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네버랜드 클래식 21
카를로 콜로디 지음, 야센 유셀레프 그림, 김홍래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한류 대표상품 '대장금' 처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화상품 가운데 하나가 된 피노키오. 그러나 그 본질은 인간의 모든 한계와 비애와 희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우울한 나무 인형이다 (이 책이 자랑하는 고운 삽화 속에서 목각인형의 기쁘다고도 슬프다고도 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을 보라). 이야기의 배경과 그 핵심이 되는 메시지엔 작가인 콜로디가 살았던 시대의 분위기를 추측할 수 있는 여러 정서들이 감지된다. 아펜니노 산맥을 중심으로 한 반도를 가리키는 지명(地名)이었던 '이탈리아'는 콜로디가 살았던 19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군사적, 정치적으로 통일된 근대적 민족국가의 이름이 되었다. 당연히 신생국 이탈리아는 아직 불안정한 자신의 왕실과 정부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건전한 민중의 존재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정신없이 까불고 자신의 호기심과 욕망을 좇아 가려는 피노키오에게 끊임없이 던져지는 '근면'과 '학교 교육'의 요구는 이러한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나아질 수 있다'는 계몽적인 이상과 휴머니즘(우리가 생각하는 그 말랑말랑한 휴머니즘이 맞다)의 영향 안에 전반적으로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노키오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인간관은 의외로 구약성서적인 어떤 것이다. '끈'과 '조종자'가 없이는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것이 꼭두각시의 숙명이건만. 피노키오는 어느 날 기적적으로 스스로 말할 줄 알고, 움직일 줄 알고, 판단하고 행동할 줄 아는 괴상한 나무 토막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다. 그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의지'가 있으나 나무 인형은 이 자유를 스스로에게 이로운, 그리고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용의 결과는 유혹에 빠지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내려지는 벌을 달갑게 받는 것이다. 그가 겪는 '모험들(avventure)'은 그런 의미에서 박진감있다기보다는 서글픈데, 애초부터 속죄를 위한 여행으로 그 성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피노키오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기 자신의 미숙함으로 유혹에 빠지는 것부터가 '죄의 완성과 해소'라는 한 순환과정의 시작점이다.  

 그 과정에서 배경이 되어 주는 풍경은 동정 없는 세상이다. 여기에서도 콜로디가 당대의 이탈리아 사회를 어린이들이 '평탄하게' 자라나기 힘든 사악한 환경으로 보았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금화를 가진 사람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강도들의 타겟이 되었으며, 사기꾼들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치안 담당자들은 가해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일단 사태를 잠재우는 데에만 급급했으며(작중에서 피노키오는 아무 죄도 없이 두 번이나 옥살이를 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면 어린아이라도 그 자신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어른들도 힘겨워하는 고된 노동으로 한 끼 식사를 벌어야 했다(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피노키오의 수고는 그가 저질렀던 지난날의 과오와 비교되어 가벼운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둥지를 떠나지 않은 새끼새에게 어미새는 바깥 세상이 얼마나 무자비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 날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수도 없이 조잘거렸을 것이다. 피노키오는 딱 그런 이야기이다. 늘 그래왔듯 아이들은 '건전하게' 키워져야 하기에, 이 무자비한 세상에 대해선 오로지 '숙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이 동화는 내리고 있다. 

 피노키오는 '근대가 만든 아담'이다. 모두가 아담을 알듯 모두가 피노키오를 안다. 아담이 낙원에서 쫓겨나 지금까지도 그 후예들이 낙원을 모르고 살듯, 피노키오도 처음부터 구원 없는 세계에 떨어졌다(이야기 전체에서 '푸른 머리 요정'의 비중은 생각만큼 그렇게 크지 않다). 그는 자신의 창조자를 죽음의 어둠에서 구함으로써 처음으로 자기에게만 속한 피와 살을 몸으로 갖게 되나, 이것이 보통의 살아 있는 사람에게 피곤한 삶의 시작 이상의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각 있는 독자라면 이 결말이 (이 책의 해제에서 설명하듯) 급조되었다는 사실을 느낌으로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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