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건너뛰기
존 그리샴 지음, 최수민 옮김 / 북앳북스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크리스마스를 건너뛴다면 정말 신날 거야.' 라고 그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브부터 열 손가락을 한 번만 꼽으면 1월 2일이 된다. 트리도 없고, 쇼핑도 없고, 의미 없는 선물과 팁이나 소란도 없고, 교통 체증, 군중, 생크림케이크, 술도 없고, 누구에게도 꼭 필요한 게 아닌 햄도 없고, <루돌프 사슴코>나 <눈사람 프로스티>도 없고, 사무실 파티도 없고, 허비되는 돈도 없고……. 그렇게 그는 끝도 없이 꼽아 나갔다. 그는 운전대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이제는 지그시 미소까지 지으면서, 뜨거운 바람이 발을 녹여주는 것을 느끼면서 크리스마스로부터 도망갈 꿈을 즐겁게 꾸고 있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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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책들은 바코드 스티커 부착 때문인지 언제나 종이 커버가 벗겨져 있는 상태라서, 대개는 맹숭맹숭한 단색의 알맹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책의 표지를 확인하게 될 때면 때때로 깜짝깜짝 놀란다. '이렇게나 예쁜 표지였군!'하고. 이 책도 도서관에서 처음 접했을 때 제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맹맹한 회색 알맹이를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원래 표지가 저렇게 깜찍(?)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를 그리 남들과 왁자지껄 즐기면서 보내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정도 제목에 공감을 하면서 이 책을 집어들었었다.

 크리스마스 파티 등과 같은 정신없고 귀찮은 일들을 매우 싫어하고 삐딱하게 바라보며 시종일관 구시렁대는 주인공 루터의 모습은 내게 익살맞고 정감있게 다가온다. (내가 실제로 그런 사람이라서 정감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들 부부는 온갖 고생과 쓸데없는 지출이 난무하는 크리스마스를 건너뛰는 대신에 유람선을 타고 카리브 해로 휴가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소식은 삽시간에 온 마을로 퍼져나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비웃음과 부러움을 동시에 사게 된다.

하지만 전화 한 통화에 이제까지의 온 상황이 한순간에 역전되어 버릴지 그 누가 알았겠는가.

이 책의 중간 부분까지는 진행이 빠르지 않으나 중-후반은 그야말로 '허둥지둥' 지나가 버린다. 워낙 주인공들도 정신없이 뛰어다니기 때문에 독자들도 그들과 같이 마구 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것도 작가의 능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래는 법정 스릴러 소설들로 유명한 작가라서 그런지, 그 장르가 아닌 다른 소설이나 글에서도 충분히 그의 그러한 역량을 느낄 수 있는 듯.

루터 부부의 꿈을 이루기에 현실은 냉혹했지만 결국은 따뜻했던 어느 크리스마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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