오블로모프와 묘하게 겹쳐 보이는 인물을 만났다. 작품 속 수의사 이반 이바니치는 세상과 부딪히기보다 자신의 영지에 숨어 평생을 보내고 싶어 했던 동생 니콜라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br><br>“인간에게는 단지 3아르신의 땅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요. 하지만 3아르신은 산 사람이 아니라 시체에게나 맞는 크기잖아요. (…) 자기 영지에 숨는다는 것―그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 이기주의이고 나태함이며 덕행이 결여된 엉터리 수도생활 같은 것이죠.”<br><br>이반 이바니치의 말을 읽는데 오블로모프의 침대가 떠오르는게 아닌가.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다. 니콜라이는 바라던 영지를 얻고 그 안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 만족에 빠져 영지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오블로모프 역시 자기만의 세계에 머물며 그 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이 책은 농노제가 폐지되기 전에 나왔고, &lt;구스베리&gt;는 그 뒤에 나왔다. 시대는 다르지만, 두 인물을 보며 되묻게 되는 건 같다. 자기만의 만족에 안주하는 것만으로 우리 삶은 충분한 걸까.<br><br>오블로모프는 꿈도 자기 같은 꿈만 꾼다. 옛 시절에 머물러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하인들이 짐수레에 건초더미를 수북하게 쌓아 올리는 모습이나 보는 삶. ‘내일도 오늘만 같아라.’ 배 두들기며 지내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니 말이다. 게으름이 뚝뚝 묻어나고 복장 터지는 소리나 늘어놓는 인물이었다면 진작 진력이 났을 텐데, 흥미로운 건 그가 하는 말이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는 거다. 듣다 보면 은근히 납득도 된다. 오블로모프는 사람들이 그토록 애써 살아가는 이유부터 되묻는다. 의외인 건 정작 삶의 이유를 ‘인간’과 ‘사랑’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br><br>“인간, 제 말은 인간을 사랑하자는 겁니다······” (p. 48)<br><br>그가 영 못마땅해하는 건 사람들이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것들이다. 쓸데없는 분주함부터 허위의식, 사교적인 말들, 체면을 위한 삶까지. 남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부지런히 따라가는 게 정말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오블로모프는 이런 의문을 품을 줄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생각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자기 삶을 바꾸는 일 앞에서는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다는 거. 2권으로 넘어가면 어떨지 모르겠다만, 지금까지는 이게 오블로모프의 한계로 보인다. 곁에 뭐든 대신 해 주는 (시답잖긴 해도) 하인이 있으니.<br><br>딱 부러진 이념을 내세우는 사람도, 무언가에 푹 빠져 몰두하는 사람도 아닌 오블로모프. 유약하고 순한 데다 생각하고 느끼는 힘은 있지만, 현실의 압력을 견디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영 힘을 못 쓴다. 무사태평하게 살아온 그에게 고달픈 인생이란 먹는 것이더냐! 알 리가 만무하다. 해야 할 일을 뻔히 알면서도 자꾸 미루니 내 속이 다 답답하다. 흠, 그런데 쓰다 보니 오블로모프를 두고 품평회라도 연 것 같아 마음이 썩 편치가 않군. ㅋㅋ 나 역시 첫발을 떼지 못한 채 누가 앞에 등불이라도 확 켜주길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를 마냥 욕하지는 못하겠다. <br><br>암튼 그건 그렇고,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란 없다 했던가! 오블로모프,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br><br>(2권으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2/cover150/893201319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2231</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amp;lt;상자 속의 사나이&amp;gt;중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53447</link><pubDate>Sun, 04 Oct 2026 09: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5344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931480&TPaperId=175534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15/55/coveroff/k52293148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15/55/cover150/k5229314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1155521</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오버스토리 - [오버스토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42783</link><pubDate>Tue, 29 Sep 2026 08: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427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534949&TPaperId=175427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117/36/coveroff/s1726354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534949&TPaperId=175427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버스토리</a><br/>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02월<br/></td></tr></table><br/>“자연 속을 걸을 때마다 사람은 자신이 찾던 것 이상을 얻는다. 우주로 들어가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야생의 숲을 통하는 것이다”<br><br>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아무 연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차례로 등장한다. 나무와 함께 자라고, 나무를 연구하고, 삶의 한가운데서 나무를 만나고, 각각의 삶에 나무는 늘 가까이 있다. 줄기처럼 따로 뻗어가던 그들의 삶은 어느 순간 서로 맞닿기도 한다. 태어나고, 자라고, 가장 넓게 뻗어나가기도 하고, 베이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또 싹을 틔우기도 하는 나무의 시간을 따라가면 인간의 짧은 생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자꾸 서두르지만, 나무는 기다린다. 계절이 돌아오기를, 비가 내리기를, 시간이 자기 몫만큼 흐르기를. <br><br>병충해가 나무 깊숙이 파고들 듯, 고난도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예상도 못 한 극단적인 상황을 맞닥뜨린 가족 이야기에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싶다가도, 현실과 또 뭐가 다른지 똑 부러지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인생에 열 계단이 있다면 고작 한두 계단 올랐거나 말았을 내가, 어떠한 선택 하나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 삶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br><br>몇 해 전 그날이 잠깐 떠오르는 이야기도 있었다. 1948년 상하이의 한 부자의 이야기인데, 무역회사를 하는 후이족 무슬림 사업가 마 쇼잉은 공산세력이 곧 들어올 것을 염려해 아들에게 미국으로 떠나라고 한다. 비밀 금고에 간직해 둔 세 개의 옥반지도 아들에게 건넨다. 각각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나무가 세공된 반지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과 마 가문이 격변 속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때 아들은 그 반지와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우리 아빠도 첫 출근을 앞둔 내게 옥반지 같은 건 없었지만, 짧고 굵은 이야기 몇 마디를 건넨 적이 있다. “그놈이 가면 더 한 놈이 온다.” 지금 생각하니 좀 웃기다. 마 쇼잉이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상황과 내 첫 출근은 전혀 다른 일이었는데, 현실적인(?) 그때의 말 한마디가 왜 갑자기 생각나던지. 사람에게 남는 게 꼭 대단한 것만은 아닌가 보다.<br><br>저문다는 것. 한 사람이 평생 살아온 시간이 점점 뒤로 물러나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조금씩 줄어드는 인간의 생애를 나무의 시간과 나란히 놓으니, 시간 자체가 왠지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지금 흘러가는 시간 하나하나가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는 건 무언가를 잃고 난 뒤에서야 생기는 것 같다. 슬픔에 잠식되지 말라며 놓고 간 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간은 지나간 것을 잊게 만들고, 곁에 있던 것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나날의 연속에도 무언가는 천천히 쌓이고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본다. 봄이면 어떨까, 여름은 또 어떻고, 가을엔 좀 다를까, 금방 또 겨울이군. 계절마다 속속들이 들어차 있던 대단치도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구나 싶지만, 그건 또 그런대로 나름의 역할을 해줄 때가 있다.<br><br>이어간다는 것. 한 사람의 생이 저물어도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으로 남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삶에 닿기도 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무는? 나무는 더 긴 시간 속에서 이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한 그루가 사라져도 숲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또 무언가가 자라고 있을 테니까. 