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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용설명서 - 단 한 번뿐인 삶을 위한 일곱 가지 물음 인생사용설명서 1
김홍신 지음 / 해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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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시장'이란 소설로 명성이 자자했던 작가이자 한때 잘 나가는 정치인(8년 연속 의정평가 1위 국회의원)이었던 저자 김홍신은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인물이다.

그런 저자가 '인생사용설명서'라는 일종의 인생학/성공학 류의 책을 썼다는 사실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저작이유인 즉슨 주변에 즐비한 가전제품에도 각자의 사용설명서가 다 있는데, 정작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에 대한 설명서는 없다는 거다.   

분량이 적은 관계로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이 책은 가볍지만 무겁고 소탈하나 유려한 문장들로 가득차 있다. 신분과 지위, 학력과 경력, 사상과 철학, 수입과 재산, 그리고 가치관과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들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 함께 수긍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생'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아닐까? 돈이 많거나 적거나, 진보거나 보수거나, 배웠거나 배우지 않았거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자식을 걱정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한정된 인생을 사는 우리. 태어나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즐겁고 기쁜 인생의 메뉴얼은 과연 무엇인가? 유사 이래 늘 똑같은 고민이 반복되어왔지만 어쩌면 영원히 속 시원하게 풀 수 없는 난제가 바로 이런 물음들이 아닐지... 

"인생을 참 잘~ 살았다"는 어른들이 머리를 맞대어 인생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사용설명서'를 만들어 준다면 어떨까? 또 잘 못살았다고 생각하는 중늙은이의 인생을 '애프터서비스'해줄 순 없을까? 단지 인생은 설명서대로 살 수 없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남을 의식치 말고 현재를 치열하게 살라"고 주문할 뿐이다. 

<예비 독자를 위한 비포 서비스 : 기억에 남는 문장과 생각거리>      

"결국 열등감이란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들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짊어지고 괴로워하는 갈등입니다. ... 열등감은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욕심은 두 가지 모순된 욕구를 한꺼번에 채우려는 데서 커지는 것이지요."(21쪽) 

-> 인간의 모든 고통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노/장자의 무위자연 속에서 살 수 없는 세속의 인간은 결코 욕심을 버릴 수 없다. 욕심은 바로 열정과 성취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정한 수준의 욕심과 그것의 충족 수준,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인생 또한 그렇습니다. 힘들 때는 힘든 쪽으로 집중하고, 고통스러울 땐 고통스러운 쪽을 살피고, 사랑할 때는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고, 시험 볼 때는 공부에 치중하고, 병들었을 때는 치료에 정성을 다하고, 갈등에 싸였을 때는 얽힌 타래를 풀기위해 정신을 가다듬어야 합니다."(60쪽) 

-> 사람들은 도래하지도 않은 미래를 불안해 한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기면서 살기에도 벅찬 인생을 걱정하고 후회하면서 보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매순간 즐겁게, 치열하게 살 수 없는 것일까?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현재'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돌산에서 깨뜨린 돌은 칼날이나 송곳처럼 뽀족하고 날이 서 있습니다. 수만 년을 파도에 씻겨온 조약돌처럼 변하려면 돌과 돌끼리 쉼없이 부딪어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모난 곳이 모두 닮아 구슬처럼 둥글어집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고 사람과 세상이 어울려 살려면 어찌 부딪히지 않고 어찌 충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128쪽)  

-> 반목과 갈등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일 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회피하거나 숨기려고 한다. 만약 다리에 상처와 고름이 생겼는데 이를 치료하지 않고 그냥 덮어두면 어떻게 될까?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가 깊어지고 고름이 곪아 썩게되면 다리 전체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은 아프고 힘들지만 고름을 짜고 상처를 치료하면 다리는 다시 건강한 상태로 회복된다. 어쩌면 반목과 갈등이란 우리사회의 아픈 부분을(그래서 치료가 필요함을) 알려주는 정상적인 신호일지도 모른다. 

"어째서 나는 용서받기를 원하면서 다른 사람은 용서하지 않고 그 때문에 괴로워합니까?"(152쪽)  

->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끝없이 엄격한 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더 큰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약자에 약하고 강자에 강한 '외유내강'형의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돼지의 엔도르핀 1밀리그램을 추출하여 해산하는 여인에게 주사하면 고통이 사라진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엔도르핀의 가격은 무려 2천만 원을 호가한다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엄청난 양의 엔도르핀이 생성된다고 합니다."(184쪽) 

->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만이 치유할 수 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사람은 사람에 기대어 살아야 한다. 삶을 사람답게 사는 것이 가장 사람다운 삶이다. ... 평화적이고 신사적이며, 무조건적이고 비계산적인, 순정과 열정으로 가득찬 이성에 대한 사랑을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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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問 라이브러리 3
최장집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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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표현이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87년 체제 이후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 이후에 한국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는가? 

