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은 없다 - 문제는 불평등이 아니라 빈곤이다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안규남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받아 본 순간 작고도 얇은 사이즈에 직감을 했다.
이 책.. 쉽지 않은 책이구나.
이렇게 가볍게 보이는 책들이 주는 무게감을 여러번 겪어보았기 때문인데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질 않고 한페이지 한페이지가 주는 묵직함이 참 무겁다.

"문제는 불평등이 아니라 빈곤이다"
이 문장에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모든 말이 담겨져 있다.
이 책은 경제적 불평등이 문제가 아니라 충분성의 문제임을 주창하며 그 원인을 빈곤이라 말한다.
그제서야 책의 제목과 부제들이 이해가 됐다.

평등성과 충분성에 관한 글을 읽다가 떠오른 편린은 최저시급문제다.
정부와 여당은 충분성의 관점에서 저소득층과 근로자의 기본생활권을 높여주고자 최저시급을 올리려 하지만(사실 저자가 말하는 충분성에는 한참이나 모자른 금액이다.) 야당은 기업의 생산성이 악화되고 물가가 오를것이라 부정하며 고용인의 고통을 부각시킨다. 공산주의식 포퓰리즘이라 매도하며 가진자의 편에서 저지하려고 한다. 이것은 충분성을 평등성으로 의도하는 그릇되고 불순한 생각이다.
(최저시급은 2년전보다 20여만원 올랐고 한달치 급여로는 180만원정도이다. 이 금액을 과연 좌파의 개념으로 몰며 가진자의 편에 서야하는것인가)

자신보다 훨씬 더 빈곤한 이들을 볼때 우리는 도덕적 불편함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덕적 불편함을 모르는 이들은 어찌 된것일까..
그들은 평등성을 거부하며 충분성마저 외면한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평등은 있을수가 없다.
공산주의는 실패한 이념이고 자본주의도 실패와 변혁을 지나고 있다. 그렇다고 사민주의가 대안이 될수도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등은 과연 존재하는가?
평등은 집단의 일부, 어느 누군가의 양보와 손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본다면 저자가 말하는 충분성이 보다 타당하고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리트허르 브레흐만의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에서 주장하는 사회의 기본소득권이 떠올랐다. 실현될수 없는 평등에 신경쓰는 대신 기본소득권을 논하는게 보다 현실적이지 않을까?
어차피 둘다 실현되긴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일뿐이다.

사회적 인식과 도덕성이 나이지고 인식이 개선되면 어쩌면 인간존중 개념의 충분성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평등은.. 없다.

(사회인문학은 어렵지만 재밌고..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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