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리의 말 - 제16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다카야마 하네코 지음, 손지연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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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그녀를 한국 사람으로 착각하고 길을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그녀는 오키나와 섬 출신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제주도에 온 일본인 유학생이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이 만남을 계기로 친분을 쌓아오다 공부를 마치고 오키나와로 돌아간 그녀에게 일본어 번역을 맡기게 되었다. 그 뜻밖의 인연이 이 책의 서평단이 된 계기가 되었다. 서평단 신청의 동기는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는데, 친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일본의 아름다운 섬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슈리의 말]은 역사, 문화, 상상력의 실타래로 촘촘히 짜인 이야기이다. 오키나와, 자료관, 온라인 퀴즈, 미야코산 말(horse) 등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아름다운 역설의 서사. 독자는 작가의 상상력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시간 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이 책을 읽는데 필요한 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이 책은 '기록은 희망이다'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의 과거, 문화, 언어를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주고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의 이야기, 경험, 지식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오키나와의 역사와 기록의 중요성은 이 책의 중심 주제로 작가는 오키나와의 현재를 형성한 사건과 경험을 조명하면서 이 섬의 복잡한 과거를 탐색하면서도 끝까지 거리 두기를 한다. 왜일까? 왜 역사와 거리 두기를 하는 걸까?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작업은 단조롭기 그지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새로울 필요도 없다. 눈길을 한 번이라도 더 준 자료는 그 가치가 배가 된다. 설령 그것이 단조로운 스탬프를 찍는 일에 지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조정래 [아리랑]을 읽으며 오키나와는 원래 일본이 아니었다는 정도와 일본의 '하와이'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더 자세한 오키나와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독립국이었던 류큐 왕국은 메이지 시대 일본에 강제병합되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격전지가 되었다. 패전 후에는 30년 가까이 미국의 점령하에 놓였다. 왠지 낯설지 않은 스토리다.

 

이런 역사를 가진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상상력의 끝판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에는 과거가 현재에 남긴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들여다보는 고독하면서도 심오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2019년 10월 슈리성이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어쩌면 슈리성의 기억을 담은 귀중한 기록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콩나무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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