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처는 어디에서 왔을까 - 사랑, 관계, 불안, 벗어날 수 없는 나와 가족의 심리 연대기
산드라 콘라트 지음, 박규호 옮김 / 북하우스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심리학자이자 가족치료사로서 저자가 쌓아온 풍부한 경험들이 꽉꽉 채워져있는 책. 정말 흥미진진하게, 많은 공감을 하면서 그리고 좀 무서워하면서(?) 읽었다. 책장을 넘기며 만나는 다채로운 상담 사례들, 각각의 사람들이 저마다 힘겹게 안고 살아온 삶의 상처와 가족사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 묵직한 무게가 느껴질 때마다 '누구의 삶도, 누구의 가족도 평탄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리고 '심리 분석이나 치료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존경심도 들고.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물론 필수조건이겠지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얼마나 단단한 정신의 내공이 필요할까 싶다. 더욱이 그들의 가족사의 내면까지 들여다보고 통찰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가족은 이글스가 노래한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와 같다.

"당신이 원할 때는 언제라도 체크아웃 할 수 있어. 하지만 절대 떠날 수는 없어."(293쪽)

 

그렇다. 가족이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이다. 내가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든 혹은 증오하든, 얼마나 의지하고 있든 혹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든 간에 가족은 언제나 나 자신의 뿌리깊은 일부인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강력하게, 이런 끈적끈적한(?) 가족의 기대, 책무, 메시지 등을 우리 내면에 품고서 살아가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그 파워가 얼마나 울트라 초강력으로 끈끈한지, 그 과정에서 얻은 치유하기 힘든 상처와 트라우마는 한 사람의 삶 전체 뿐 아니라 그가 다시 이루게 되는 가족 전체, 그리고 세대를 이으면서까지 전이되어간다.

 

나의 과거가 아닌, 내가 잘 알고 있지도 않은 부모의 과거가 내 발목을 잡는다는 것, 꽤 오싹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부모의 트라우마적 경험이 (부모가 그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입 밖에 내지 않더라도) 자녀의 감정 세계로 침투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저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녀들에게서 트라우마의 엄청난 세대 간 전이를 발견한 여러 사례들을 제시하는데, 읽으면서 마음이 아려왔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씻을 수 없는 죄악이, 그 직접적인 피해자들의 정신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과 자손들에게까지 '전염'된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여야하는 것이 슬펐다. 지금도 곡기를 끊고 있는 세월호의 유가족들, 자녀들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상처는 그들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무력감과 공포와 깊은 절망감이 반복되고 전이된다는 사실이 무겁기만 하다.  

 

저자는 '조상이 사회에 대해 죄를 지었든 가족에게 죄를 지었든 이것은 후손의 삶에 마치 저당 잡힌 물건처럼 두고두고 부담이 된다'(288쪽)고 단언한다. 따라서 과거와 대면하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것도, 반대로 과거에 극단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것도 모두 우리 자신의 삶을 방어하고 영위하기 위한 태도인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부모가, 조상이 어떤 삶을 살았든 그 사실은 없어지지 않으며, 나는 그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가 강조하듯, 완전히 건강한 가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애정과 정서적 안정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장하기도 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핍과 문제들을 안고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294쪽)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 짐을 내려놓기 위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날 것을 저자는 우리에게 권한다. 과거의 수치심과 과거의 죄에 눈을 떠야 그 과거를 딛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과거는 더 이상 바꿀 수 없으나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것. 가족사에서 비롯되어 나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바당들일 만한 것과 거부해야 할 것으로 나누어보라는 조언이 마음에 남는다. 그렇게 해서 가족이 나에게 남겨준 긍정적인 유산에 집중하도록 하자. 또한 긍정적인 유산이 별로 없다면 오늘부터 나 스스로가 모범이 되어보도록 하자.

저자가 인용한 파스칼 키냐르의 말대로(책을 읽다가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이 나오는 기쁨이라니!),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끈을 약간 느슨하게 푸는 것. 가족의 정서적 유산을 간단히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나, 이 유산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우리 삶안에 통합시킬 수는 있다. 우리 자신의 단 한 번 뿐인 소중한 삶을 위해.

 

"가족이라는 뼈다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그것을 춤추게 하라."-조지 버나드 쇼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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