그런 나무를 베어내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한 숲에서 맞선다. 나무를 베는 데는 법도 있고 이유도 있다. 그래서 베는 사람은 할 일을 하는 것이고, 막는 사람은 법 밖에 서게 된다. 이상하다. 법이 허락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한 걸까.<br><br>무엇을 소유할 수 있고 누가 소유를 할 수 있을까? 무엇이 권리를 부여하고 왜 전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그걸 가져야 할까? (p. 351)<br><br>나무를 연구하는 박사 패트리샤 웨스터퍼드는 “나무가 서로에게 말을 한다.”고 알려준다. 나무들이 뿌리와 균류를 통해 연결되어 서로 신호를 주고받고, 필요한 물질을 나누기도 한다며 숲을 하나의 연결된 사회처럼 바라본다. 언제나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나무가 지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여자라며 조롱하듯 수군거렸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얻은 치유, 모든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나’와 ‘나무’ 사이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느낀 숲의 보살핌에, 어느 것 하나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이룬 것 같고, 또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그 개운함을 나는 과연 무엇으로부터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숲이 우거진 공간에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잎들에게서 얻는 생의 약동감을. 지나가다 보이는 들꽃 이름 하나도 알지 못하는 내가, 그 알지 못하는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주는 엄마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아, 그렇구나’라는 힘도 안 드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던, 그런 나에게도 무언가를 쥐여주는 자연의 관대함을.<br><br>나무가 그래봤자 나무일 뿐인데, 나무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지나쳐 버렸었다. 사실 예전 같으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거다. 이 또한 상실 이후에 생긴 변화 중 하나일 듯싶다. 마음에 잔물결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에 매료될 줄도, 나무에 아무 의미도 두지 않던 내가 자연에 빚을 졌다고 말하게 될 줄도, 이 책을 읽게 될 줄도 몰랐다. 베트남전에서 반얀나무 한 그루 덕에 목숨을 건진 한 남자는 그 이후, 벌거벗은 땅에 나무를 심고 숲을 지키는 사람이 된다. 뇌 손상을 입은 남편을 병간호하던 한 여성은, 삶이 강제로 느려지고 나서야 뒤뜰에 심어 둔 나무들을 남편과 함께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알면 알수록 그녀의 가슴에 놀라움 덩어리가 자리하고, 그 무렵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난다. “개간된 땅에 숲을 되돌아오게 만드는 가장 훌륭하고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무를 심으며 손을 보탰고, 누군가는 손을 거두며 자연에게 자리를 내주는 법을 배웠다.<br><br>덩굴이 벽을 한 뼘씩 타고 오르는 것처럼 책장이 더디게 넘어갈 때마다, “숲을 산책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은 특정 종이 당신을 매수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나무들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닿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이 듣기에는 너무 낮은 주파수로 말을 한다”는 단순한 말 안에 담긴 확신이 생각을 건드렸다. 앞으로 자연과 나무가 또 내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모르겠다. “개개의 나무들의 생화학적 행동은 이들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볼 때에만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는 패트리샤의 말을 떠올리며, 또다시 숲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러, 나무에게 매수당하러 가고 있지 않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117/36/cover150/s1726354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1173622</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9월에, 책들과, 커피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26589</link><pubDate>Sun, 20 Sep 2026 03: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2658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0073&TPaperId=175265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330/22/coveroff/893203007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973&TPaperId=175265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19/1/coveroff/893646497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965&TPaperId=175265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18/96/coveroff/893646496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64957&TPaperId=175265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18/96/coveroff/893646495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3821&TPaperId=175265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01/47/coveroff/s192138432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26589'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책장에 한 자리 차지하고는 있지만, 내내 읽을 기회를 놓쳐 ‘머무는 중’으로만 있던 세계문학 단편선 몇 권을 뽑아 들었다. 이 덩치들에게 숨통도 틔워줄 겸. 올해 안에 몇 권이라도 완독해 봐야지, 혼자 다짐을 실컷 하다가 이게 또 다짐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지만, 다짐씩이나 필요하다. 몇 편 읽고 덮어도 좋고, 다른 책으로 넘어갔다 돌아와도 좋고, 이 책들과 조금 느슨하게 지내볼 생각이다.<br><br><br>랭스턴 휴스 &lt;내가 연주하는 블루스 외 40편&gt;<br><br>「떳떳한 코라」에는 멜턴이라는 아담한 마을에서 40년을 살아온 코라가 나온다.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사람. 그녀를 사람들은 흑인, 검둥이라고 부른다. 스튜더반 집안의 잡부로 일하며 개처럼 취급받아도 코라는 견딘다. 나가봤자 더 가난한 백인 집에서 학대받을 게 뻔하니까. 망할 아버지는 주정뱅이에다가 딸린 자식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그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감에 코라는 아이였을 때부터 놀 시간조차 없이 지내왔다. “예, 마님.”을 입에 달고 순종하며 지내는 코라가 백인 노동자 조와 짧은 사랑을 나누고 임신하지만, 그가 떠나고 혼자 낳아 키운 아이마저 백일해에 걸려 품에서 떠나보냈을 때서야 신에게 악다구니를 해 본다. 그래서 주인마님의 딸 제시를 속으로 제 딸처럼 여기며 사랑으로 보살폈는데, 제시마저 그 집안의 위선과 거짓에 둘러싸인 채 죽게 된다. 그동안 참고, 보고, 알고 있었던 것들이 장례식장에서 더는 눌러지지 않는다. 오래도록 꾹꾹 눌러두었던 말들이 결국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br><br>“아가씨, 내가 잠깐 할 말이 있어요.”<br><br>이 단편선에 담긴 이야기들은 인종차별을 이야기하면서도 누군가를 줄곧 짓눌리는 사람으로만 두지 않고, 그렇다고 반대편 사람들을 악역으로 세우지도 않으면서도 사람을 좀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경매에 부친 소년」에서는 예술과 음악을 사랑하며 살아가던 백인 부부가 집에서 일하던 흑인 여성이 죽은 뒤, 그녀의 사촌인 흑인 소년을 집에 들이게 된다. 잘해준다. 친절하다. 그런데 그 친절 앞에 서 있으면 이상하게 한 발 물러서고 싶어진다. 선의라고 하기엔 어딘가 미심쩍고, 악의라고 하기엔 또 너무 멀쩡하다. 그래서인지 이 부부에게는 늘 이상한 이물감이 남는다. 흑인 예술에 관심이 많은 부부는 영감을 얻기라도 한 듯 아이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곡을 쓴다. 이렇게만 말하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어 보이지만, 노예를 그려보고 싶었다며 그림의 제목마저 ‘경매 부쳐진 소년’이라고 붙이질 않나, 속옷을 벗어달라고 하질 않나. 이들이 아이에게 보인 애착과 관심이 너무나 기괴하다. 여기서 만만치 않은 인물이 하녀 매티다. 다루기 힘들어졌다며 주인부부가 내보낼 생각을 하자 그녀가 받아친다.<br><br>“우리도 당신들 백인들의 멍청한 짓거리에 염증이 나던 참이에요!”<br><br>부부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만큼 맹랑한 말. 매티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말. 차별, 억압 등 익숙한 이야기를 가져와, 익숙한 사람을 만들어내지 않는 거, 당연한 스토리 안 만드는 거, 이게 매력이다.<br><br><br><br>허먼 멜빌 &lt;선원, 빌리 버드 외 6편&gt;<br><br>작년에 이 책에 실린 「꼬끼오! 혹은 고귀한 수탉 베네벤타노의 노래」를 읽다가 허먼 멜빌이 보통 입담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뒤늦게서야 알아버리고는, 선뜻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lt;모비 딕&gt;을 샀건만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일단 맨 처음에 실린 「바틀비」를 읽어봤다.<br><br>화자는 변호사다. 