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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팅캘리의 슬기로운 기록생활 - 사소한 일상도 특별해지는 나만의 작은 습관
이호정(하오팅캘리)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오팅캘리 작가님은 내가 Instagram을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 팔로우 해놓고 찾아보던 작가였다. 손글씨가 딱 내 취향이라 틈틈이 블로그도 찾아보고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러대던 내가, 서평단으로 당첨(?)이 된 것이었다. SNS에서 보던 것과 어떻게 다르고, 어떤 점이 자세하게 다루어졌을지 궁금해서 책을 언제쯤 받을 수 있나 손꼽아 기다렸다.
작가님이 3번이나 고쳐 썼다는 프롤로그는 내가 왜 그분의 글씨를 따라 쓰고(비록 필체는 많이 다르지만) 왜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지(지속적이라기보단 매번 작심삼일+작심삼일 반복이지만) 곱씹어주는 글이었다.
프롤로그에 이런 글이 있다.
일상을 기록하는 일 … 귀찮고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무엇하나라도 노트에 남겨둔다면
좋았던 순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을 기록으로 붙잡아 간직할 수 있다.
내가 12월부터 다시 마음 잡고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고, 기록을 하는 그 이유가 이거다 싶었다.
내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찾은 듯한 느낌. 내가 늦게 시작했을지는 몰라도, 허튼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위안을 느꼈다.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내 하루하루는 특별한 이벤트가 사라진 것 같았다. 일기를 쓰는 것은 특별한 일을 기록해야 할 것만 같은데 그게 없어서 딱히 기록의 중요성을 못 느꼈다. 그러면서도 며칠 전을 곱씹어보면 늘 내 생각은 ‘난 뭐했지?’ 였다. 나이가 들어서 그럴 수도 있고, 정말 이벤트 하나 없는 정적인 하루하루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무기력함까지 느껴졌던 것 같다. 그냥 시간만 허비하는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기억력을 탓하기도 해보았지만 근본적으로는 메모라도 해야겠다는 필요를 느끼게 됐다.
그래서 작은 노력을 시작했다. 작년 말부터였을까? 버릇처럼 내년 다이어리를 골라야지 하면서 ‘기록’을 ‘의식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하루 하루지만 내일 또 ‘난 뭐했지?’ 하고 있을 내가 싫었다. ‘노력’을 해서라도 ‘기록’을 하고, 그러다보면 ‘난 뭐했지?’, ‘난 무기력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와중에 읽게 된 이 책에선 정적인 하루하루를 끄적이는 일기라도 의미 없는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정말 작가님의 말대로 일기로 하루를 붙잡은 기분. 하루하루를 붙잡다보니 어느새 내 일기장이 거뭇거뭇 해졌다.
책에 대해서 적어보자면,
PART 1에서는 지금처럼 프로 기록러가 된 작가의 시행착오 과정과 기록 준비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노트, 연필, 펜 등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하게 된 아이템을 알려주고 독자들은 넙죽 받아 구입만 하면 되는 내용이다. 중고등학생때 노트 필기 잘하는 친구들이 어떤 펜을 쓰고 어떤 노트를 쓰는지 궁금해 하고, 늘 참새방앗간처럼 펜시점(꼭 학교 앞엔 펜시점이 있었는데, 지금은 잘 못 찾겠다)을 들러 새로운 펜, 예쁜 색깔 펜을 고르고 골랐던 내가 되살아난 것 같았다. 내가 이 도구들만 더 가지고 있으면, 나도 작가님처럼 기록러가 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PART2는 작가의 사정을 들여다 본 느낌이다. 10대 시절보다 더 예쁘고 비싼 다이어리를 쓰고 자의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꾸준해지면서 비로소 기록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을 보고 ‘아 난 좀 늦었네’ 라고 생각한건 작가의 의도랑은 관련 없는 반응이겠지만, 내 나름 기록을 하게 된 것처럼 이 사람도 그저 뚝딱 만들어진 프로 기록러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작가는 그저 낙서처럼 기록하는 메모장, 좀 더 공들여 쓰는 노트 등등 여러가지로 구분해서 기록을 해나간다. 날 것(?)의 메모에서 옮기고, 다시 받아 적고. 그러면서 기록이라는 행위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기록이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어 간다. 기록을 하면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힘을 얻고 마음가짐을 다진다는 것이 어쩌면 기록이라는 것의 무게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무거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겁기 때문에 부담스럽다기 보다는, 나의 소소한 일기도 어쩌면 나의 역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으로.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는게 역사라지만, 내가 고르고 골라 일기에 적는 끄적임도 나의 역사지, 뭐.
PART3에서는 먼슬리, 위클리, 데일리로 보여주며 작가의 실제 일기를 그림으로 글로 보여준다. 흔히 말하는 ‘다꾸 how to do’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일기를 ‘예쁘게’ 쓰고 싶은 사람들이 보면 아주 좋을 것 같은 팁을 보여주며 먼슬리, 위클리, 데일리 기록의 방법을 차근차근 안내해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먼슬리를 글 대신 그림으로 채우는 것. 기록을 글로만 해야한다는 생각이 아주 우스워져서 새로웠다. 그러고보면 우린 다 그림일기로 기록을 시작한 사람들일텐데,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 미술하는 사람들만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었던 것 같다. 이것도 ‘나도 할 수 있지, 뭐’라는 자신감 포인트.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부록 Q&A였다. 기록을 하겠다 마음먹으면서 같이 생긴 두려움은 ‘어떻게 쓰지’ 라는 것도 있지만 ‘얼마나 써야하지? 어디까지 써야하지?’하는 원초적인 두려움도 있었다. 차라리 초등학교 때 숙제로서의 일기를 적을 땐 금방 적어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지금 일기를 쓰는 나는 바로 그 날의 감정인데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고 펜으로 풀어내는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던 듯이 자세하게 답변한 내용을 읽다보면 ‘맞아. 그렇지!’ 하면서 하나하나 해답을 찾아낸 기분마저 든다.
다이어리를 예쁘게 꾸미고 싶은 독자들이 읽어도 아주 좋을 책이지만 나처럼 기록의 필요성을 느낀 사람들, 그리고 기록이라는 행동에 겁을 먹은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서평을 읽고 생각나는 친구 몇 명에게 책을 주문해서 보냈다. ‘다꾸’가 취미인 그들이 받아들일 책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다꾸’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그저 하루하루를 적어놓고 나중에 생각날 때 볼 수 있음 좋겠어 하는 나같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책장을 덮고 든 생각은
이젠, 글씨체를 좀 정돈하고 싶다는 생각. 여전히 나는 ‘기록’만으로 중요한 행동이다 라고 말하지만 ‘다꾸’까지의 실력은 없으니 어떻게든 기록을 깔끔하게 하고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오팅캘리의 슬기로운 기록생활을 통해 더 욕심이 생긴 기록러가 된 것 같다. 다이어리를 정리하는 시간이 좀 더 재밌게 다가온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