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부쩍 사회문제로 나오는것중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란것이 있다. 이태원의 상권 변화에 따른것으로 당시 이 단어가 처음으로 기사화 됐던것으로 기억을 한다.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단면으로 부각되며 주기적으로 사회문제로 기사화되며 떠오르고 있다.이 책은 그 이태원의 변화와 현상들을 집중조명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이미 외국에서부터 시작됐던 일이지만 우리들에게는 사회문제의 하나로 처음 다루어진것이 이태원이 출발점이라 책 역시 이태원을 다루고 있다. 이후 이런 현상은 삼청동, 문래동, 홍대와 망원동 등 우리 주변에서 계속해서 젠트리피케이션은 발생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SNS 세대인 밀레니얼이 많이 찾는곳이 핫플레이스화 되기에 책은 밀에니얼 세대를 같이 다루고 있다.더 이상 떨어질수도 없을만큼 황량해진 상권에 예술가들이 모인다. 열기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 건물들에 특색있는 상점들이 들어오고 변해가는 그 모습들을 찾아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기 시작한다. 냉기만 가득하던 골목에 온기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상권이 살아난다. 사람들이 더 찾아든다.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며 명소로 탈바꿈한다. 상권이 살아나자 거대 자본이 들어 온다. 바닥이던 임대료가 치솟는다. 골목을 살린 상점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예술가들이 떠난다. 이것이 젠트리피케이션의 반복되는 모습이다.자본주의사회에서 보다 나은 수익을 추구하고 자본의 축적을 목표로 삼는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죽은 상권을 되살리고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게 한 소상공인과 예술가들이 정작 그에 대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피해자로 내몰리는 상황은 자본주의의 잔인한 한 단면이다. 무지하고 또 무지하다. 살아난 상권이 계속해서 잘 될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상권을 살아나고 그 골목만이 가진 특색이 누구에 의한것이었는지를 망각한다. 주체가 떠나가면 그곳의 특색이 사라진다. 사라진 특색을 거대자본은 되살리지 못한다. 자본이 낳은 병폐다. 무지한 자본의 놀음은 그곳을 다시 과거로 몰아 넣는다.거대자본과 건물을 가진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그에 더해서 사회적으로 법적인 제도가 보완되어야 한다. 반복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없는자들의 눈물을 요구하고 가진자들에게도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