신자유주의와 경제성장, 실용과 효율성의 강조가 현 정부의 지상목표가 된 현실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후에 질적으로 더 타락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허약한 시민사회 때문인가? 미약한 정당체제 때문인가? 역설적이게도 저자(최장집 교수)는 민주주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왜일까? 

한국 민주주의 연구와 정당정치 연구의 대가인 저자는 일관성있게 '민주주의의 제도적 강점'과 그것의 '제도화를 위한 정당정치의 공고화'를 강조한다. 이에 비판적인 반론자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저자가 고초(월간조선 사건)를 당한 바 있듯 저자의 성향과 이론이 소위 친북/용공/불순/좌경세력의 발로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언급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현실정치에 참여의식을 가진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공감하는 반론으로, 현실적인 구체성이 담긴 실질적 대안을 말해달라(So what?)는 것이다. 예컨대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고착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정당정치의 공고화에 있다면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일반시민들이 선거 투표참여 외에 정당과 소통할 수 있는 묘안이 있는 것인지? 또 정당의 민주화는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속시원하게 답하지 못하면 진보의 무능을 공격하지 말라는, 일종의 '불편함에 대한 표현'이 이에 속한다. 

본인 또한 어느 정도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으나 언젠가 저자가 말했듯 "학자는 글(논문)로써 말하면 된다"는 생각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은 단지 학자가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자신의 이론적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으로 참여의 역할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학자 본연의 임무는 연구의 결과로 사회현실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며, "이때 비판은 반드시 대안을 수반할 책무를 지지 않는다"는 것이 논지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해 단일 행정체제에 대한 귀속력 및 결속력이 미약하고, 정당정치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라는 거대한 문화적 제재하에 놓여 있다. 또한 바쁜 일상 속의 원자화된 개인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연대에 무관심한 편이며, 연대한다해도 목표가 불분명하다. 절차적 민주화는 대부분 달성되었고, 신분제도는 폐지되었으며, 인종과 연령, 성별에 따른 차별도 거의 부각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장질서에서 개인의 주된 관심사는 경제적 이익에 있고, 이를 위한 노동의 연대 역시 경쟁의 원리에 밀려나고 있다. 이런 냉엄한 현실의 무대 위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이상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 모두 함께 고민해봐야 할 숙제다. 

머리말에서 밝힌 바 있듯 이 책은 저자의 최근 인문강좌와 게재/발표문 일부를 정리한 수준의 글집이다. 그래서인지 단행본으로 보기에 내용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해서 아직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았거나 글을 접하지 못한 예비독자를 위해 책 내용의 일부(생각거리)를 소개하는 것으로 리뷰를 마칠까한다. 

"한국 정당의 균열축은 민족문제를 둘러싼 한 수준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갖지만 사회경제적 정책이라는 다른 수준에서는 이렇다 할 차이를 갖지 않는 애매한 이중성이 중첩돼있다(70쪽)."  

-> 주류 여당과 야당은 두드러지게 차별적인 정강 및 정책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한국의 기성 정당은 계급적 이해관계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가? '포괄정당(catch-all party)'의 집권은 현대 정치사회의 보편적인 현실인가?

"흥미 있는 것은 정치적 정당성을 갖는 민주정부들에서조차, 정부의 집권세력들 스스로가 그들의 정당성이 약화되는 것처럼 인식하면서 성장주의 기치를 더욱 높게 들게 된 것이다. 요컨대 민주주의 실질적 내용에서는 재벌 중심-노동 배제를 핵심으로 했던 권위주의와 커다란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73쪽)." 

-> 대통령은 정치가(여당 대표)인가? 행정가(행정 수반)인가? 후자라면 치우침없이 다양한 의견을 골고루 수렴해야 하는가? 그래야 한다면 정권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정치적 이상과 행정적 현실은 연계되기 어려운 것인가? 이상적인 대통령은 현실적인 관료들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인가? 집권 전과 집권 후가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의 통제로부터도 자유로운 자율성을 갖는 관료체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문제는 민주주의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만약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국가관료기구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면 왜 민주화가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면서 민주주의 무용론으로 확대해석될 수 있는 결과를 낳는다(84쪽)." 