자신의 법률 사무소에서 문서를 베껴 쓰는 필경사 몇 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건물이며 직원이며 자기 성격까지 한참을 설명한다. 자신을 꽤 좋은 고용주라고 생각하는 이 변호사의 관찰력이 빛나는 온갖 설명과 변명을 잘만 듣고 있다가도 내심 속으로는 ‘아니 그래서 바틀비는 언제 나오는 건데’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일반적이지 않은 듯 보이면서도 그렇다고 주변에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변호사는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해석하고, 혼자 이해하고, 또 납득이 안 돼서 머리를 굴리고, 속은 속대로 타는데 겉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느라 하루 에너지를 다 쓰는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집에 가면 씻지도 못하고 쓰러져서, “으으……” 영혼 빠져나가는 앓는 소리 내면서 잠들진 않을지ㅋㅋㅋ 이 와중에 드디어!!! 바틀비가 등장한다. 조용해 뵈는 바틀비가 새로 들어와 변호사는 너무나 만족스럽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참으로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진다. 피식 대다가 의아스럽고 답답하다가 착잡해지고 씁쓸함까지 맛보게 된다.<br><br>아, 행복은 빛을 불러들이고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즐거운 곳이라고 여기는 반면, 불행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잠복해 있어서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지. 병적이고 어리석은 머리가 빚어낸 망상임이 분명한 이런 서글픈 상상은 바틀비의 기벽과 관련된 좀 더 특별한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는 뭔가 이상한 것들을 발견할 것 같은 예감에 휩싸였다. 무정한 낯선 이들 사이에서 하늘거리는 수의에 싸여 누워 있는 바틀비의 창백한 모습이 떠올랐다. (p. 35)<br><br><br><br>윌리엄 트레버 &lt;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gt;<br><br>맨 처음에 실린 「욜의 추억」은 시작부터 묘했다. 호텔 테라스에서 깜빡 잠든 미스 티처가 눈을 떠보니, 산책을 나간 친구 미스 그림쇼가 앉을 자리에 낯선 남자가 와 앉아도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미스 티처는 차마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퀼런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대뜸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미스 티처는 그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준다. 나였다면 진돗개 하나 발령과 동시에 이 사람이 계속 앉아 있으면 어쩌지, 해코지하면 어쩌지, 나중에 따라오면 어떡하지, 아마 온갖 걱정과 추측부터 하느라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못했을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내 앞에 앉아 있게 되는 이 상황 자체를 이렇게 오래 두고 보지도 않았을 거다.<br><br>처음에는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지?’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왜?’를 따지고 있을 틈조차 주지 않으니 말이다. 퀼런이 욜에서 보낸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줄수록,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이 상황을 조금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됐다. 미스 티처가 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왜 낯선 남자의 사정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는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등등, 이 모든 걸 판단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다른 한 사람이 그것을 들어준다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만큼. 이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미스 그림쇼의 등장으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여기서 흥미롭게 들여다본 것은, 미스 티처가 퀼런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은 아주 사적인 마음과 그 마음을 옆에서 너무 아무렇지 않게 끊어버리는 미스 그림쇼에게서 느끼는 미묘한 불편함이었다.<br><br>“우리는 추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br><br>윗옷 어깨에 비듬이 내려앉은 지저분한 낯선 남자의 존재만으로도 짜증이 나 있는 미스 그림쇼에게 아무렇지 않게 껄껄대며 말하는 퀼런. 마치 ‘당신이 하는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사실인지조차 알 수 없군’ 하는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가벼운 대답 정도만 해주는 미스 그림쇼. 그런데 그 ‘가벼운 판단’이 미스 티처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아직 이야기를 다 듣지도 않았는데 누군가의 아픔을 이미 자기가 아는 도식 안에 넣어버리는 모습에 실망한 것 같기도 했다. 이쪽도 저쪽도 이해는 갔다. 언제나 타인의 마음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비난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막상 내가 아끼는 사람이 타인의 아픔을 가볍게 바라보는 모습을 마주하면 어쩔 수 없이 실망하게 되는 그 감정. 희한하게도 별 감흥 없이 읽어내려 간 줄 알았는데, ‘나란 사람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충분히 흘러갈 시간을 주었던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사람의 이야기를 오래 듣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전처럼 낯선 사람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들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함께.<br><br>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을 내가 맞닥뜨릴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한 묘한 어긋남이 「탁자」에서 이어진다. 지극히 계산적인 유대인 가구 중개업자 제프스는 탁자를 사고파는 일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추측하고, 그들의 삶을 짜맞추며 거의 확신까지 한다. 상상은 자유. 게다가 돈도 안 들고. 그런데 짐작을 사실처럼 굳혀버리는 일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사는 게 바빠 남의 일에 관심도 없고 신경 쓸 필요성을 모르겠다며 무심한 얼굴로 마음속으로 중얼거릴진 몰라도, 조각조각 쪼개서 들여다보면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참 관심이 많다. 문제는 자기 안에서만 완결된 해석을 붙들고 내 짐작은 틀림이 없다고 자부하면서 그 생각을 어느 순간 사실처럼 믿어버린다는 것. 이런 심리를 드러내고 끝이 나버린다면 아, 뭐야 싶을 텐데, 제프스에게서 느껴지는 건 뜻밖에도 그의 고독과 결핍이었다.<br><br>제프스는 눈을 감은 채 마음속으로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넓은 빅토리아풍 집에 홀로 서 있는 자기 모습을 보았다. 그의 집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러 달이 흐르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구는 단 한 점도 없었다. 그는 팔고 또다시 샀다. 그는 카펫을 깔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가 온전히 제 것으로 소유한 거라고는 예전에 누군가가 아무런 가치 없는 물건이라고 일러 준, 오래된 라디오 하나밖에 없었다. (「탁자」, p. 46)<br><br>조금 더 황당하고 조금 더 긴장하며 읽게 만든 「펜트하우스」는 런던의 한 건물에서 개 한 마리와 함께 사는 중년의 독신 여성 윈턴의 이야기다. 그녀가 사는 건물의 꼭대기층에는 돈 많은 런카 부부가 살고 있다. 그 집에서 일하는 비안카가 식료품점에서 만난 윈턴에게 펜트하우스 구경을 부추기고, 윈턴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개와 함께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게 된다. 수줍음이 많아 15년을 외롭게 지낸 윈턴이 먼저 다가와준 비안카의 손길을 저버릴 수가 없었나 보다. 마침 수도를 고치러 와 있던 관리인 모건까지 합세해 칵테일을 마시는 세 사람. 그런데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던 모건이 꽃병을 깨트리고, 카펫 한가운데가 큼직하게 젖어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뭔가 이럴 줄 알았어 싶은 일이 기어코 벌어지니 속이 탄다. 어휴. 게다가 오늘은 런카 부부의 펜트하우스를 잡지에 싣기로 한 사람들이 오기로 한 날. 당황스러운 윈턴 앞에서 모건과 비안카는 깔깔대고, 모건은 윈턴이 데려온 개가 꽃병을 깨트렸다고 하자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 그 뒤로도 짜증 나고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나랑 윈턴만 쫄려 죽게 생겼다.<br><br>자신보다 한참 어린 비안카와, 관리인으로 지내며 여러 세입자의 못 볼 꼴을 다 봐온 탓에 분노와 억한 심정으로 가득한 모건. 이런 두 사람을 보며 윈턴은 나이도 훨씬 많고, “어차피 잃을 게 없는 사람”(p. 71)인 자신이 이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느끼기라도 한 건지, 온갖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한다. 곧이어 펜트하우스 주인 부부와 잡지사 사람들이 도착하고, 서로를 이해시키고 오해를 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윈턴이 이 집에 발을 들일때 부터 왜인지 그냥 제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천만 번 했던 내 속도 점점 끓어올랐다.<br><br>재미? 글쎄. 