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시기, 고민하는 힘을 만나다.

고민이 부쩍 늘어난 시기, 강상중 교수의 강연회를 추천받았다. 강상중, 생소한 이름 이력을 찾아보니 어디선가 한번 본 듯도 하다. 책의 제목이 눈길을 잡아끌지만 다소 망설이게 되는 건 그동안 제목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빈 경우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리라...

일단은 <고민하는 힘>을 주문하고서 기다리는 동안 과연 어떤 내용의 책일까 기대감에 부풀었다. 고민이 고민을 낳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순환, 이런 악순환을 깰 수 있는 방법론이 담겨 있을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기다려지는 이 기분은 뭘까?

강상중 교수는 이 책에서 ‘고민하지 말라’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고민을 더 하라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예전보다 고민이 많이 늘어난 이유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고민의 종류별로 접근해 간다. 각 장별로 저자의 경험부터 일본의 문호 나쓰메 소세키와 20세기 최고의 사회학자라 불리우는 막스베버의 작품세계와 그들의 삶 이야기에 대해 말하면서 고민하는 법을 풀어나간다.

나의 일천한 독서량에 <고민하는 힘>을 읽고도 나쓰메 소세키 그리고 막스베버에 대해 알지 못해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 정도로 이 책에서 이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의 비중은 매우 크다. 책 끝에 두 사람의 연보와 작품을 따로 정리해놓은 것만 보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우선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서부터 보자면 많이 언급 되었던 <산시로>, <그 후>, <문> 흔히 나쓰메 문학의 전기 3부작으로 분류된다는 이 작품들부터 읽어 보기로 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바로 구할 수 있었던 <그 후>부터 읽어 내려갔다. <고민하는 힘>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발전하는 문명속에서도 깊어지는 인간의 고독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데, 주인공 다이스케의 삶은 우리네 현실과 동떨어진 듯 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통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 후>를 읽고 나서 다시 한번 읽은 <고민하는 힘>은 첫 번째 읽을 때보다 조금 더 내 가슴속에 무언가를 남기고 있었다.

고민하는 힘에 고민을 더하다.

강연회가 있던 날, 다른 스케줄을 과감히 포기하고 고민에 고민을 더 해준 강상중 교수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예전에도 와봤었던 고려대학교였지만 5월의 캠퍼스는 유독 활기차고 푸르름이 가득 차 그 전의 느낌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일찌감치 4.18 기념관 지하의 소극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강연회 참석여부를 전화로 일일이 확인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강연회 준비는 조금 소홀해 보였다. 구지 신청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와서 볼 수 있었고, 신청자 전원을 초대할 만큼 자리는 넉넉치않았다. 결국 나중에는 자리에 앉지, 못하는 사람도 생겨버렸고... 하지만 어떠면 어떠랴... 나는 준비상태를 보러 온 것이 아니고 내 고민에 고민을 더 해준 강상중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자 온 것일 뿐이지 않은가?

이내 시간이 되어 소극장에 모습을 드러낸 강상중 교수, 찾아보았던 프로필이나 몇몇 언론 인터뷰에서 보았던 느낌과는 다르게 환갑이라는 나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젊고 세련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일본말로 강연을 이끌어 나갔지만 중간중간 우리말도 섞어서 하기도 했고, 아직 초급수준인 나의 일본어 수준으로도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쉬운 일본어를 구사해서 강연회를 이끌어 가는 강상중 교수의 모습에 배려가 느껴졌다.

간단한 우리말 인사로 시작된 강연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간다.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 이야기부터 일본의 최고 대학이라는 도쿄대학교에서의 앙케이트에서 미래에 자신이 ‘프리타’가 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제법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도쿄대학교 학생들의 출신 성분, 배우자 선택에서도 중요해진 학력 등, 다소 우울한 현대 사회의 단면들을 언급한다. 이런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사회가 봉건화 되고 있다는 이야기, 일본에서는 집권 자민당 의원 30%가 세습으로 정치를 하고 있고, 그 외에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세습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이것은 부모의 부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4.19혁명을 되돌아보면 그때에 나왔던 빈익빈 부익부에 관한 이야기가 수십년이 흐른 지금 다시 고착화 됐다는 것이다. 이후 사회는 급속도로 개인적으로 변화하고 또한 부에 의해 시작부터 대등한 경쟁이 불가능해지게 되고 이에 따라 불안이 증가하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1968년경부터 세계적으로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고도성장의 시기, 젊은이들은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가 있었다고 하며 지금의 현실은 어떠냐며 되물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하여 무관심해 졌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여유가 없어진 현실을 언급했다.

계속해서 흔해진 자살 이야기가 나왔다. 일본의 경우 연간 4000명 이상이 자살로 목숨을 끊고 있으며 이는 시간당 약 3.5명이 죽는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것,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며, 근래 급격한 성장을 하고 있는 인도도 연간 수천명이 자살하는데 이는 인도의 인구에 비한다면 그리 높은 숫자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무시할만한 숫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강상중 교수 자신이 겪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도쿄대까지의 출근길에 전철을 두 번 갈아타는데 자신이 탄 전철에 누군가가 투신해 자살을 한 것이다. 수습을 위해 멈춰선 전철 안에서는 직장, 학교에 늦을까봐 걱정하는 사람들만 가득하며 심지어 “왜 하필 이 시간 이 전철에 뛰어든 것이냐? 나의 출근시간에...”라며 불평을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의 암울한 현실 이야기를 마치며 도대체 어떻게 세상이 이러한 지경에까지 변한 것이냐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19세기 초를 언급했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19세기초에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다. 윌리엄 모리스, 슘페트의 예를 들며 패턴을 깨야한다, 상상을 파괴해야한다고 역설하면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모델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온갖 암울한 현실이야기를 던져서 고민을 안겨주고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물음의 연속이었다. 어떤 식의 고민을 해야 하나 하는 것을 조금 감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강연 중에서 1960년 후반에 시작된 세계적인 고도성장의 시기의 희망, 그리고 공유하는 가치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이런 것이 사라져버린 지금의 나의 개인적이고 개인적인 고민들이 부끄러워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이어진 질의 응답시간에서의 이야기는 다소 짧은 시간이어서 아쉬웠지만 강연에서 듣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마음에 남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는 행복을 찾으려 하지 말고 희망을 찾아라. 행복은 얻으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둘째로는 친구가 소중하다. 진정한 의미의 친구는 찾기가 힘들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의 친구 이야기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어떻게 선택을 했느냐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는데 친구에게 들었던 어드바이스, 즉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그 조언을 해주던 친구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에 와서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는 만약 그 친구가 있었다면 어떤 조언을 해 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선택이 쉬워진다고 했다. 친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과연 내 주위에는 그런 친구가 몇이나 될까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런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강연회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짧은 시간에 너무 옆으로 빠지지 않고 핵심적인 강연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특히나 사회자의 말에 질의응답시간에 강상중 교수가 너무 답변을 길게 해주는 스타일이라 핵심적인 질문을 부탁드린다고 한 걸로 미루어 보아도 짧은 시간이 오히려 핵심을 전해줬으리라....

평소에도 고민이 많던 나에게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과 저자 강연회는 또 하나의 고민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그 고민의 무게는 더 무거워 진 듯 하지만 너무 치졸한 나의 고민들이 좀 더 그럴듯하고 생산적인 고민으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듯도 하다. 다음에도 이런 강연회를 만날 수 있을까 혹은 다른 책으로 만날 수 있을까 확신 할 수는 없지만 그 때에는 좀 더 유쾌한 고민을 하는 나를 기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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