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집이 있던 마을 - 신정판
권정생 지음, 홍성담 그림 / 분도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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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선생님이 사시던 곳으로 문학기행을 떠나기로 결정된 뒤, 그가 살던 마을 주변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 '초가집이 있던 마을'을 읽었다. 해설 해 주시기로 한 선생님께서 이 책을 읽고오면 권정생선생님의 삶과 작품의 배경이 이해가 잘 될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작품을 대부분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 제목은 생소했다.

 

내가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 중 제일 좋아하는 것은 강아지똥이다.  그림책 '강아지똥'을 읽었을 때  처음 느꼈던 충격이 참 컸다. 아무데도 쓸모없다는 개똥조차 민들레의 거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그의 생각이 참 눈물나게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강아지똥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을 보았을 땐, 몇번을 보았지만 볼 때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꼭 기억하고 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가슴에 새겨졌다. 나는 가장 밑바닥에서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이유를 얘기하는 권정생선생님이 참 좋았다. 그의 글과 그의 삶이 일치하여 얘기하는 것도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권정생 선생님은 비록 돌아가셨지만 그의 삶과 생각이 담긴 책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니 난 기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이 책은 권정생선생님의 사시던 집 근처 안동시 탑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안동에 오래 사셔서 안동사투리가 많은 이 책은 어쩌면 경상도가 아닌 지역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동에 산지 어언 7년. 그동안 안동사투리가 늘었는지 난 문제없이 술술 넘어갔는데 말이다. 책의 곳곳에 괄호를 통해 그 단어의 의미를 표준어로 표시해 둔 것만 봐도 사투리가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투리가 좀 많다고 느껴지긴 하지만 이 책은 권정생 선생님의 전쟁에 관한 생각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또한 들었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은 6.25를 겪은 산골 초등학교 아이들의 이야기다. 갑자기 발생한 전쟁으로 인해 가족도 잃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잃어버리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았다. 유준이 유종이 형제, 인민군이 후퇴할 때 함께 동행한 아버지로 인해 국군과 인민군 사이에서 사상 갈등은 겪는 복식,  문식네, 아버지 어머니와 생이별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종갑이네,  피난길에 혼인한 후 유복자를 낳아 기르는 누나와 함께 사는 금동이네. 이들은 모두 한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전쟁이 난 후 아이들은 은근히 피난을 떠나고 싶어한다. 재미있겠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말이다. 아직 철이 없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인 것이다.  어찌하였든 이웃사촌으로 지내는 이들은 함께 전쟁을 떠나게 되었고 힘든 피난길에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던 중 금아의 결혼식을 치루기도 하지만 새신랑을 전쟁터로 보내고 유복자를 낳게 되거나, 종갑네 식구를 모두 잃는 등 가슴앓이를 겪게 된다.  

석 달 동안 힘들었던 피난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죽어있는 사람들과 지뢰들로 인해 사람들이 놀라고 죽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힘겹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동네에는 피난길을 떠난 사람과 이런 저런 사정으로 피난을 떠나지 못해 동네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경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북쪽공산당 조직에 들어간 것이었다. 평범한 이 땅의 사람들은 소련군이 좋다고 끌어들이지도 않았고, 미군이 좋다고 끌어들이지도 않았는데 순박하고 착한 마을 사람들이 국군에 의해 반역죄를 선고받고 암산 골짜기에서 몇 트럭이나 되는 사람들을 총살해 버린 사건은 참 충격적이었다.

한 나라의 한 동네에서 이웃사촌처럼 지내던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사건들이 발생한 일들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책 속의 모든 아이들 하나하나의 사연들이 가슴아팠지만 내 마음에 그 슬픔이 오랫동안 남은 것은 종갑이네 집이다. 징용에 끌려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고, 어머니 또한 집을 떠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살아가던 종갑이가 피난길에 할머니를 잃고, 피난에서 돌아온 후 미군에게 껌을 구걸하러 간 종갑이가 미군트럭에 치여 죽은 뒤, 세상 살아가 의미를 잃은 할아버지 또한 목을 메고 자살하는 종갑이네는 사연은 너무나 슬펐다. 인민군을 따라 올라간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복식이 국군에 들어가게 되자 아버지와 총칼을 겨눌 수 없다며 자살하는 장면 또한 가슴이 쓰렸다. 왜 이 땅의 자식이 부모와 총칼을 겨누어야 하는 것인지 이 안타까운 역사가 참으로 비통했다.

 

책 속의 아이들이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시키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해방은 누가 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네 손으로, 네 몸으로 해방을 해야 한다'라고 말이다. 생전에 작가는 전쟁을 참 싫어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세계2차대전을 겪고, 한국에 와서 6.25를 겪으면서 잔인한 전쟁이 싫어 평화를 간절히 염원했다고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었으면..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쓴 글은 이 책을 읽고 나니 더 사무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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