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평전 1 - 행동하는 양심으로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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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영결식때의 김대중 전 대통령

2009년 5월 노무현 영결실장에서 오열하며 " 내몸의 반쪽이 무너진것 같다"고 비통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생애 마지막연설에서도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달라고 호소하던 그의 모습 

연설 이후 수꼴 한나라당, 조중동 ,가스통할배까지 들고 일어났던 수꼴의 발악을

보게 해준 연설이였다.

    

 

 평생 따라다니던 빨갱이 논란.. 그걸로 먹고사는 수꼴의 발악 

한국사에서 진보와 개혁의 기치를 든 지도자들은 언제나 보수의 총구앞에

참살되거나 자살하는등 제명에 죽은이가 거의 없다.

그런 보수의 철벽을 깬 첫 생존자였던 김대중 대통령

합리적 보수와 이상적인 실용주의자였지만 언제나 따라다니던 빨갱이라는 말을

죽어서도 들어야하는 비운의 인물.

 

 

작은섬 하의도에서 태어난 김대중 대통령(하의도 이섬의 역사가 김대중대통령의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일제시대 ,해방,6.25를 거치며 어느새 청년이 되고 장면 부통령과의 만남이후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본격적인 정당생활에 뛰어들게 된다.

1958년 제 4대 민의원선거에서 강원도 인제에 출마하는데 여기서 재밌는 일화가 있다.자유당의 방해로 후보등록도 하지 못하게된 김대중은 열받아서 그 지역 사단장 관사를 방문했다.유감스럽게도 사단장은 자리에 없어서 만날수없었다.

그 사단장이 바로 박정희였다.

여기서 두사람이 만났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같은 호남사람이라는게 이유)을 데려와서

'김대중과 나는 같은 조직에 있었다. 그는 빨갱이다.'

평생을 따라다닌 빨갱이라는 딱지가 이때부터 시작이였다.

몇십년동안 ,죽어서도 따라다니는...

 

60,70년대 한국정치의 두 주역이였던 박정희와 김대중

아이러니하게도 지방정치인이였던 김대중이 전국적인 인물로 급부상하게

만든 사건이 3선개헌저지 투쟁이다. 박정희가 만든 굿판에서 최고스타가 된

사람이 김대중이다. 그리고 김대중을 두번이나 죽이려 했고 엄청난 탄압을 가했던 박정희가 죽기까지 두사람은 딱한번 만난다.1963년 국회의원 당선후 한번본게 처음이자 마지막 대면이였다.

두사람의 악연에 비하면 대화 한마디 못하고 끝났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전두환의 등장과 또 한번의 생사의 기로 (내란죄로 사형선고) 

 

김대중을 죽이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사람은 나중에 내란죄로 사형이 선고되고 김대중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김대중의 도움으로 전두환은 사면을 받는다.(97년 12월 22일)

그리고 12년뒤 김대중이 입원한 병원에 와서 이희호여사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전두환..

본문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이희호여사의 손을 잡고

 "아이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라고 위로했다.

그는 "자꾸 나빠지는것 같아 휴가중에 올라왔다"며 "틀림없이 완쾌해서 영부인이 즐거운 마음으로 모시고 나갈것"이라고 말했다.

전두환은 " 김 전 대통령이 현직에 계실때 10번 가까이 초대받는등 전직 대통령들이 제일 행복했다"면서 "그런 전통이 다음부터 없어졌는데 이명박 대통령도

전직 대통령의 의견을 들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ㅡ.ㅡ:: 머 이런  

 

 용서는 사람같은넘한테만 해야하는거다.용서해주니 눈치보다가 슬금슬금 기어나오기 시작하는 5공인사들 

 

이책에선 한국정치,특히 야당의 역사를 알수있다.

그리고 '야당은 분열로 망한다.'는걸 알수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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