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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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중요한 세계사의 한 장면이 엉뚱하게도 우연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로마제국의 멸망은 철통같은 성벽 뒤편의 사립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식이지요. 사실 생각해보면 개인의 경우도 우연으로 인해서 인생이 뒤바뀌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데 역사라고 그러하지 말라는 이유도 없겠죠.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는 아마도 이 책에서 네 번째로 소개된 ‘워털루의 세계 시간 ―1815년 6월 18일,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에서, 저자가 “1초 동안 그루쉬는 생각에 잠겼다. 바로 이 1초가 그 자신의 운명과 나폴레옹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발하임 농가에서의 이 1초가 19세기 전체를 결정한다.”고 적은 나폴레옹의 부하 그루쉬가 ‘프로이센 군을 추격하라’는 명령을 따를 것인가, 위기의 나폴레옹을 도우러 갈 것인가 결정의 순간을 묘사한 대목이 아닐까 해요.

 

저자는 그루쉬가 지금 자신감을 갖고 이 분명한 조짐을 제대로 판단해서 명령을 어길 용기만 있으면 프랑스는 구원될 것이나 주체성 없는 인간은 언제나 명령에만 복종할 뿐 운명의 부름에는 절대로 따르지 못하는 법이라며 신랄하게 쓰고 있는데요. 사실 마음이 약한 보통 사람으로서 날카롭지만 가슴 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네요.

 

수많은 역사 속 결정적인 우연의 순간을 다루는 이 책에서 저자가 계속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순간’의 소중함이 아닐까 해요. 그런데 "그 순간은 역사상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결정하게 된다. 단 한 번의 긍정이나 단 한 번의 부정, 너무 빠르거나 혹은 너무 늦거나 하는 일이 이 순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서 개인의 삶, 민족의 삶, 심지어는 인류 전체의 운명의 흐름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던 그가, “나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시대는 내게 불쾌하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는 것도 하나의 아이러니네요.

 

이 책에서 우연과 함께 역사를 뒤바꾼 원동력인 ‘광기’에 대해서 살펴보면, 저자는 역사란 남들 눈엔 무모하기만 한 열정과 비이성적 자신감, 곧 일종의 광기에 휩싸인 이들의 도전에 우연이 더해진 결과로 보는 듯행. 그 사례로 이 책에서는 마젤란과 로버트 스콧, 발보아같은 탐험가가 그리고 대문호 괴테와 톨스토이, 발자크와 작곡가 헨델의 사례 들을 들고 있어요. ‘미쳐야 미친다’는 책도 있듯이 남과는 다른 특별한 결과를 내려면 남들처럼 행동해서는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네요. 슈테판 츠바이크의 고전이 이 책은 소위 세계사의 결정적인 사건들과 예술 및 문학의 결실을 우연과 광기라는 분석틀로 재미나게 풀어내는 책으로 출간당시보다 오히려 요즘에 더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본 서평은 부흥 까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196918)에 응하여 작성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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