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시간 - 내촌목공소 김민식의 나무 인문학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명의 사람이 한 그루의 나무라고 가정해보자. 수령 100년이 넘는 성년의 나무가 될 때까지 어린 묘목은 무수한 비바람과 무더위, 해충과 병균을 너머 하늘을 향해 잎을 더 뻗고, 땅 밑으로 뿌리를 치열하게 한 뼘 더 들이밀어 왔을 것이다. 주변의 동료 식물, 어쩌면 한 부모 나무에서 갈라져온 형제 자매였을 경쟁자를 뿌리치고 볕을 한줌 더 받기 위해 치열한 삶을 성공하여 굵은 기둥과 깊게 내린 뿌리로 어느 덧 주위를 관조하고 삶을 돌아보는 정도의 성년 나무 말이다.

많은 문화권에서 오래된 나무는 특별한 존재 취급을 받아왔다. 서양의 엔트라는 요정이라든지 나무 정령, 동양권의 도깨비와 당산목은 오래된 거목에 대한 본능적인 경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40여년간 전 세계 곳곳을 탐방하며 나무를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나무 딜러, 컨설턴트로 활동한 저자가 "나무"에 얽힌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내용으로 꾸려져 있다. 오랜 삶의 깊이와 넓이만큼 해박한 정보와 지식, 지혜로 가득한데 각 챕터가 각각 하나의 장대한 컨텐츠를 이룰 만큼 값어치가 있다. 분명 이런 책이 널리 읽혀야 나무도 제 살을 내어준 보람에 기꺼워 할 것이다.

나무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속에서 저자는 우리네 현실에 대해 꼬집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남대문 현판이 갈라지고 뒤틀려진 것이라든지, 일개 잣나무인 홍송을 세상 최고의 목재로 꼽는 무지한 이들의 이야기라든지, 탄성이 좋은 단풍나무이지만 굳이 체육관의 바닥으로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이야기는 나무에 대한 몰지각을 잘 알게 해주어 고마운 내용이기도 하다. 반례로 나무를 제대로 잘 쓴 경우도 여럿 있는데, 제국주의의 시작에는 엄청난 양의 벌목을 통한 전투, 상업함 건조라든지 산업혁명기의 뗄감으로 쓰인 나무라든지, 영국 왕실의 엘리자베스 2세 의 통치 6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마차에 담긴 나무의 의미라든지. 저자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무는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물론 가장 비싼 나무는 있다).

의외로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도 있다. 특히 SK에 취업을 하고자 하는 취준생이라면 이책의 '민둥산에 심은 나무'편을 꼭 읽으면 좋을 것이다.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더욱 샘솟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몇 해간 내 책장에 꼽혀 있었는데, 연말~연초의 번잡한 시간 중에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집어 들어 읽었다. 지금은 연거푸 4번째 읽고 있다. 조금 더 일찍 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말이다. 저자가 꾸려나가는 내촌목공소나 본문에서 옮긴 도서, 자료, 인물에 대한 관심도 커져서 연달아 읽어 나갈 생각이다.

정말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