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3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불멸, 그 이름만 들어도 겉잡을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지는 아스라한 존재. 불멸이란 인생의 영광스러운 연장을 담보하는 명예로운 동반자인 것 같다가도, 한편으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처참한 말로를 전시하는 비열한 큐레이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불멸 앞에 작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몸짓은 과연 어떤 형태일까.
본작은 다양한 배경에 놓인 여러 인물 간 경계의 붕괴와 관계의 구축을 조합하며 불멸과 마주한 인간의 실존적 고뇌와 그에 대응하는 여러 존재 방식의 실현을 하나씩 추적한다. 어느 노부인의 몸짓에서 무심코 시작된 이야기는 진중하면서도 경쾌한 사색과 섬세하면서도 집요한 필치의 조화를 토대로 투쟁과 우연, 예술과 감정, 사랑과 육체, 삶과 죽음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어느 순간 그 몸짓으로 회귀하는 아련한 마무리를 선사한다.
전형적인 형식의 서사 구조와 사뭇 다른 서술상의 낯섦과 방대한 영역을 포괄하는 내용상의 스펙트럼으로 인해 이 작품은 평범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온갖 망상의 조잡(稠雜)한 총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쉬이 요약하는 것이 조금은 벅찬 작품임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곳곳에 산산히 흩어져 있던 각종 상징적 장치와 등장인물 간 상호작용이 점차 하나의 궤도를 향해 시나브로 모여드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치밀함은 기존 소설들이 지닌 전형성 이상의 울림을 자아내는 것만 같다.
인간이란 유한한 시간 속에 놓인 필멸적 존재이므로 자신의 삶이 제시하는 거대한 주제 앞에 어쩔 수 없이 취약하며 불멸에 대한 갈망도 덧없을 뿐이다. 한편, 타인과의 필연적인 관계 속에서 인간은 외적으로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를 뿌리치거나 이를 초월하는 일 또한 요원하다. 따라서 자아의 고유성에 대해 제기되는 불멸과 이미지의 회의에 맞서 우리는 오로지 자신만의 몸짓으로 길러낸 물망초 한 송이를 고이 품어야만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부질없는 가운데 적어도 그것만큼은 막중한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기에. (完)
우리는 불멸을 생각하지만, 죽음과 함께 생각해야 함을 망각하는 것이다. - P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