집중하느라 손톱을 잘근거리며 읽게 만드는 그런 재미는 아마 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없을지도 모른다. 아직 이 한 권도 다 읽지 않은 터라 대단히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느낌상 그렇다. 그런데 왜 자꾸만 그 한 장면, 그 잠깐 느껴진 분위기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무심히 뽑아내는 한마디와 그 순간의 감정 속에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마음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 굳이 재미를 찾지 않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주는 것 같다. 「펜트하우스」의 윈턴만 해도 내내 외롭게 지내다가 타인의 손길에 15년 만에 용기를 냈다. 처음으로 남들처럼 평범하고 소소한 즐거움에 어렵게 한 발 내딛어 본 날, 그야말로 개떡같은 일에 휘말린 거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럼 그렇지. 살던 대로 살지, 내가 무슨.’ 이런 자괴감에 다시 몸을 움츠리진 않을까. 그런데 또 누가 알아. 사람이라면 아주 진절머리가 나서 ‘아, 됐다. 나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거야!’ 할지도 모르지. <br><br>윌리엄 트레버라는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 때문인지 궁금했었다. 그의 글이. 몇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건, 이해가 필요한 여러 상황 속에서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는 거다. 인물의 말에 담긴 뉘앙스가 어느 순간 ‘아, 이거’ 하고 확 읽히면서 내가 알던 그 마음을 알아보게 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한 번씩 붙잡히기도 한다. 잔잔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다가도 어느 순간 공기를 확 제압해버리는 문장이 툭 등장한다. 그 갑작스러움에 쓸쓸했고 서글펐고, 때로는 간사했고 오만했고 외로웠던 그때의 내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불려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나의 곁이 필요한 때가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러던 중 최근에 받아든 헤르만 브로흐의 &lt;현혹&gt;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br><br>“나에게 속하지 않고 인류에게 속해 있는 무한성, 어제를 지워버리고 내일만을 인정하는 무한성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시시한 일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 일이란 이제는 인식하는 일이 아니고 살기, 함께 살기, 필요할 땐 가끔 도움을 베풀기이다. 나의 내일이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그렇게라도 해서 어제를 구원하고 싶은 모양이다” <br><br><br>8월이 가고, 9월이 왔다. 지나가고, 새로 왔다.<br>새로 온 것 중에는 책도 몇 권 있다. 그리고 커피까지. 드립백, 오랜만이다. 알라딘에서 커피를 사는 건 처음이다. 디카페인은 제외하고 싱글 오리진으로만 고르다 보니 종류가 몇 가지밖에 없어, 일단 종류별로 골라봤다. 궁금하니까. 이제 차가운 컵을 쥔 손의 시원함보다 온기를 찾게 되는,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는 계절에 다다르긴 했나 보다. <br><br>그래도 아직은 아아!<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909/70/cover150/897275725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9097016</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세레나데 - [세레나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12717</link><pubDate>Sun, 13 Sep 2026 05: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5127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047&TPaperId=175127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532/61/coveroff/893204204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047&TPaperId=175127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레나데</a><br/>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09월<br/></td></tr></table><br/>“나는 차 뒷좌석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봤다. 정말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그들 대부분은 서로 단절된 채,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삶이라는 건 다양한 목적을 좇아, 수많은 근심과 함께 흘러가는 것일 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속사정은 알지 못한다”<br><br>서른여섯 살 마야. 이혼했고 열네 살 아들을 키운다. 양육비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생활비와 학비는 혼자 감당한다. 문학을 좋아해 한때 소설을 써보려고도 했다. 먹고살아야 했고, 돌봐야 할 아들이 있었고, 일은 쉴 수 없었다. 그렇게 마야는 원해도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비행기 안에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시작에는 석 달 전 이스탄불 공항에서 만난 87세의 독일계 미국인 막시밀리안 바그너가 있었다.<br><br>어떤 얼굴은 웃고 있어도 슬픔을 숨기지 못한다. 마야가 공항에서 마주한 얼굴이 그랬다. 여행 가방과 바이올린 케이스를 나눠 든 노교수. 지치고 슬픔에 잠긴 듯한 눈빛, 그러면서도 웃고 있는 얼굴. 이전에 만나던 손님들과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마야는 금세 알아챘다.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이스탄불 대학에서 외국인 손님을 맞이하고 수행하는 계약직 공무원인 그녀에게 손님을 마중 나가는 일은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바그너가 묵을 숙소로 향하는 택시 뒤로 낯선 차 한 대가 계속 따라붙는 게 아닌가. 우연일까. 이 교수가 혹시 스파이는 아닐까. 뒤따르는 차는 정보국 차량인 걸까. 갑자기 요원들이 들이닥쳐 교수를 납치하는 것은 아닐까. 공상하기 좋아하는 마야의 머릿속에는 벌써 위험한 이야기가 한 편 펼쳐진다. <br><br>하루는 바그너의 제안으로 둘이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다. 대화는 1930~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히틀러 정권을 피해 이스탄불로 온 유대인 교수들과 그 시절 튀르키예를 둘러싼 국가 간 정보전의 역사가 바그너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그런데 그는 왜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갔고, 하필 59년 만에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온 걸까. 마야의 의구심은 커지기만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행의 정체도 드러난다. 정보기관 소속이라는 세 사람이 총장실에서 마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바그너 교수의 모든 말과 행동을 보고하라는 것. <br><br>어느 날 이른 새벽, 바그너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 시간에 대체 어디를 가려는 걸까 싶었는데 목적지는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이스탄불 북쪽 흑해 연안의 쉴레였다. 쉴레 부근에 이르러 바다가 보이자, 바그너는 차를 세우게 한다. 언덕 뒤에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바이올린 가방과 ‘나디아에게’라는 글귀가 적힌 화환을 들고 내린다. 강추위 속, 파도가 거칠게 몰아치는 흑해 해변으로 87세의 노인이 바이올린 가방과 화환을 들고 걸어간다. 언덕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야와 운전기사는 두 눈을 의심했다. 바그너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화환을 바다에 던진 그는 눈보라 속에서 아름답고 서정적인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면서도 돌아올 답은 알 수 없는 사람처럼, 그는 같은 곡을 연주하고 또 연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곡은 같은 곳에서 자꾸 막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또 그곳에서 멈춘다. 왜 하필 이 추운 날 바다까지 찾아왔는지도, 왜 바이올린을 켜는지도 아직 알지 못한다. 그저 매서운 바람과 거센 파도 속에서 어디론가 소리를 보내고 있는 바그너의 모습만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다. 바다는 계속 파도치는데, 이 노인만 그곳에 붙들려 있다.<br><br>아, 길고 긴 하루가 참으로 고단하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일에 놓인 건지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말할 수 없는 일만 잔뜩 안고 있는 마야는 온몸이 녹초가 되어 돌아온다. 피곤에 절은 머리를 뉜 베개가 눈물로 젖어버린다. 꿈속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님, 오빠, 할머니와 함께했던 평온한 날을 보낸다. 온몸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이 편안함. 깨고 싶지 않은 꿈. 그런데 마야에게는 아무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가족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르메니아인이었던 할머니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강제 이주와 학살을 피해 다른 이름과 종교로 살아야 했다. 