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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에 귀 기울일 때 ㅣ 푸르른 숲 43
안드리 바친스키 지음, 이계순 옮김 / 씨드북(주) / 2023년 8월
평점 :
인생에는 우리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순간, 우리의 관점을 미묘하게 변화시키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바로 그 서점에서 일어났다.
익숙한 책장 넘기는 소리와 부드러운 대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내 눈은 전혀 새로운 장면에 끌렸다. 한 선배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장면은 이전에 목격했던 것과는 달랐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웃음소리나 속삭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은 우아하게 춤을 추며 허공에 이야기를 그렸다. 수화를 처음 접한 순간이었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동안 이 침묵의 언어는 동작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의 공감 능력과 포용성은 말 한마디 없이도 모두 전달되는 듯 보였다.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광활한지, 그리고 모든 개인이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과 이해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날 나는 책 더미와 갓 인쇄된 종이의 향기 속에서 공감과 이해, 그리고 수화의 조용한 교향곡에 대한 소중한 교훈을 배웠다.
[적막에 귀 기울일 때]는 우크라이나 아동소설로 2015 BBC 우크라이나 올해의 책 선정작이다. 가장 혹독한 역경에 맞서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위안을 찾는다는 열네 살 피아니스트 세르히의 이야기이다. 열네 살에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청력까지 잃는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경험한 세르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한때 사랑했던 선율을 들을 수 없게 된 피아니스트.
청각 장애인을 위한 기숙학교로 보내진 그는 침묵의 세계에 빠져 슬픔과 새로운 현실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인생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작은 희망의 불꽃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세르히에게 그 불꽃은 야린카라는 아이였다. 두 사람의 유대감은 말을 초월하는 특별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피아노라는 아름다운 언어를 통해 연결되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서사를 표현했다. 야린카는 세르히에게 위로와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세르히가 어느 정도 평화를 찾기 시작할 무렵, 또 다른 어려움이 닥쳐온다. 과거에 문제가 많았던 야린카의 아버지가 감옥에서 출소하면서 야린카를 데려간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던 어린 세르히에게 이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는 야린카가 두려움에 홀로 맞서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로 결심하게 된다. 기숙학교를 뒤로하고 그는 순수한 의지와 사랑에 이끌려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불운한 소년의 시련과 고난의 이야기이며 인간 정신의 회복력, 음악의 아름다운 힘,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이 등을 돌린 것처럼 보일 때에도 과감하게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는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 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책과콩나무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