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조선인 > 나는 왜 공지영을 싫어하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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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읽고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선 표어로 삼았었다. 그리고... 고등어를 읽은 뒤... 공지영에게 실망했고, 인간에 대한 예의는... 한때 좋아했던 작가에 대한 예의로 읽었다. 결국 착한 여자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책을 더 이상 사들이지 않게 되었고, 그녀의 책들은 책장 위로 분류되어 먼지만 쌓여갔다.
얼마전 더 이상 읽지 않는 책, 다시 읽지 않을 책을 골라 방출을 하면서, 문득 고등어를 다시 집어들었다. 아는 이에게 줄 책을 싸면서 가방이 무거워 읽던 책을 집에 놔두고 왔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매끄러운 문체를 따라 거침없이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되었고, 난 또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386세대의 일원임을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상기시키며, 역사는 끝났는가 끊임없이 자학하면서, 너희들도 변절했기에 아무도 날 손가락질할 수 없다고 항변하며, 어쨌든 이후 세대에 비해 자기는 정의로운 한때를 살았다고 위안한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 위해 386세대의 피땀어린 희생과 눈물이 있었음을 알기에 그들을 존경하는 사람으로써, 공지영의 자위가 모독으로 여겨진다. 아니, 그녀의 눈에는 유행따라 흘러가는 90년대 이후 학번으로 비춰지는 게 더 치욕스럽다. 그녀는 진정 기득권자들이 말하듯 세상은 이미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더 이상 투쟁의 80년대가 아니라면, 입학 후 첫 등록금투쟁에서 맞아죽은 내 91학번 동기 경대는 어쩌란 말인가. 80년 광주항쟁 진상규명을 위해 최루탄에 콜록대며 담배를 배워야만 했던 봄날이 거짓이란 말인가. 함께 풍물을 치던 수석이가 죽고, 함께 회의를 하던 희정이가 죽은 게 96년이 아니었던가. 통일축전을 준비하다가 수십만의 전경들에 의해 연대에 갖힌 채 이적단체가 점거농성을 하고 있다고 매도당하며, 전대협동우회마저 '폭도'에게 지지를 보내줄 순 없다 등돌렸을 때 취재나왔던 기자가 불쌍하다고 던져준 초코파이 한쪽을 십여명이 갈라먹으며 하루의 양식으로 삼았던 게 꿈이었던 말인가. 참으로 맛나게도 라면을 끓여주던 준배형의 죽음은 5년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의문사로 남아있을 뿐인데, 이제 투쟁은 없다고? 아직 상반기도 안 지난 올해 분신하거나 살해당한 노동자가 몇 명인지 그녀는 과연 헤아리고 있을까?
그녀가 '잃어 버린 사람들, 그러나 빼앗기지 않았던 사람들, 그래서 스스로 잃어 버렸던 사람들, 잃어 버리고도 기뻤던 우리들'의 비망록을 끄적이고 있을 때도 언제나 이기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리고 지금도 싸우고 있음을 그녀가 알아주면 참 좋겠다. 밸없는 나는 그녀가 '지금도 수고하네' 한 마디만 던져주면 엉엉 울며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