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 ㅣ 한국철학전집 2
세종 지음 / 결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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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하면 흔히 성군이라는 말부터 나온다. 나도 세종을 그런 쪽으로만 알고 있었다. 훈민정음 만든 분, 백성 걱정 많이 하신 분. 그런데 이 책에는 어질고 자애로운 임금 얘기가 별로 없다. 대신 꽤 실용적이고 계산이 빠른 사람이 나온다. 읽다가 세종이 이런 사람이었나 싶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위인전을 읽으려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지침서를 읽은 기분이었다.


표지에는 지은이가 세종대왕이라고 적혀 있지만, 정확히는 출판그룹 결에서 세종의 기록과 행적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그래서 읽을 때 조금 거리를 두게 된다. 세종이 진짜 이런 사람이었다고 단정하는 책이라기보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세종을 보여주면서 그러면 지금 너희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계속 되묻는 책에 가깝다.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당신'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건 시간 이야기다. 앙부일구나 물시계는 보통 과학 업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책은 나라가 시간의 주인이 되었다는 선언으로 본다. 시간이 왕과 관청의 것이던 시대에 백성이 제 눈으로 시간을 볼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렇구나 하고 읽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당신의 시간표는 누가 만든 것이냐고 묻는다. 자기 기준표가 없는 사람은 늘 남의 시계 위에서 뒤늦게 도착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읽고 나서 한동안 머리에 남았다. 기준을 내가 세우는 건 잘난 척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일이라는 말도 같이 나온다. 책 제목이 이 얘기와 이어지는 것 같다.


일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의외였다. 아이디어를 덜 만든 채로 여러 사람 앞에 내놓지 말라고 한다. 다 같이 의견을 모으는 게 좋은 거라고 배워 왔는데, 책은 다수의 동의라는 것이 결국 다수의 사정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방식은 지금까지의 잣대로 재면 언제나 미달로 보인다는 대목도 있다. 회의실에서 지적을 받은 신입이 자기 생각을 의심하다가 조용히 아이디어를 접는 예시가 나오는데, 어디선가 한 번쯤 본 장면 같았다. 그래서 책은 믿을 만한 소수와 조용히 끝까지 만들고 나서 세상에 내놓으라고 한다. 세종에게 그 소수는 왕실 가족이었다고 한다. 소통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고, 완성되지도 않은 것을 먼저 평가받게 하면 소통이 아니라 힘만 빠진다는 설명이다. 훈민정음 반대 상소를 다룬 부분도 있다. 최만리 같은 사람들의 반대가 오히려 이 일이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얘기다. 아무도 흔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상소를 올리지 않는다는 문장은 나도 따로 표시해 두었다.


제일 불편했던 건 리더 부분이다. 좋은 리더는 팀원들을 사이좋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서로 다르다는 점을 자산으로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이좋은 조직은 편하지만 판단력이 떨어지고, 서로 다른 조직은 불편해도 판단이 살아 있다고 한다. 맞는 말 같기는 한데 리더 입장에서 읽으면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세종은 신하 누구도 완전히 믿지 않았다고 나온다. 황희는 약점을 왕이 쥐고 있었고, 허조는 원칙을 도구처럼 썼다. 신뢰는 있었지만 감정이 아니라 계산이었다고 적혀 있다. 읽으면서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싶었고, 책이 세종을 한쪽으로 몰고 간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래도 결함은 지울 수 없으니 관리하라는 말, 알게 된 약점은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말은 현실적이라 고개가 끄덕여졌다. 황희와의 관계를 둘 다에게 잔혹했고 둘 다에게 위대했다고 정리한 것도 오래 남았다.


다 읽고 나니 세종이 달라 보였다. 어질다는 말보다 미친 사람처럼 추진력이 있다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자기 몸과 시간까지 일을 위한 도구로 쓰면서도 멈추지 않는 사람. 위대하다는 건 알겠는데, 옆에 있었다면 꽤 힘들었을 것 같다. 이것이 세종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편집된 책이니 더 날 선 모습만 골랐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내 일이나 지금 사는 모습에 대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내 기준표를 내 손으로 만들고 있는지, 나는 세종처럼 살 수 있을지. 아직 답은 못 냈다. 금방 답이 나올 질문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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