-> 갈수록 비대화되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사법부, 군부, 행정부 관료 등)'의 위험은 누가, 어떻게 견제해야 하는가? 그들은 누구와의 계약으로 공공의 영역에서 공동의 사무를 관장하는 것인가? 그들이 수행하는 공무가 곧 '공익'인가? 직업으로서의 관료(현실사회에서 대부분 '갑'의 위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절차적 수준의 실천과 그 실천을 통해 민주주의가 특정의 내용을 갖는 실질적 수준의 민주주의라는 두 개의 궤적이 상호교호하면서 발전하는 정치과정이다. 따라서 두 과정이 분리되어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복합적 과정인 것이다(89쪽)." 

-> 절차적 민주화 없이 실질적 민주화가 가능한가? 반대로 실질적 민주화 없는 절차적 민주화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절차적 민주화는 실질적 민주화를 위한 기본 전제인가? 전자가 후자 생성의 필연적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는가? 

"... 대통령제가 갖는 중요한 단점 가운데 하나는 후앙 린츠가 강조하듯 승자독식의 원리에 있다. ...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켰던 지난 대선에서 그의 득표는 과반에 이르지 못했고, 더욱이 기권을 포함한 총유권자 기준에서는 30%밖에 획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통령과 현임정부가 자신의 권력이 국민의 3분의 1만을 대표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120쪽)."    

-> 결선투표제 없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하에서 대통령이 전체 민의를 대변할 수 있는가? 유권자 1/3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전체를 상대로 통치할 수 있는가? 나머지 유권자의 민의는 누가, 어떻게 대변하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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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집중법 -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의 성공 비밀 직장인을 위한 최강 시리즈 4
라이프 엑스퍼트 지음, 박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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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재미있는 만화책을 읽으면 지루하지 않을까? 왜 밤새 애장품 장난감을 조립해도 힘들지 않을까? 왜 마음이 맞는 사람과의 대화는 빨리 시간이 지나갈까? ...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종종 '지루함'과 '산만함'이라는 존재를 발견한다. 문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어떤 성과를 내야 하는데, 좀체 재미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론인즉슨, 왜 우리는 쉽게 산만해지는 것일까? 왜 정신을 차리고 집중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의문에 해당되지만 실제적 해답은 모두 제 각각일테다. 그럼, 이 책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최강 집중법: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의 성공비밀"이란 거창한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의 구입에 집중한 결과는?  

우선, 참 빨리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집중의 결과라기보다- 무척이나 날씬한 책의 몸매에 있었다. 자기계발서 특유의 문장간격 늘리기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안그래도 쾌적한 내용구성을 자랑하는 이 책이 (너무나 친절하게) 그 내용을 다시 한번 표로 정리해준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저자에 대한 소개도 눈길을 끈다. '라이프 엑스퍼트'(Life Expert)라니... 다양한 고민과 불안을 안고 있는 현대인에게 이상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두뇌집단이란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만나,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지에 대한 소개는 인색하다. 단지 옮긴이가 '최강 공부법'과 '최강 속독법'을 번역한 것으로 안내되니 이책 역시 비슷한 류의 시리즈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경기에 집중하기 위한 선수의 마음가짐' 정도로 소개되어야 하지 않을까? 곳곳에 언급되는 사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일본 야구선수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선수들(또는 그 관련자들)이다. 물론 그들의 정신세계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까칠하게 이의를 제기할 이유는 없다. 다만 관심사와 전공분야가 다르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일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책은 너무나 기본적인(?) 내용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문제는 -제목으로 추론컨대- 기대 독자층이 학생이 아닌 직장인이라는 것이고, 그들은 이미 연륜이라는 이름의 사회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최강 집중법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저작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한다면...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하는 현상을 전문적인 의학용어(카테콜아민, 아이코사페나엔산, 비타민B12 등등)를 빌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싶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적어도 흥미와 집중이라는 현상이 정신의 산물만은 아니며 생체의 원리에 기인하는, 일종의 생리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신의 비법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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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하는 진보
지성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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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년으로 유명한 고려대 염재호 교수(행정학)와 함께 '얼짱교수'를 대표하는 서울대 조국 교수(법학). 그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출중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책 제목 그대로 그는 매우 신중하게, 때론 조심스럽게 진보를 성찰한다. 물론 그 전제에는 역사와 사회가 반드시 진보한다는 믿음,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진보적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명, 보다 성숙하고 역량있는 진보주의로 거듭나야 한다는 애정이 곁들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집권 10년 동안 우리는 '진보의 무능'에 대한 갖가지 공격을 목도해왔다. 수사(rhetoric)의 난무, 허황된 담론, 위선과 교만, 무능력과 무책임함, 그리고 도덕성의 와해에 이르기까지... 진보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큰 만큼 우리는 그것의 실망과 좌절을 더욱 아파하며 새로운 진단과 처방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왜 진보가 근거없는 악랄한 공격을 받았는지 정당방위(자위)하거나 이래서 진보가 문제였다는 자아비판(자조)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후자의 입장에서 진보의 문제를 진단하고, 나아가 진보의 미래를 처방할 것이라는 기대와 호기심때문이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에겐 미안하나- '시시하게 끝난 경기'를 관전한 느낌이었다(허나 아무리 '밋밋한 에세이'라 할지라도 저자의 사색과 고뇌가 담긴 흔적에 대해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다). 

