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하는 진보
지성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미중년으로 유명한 고려대 염재호 교수(행정학)와 함께 '얼짱교수'를 대표하는 서울대 조국 교수(법학). 그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출중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책 제목 그대로 그는 매우 신중하게, 때론 조심스럽게 진보를 성찰한다. 물론 그 전제에는 역사와 사회가 반드시 진보한다는 믿음,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진보적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명, 보다 성숙하고 역량있는 진보주의로 거듭나야 한다는 애정이 곁들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집권 10년 동안 우리는 '진보의 무능'에 대한 갖가지 공격을 목도해왔다. 수사(rhetoric)의 난무, 허황된 담론, 위선과 교만, 무능력과 무책임함, 그리고 도덕성의 와해에 이르기까지... 진보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큰 만큼 우리는 그것의 실망과 좌절을 더욱 아파하며 새로운 진단과 처방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왜 진보가 근거없는 악랄한 공격을 받았는지 정당방위(자위)하거나 이래서 진보가 문제였다는 자아비판(자조)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후자의 입장에서 진보의 문제를 진단하고, 나아가 진보의 미래를 처방할 것이라는 기대와 호기심때문이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에겐 미안하나- '시시하게 끝난 경기'를 관전한 느낌이었다(허나 아무리 '밋밋한 에세이'라 할지라도 저자의 사색과 고뇌가 담긴 흔적에 대해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다). 

정치개혁, 사회/경제개혁, 인권, 평화와 통일, 법률개혁, 대학개혁, 여성운동,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저자의 성찰이 담긴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여러 언론매체에서 발표한 칼럼을 보완하여 출판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기대했던 과격함(?)이나 신랄함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저자가 현직 국립대학 교수신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래야 할 것 같다"는 식의 이른바, 당위에 대한 설명도 점잖은 선비의 훈수 정도로 받아들이기에 큰 무리가 없다. 어느 노학자의 말처럼 각자의 역할이 있고, 학자는 글로써 말하면 되니까...  

문두에 저자가 조심스럽게 진보를 말한다 했지만 그가 처해있는 현실적 상황의 범위를 고려하면 되려 진솔하고 대담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대체로 정치색의 표출을 부담스러워하는 교수사회와 다소 엄격하고 보수적인 법학계의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책의 후반부에는 386출신으로 치열하게 시대의 모순을 고민했던 흔적이 역력하게 나타난다. 사실 전반부에서는 -자신을 버리면서 사회를 위해 몸을 던진- 학생운동을 뒤로한 채, -"장차 그 자리에 올라서 개혁하겠다"는 미명 하에- 고시나 유학을 준비했던 이의 (해명 정도로 생각했던) 모습이 후반부로 갈수록 실천하는 지성,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으로 변해갔다고나 할까? 

책의 에필로그에서 그는 "군사독재에 봉사하는 육법당의 일원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법학 공부를 뒤로한 채 학생운동 대열의 중간에 서서 사회과학 및 근현대사 공부, 교내외 시위, 법대 편집실 활동, 농촌활동 등을 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실제로 그는 최연소로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했고, 20대에 울산대 교수로 임용된 기득권(?) 학자였지만 사노맹 활동전력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이후 국제앰네스티는 조국 교수를 양심수로 지정하였고, 집행유예 선고로 석방된 뒤 늦은 미국유학길에 오른다). 

재론하면 저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살펴본 책의 내용은 밋밋하기 그지없지만 그가 처한 현실적 상황에서 헤아려보면 "신념에 찬 용기있는 주장으로 가득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저자는 젊고, 이상은 푸르며,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기여할 일이 많다. 그래서일까?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조국 교수가 할 일이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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