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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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하나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왔다. 많고 많은 종에서 기꺼이 살아남은 사피엔스는 이제 더 이상 먹이사슬의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더 위의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곳으로 올라가려 한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부유하고 있는 사피엔스는 어설픈 단계에 머무르려 하지 않고 최후의 도전(혹은 발악)을 향해 가고 있다. 바로 인간을 넘어 이 되려는 것이다. 어째서 사피엔스는 이제껏 걸어온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려는 것일까. 그리고 그 길 끝에 다다르면 정말로 신이 될 수 있을까?

 

#1.‘기어이

문득 얼마 전 본 <올드보이> 속의 대사가 떠오른다. 인간은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라고. 사피엔스는 비겁함마저도 그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지는 않을까 하면서 개인을 무장하고, 집단이 모여서 국가를 만들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면서 여러 체계를 만들어나갔다. 여느 동물들과는 참 다른 매커니즘 속에서 사피엔스는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저마다 상상의 산물이 모이고 모여서 다양한 문명과 문화가 등장했다. 허나 오늘날에 이르러서 이들의 상상력의 한 데로 합쳐져서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몇 몇의 국가와 문화권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 대화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다. <사피엔스>에 이어 <호모 데우스>에서도 저자는 상상력의 힘을 중요하게 다룬다. 사피엔스가 신으로 가는 길목에도 상상력은 아주 중요한 추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허구의 힘을 통해서 사피엔스는 기어이 신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있다고 믿는 것은 그 자체로 상상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앞서 올드보이를 언급했듯이 내게 있어 오늘날 사피엔스가 만들어 놓은 상상력은 그저 덫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상상력이 곧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허구의 것을 믿음으로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진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지표가 성장한다고 해서 우리네 마음의 풍요가 오는 것은 아니며, IS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저들의 신을 숭배한다고 해서 그 들이 결코 숭고해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고도로 발전된 상상력과 체제와 기술만이 인간 행복과 존재 이유에 대한 깊은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피엔스들은 더 많은 것을 바라고 꿈꾸고 찾아 나선다. 기어이 무엇이라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그들의 집념은 과연 인류사적으로 보았을 때 이로운 것인지 아니면 인류가 걸어온 길 보다 훨씬 짧은 미래를 맞이하게 할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2 ‘기필코

<호모 데우스>를 읽으면서 작가가 가장 염려하고 경계하는 문제는 곧 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문자 그대로 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추상적이다. 사피엔스는 기필코 신으로 나아가려 한다. 아니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인지 무언가에 의해 떠밀려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했는가. 사피엔스는 보이지 않는 신이 되는 길에 있어 과학,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를 믿고 숭배한다. 따라서 종래에 데이터는 하나의 종교가 되어 수많은 사피엔스들에게 믿음과 광적인 숭배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낯설지 않다. 태양신을 믿으며 살아온 과거의 이집트인들의 사고 체계와 오늘날 우리가 믿는 사고 체계는 별 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연을 숭배하고, 신을 숭배하고, 인간의 자아를 믿으며 걸어온 사피엔스는 이제 막 새로운 믿음 대상을 발견한 것 일 뿐이다. 그것이 지닌 잠재력과 파급효과는 미처 모르지만. 무턱대고 하늘에다 제사를 지내던 과거보다 오늘날 기상 데이터가 가져다주는 정확성은 우리의 삶을 보다 편하고 안정적으로 만들어 줄 것은 분명한 사실이긴 하다.

 

#.3 ‘마침내

유발 하라리가 염려하는 부분은 신의 모호성에서 그치지 않는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말하기보다는 과거와 오늘을 이어 미래를 보는 전달자 역할을 하는 자처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가 바라보는 전망은 무한의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인류가 함께 생각해야 할 것들이 주를 이룬다. 마침내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로 나아갔다고 치자. 이때 또 다시 모호한 문제가 등장한다. 사피엔스 개개인이 호모 데우스로 나가는 것인지, 어쨌거나 데이터를 다루고 종교로 만들 수 있는 몇몇만 신이 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깐 사피엔스가 곧 신이 될 수는 있겠지만, 모든 사피엔스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과거 왕을 받들고, 인간의 자아를 믿고 성찰하던 시대의 와 전혀 다른 양상을 가져다 줄 것이다. 모두가 데이터를 믿지만 저마다 확보하고 다룰 줄 아는 데이터의 범위는 전혀 다르게 되고 사피엔스들 간의 격차는 점점 커지게 된다. 예수나 부처는 만인 앞에 평등하고 동등한 애정을 줄 지는 몰라도 적어도 데이터교에서 데이터는 치밀하게 많이 가진 자의 손을 들어줄 것만 같다.

 

어찌되었거나 세계는 변하고 있고 우리가 믿고 있는 대상도 변하고 있다. 더 많이 더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시기에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생각을 해왔는지에 대해서 짚어볼 필요는 분명 있다.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과거에서부터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미래까지 한 번에 훑어 볼 수 있는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의 직관적인 설명과 다양한 예시는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치의 지루할 틈 조차 주지 않는다. 이토록 흥미있게 읽을 수 있던 까닭에는 어쨌거나 나의 이야기고, 당신의 이야기고, 나아가 우리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분명 명과 암은 있겠지만, 오로지 신만을 외쳤던 중세 암흑기를 떨쳐내고 인류의 사상과 문화가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했던 르네상스처럼 새로운 것의 등장은 또 새로운 부흥을 가져다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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