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은 피할 수 없다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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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재앙은 피할 수 없다>

 

다소 운명론적인 이 책의 제목이 참 인상깊었다.
허삼관매혈기나 제 7일 등으로 잘 알려져있는 중국 대표 작가 위화.
그가 80년대에 썼다는 중편 3편이 묶여있는 책이었다.

 

1. 1986년
누구도 10년 전의 문화대혁명을 기억하는 것 같지 않은 중국의 어느 지역이 배경이다. 기억하고싶지 않아서 떠올리지 않는지, 벌써 잊은건지, 마음 한 구석에 아픔을 간직한채로 현재를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어느새 자유로워진 봄의 거리를 걷는다. 따뜻한 봄 햇살같은 소녀의 집도 그렇다. 다정하고 멋진 새아빠와 엄마가 사는 집에는 10년 전의 그늘이 없어진 지 오래다.
그리고 잊혀진 줄 알았던 그가 광인이 되어 나타났을 때, 소녀의 엄마는 다시금 길고 긴 구렁텅이에 자신을 밀어넣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사람들일 뿐이어서 그가 무슨 짓을 하든 신경쓰지 않거나 그저 미친사람이라며 손가락질 할 뿐이다.

 

2. 이 글을 소녀 양류에게
몇 사람의 기억이 몇 사람에 의해 계속 반복되며 서술된다. 골목길을 걷는 화자와 굴에사는 외지인과 그가 만난 노인과 그의 딸인 소녀. 화자는 외지인이 되기도 하고 소녀처럼 되기도 하고 노인이 되기도 하고. 그러나 그들의 서술은 이어지는 듯 다른 이야기가 되고, 같은 이야기인듯 하다가 끊어지곤 하는 것이다.
하나의 중차대한 사건이라도 사람의 기억은 이렇게 다르다. 그것이 몇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일이든 그렇다. 역시, 모두들 기억하고 싶은대로 기억하는 법이다.

 

3. 재앙은 피할 수 없다
충동과 운명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비이성적인 짓도 서슴치 않는 사람들은 기실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수레바퀴는 멈추질 않아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든 욕망들이 섞여 파국을 맞는다. 누군가 한번 비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되면 다수가 거기에 섞여들어가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역사의 몇몇 장면들도 그랬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개인의 이야기로 서술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은 의외로 역사의 장면들에서 자주 일어난다.

 

 

청년 위화의 중편들은 어딘가 홀린듯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자기 스스로도 미친듯이 써내려갔다고 밝혔듯, 어떤 억눌림이 터지는듯 힘있는 문장과 과감한 서술은 '문화대혁명'이라는 큰 사건에 대한 그의 반응을 잘 보여주는것만 같다. 언제 읽어도 참 좋은 작가다.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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