정치개혁, 사회/경제개혁, 인권, 평화와 통일, 법률개혁, 대학개혁, 여성운동,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저자의 성찰이 담긴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여러 언론매체에서 발표한 칼럼을 보완하여 출판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기대했던 과격함(?)이나 신랄함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저자가 현직 국립대학 교수신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래야 할 것 같다"는 식의 이른바, 당위에 대한 설명도 점잖은 선비의 훈수 정도로 받아들이기에 큰 무리가 없다. 어느 노학자의 말처럼 각자의 역할이 있고, 학자는 글로써 말하면 되니까...  

문두에 저자가 조심스럽게 진보를 말한다 했지만 그가 처해있는 현실적 상황의 범위를 고려하면 되려 진솔하고 대담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대체로 정치색의 표출을 부담스러워하는 교수사회와 다소 엄격하고 보수적인 법학계의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책의 후반부에는 386출신으로 치열하게 시대의 모순을 고민했던 흔적이 역력하게 나타난다. 사실 전반부에서는 -자신을 버리면서 사회를 위해 몸을 던진- 학생운동을 뒤로한 채, -"장차 그 자리에 올라서 개혁하겠다"는 미명 하에- 고시나 유학을 준비했던 이의 (해명 정도로 생각했던) 모습이 후반부로 갈수록 실천하는 지성,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으로 변해갔다고나 할까? 

책의 에필로그에서 그는 "군사독재에 봉사하는 육법당의 일원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법학 공부를 뒤로한 채 학생운동 대열의 중간에 서서 사회과학 및 근현대사 공부, 교내외 시위, 법대 편집실 활동, 농촌활동 등을 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실제로 그는 최연소로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했고, 20대에 울산대 교수로 임용된 기득권(?) 학자였지만 사노맹 활동전력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이후 국제앰네스티는 조국 교수를 양심수로 지정하였고, 집행유예 선고로 석방된 뒤 늦은 미국유학길에 오른다). 

재론하면 저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살펴본 책의 내용은 밋밋하기 그지없지만 그가 처한 현실적 상황에서 헤아려보면 "신념에 찬 용기있는 주장으로 가득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저자는 젊고, 이상은 푸르며,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기여할 일이 많다. 그래서일까?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조국 교수가 할 일이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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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대한민국, 유시민을 말하다 - 함께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 사람
박찬석 외 지음 / 미디어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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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막연한 느낌이었다. 노무현에게서 보았던 바보스런 고집이 느껴지는... 노통 사후의 정신적 공황과 정치적 허무함에 대한 탈출구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연구자료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 

전반적으로 책 자체의 질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사실적인 해석이다. 그를 믿고 지지하는 전문가들(주로 예술계통 교수)과 일반인들(인터넷 활동가)의 인물비평과 인물연대기, 유시민 어록을 정리한 정도의 기술수준인데, 가장 반가왔던 것은 명문으로 알려진 '항소이유서'("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매듭말로 유명) 전문의 첨부였다. 

서슬퍼렀던 시절에, 권력의 시녀였던 재판정 앞에서(당시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구속), 그것도 삶의 무게가 얼마나 고단한지를 깨닫기도 전인 이십대 청년이 이토록 절절하게 가슴을 후벼파는 통한의 글을 쓸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은 단지 순진한 지식인의 정권 비판만이 아니었다. 양심을 신념으로 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용기있는 한 청년이 가슴으로 조국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독일 유학을 마친 그는 학술진흥재단에서 잠시 기획을 했고, 이후 방송 토론활동을 거쳐 정치인, 정무직 공무원의 길을 걸었다. 

