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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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은 유홍준의 공적인 글쓰기와 사적인 글쓰기가 모두 포함된 문집이다.

그의 벗과 은사들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부터 문화재청장으로 목적성을 가지고 쓴 공적인 이야기를 주제에 따라 구분한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 그는 '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중요한 한 가지 모습'을 글쟁이(문사)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책을 두고 잡(雜)문집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유홍준의 글쓰기'란 일반적인 산문 형식을 벗어난 잡문의 성격이 강한데, 이 때의 '잡문'이란 루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일상사에서 시작해 사상의 담론을 모두 어우르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옛 문인들의 문집을 읽을 때도 마지막의 잡저를 눈여겨보는데, 잡저에는 세상만사가 다 들어 있고, 거기엔 인생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런 '잡스러운' 것들을 좋아한다. 잡독(雜讀)을 하고 있는 1인이기도 하고 인생을 살며 여러 잡기(雜技)를 익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도 하다.한자 사전에서 정의하는 '잡'은 다른 성질의 것들이 이리 저리 섞인 상태를 의미한다. 이와 반대되는 '순수'는 잡스러운 것을 모두 제거한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참 폭력적이지 않은가..?

아무튼, 유홍준의 잡문집은 말 그대로 잡문이기에 더 정이 가고 더 와닿았다. 그의 지인인 방배추(방동규)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아래와 같은 감상을 남겼다고 한다.

"학삐리들이 쓴 글을 읽어보면 어느 구석에서는 거의 반드시 자신이 유식하다, 나는 연구를 많이 했다는 표시를 은근히 내비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데 너는 그런게 없어서 좋았다. 네가 쓴 감은사 답사기를 다 읽고 나니 너는 없어지고 감은사탑만 남더라."

그의 글을 읽고나서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 말이 참 맞더라. 유홍준이라는 사람이 썼음에도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만 기억에 남더라고🤔 그렇지만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는 조금 다른 것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와 그와 인생을 함께 한 동지들과 벗, 은사님, 그리고 어머님에 대한 소탈한 글들은 인간 유홍준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에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문기(文氣)다. 그가 이야기하는 문기는 문장에서 드러나는 기운이라는 협의라기보다는 조선의 선비로 대표되는 식자들의 소박하지만 고결한 '문사'들이 지니는 특유의 기운이라는 광의가 맞지 않을까 한다.

옛 인사동 책방 골목 거리를 이야기하며,
조선 중기의 순백의 백자를 이야기하며,
임진왜란 시기 전주사고가 불탈 위기에 처하자
예순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실록을 내장산 산속 암자로 옮겨 지켜낸 무명의 선비들을 이야기하며,

유홍준은 지속적으로 '문기'를 언급한다.
책을 읽은 독자의 생각으로는 그야말로 현 시대의 '문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말을 빌려 중국의 도자기는 형태미가 강해 멀리 높은 선반에 올려놓고 보고 싶어하고 일본의 도자기는 색채가 화려하여 옆에 가까이 두고 사용하고 싶어진다고 소개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우리의 도자기는 부드러운 선이 있어 따뜻한 친숙함과 사랑스러운 정겨움에 어루만지고 싶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달항아리도 그렇다. 이를 두고 김원용은 잘 만들겠다는 욕심조차 없던 도공의 무심한 경지라 평하고,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은 권위적이지 않고, 뽐내지도 않는 평범한 형식 속에 깊은 정감이 서려있는 은은한 미감이 있다고 말을 더한다.

나에게는 유홍준의 글이 그렇다. 뽐내지 않으면서 다정하고 때로는 유쾌하다. 자꾸 곁에 두고 읽고 싶어진다. 그러면서도 은연 중에 드러나는 그의 식견에 감탄하고는 한다.

문화재청장 재직 시절, 공동 기획전시를 중국에 방문한 그에게 중국 관료들이 글을 지어주기를 청했다고 한다. 이때 유홍준은 대국임에도 당당하게 학식을 드러내 대응한 조선의 선비처럼 그야말로 명문을 연달아 쏟아내는데..

북경의 관리가 글을 지어달라 이야기하니
"북경이 중국이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서안의 관리에게는 옛 이름인 '장안'을 떠올려
"서안이 있어 중국이 있다"

남경의 관리에게는 쑨원(손문)의 예를 들어
"남경이 일어날 때 중국이 일어났다"

상해의 관리에게는 서세동점의 시기를 들어
"상해가 흔들리면 중국이 흔들린다" 라고
차례로 한국의 문인으로서의 기개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반해버렸다👍

잡문집답게 위와 같은 문기가 느껴지는 글 말고도 골계미가 느껴지는 글들도 많은데(주로 본인과 벗들의 이야기) 특히나 연초를 끊으며 남긴 고별연이라거나 말일파초회 이야기, 청장들끼리 누구의 관할 영역이 큰 지에 대해 다투는 이야기는 킥킥대며 읽어나갔다.

또한 답사기에 미처 싣지 못한 누정의 미학과 백두산, 일본 답사 이야기도 그의 답사기 외전이라 생각하고 읽어나갔다.
이쯤 되니 이 책은 잡문집을 넘어 독자에 입장에서는 풍성한 뷔페 만찬이지 않나. 하나의 책을 읽으면서 그의 책 네 다섯권은 읽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거기에 독자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로 책에는 부록으로 유홍준의 글쓰기 강의라는 챕터가 실려있다. 좋은 글쓰기를 위한 조언과 문장 수업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쓰게 된 경위까지. 그리고 화룡정점으로 자신이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된 시기 부모님께 보낸 편지와 대학시절 미학 수업 시험지, 그리고 김지하의 옥중 지도한 글쓰기에 대한 조언이 실려 있어 이 부록 하나만으로도 봐야할 가치가 있는데, 심지어 유홍준의 다른 글들도 있다고?🤭 그만큼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는 무조건 보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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