크림반도의 튀르크계 주민 후손인 외할머니에게도 숨겨야 할 과거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으로 넘겨질 위기에 놓였고,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한 사람은 아르메니아인이라는 뿌리를 숨겼고, 또 한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숨겼다.<br><br>나치와 유대인, 독일 학자들의 망명, 튀르키예의 역사와 문학까지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도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콕콕 박히면서 책장이 쉼 없이 넘어갔다. 이상하게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아니면 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마야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 사람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들어야 할 것 같은 마음. <br><br>내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거대한 역사나 이스탄불의 풍경이 아니었다. 그저 아침에 눈을 뜨면 버스에 몸을 싣고 지랄맞은 직장으로 향해야 하는 사람. 사이가 좋지 않은 아들과의 거리를 좁힐 기회만 엿보며 나름 무진 애를 쓰고, 이 녀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는 엄마이면서도, 시간이 조금 남으면 괜히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하고, 삶의 의무에서 잠시 벗어나면 뭔가 더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 대단히 평온할 것도 없는 하루를 살아가는 마야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서인지, 이 소설이 꽤 가까이 느껴졌다. 솔직하고 불평도 많지만 그런 마야가 나는 좋았다. 어쩌다 생기를 보이면 내 가족일처럼 반갑기까지 했다.<br><br>마야는 힘들 때면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바그너를 만나면서 기억은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아니라, 과거를 찾아가는 일이 되었다. 가족에게 묻혀 있던 이야기에서 튀르키예의 역사까지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결국 쓰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가 생겼다. 무엇이 그녀를 다시 쓰게 만들었을까. 곧 마야가 탄 비행기는 보스턴에 착륙한다. 그 전에 글을 마무리할 생각이다.<br><br>“나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내가 어떤 주제에 관해서 쓰고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튀르키예로 망명 온 독일 교수에 대해서 쓰고 있다고 답했다. 그녀는 놀란 듯 그런 사실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라고 했다” (p. 215)]]></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532/61/cover150/89320420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5326101</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프랑스어의 실종 - [프랑스어의 실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474525</link><pubDate>Thu, 27 Aug 2026 08: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4745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4771&TPaperId=174745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189/20/coveroff/893240477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4771&TPaperId=174745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프랑스어의 실종</a><br/>아시아 제바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br/></td></tr></table><br/>어떤 감정을 전달받기도 전에 그 감정을 느끼기를 요구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글을 만날 때가 있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보통의 날, 유난히 감정이 잘 다루어지지 않는 날에 아직 정리되지도 못한 감정들이 톡 하고 튀어나온 글이라면 오히려 더 좋다. 아는 척하고 싶다는 유혹을 참을만큼. 이상하게 그 마음에는 내가 끼어들어도 될 것만 같다. 그런데 소설에서만큼은 조금 다르다. 뭘 느껴야 하는지 알아채는 식으로 읽게 만드는, 어떤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 감정에 먼저 도달해버린 듯한 문장을 만나면 김이 좀 샌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 읽은 아시아 제바르의 글에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그냥 인물이 그 상황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견디는지를 따라가게 할 뿐이었다. 무언가를 더 느끼라고 재촉하지 않으니 나도 내 속도대로, 내가 느낀 감정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br><br>그동안 내가 글로 접한, 식민 지배를 겪은 인물들은 대체로 지배자의 언어로 자기 감정을 말해야 할 때, 분명 자기 감정인데 자기 말이 아닌 듯한 순간,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그 순간부터 감정조차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어지는 비참함을 들여다보도록 했다. 그래서 &lt;프랑스어의 실종&gt;이라는 제목에 갸우뚱했다. 알제리 작가가 쓴, 알제리 남자의 이야기인데? 사라진 건 프랑스어가 아니라 아랍어 쪽 아닌가. 모국어도 아닌 프랑스어를 배우고 글을 써야 했던 사람에게, 그 프랑스어마저 사라졌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라도 있었던 걸까.<br><br>20년 전 알제리를 떠난 베르칸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프랑스에서 일하며 한 여자를 만났고, 서로 사랑했고, 결국 이별을 통보받았다. 글을 쓰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글쓰기에서도 멀어졌고 자신의 성장소설을 쓰겠다던 계획도 몇 년 전 접은 상태다. 자신의 기억과는 사뭇 달라진 고국에서 베르칸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고, 자신의 이야기도 조금씩 꺼내놓는다. 그런데 이 소설의 시점 변화가 참 독특하다. 베르칸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도 어느 순간 제3자의 시선으로 넘어간다. 알제리에 와서 친해진 어부 라시드와 대화를 나누다가 현재에서 자연스럽게 과거로 흘러가기도 한다.<br><br>“난 여섯 살이었네.” 베르칸이 다시 말을 잇는다. “프랑스 학교 2학년이었지. 그날의 카스바 거리에서 나는 우리 국기를 보았다네, 처음으로 말이야!” (p. 43)<br><br>“우리는 누구나 학창시절의 추억을 갖고 있지…. 그런데 그 시절에 대한 내 추억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날 밤의 꿈에서 벗어난다) 프랑스 선생에게 짝 소리가 날 정도로 뺨을 맞은 거라네!” (p. 44)<br><br>아버지는 독립전쟁이 발발하고 알제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다. 하나뿐인 형도, 베르칸 자신도. 그런 기억을 품고 있는 베르칸은, 이제 알제리 사람들의 눈에 그저 돈 많은 외국인으로 보일 뿐이다. 어느 정도 갖춰진 생활을 했던 프랑스에서의 삶을 접고 돌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무언가를 써야만 했던 것 같다. 그는 글이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br><br>어느 날, 방문객으로 찾아온 한 아랍 여성을 알게 된다. 모든 걸 다 잊기 위해 떠났었지만 다시 돌아왔다는 나지아. 첫 만남이라는 낯선 분위기 속에서도 서로의 시간을 빼앗으려 할 생각은 없지만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또 듣고 싶어 하는 그 드러내지 않는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서 너무나 조심스럽게 새어 나왔다. 시간은 소리도 없이 흐르는 듯했고, 나지아는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 안에는 알제리의 복잡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독립운동에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민족해방전선에 의해 암살된 할아버지와 그 뒤에 남겨진 가족들의 삶까지. 베르칸과 나지아가 떠올린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독립전쟁과 죽음, 그리고 알제리 국기를 그렸다는 이유로 맞았던 한쪽 뺨이었다.<br><br>동류를 향한 끌림이라고 해야 할지 두 사람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베르칸이 나지아에게 마음을 여는 데에는 언어가 분명 한몫했을 것이다. 헤어진 프랑스인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프랑스어로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 했다면, 나지아에게는 굳이 애써 번역하지 않아도 됐다. 자신의 감정을 다른 언어로 옮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나지아가 들려주는, 이제는 잊어버려 정확한 뜻조차 알 수 없는 사투리와 희귀한 단어들. 가깝고도 어딘가 멀게 느껴지는 그 말들을 듣는 일이 베르칸에게는 묘한 편안함이었을 것이다. 말을 고르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 앞에 있다는 것. 말과 몸과 생각 사이에 번역이 필요 없는 순간. 애쓰지 않아도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 베르칸이 나지아에게서 느낀 편안함이란 어떤 경계도 의식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그 순간에 빠져도 된다는 것이 아니었을지.<br><br>알제리 독립전쟁을 거쳐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맞은 1960년대와 1990년대 초의 알제리를 오가며, 베르칸의 삶과 기억을 따라간다. 