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같지 않은 유서를 또 쓰고 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나를 세탁했어.
2010년 12월 수술하기 전날 일산병원 암병동에서 말에게 ‘엄마가 수술실에서 그대로 가면 이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지.
1. 알릴 곳은 명단에 적힌 23명이 전부야. 여기만 연락하고 나중에 엄마 찾는 전화가 오면 "언제 가셨습니다."라고 말해주면 돼.
내 휴대전화 유효 기간은 30일이야.
2. 오늘 사망하면 다음날 화장해라.
3. 수의 입힌다고 벌거벗겨놓고 새 옷 입히지 마라.
내가 입은 옷 그대로, 엄마가 늘 덥고 자던 홑이불로 나를 덮어라.
4. 조의금은 받지 마라.
5. 가루는 절대 항아리에 넣어 납골당에 두지 말 것. 그때 상황에 따라 너희들이 처리하기 좋은 방법으로 알아서 뿌리고 싶은 곳에 뿌려라.
6. 절에 가서 49제 하지 마라, 제사 지내지 마라.
이 세상에 와서 70년간 살았던 내 내신성적표를 그대로 갖고 가는것이니 기도나 염불 잘해준다고 내 내신성적이 바뀌지 않는다.
나는 내 성적표 들고 가서 심판 받을 것이다.
<부록>
1. 엄마가 숨을 멈추면 숨 쉬라고 다른 방법 쓰지 마라.
평안하게 가고 싶다.
2. 화장이 끝나고 유골을 땅에 뿌릴 때까지 엄마가 항상 듣던 CD만틀어라, CD는 책상 위에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 들으면서 환상의섬 이니스프리로 천당 가는 마음으로 갈 것이다.
슬퍼하지 마라. 내가 행복하게 가는데 울긴 왜 울어.
너희들이 너무 슬퍼하면 내가 힘들어!
꼭 지켜주기 바란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