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미술의 거장들
스테파노 G. 카수 외 지음, 안혜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 누군가 내게 꿈이 무어냐 물어오면 난 자신있게 '미대 교수'라고 말했었다.

그만큼 그림 그리는 게 좋았고 내가 그린 그림이 학교 복도에 걸려있는 걸 볼 때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가족, 선생님, 친구들의 칭찬...

그렇게 '그림'이란 어린 내게 현재의 행복이자 곧 나의 미래였다.

그러다 차츰 나의 진로에 대해 생각했지만 어쩌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냥 내가 왜 공부를 하고 있는지, 목표가 무엇인지는 잊은 채 남들처럼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아왔다.

그리고 자연스레 어린 시절 가졌던 나의 꿈도 차차 희미해지고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택해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왔다.

 

처음 <유럽 미술의 거장들>이라는 책을 보고선 잊고지낸 그 옛 꿈이 생각났다.

내가 만약 어린 시절 꿈을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다면 이 책 속의 인물들과 그림들이 너무도 친숙했을텐데...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놓친 꿈과 열정들이 머릿속에서 달그락거리며 자꾸 나를 괴롭혔다.

사실 이럴까봐 지금까지 어린 시절 내가 꿈꾸었던 이 분야의 책들은 멀리해왔다.

그런데도 이 책은 끌렸다. 아마도 '거장들'이라는 복수의 개념이 지금까지 잊어왔던, 내가 한때 간절히 만나기를 희망했던 아니 어쩌면 만나기를 회피했던 그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다. 어린아이같은 생각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벅차오르는 감정과 설렘 때문에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는 시간이 무척이나 오래 걸린 듯하다.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과 그림 속 인물들의 삶이 궁금했고 또 그림의 속사정이 자꾸 궁금해졌다.

이 책은 어쩌면 이런 점에서 내게 조금은 실망스러운 책이기도 했다.

조금 빠져들었다 싶으니 또 금방 다음 예술가와 그의 작품으로 넘어가버리고... 좀 허망한 기분이랄까.

속된 말로 왠지 간만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 권의 책 속에 많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담겨있다보니 깊이 있는 이해를 하기에는 역부족인 듯싶다.

그리고 미처 책 속에 담아내지 못한 몇몇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어떤 작품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함에 대한 욕구를 그만큼 해소해주지 못해 아쉬웠다.

 

그런데 사실 어쩌면 내가 이 책에 느낀 실망감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생소한 화가들과 어려운 이름들 그리고 미술 용어들이 별다른 설명없이 나열될 때에는 내가 이러면서도 꿈 꿀 자격이 있었나...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이 책은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더 만족스러운 책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지나간 과거로 치부하고 미술에 대한 관심을 끊어왔던 결과가 바로 오늘 이 책에 대한 실망감으로 비춰진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을 보면서 화풍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또 개별적으로만 생각해왔던 유명한 화가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의 영향을 받으며 작품을 완성해 왔는지에 대해 누군가의 설명을 보고 또 그림을 통해 직접 확인하니 그 재미가 쏠쏠했다.

몇 년간의 노력을 기울인 작품들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 작품들 하나하나에 예술가들의 열정이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깊지는 못하더라도 작가의 생애와 작품들의 배경에 대한 지식도 쌓을 수 있었다.

이제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미술에 대해 어렵게만 느껴왔던 그 누군가가 있다면 나처럼 어서 발을 담그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발을 담그기는 그리 어렵지 않으니 시도라도 해보길...

 

사람들이 왜 미술관에 서서 한 작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나름대로 그 작품에 대한 각자의 해석도 있겠지만 그 그림 하나에 예술가의 인생이 담겨있고,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담겨있기에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지는 게 아닐까.

<유럽 미술의 거장들>을 읽으면서 미술 작품 하나로 나와는 다른 시대와 문화를 살아갔을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어느 한 작품이 마음에 든다고도 할 수 없었다.

세기를 뛰어넘어 살아숨쉬는 그들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리고 그 작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의 예술가의 열정을 생각하니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멋있다. 그리고 직접 보고싶기도 하다.

훼손된 작품, 미완성된 작품까지도 오히려 예술적으로 느껴졌으니 내가 이 책에 푹 빠지기는 했나보다.

 

책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어제 잠시 들렀던 서점의 한귀퉁이에 적혀있던 '아름다움이란 그대의 서재에 책을 채우는 것이다'라는 말이 참 인상깊었는데 오늘 문득 서평을 쓰며 생각해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너무 멋진 말인 것 같다.

물론 책을 구입하라는 서점의 유혹(?)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 내 책장에 꽂힌 <유럽 미술의 거장들>을 보니 내 가슴 속 한구석에 비어놓았던 나의 꿈도 조금은 채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차곡차곡 내 서재를 채워가며 새로운 내 꿈도 채워나가고 싶다. 그럼 나도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시간들을 그릴 수 있었다.

예술을 '하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예술을 '즐기는 것'도 멋지지 않은가.

비록 '하는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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