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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
미우라 시온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단지 ’청춘 소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생각했다. 지금 내가 그 ’청춘’을 살아가고 있기에...
하지만 처음엔 내가 정말 싫어하는 ’장거리 달리기’를 소재로 했다기에 아쉽게도 그다지 큰 기대를 품을 수는 없었다.
장거리 달리기 중에서도 ’역전경주’라는 조금은 낯선 소재가 가슴 속에 얼핏 기대의 자락을 보일 듯 말 듯 했지만서도...
나는 이 책을 참 힘들게도 읽은 것 같다.
학창시절, 일 년에 한번쯤은 꼭 내가 얼마나 장거리 달리기에 취약한지를 스스로 느껴왔고 또 타인에게 그 모습을 부끄럽게도 보여왔었기에 주인공 지쿠세이소 주민들의 ’달리기’는 그 때의 나를 굳이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왜 나는 그들처럼 달리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랄까 참으로 빠르기도 한 후회랄까...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떠밀려왔다.
작가가 원했던 것이 독자가 그들과 함께 달리고 또 느끼는 것이었다면 작가의 바람은 아주, 충분하게도 이루어진 듯 하다.
그들의 ’달리기’는 나를 그만큼 힘들게 했다.
나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모두 자신이 뛰고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달릴 때의 느낌은 무엇일까?
나도 지쿠세이소 주민들처럼 달리며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을까?
’달리기’를 온전히 그 자체로만 좋아할 수 있을까?
중간 강도의 운동을 30분 이상 계속 했을 때 느끼는 행복함을 일컫는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나도 달리고 싶다... 정말 달려보고 싶다...
’러너스 하이’와 같은 느낌은 아쉽게도 내 머리속에 ’경험’이 아닌 ’단어’로만 기억될 가능성이 99.9%라 하더라도 달리고 싶다.
지쿠세이소 주민들도 처음엔 달려보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도 아직 그 느낌을 온전히 느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고 또 달린다. 무엇을 위한 ’달리기’였을까?
이 소설은 굳이 ’달리기’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역전경주’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쉽고 아름답게 전달한다.
동시에 그들이 자신을 위하여 달리고 또 서로를 위하여 달리는 그 모습을 통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신뢰의 싹을 튀우고, 그 결과가 꼭 1등이 아니더라도 그 싹이 얼마만큼 자라나게 될지, 또 그것이 청춘들의 삶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러기에 단지 ’달린다’는 그 사실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아직 ’청춘’을 살아가는 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 기쁘다.
그들 서로의 전폭적인 신뢰는 그들이 꼭 나를 믿어주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게 만든다.
내 자?? 누군가를 그들처럼 믿을 수 있느냐고...
이쯤에서 생각나는 책 속의 구절이 있다.
’하이지 선배는 믿는다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어떤 말도 거짓말이 되고 말 것만 같다. 그저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전폭적인 신뢰가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믿음을 가지고 의지하는 것의 소중함을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2권 p.296)
지금 나는 어떠한가...나의 ’청춘’은 그들처럼 두근거리고, 뜨겁게도 열정적인가???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청춘’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 느끼는 사람이라면 나와 함께 달려보자.
단지 ’달린다’는 의미를 발로 직접 땅을 밟고 달음질쳐 빨리 오가는 것만으로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든 그냥 무작정 달려보자.
그게 이성간의 사랑이든,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이 시대에 있어서의 취업이든, 또 사람들과의 관계이든...무엇이든 달려보자.
달려서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없다 해도, 꼭 정상에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없다 해도, 우리는 달린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게 될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별 것 아닌 일에 창피하게도 눈물을 잘 보이는 나지만 또 진정 눈물을 흘려야 할 순간에 눈물을 보이는 것에는 인색한 나였다.
그런데 다음 구절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코 끝이 찡~하게 매워 오더니 급기야 슬쩍 눈물을 훔칠 수 밖에 없었다. 보는 사람도 없건만...
지쿠세이소 주민들 중 가장 달리기에 힘이 들었던 우리의 ’왕자’에게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기요세’가 하는 말이다.
"아까 오테마치에서 너한테 했던 말은 취소하겠다. 난 너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여기까지 함께 와줘서 고맙다."(2권 p.104)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찌나 감정이 북받쳐 오르던지...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를 읽게 되었고 또 이 소설이 예쁘게도 내 책장 한 곳에 자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다행스럽다.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만 보면, 마치 바람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곳으로 쉽게 갈 수 있도록 강하게 등을 밀어주는 것만 같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는 진정 제대로 된 ’청춘’을 살아왔는지 나에게 되묻게 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앞으로 내 남은 ’청춘’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한다.
이 느낌을 절대 잊지 않도록 읽고 또 읽어야겠다. 그리고 지금 힘들어하는 내 친구에게 이 느낌을 전달해주어야겠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지금 일본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