베르칸이 자신의 성장소설 &lt;청소년&gt;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열다섯 살 소년으로 돌아가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1960년 12월 11일 알제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중시위를 묘사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잔인한 장면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어린 베르칸이 그 나이에 느꼈을 민족주의적 열망과 흥분을 고스란히 따라가게 한다. 맨몸으로 뛰쳐나온, 아직 사춘기도 벗어나지 못한 아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것에서 뿜어져 나온 액체에 눈이 젖어 붉어지고,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무질서 속에서 손도끼 하나를 얻어 들고, 자신보다 더 앞에 서 있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베르칸. 그리고 그들은 암담한 열광 속에서 외친다.<br><br>“알제리인의 알제리!” (p. 179)<br><br>베르칸이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식자공으로 일하다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혔던 이야기를 나지아에게 들려주는 장면은, 프랑스어가 그에게 무엇이었는지가 처음으로 보였다. 당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정치적인 이야기를 좀처럼 꺼내지 않았는데, 어느 날 한 신참이 토론을 시작하며 프랑스어로 ‘라익(laïc)’이라는 단어를 내뱉는다. ‘세속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세속적, 합의, 대표자 회의, 내각처럼 독립 이후의 사회를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들이 그들에게는 낯설었다. 가장 어린 축에 속했던 베르칸은 그때 독립만을 꿈꾸고 있던 자신들에게 정작 독립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고 논의할 언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베르칸에게 프랑스어는 단순히 모국어의 자리를 대신한 고통의 언어라기보다는, 자신을 지배한 세계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그 세계를 넘어가기 위해 익혀야 했던 언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프랑스어를 붙들었던 건가.<br><br>어찌할 수 없는 일에 마음을 쏟아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일찍 알았던 것처럼, 어린 시절 고문을 당하는 그 순간에도 상대에 대해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있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견디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었을 만큼 베르칸이라는 인물은, 자신이 겪은 일을 감정적으로 폭발시키기보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언어로 다시 정리한다. 거기에서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밀어내지 않고 말없는 소통으로 서로를 끌어당겼던 베르칸과 나지아의 첫 만남처럼 말이다.<br><br>나의 카스바, 나는 그곳으로 돌아간다. 나는 다시 살기 위해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선 내 가슴이 뛴다. 나는 그곳에서 잠들고 싶고, 언제나 안에서 회상하고 싶고, 언제나 바깥에서 달리고 싶다. 그래,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 그렇듯이 그날도 비록 내가 다른 곳에 있을지라도 나는 이곳에 있는 것이다…. (p. 75)]]></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189/20/cover150/893240477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1892036</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8월에, 책들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466458</link><pubDate>Sun, 23 Aug 2026 07: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46645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90996&TPaperId=174664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312/97/coveroff/893499099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7517&TPaperId=174664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565/84/coveroff/895467751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0799&TPaperId=174664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974/49/coveroff/893232079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0780&TPaperId=174664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790/59/coveroff/893232078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70588&TPaperId=174664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5440/54/coveroff/8935670588_2.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466458'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주문한 책이 도착해 박스를 열어 볼 때마다 어찌나 후끈한 열기를 가득 품고 있던지, 거의 구해내듯 책을 꺼낸 것 같다. 한동안 책 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 책장에 새 책들을 옮겨 보지만, 그 생각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어느새 아침으로는 습하지만 조금은 선선해졌고, 또 이때쯤이면 눈길이 가는 이야기가 생긴다. 리처드 파워스의 &lt;오버스토리&gt;라는 책을 만났다.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는 시대’에 대한 경고를 담은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환경 서사시라는 소개가 눈에 들어왔다. 2019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적힌 띠지를 떼어내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는데, 예상한 것보다 더 좋았다. 단순히 ‘좋다’라고 말하는 것이 영 마음에 안 차지만, 이 두툼한 책을 읽는 동안 내게 무언가 닿는 순간이 많을 것 같다는 섣부른 확신 같은 게 들었다. <br><br>자연을 의식하며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 나무는 늘 나무였고, 산은 늘 산이었다. 계절은 알아서 바뀌었고, 나는 그 곁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늘 거기에 있었다. 당연했다. 아니, 당연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결락이라는 말이 내 삶에 들어왔고, 아무것에도 위안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지려 마음을 쓰지 않았으니 애쓸 일도 없고, 애태우지도 않았다. 내가 너무 구름 위를 걷는 듯 살아왔던 걸까. 상실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경계 너머의 것이었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는 기억에서도 지워졌지만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는 것만은 분명한 그날, 걷다가 저 멀리 보이는 울창한 산을 바라봤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거짓말이다.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보이는 그 산은, 보기만 해도 속이 답답했다.<br><br>그렇게 걸었고 또 걸었다.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그제야 안다.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아 잊고 있었던 것들을. 냄새도 맡아보고, 소리도 들어보고, 방향도 바꿔보라고. 자연은 내다볼 줄 안다. 그러니 나는 자연에 빚을 졌다. 자연만이 아니다. 책에도 빚을 졌다. 지금은 꼭 이유가 있어야 책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읽다 보면 읽고 싶어지고, 읽고 싶으면 또 펼친다. 그 사이 어딘가에 의리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 이제 아주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지나간 순간의 숨을 다시 쉬는 날이 있긴 하지만, 예전처럼 오래 붙들고 있진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된 나에게, 그때의 나와 내가 해보았던 여러 시도를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이.<br><br><br>리처드 파워스 &lt;오버스토리&gt;<br><br>오버스토리. 숲의 지붕을 이루는 나무들의 층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뿌리, 몸통, 수관, 종자’로 이어지는 목차를 보니, 나무 한 그루를 들여다보듯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 소설인 걸까. 전후 사정도 알지 못하면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있었다”라는 이 짧은 첫머리를 읽고, 어디라고 정확히 짚을 수 없는 곳에서부터 찌르르해지면서 나의 묵힌 감정들이 올라왔다. 자연에 기대어 본 적이 있기에 조금 더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왔는가 보다. 그때의 나는 분명 이 책을 읽을 생각조차 안 했을 테지만, 지금은 읽고 있다.<br><br>어떤 여자가 바닥에 앉아 소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다. 나무껍질이 여자의 등을 인생처럼 딱딱하게 누른다. 솔잎은 허공에 향기를 뿌리고 나무 한가운데에서 전해지는 힘이 나직한 노래를 부른다. 여자의 귀가 가장 낮은 주파수에 집중한다. 나무는 말이 존재하기 전의 말로 이야기를 한다. (p. 13)<br><br>뒤이어 “신호가 여자의 주위로 씨앗처럼 떨어진다”는 문장에 시선이 한동안 머물렀고, 당장에 눈에 띄는 것은 없었지만 천천히 비집고 나오고 있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며, 아주 조금은 가상히 여겨보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책 속의 죽음을 읽으며 누군가를 잃었던 때를 떠올렸다. 