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가 시험 공부에 매진할 때, 나는 책에 빠진다.
날마다 읽는 책이고, 짬짬이 읽는 책이고, 기를 쓰고 읽는 책이지만,
아이의 시험 기간에 하는 독서는 좀 가련한(!) 목적이 있다.
엄마도 안 자고 있어~ 혹은, 엄마도 놀지 않아~ 의 증빙? ^^
아이가 책상 앞에 붙어있는 시간 동안은 TV도, 라디오도, 음악도, 전화도 삼가고
식사와 간식 준비 외에는 책을 붙든다.
덩달아 차분차분 열매를 복용해야 하는 막내까지 큰 아이 시험기간엔 으례 그러려니 하고 책을 잡고 뒹군다.
그러므로 큰 아이가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은, 정신적으로 피곤은 하여도 정서적으로는 참 행복한 기간이다.
 

암튼, 이번에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여러 책들을 독파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우연한 계통에 얽혀들었기에 적어두련다. ...

 

1. <설계자들> 김언수

 

2. 서너달 전에 읽은 책, <심여사는 킬러> 강지영



3. 작년 겨울에 읽은 책,  <METRO 2033> 드미트리 글루코프스키


 

<설계자들>은 자객으로 길러져 자연히 자객의 삶을 담당하다 자객다운 종말을 맞이하는 남자, 래생(來生)의 이야기다.
김언수 작가의 전작, <캐비닛>을 흥미롭게 읽었기에 그의 독특한 발상과 그 발상 하나 하나를 독립적인 이야기로 잘도 엮어내는 솜씨를 이번에도 기대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개인의 일대기와 시대의 상황이 포개져 사뭇 서사적이나, 무겁지 않고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
섬뜩한데도 킬킬거리게도 만들고 서글픈데도 쿨하다.
피가 낭자하게 사람이 찢기고 죽어나가는데도 추접스럽지가 않다. 어딘가 우아하다.
타인의 죽음을 발주하는 의뢰인, 그 죽음을 면밀히 계획하는 설계자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그림자처럼 정보를 수집하는 트랙커,
설계 목표와 수행 방법을 아타쉐 가방에 받아들고 실행하는 자객,
(하급 자객이 뇌물로 긴히 쓰는 '남해명품 죽방멸치1호'...크흐흐흐)
애완동물 소각장을 빙자하여 처리된 시체를 따끈한 골분으로 재창조하는 화장업자, 
그 중앙 사령탑의 구실을 하는 도서관 (구체적인 이름은 아무 맥락도 없이 '개들의' 도서관),
그리고 너구리 영감이 통치하는 도서관의 전통에 맞서는 신흥 괴수, '한자'.  

읽는 내내 돈 삼천만원 때문에 생계형 킬러 세계에 입문한 주부 킬러 심여사가 생각났고,
그와 동시에 '한자 동맹'과 대도서관이 나오는 METRO 2033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렇게 엮어 써본다.
 

<심여사는 킬러>는 매번 얼키고 설키는 인물들의 관계와 아슬아슬하게 쌓이는 살얼음판 상황들에 매번 코허리가 시큰한 웃음이 나왔다.
단칼에 베고 쑤셔서 돌리고 하는 킬러 수업에 성실히 임하는 심여사와, 비장한 각오를 가졌지만 엄마에 비해서는 얼치기 킬러 지망생일 수 밖에 없는 심여사의 아들.
그리고 주 무대가 되는 스마일 흥신소의 유래와 그 안팎에서 벌어지는 승승장구 킬링 판타지~
킬러들이 난무한다고 해서 이 역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거나 암울하지 않다.
잘 만든 베스트극장처럼 산뜻하고 기발한 재미가 있다. 
 

설계자들에서는 죽이는 자들의 직업으로 고전적인 단어인 '자객'을 쓴다.
자객은, 죽이는 자도 죽임을 당하는 자도 그 이유를 모르고 알 필요도 없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일뿐, 모르는 게 어울린다. 말 그대로 암살자이므로.
그러나 심여사는 항상 죽어 마땅한 자들을 처리한다.
그런 점에서 파리 모기 잡는 에프킬라가 떠오르는 '킬러'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반면, <METRO 2033>에서는 '헌터'가 나온다. 사냥꾼.
세계의 마지막 전쟁 이후, 사람들은 지하 세계로 삶과 죽음의 터전을 옮기게 된다.
배경은 모스크바의 지하철역. 각 역들은 독립 국가가 되었고 서로의 필요에 의해 동맹을 맺는다.
그 속에서 주인공 청년, 아르티옴은 최종 목적지이자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책을 찾아 대도서관으로의 모험을 이어간다. 
그 길에서 만나는 거대 쥐와, 대전쟁의 부산물인 돌연변이 생명체들, 온갖 철학을 설파하는 사람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것들과 대적하고 없애며 나아간다는 점에서 헌터와 아르티옴도 자객, 킬러와 닮아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엄청난 사유의 고리들을 던지는 여정이다. 참으로 러시아 작가답다.
그러나 그저 가볍게 읽어도 꽤 재미있다. <나는 전설이다>도 떠오르고, <THE ROAD>도 떠오른다.책을 읽는 동안 복잡한 노선과 동맹 관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지하철역의 지도까지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제일 재미있는 건 김언수 작가가 자객의 존재가 시작된 곳과 모든 의문과 해결이 동시에 담겨있는 곳으로 '개들의 도서관'을 설정한 것과 <METRO 2033>에서 최상위의 가치와 지배 권력의 원천을 대도서관에 두었다는 것이 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설계자들의 래생이 자생적인 독서가가 되어 책을 애장하듯,
메트로의 아르티옴도 인류의 마지막 유산으로 소중히 되는 책을 애지중지한다.

흠...흥미롭다, 흥미로워....후훗~

재미나게 얽혔다는 생각에 괜히 가슴이 뛰어 짧지도 않은 글을 다다다다 써대고 보니
마무리에 와서 뭔가 싱거운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기록해두지 않으면 이 구미 당기던 느낌이 남아날 리가 없다.
그러니 어쩌라구...기록해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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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 - 1st 콘서트 라이징 선 (2disc)[컬러화보집]
동방신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풋풋한 것은, 단지 그들의 앳된 모습 뿐 만이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그들의 애티튜드가, 그들의 몸짓이 모두 풋풋하다. 그러나 풋풋하다고 해서 그것이 어설프다거나 함량이 모자라는 느낌은 결코 아니다. 처음 시작하는 이들의 싱싱함, 신선함을 말한 뿐이다. 

주의할 것은 노래와 춤에 관해서라면 풋풋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지금의 동방신기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라이징 선 공연 때의 그들은 소년에 가깝다. 이제 실력이라면 국내를 넘어 일본, 아시아 최고를 호령하는 그들이고 그 만큼 그들은 그들의 모든 것을 세련되게 연마했다. 누구도 부인 못 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라이징 선 콘서트에서의 그들은 놀라운 노래와 춤 실력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수줍어한다. 공연 중간 중간 그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배시시 웃기도 한다. 팬들을 쳐다보며 내놓고 가슴 벅차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만큼 왔구나....하는 뿌듯함이 이제 막 시작된 첫 사랑에 몰두한 소년같은 얼굴들을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그래서 DVD를 보는 내내 입가에서 미소를 지울 수 없다.  

그들은 하루하루 원숙해지고 완벽해지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 영상이 소중하지 않을까?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거기 있다. 동방신기의 팬이라면 닥치고 완소해야할 것이다. 지금의 동방신기를 처음 보고 좋아하게 된 이들이라면 더더욱이 이 공연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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