그에 대한 비판은 "옳은 말도 싸가지 없이 한다"는 말로 잘 표현된다. 그런데 이 문장을 잘 분석해보면 일단, 그가 "올곧은 말을 한다"는 것은 기본전제로 인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기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문제는 "싸가지가 없다"는 것인데, 그것은 곧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려는 태도와 접근방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이런 비판자들이 여당 내에도 상당히 포진하고 있고, 심지어 민주화의 투사들이라는 386세대들조차 상당부분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국회 등원과정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캐주얼 자켓과 면바지 패션이 왜 쇼맨십으로 공격받았는지를 반추해보자. 

나는 오히려 그의 튀는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그냥 상식과 정도가 통하는 그런 정상적인 사람(?) 같았다. 우리는 통상 자신이 소속된 조직에 대한 충성행위를 통해 영위를 보호받는 위치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도 조직의 요구라는 이유로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곤 한다. 

같이 배우기 위해 모인 또래의 학생들도 '선배'가 만든 문화와 관습에 대해서 -설령 그것이 악습이라 할지라도- 별 다른 저항없이 받아들이고, 보통의 회사원들도 직장 '상사'에게 생계형 아부를 남발하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소소하고 평범한 우리네 일상은 그 영향력과 파급범위에 있어서 공공의 장으로 확장되기 어렵다. 

우리가 흔히 공인이라고 말하는(실은 정확한 공인의 정의에 부합되지 않는다) 연예인, 그 중에서 개그맨의 예를 들어보자. 개그맨의 실력은 개그의 빵빵터짐(관객호응도를 뜻하는 은어)에 있고, 그 평가 역시 방청객의 냉정한 판단에 의해 이행된다. 만약 개그실력이 없고, 그에 따라 빵빵터짐도 부족한 선배 개그맨이 개그실력이 농후한 후배 개그맨을 질시하여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  겸손한 복종과 알아서 기는 눈치를 요구한다면? 

또 다른 적절한 예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공중파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동료를 향해 "OO선배님", "OOO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왜 적절하지 못한가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물론, 아나운서들은 "OOO씨"라고 호칭한다). 연예인과 정치인. 이 둘의 관계와 성격은 어떠할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공중파에 자주 노출되는 이 둘은 대중의 사랑과 지지가 곧 존재이유가 되는 사람들이고, 사생활에 대한 구속력이 강하다는 의미에서 공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연예인과 정치인의 공적 영역에 대한 영향력 내지 파급력은 실로 엄청나다 할 수 있다. 

여기서 드는 생각 하나, 정치인은 대중(유권자라 해도 좋고 국민이라 해도 좋다)을 의식해야 하는가? 재선/삼선의 선배의원을 먼저 의식해야 하는가? 만약 소속정당과 선배의원들에게 낙인찍힌 한 정치인이 정작 유권자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는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바로 이 점이 유시민을 주목하게 만든 이유다.  문두에 '그냥 막연한 느낌'이라고 했지만 그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정치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단번에 파악하는 동물적인 정치감각, 정상적인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른 정의라는 인식의 영민함.  

잠시 그의 이력을 지켜보면 개혁국민정당의 포기(아직도 아쉬운 부분이다) 이후 열린우리당의 용맹한 당원으로 활약했고, 무엇보다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보건복지부 장관직의 수행이 아니라(솔직히 말하면, 이대팔 가르마가 어울리지 않는 그의 위치를 잘 말해주었다) 노통 임기말의 정국 대처방법이었다. 

모두가 노통을 조롱하고 공격할 때 묵묵하게 곁을 지킨 인간적 의리, 때때로 그를 위해 충실하게 변론했던 정치적 신의, 잘못된 것을 당당하게 시인하되 억울한 공격에는 냉철하게 반응했던, -주류가 보기엔- 바보같은 대응태도가 오히려 인상깊었다고 하면 억지춘향격일까? 

하긴,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출마하면서도 무엇이 그리 부끄러웠는지 선거포스터 밑자락에 조그맣게 당의 심볼을 새겨넣은 사람들, "그래, 노통이 잘못한게 있다. 잘못된 것은 지금 심판받겠다. 대신 제대로 할테니 다음에는 밀어달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사람들, 끝까지 인내하지 않고 당을 떠나버렸던 사람들은 왜 이토록 민심이 돌아서지 않는지를 이해하지 못할테다. 

정치도 생물같은 것이라 미묘한 역학관계가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 빠른 동학 속에서 과연 유시민이 어떻게 살아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뚜렷하게 분별되는 미립자로 존재하고 있고, 그 어떤 원자의 소용돌이(정치적 화학작용)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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