글쎄, 그 마음을 온전히 담아낼 만한 말은 잘 모르겠다. 그저 어쩌지 못하겠는 마음을 책을 통해 다시 마주하니 조금 힘들었다. &lt;모든 저녁이 저물 때&gt;라는 책 때문이다.<br><br><br>예니 에르펜베크 &lt;모든 저녁이 저물 때&gt;<br><br>갈리시아의 한 작은 도시, 유대교 여성과 기독교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여덟 달 된 아기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에 속하는 일 앞에서 아기 엄마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에 장례를 마치고 아직 슬픔에 잠겨 있는 유가족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곤 했던 그녀의 발치에는, 이제 한 친구가 가져다 놓은 음식 그릇이 놓여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할머니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더 이상 할머니가 아니다. 다시 딸의 엄마일 뿐이다. 이야기는 어머니가 오래전 겪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br><br>딸이 이제 조만간 깨닫게 될 사실을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이 죽은 하루가 저문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이 저무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p. 24)<br><br>그런데 작가가 이야기를 참 묘하게 끌고 간다. 한 장면을 한 방향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아주 작은 틈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른 결로 옮겨간다. 풀어가는 방식 자체가 꽤 마음을 잡아끌고 매력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마음이 슬픈데, 아름답다. 너무 알겠는데, 어디서 읽어본 적은 없다. 이러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br><br><br>그리고,<br><br><br>시몬 드 보부아르 &lt;레 망다랭&gt;<br><br>디디에 에리봉의 &lt;랭스로 돌아가다&gt;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들과 동성애자로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내가 파리에 정착하게 만든 두 가지 큰 이유였던 것 같다”는 부분을 읽고 밑줄까지 그어 가며 궁금해했다. 보부아르를. 누군가의 글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과, 그 글이 실제로 삶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 아닌가. 출신 계급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처럼, 성적 지향은 평생 감춰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았을 그가 보부아르를 읽고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이 자신의 삶을 전부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의 그 표정이, 짧은 문장 안에서도 다 들여다보이는 것만 같았다.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게 된 자의 해방감이. 나도 보부아르를 펼쳤다. 여러 책 중에서도 &lt;레 망다랭&gt;을.<br><br>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앙리는 ‘희망’이라는 뜻의 신문사 &lt;레스푸아&gt;를 운영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 앙리와 그의 동거녀이자 전직 가수인 폴이 사는 원룸에 작가 뒤브뢰유와 그의 아내 안, 딸 나딘을 비롯한 사람들이 모인다. 전쟁이 끝나가는 시기,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술과 음식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뒤브뢰유는 앙리에게 자신의 정치적 활동에 함께할 것을 권한다. 신문사를 계속 운영하는 한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앙리도 잘 알지만,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 한다.<br><br>늘 똑같은 얼굴들, 똑같은 환경, 똑같은 대화, 똑같은 문제들, 변하면 변할수록 더욱 비슷해지다니. 결국 살아 있는 채로 죽어가는가 싶은 것이다. (p. 22)<br><br>“나는 생각하는 것을 반드시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해. 조직에 매이지 않은 채 말이야.” (p. 36)<br><br>서로 다른 생각으로 충돌하고, 사랑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초반부만 읽어서 다 짐작할 순 없지만, 정치와 이념을 둘러싼 이야기라 읽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릴 줄 알았는데, 결국은 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생각보다 흥미롭게 읽히고 가독성도 괜찮다.<br><br><br>디노 부차티 &lt;타타르인의 사막&gt;<br><br>처음 만나는 이탈리아 작가 디노 부차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는 작가라는데, 몇 쪽을 읽는 동안 가장 크게 느낀 건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담담한데, 어딘가 착잡한 기운이 감돈다는 것.<br><br>힘들었던 기숙사 생활을 끝내고 장교가 된 조반니 드로고는 첫 부임지인 바스티아니 요새로 떠난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나 활기가 느껴진다기보다는 미래에 큰 기대도 없어 보이고, 심지어 헛헛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길을 나선 그는 어디에 있는지도, 얼마나 먼지도 모르는 요새를 찾아 계속 산을 오른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마부에게 요새의 위치를 묻자, 뜻밖의 답이 돌아온다.<br><br>“이 부근에는 요새가 없어요.”<br><br>불안감이 밀려오지만, 그가 잘못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그렇게 한참 더 올라 마침내 거대한 군사시설과 마주한다. 황량하고 냉랭한 건축물. 이번에는 정말 요새인가 싶었는데, 또 아니다. 걸인으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며 이곳은 이미 십 년도 넘게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곳이라고 한다. 거센 바람까지 불어닥친다. 잠잠해지고 난 뒤 다시 길을 나서고, 마침내 사람이 눈에 보인다. 오르티츠라는 이름의 대위였다. 인사를 나누던 중, 대위가 드로고에게 묻는다.<br><br>“당신은 누굽니까?”<br><br>드로고는 두려움을 느낀다. 아무 뜻 없이 던진 평범한 질문이었을 텐데, 왜 이 말이 드로고에게는 대답하기 두려운 질문이었을까.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라도 온갖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와 쉽게 입을 떼기 어려웠을 것 같다. 드로고에게도 그랬던 건 아닐까. 이어 대위에게서 또 한 번 예상 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드로고의 목적지인 바스티아니 요새는 더 이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곳이라는 것.<br><br>저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이 거주하기 힘들어 보이는 저 건물과 흉벽, 포대와 탄약고 뒤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아무도 지나쳐간 적 없다는 돌투성이 사막의 북쪽 왕국은 어떠할까? 어렴풋이 기억하건대, 지도에서 국경선 너머 광활한 지역에는 몇 안 되는 지명이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요새의 높이 정도라면 몇몇 마을이나 초원, 하다못해 집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아니면 오직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의 황량함뿐일까? (...) 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요새 입구에 발조차 내딛지 않고 다시 그가 떠나온 평야로, 그의 도시로, 익숙한 옛 생활로 내려갈 수만 있다면! (p. 21)<br><br><br>버나딘 에바리스토 &lt;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gt;<br><br>흑인 여성 최초로 부커상을 받은 작가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작품이다. 열아홉 살 딸을 둔 오십 대 여성, 자칭 전투력 넘치는 중년의 베테랑 ‘앰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런데 앰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구 도미니크에게로 시선이 옮겨가고, 또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의 가족과 친구, 과거의 시간까지 닿는다. 한 사람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을 둘러싼 다른 삶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열두 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삶의 모양들을 하나씩 만나게 될 것 같다.<br><br>한 사람을 내가 본 모습 하나, 그 단면으로만 기억하는 건 어쩐지 아쉽다. 지나고 나서야 후회로 남는 순간들이 있어서일거다. 누구나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의 시간이 있고, 누구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하니까. 그런데 참 웃긴 것이, 소설 속 인물을 바라볼 때는 내가 알지 못하는 모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깊이 들여다보려고 하면서, 현실에서는 영 그러질 못한다.<br><br><br>아무튼, 오늘도 이렇게.