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역사 3 - 군상(群像):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 땅의 역사 3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땅의 역사3 군상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은 조선일보에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연재중인 여행전문기자가 쓴 책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수험서로는 불량하고, 교양서로는 불온한 책이다.
학교에서 배운 조금은 지루한 역사가 아니라, 작가가 직접 땅을 밟고 찾아낸 역사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책이다.

작가의 말에는 이책을 읽는 법, 대하는 방법이 나와있다.
참고로 나는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글을 썼는지, 어떻게 이 책을 대하면 좋을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조선시대에 벌어졌던 여러가지 일들에 관한이야기다. 필터로 맑게 걸러낸 ‘찬란한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 필터에 남아 있는 찌거기들을 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거나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은폐됐거나 왜곡 되었던 참 많은 군상들의 민낯을 대면하려고 한다.

묙차는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정치와 정치인(사람이 하늘이니라)
2장 개혁과 반동(소리내어 울 곳이 없구나)
3장 전쟁과 군상(장엄했으며 처절하였니라)
4장 상남자(그 발자국기 너무도 깊으니)

영조시대에 많은 고문과 형벌이 폐지되었다. 인두로 발바닥을 지지는 낙형과 사금파리 더미 위에 꿇어 앉힌뒤 피의자 무릎을 바위로 짓이기는 압슬형이 대표적인 잔혹형벌로 인정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사금파리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깨진 사기 조각 이다.)
포도청에서는 주리를 트는 전도주뢰형 또한 금지되었다.
그런데 영조보다 앞선 숙종때, 박태보(1654~1689)는 하나만의 고문으로도 무서운 이 형벌을 하룻밤 만에 한꺼번에 받고 죽었다.

도대체 어떤 그 죄를 지었길래 그는 그토록 끔찍한 형벌을 한꺼번에 그것도 하룻밤만에 받고 죽었을까?
설사 대역죄라 할지라도, 사람에게 이렇게 잔혹한 형벌을 내린 왕은 어떤 심정으로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형벌을 가했을까?

1674년 8월 18일 현종이 죽고, 열세 살의 숙종이 왕위를 이어 받았다.
이 가운데 기사환국은 희빈 장씨와 왕비 민씨(인현왕후)에 얽힌 사건이다.
숙종은 왕비 민씨와 혼인 후 8년 동안 아이가 없었고, 태어난지 석달 된 후궁 장씨의 소생 아들 이윤을 적장자로 선언하고 장씨를 희빈으로 삼았다.
남인은 희빈 장씨를 지지했고, 노론은 왕비 민씨를 지지 했다.
집권세력인 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숙종은 야당인 남인을 등에 업고 이를 강행했다.
주요관직의 노론을 대거 몰아내고 남인으로 채웠다.
그해 4월 25일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져 있던 서인 86명이 연명으로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총애하는 여자와 고대하던 아들을 반대하는 상소를 젊은 박태보가 대표로 집필한 것이다.

숙종은 삼경(오후11시~오전1시) 전에 인정문 앞에 형구를 준비하라고 명하고, 내시는 한방중에 준비가 불가능하다고 하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친히 국문하겠다고 친국을 강행했다.
박태보는 누가 썼냐고 물으면 반드시 내가 썼다고 하라고 당부했다.
이미 왕은 기필코 죽이려는 의도가 보인듯 박태보에게 낙형과 압슬형(열세번 짓이기고 지지는 걸 1회로 침)모두 스물여섯 차례 몸이 지져지고 무릎이 짓이겨졌다.
박태보는 살가죽과 살이 문드러지고 벗겨져 피가 얼굴에 가득 흘러도 오히려 얼굴을 바로 잡고 안색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목숨만 살려달라는 영의정 권대운의 상소에 숙종은 박태보에게 진도 유배형을 내리고, 강을 건너 노량에 닿아 그곳에 머무르며 아버지 박세당이 “어쩌겠느냐. 그저 조용히 마지막을 빛내라”고 어루만졌다.
박태보는 “가르침을 좇겠다”고 답하고 아버지가 울면서 나갈때 숨이 끊어졌다 한다.통제가 없는 권력이 보여준 야만성과 권력과 결탁한 자들이 야만 앞에서 보인 비겁함이 만든 잔혹사였다.

잔혹한 고문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박태보라는 위인이 있었다.

연산군의 폭정에 대신들이 기생은 공물이며 논쟁은 금지라는 말에 “지당하십니다”를 외치기 두 달 전 환관 김처선이 죽었다.
김처선은 “임금 네 분을 섬겼지만 전하처럼 행동하는 이는 없었다”고 연산군에게 직언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연산군은 그를 화살로 쏴 넘어 뜨리고 다리를 잘라버리고는 일어나라고 명했다. 김처선은 “상감은 다리가 없어도 걷소이까”라 힐난했다. 연산군이 그 혀를 잘라버리고 배를 발라버렸는데, 죽을떄 까지 말을 그치지 아니하였다.(조신, 소문쇄록기록, 1525) 그의 최후에 대한 기록은 이게 전부다.

정선은 인왕산 골짜기에 살았다.
상놈은 아니었지만, 명문도 아니었다. 영조는 정선의 그림을 좋아했다. 과거에 합격하지 않고 학문에 뛰어나지도 않은 이 화가를 영조는 끝까지 지원해주었다.
지방 현감도 세차례나 시켜주었다. 세자 때 부터 이름을 들어 알고 있던 이 화가를 영조는 이름 대신 겸재라고 꼬박 꼬박 호를 부르며 가까이 했다.
그의 그림은 근졸하다. 화려하지 않고 질박하다.
상상 속 장소 대신 눈 앞 개울과 앞산을 그린다. 들로 산으로 나가 정치를 보이는 대로 그린다. 그 사실적인 스케치에 보일 듯 말 듯 기교가 섞여 들어가, 많은 사람이 ‘조선 진경 산수’라 부르는 독특한 화풍이 창조 됐다.

땅의 역사 3에는 우리가 아는 위인, 이름이 생소한 위인도 등장한다.
그 사이 존경스러움이 느껴지고, 간사함에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역사에 대해서 무지하지만, 땅의 역사를 통해, 우리땅에 얽힌 진실의 역사를 배우고, 생각하는 시간들 이었다.
이책 한 권쯤은 곁에 두고, 오래도록 묵히면서 읽고 또 읽고 싶은 책으로 추천한다.

이 책은 수험서로는 불량하고 교양서로는 불온하다. 이땅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이 책은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조선시대에 벌어졌던 여러 가지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필터로 맑게 걸러낸 ‘찬란한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책에서는 그 필터에 남아 있는 찌꺼기들을 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거나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은폐됐거나 왜곡돼왔던 참 많은 군상들의 민낯을 대면하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