<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117/36/cover150/s1726354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1173622</link></image></item><item><author>곰돌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죔레는 거기에 - [죔레는 거기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445261</link><pubDate>Tue, 11 Aug 2026 21: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8014177/174452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032812&TPaperId=174452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55/98/coveroff/k58203281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032812&TPaperId=174452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죔레는 거기에</a><br/>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김보국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02월<br/></td></tr></table><br/>긴 호흡과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도입부에 확 빨려 들어가 100쪽을 쭈욱 읽어버리게 만든 &lt;사탄탱고&gt;의 매력에 빠졌던 작년의 그 짜릿함을 기억한다. 황폐한 마을, 곰팡내 가득한 방,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던 그 음울함이 아직도 잔재처럼 머릿속에 콱 박혀 있는데, &lt;죔레는 거기에&gt;를 펼치자 웬걸, 점심으로 먹을 감자국수를 만드는 한 노인이 나온다. 예상 밖이다. 뭔가 소박하고 인간미도 느껴지고, 첫인상부터 내가 알던 작가의 느낌과는 꽤 다르다. 그런데 또 가만히 읽고 있으면 이 편안함 속에 놓치기 힘든 미세한 긴장감이 있다. 대체 이 노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역사와 맞물려 돌아가는 이야기도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그렇게 몰입해서 읽다 보니 결국 이러나저러나 역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이 맞긴 하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br><br>마을과도 거리가 멀어 사람도 거의 살지 않는 산 위의 집에서 살아가는 올해 아흔두 살의 은퇴한 전기 기술자 요제프(요지 아저씨)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전기 기술자와 유랑 가수, 전직 교사, 퇴역 군인 등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집을 찾아오기 시작한다. 더 이상한 건 모두가 그를 “폐하”라고 부른다. 요제프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살아온 왕위 계승자라는 것이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집을 찾아온 사람들은 그를 헝가리 국가의 기틀을 세운 중세 마자르계 왕조, 아르파드 왕가의 마지막 후손으로 여기며 왕으로 추대해 왕정복고를 이루려고 한다. 물론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온 사람도 있고, 정치적 계산을 하는 이들에게는 그가 더없이 좋은 상징이기도 하다. 영 느낌이 싸하다. 어쨌든 숱한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요제프는 왕좌에 오르는 일에 별다른 집착을 보이지 않는다. 정작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랑했던 사람들, 가족, 그리고 한 인간으로 살아온 긴 세월에 관한 기억들이다. 무엇을 잃었고, 누구를 사랑했으며, 무엇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지.<br><br>처음에는 요제프가 비밀을 간직한 채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은둔자 같은 노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국회와 대주교, 유럽연합 관계자, 독일 대통령에게까지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논리를 끊임없이 세상에 던졌다. 자신을 왕위에 올리든지, 아니면 그에 걸맞은 존엄을 인정해 연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답장을 기다린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답은 오지 않는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쩌면 요제프 역시 그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br><br>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헝가리. 요제프는 독일 병사들의 무덤 6천 기를 찾아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 훈장에는 당시 헝가리가 겪어야 했던 복잡한 역사도 함께 담겨 있다. 그런데 왕위 계승자이자 전쟁 영웅이었던 노인의 현실은 영 빠듯하다. 가진 돈의 거의 전부를 전기료로 쓰면서도 그는 “더 이상은 불을 때지 않겠다”며 전기난로를 사용한다. 전기료가 그렇게 부담스러우면서도 왜 굳이 전기난로를 고집하는 걸까. 그건 그렇고 잔뜩 모여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곁들인 와인 탓인지, 세월이 무거워진 탓인지 이내 잠에 들어버린 요지 아저씨. 거대한 역사와 한 사람의 초라한 일상이 한 몸 안에서 겹쳐 보이는 모습에 착잡함을 느끼며 눈길을 거두기 어려운데, 역사학자 버디지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요제프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한 말을 꺼낸다.<br><br>“우리에게는 아르파드 왕가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이 좋은 서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왕이 필요하고, 당신은 바로 그 자리에 딱 맞습니다.” (p. 68)<br><br>여기서 ‘좋은 서사’라는 말이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요지 아저씨에게 지금 왕좌에 오르는 일보다 더, 더,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서로 등을 돌리게 된 가족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다. 해 질 녘 테라스에 앉아 늦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는 평온한 일상. 그 아름다운 풍경 너머로, 늘 목에 큰 가시가 박힌 듯한 심정으로 살아온 건 아닐까. 눈앞의 풍경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누리기에는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았을 것만 같다.<br><br>더 이상의 전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여러 소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저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움직이듯 세상과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는,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기준이 분명한 요지 아저씨의 시선과 말을 따라가면 될 뿐이다. 사뭇 진지함이 오가는 상황에 심각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읽다가 난데없이 입에서 어이없는 실소가 터지게 만들기도 하는 이야기에 웃어? 울어? 말어? 싶은 순간들. 최대한 웃음 포인트를 살리고자 했다는 번역가의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졌고, 즐기기만 하면 됐다. 에구, 이렇게만 말하고 끝내는 것이 아쉬워, 기억에 남는 이야기 조금만 더 담고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br><br>요지 아저씨가 오늘날의 삶에서 사라진 도덕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br><br>“정직해지시오, 용감해지시오, 인내하시오, 그의 목소리는 울려 퍼졌다, (...) 이러한 고귀한 원칙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도우시오, 이것이 단순한 이성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바이며, 이것만 따르면 충분하고, 다른 어떤 지침도 필요하지 않소.” (p. 161)<br><br>요지 아저씨가 말하는 삶의 원칙은 거창한 교리나 신념이 아니라, 의외로 단순했다. 정직할 것, 용감할 것, 인내할 것. 그런데 이게 참 별것 아닌 말 같으면서도 쉽지가 않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기, 두려워도 해야 할 말을 하기, 금방 달라지는 게 없어도 조금 더 견디기. 다 아는 이야기인데 막상 내 일이 되면 또 달라진다. 무엇이 옳은지는 알고 있는데, 매번 그쪽을 선택하며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저 상황이 조금은 나아지는 쪽으로 기울여 보는 거다, 오늘도.<br><br>사람이 평생을 살아도 그 인생 안에 도저히 들어맞지 않는 일이 항상 하나쯤은 있어요, (p. 274)<br><br><br>이 책의 번역가 김보국 님은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br><br>“&lt;죔레는 거기에&gt;의 경우 외국어로는 처음으로 한국어로 번역한다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선뜻 번역 의뢰를 받고는 덥석 번역을 맡겠다고는 하였으나, 헝가리 내에서 작품 관련 논의를 살펴보던 중, &lt;사탄 탱고&gt; 이후 점점 더 난해해지는 크러스너호르커이 작품의 정점이라는 어느 독자의 댓글을 읽고, ‘큰 나무에 도끼가 제대로 물렸다’라는 헝가리 속담이 떠올랐다.”<br><br>번역가에게는 처음으로 이 작품을 한국어로 옮기는 호사였다면, 독자인 나에게는 그 번역을 통해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한 여름날의 즐거움이었다. 헝가리를 사랑하는 번역가가 헝가리를 사랑하는 요지 아저씨의 마음을 헤아리고, 헝가리를 사랑하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글을 우리에게 전해준 것 같은 느낌. 헝가리를 향한 마음이 한 사람에서 또 한 사람을 거쳐 내게까지 건너온 것 같다. 작가의 또 다른 매력, 아름답기까지 한 문장을 만날 수 있었고, 요지 아저씨와 그의 심장, 죔레까지 한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55/98/cover150/k58203281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55988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