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의 온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4
정다연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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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크든 작든 내면에 고유한 온기가 자리 잡고 있을 거라 단단히 믿고 있다.

'고유한 온기'라고 표기한 이유는 온기를 나누는 방식이나 온기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은 모두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각박하고 삭막한 개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사람과 사람 간에 오가는 온기가 없다면 지금 세상이 유지 될까, 하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 할지라도, 타인으로부터 받은 영향력에 의지하고 서로 연대하며 세상을 가꿔나가는 우리에겐 온기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다정의 온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면이 많다.

에세이 속에는 정이 많고 섬세한 눈길을 가진 시인의 다정의 순간들이 촘촘하게 엮여있다.

오직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그녀만이 포착한 다정한 마음들.

같은 순간, 같은 장면일지라도 오직 그녀만이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찰나의 순간들과 사물의 움직임, 풍경들.

이들은 어떤 물성을 띠는지, 어떻게 발휘되어 어떤 기적 같은 결과를 탄생시키는지.

그녀는 그 순간들이 어떻게 혼효돼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고 소중하게 만드는지 공유한다.

50편으로 묶인 글에는 시인이 직접 "다정하고 선한 마음"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그녀의 문장들에 따뜻한 마음을 건네받은 듯한 느낌이 든 건, 그녀의 눈길과 간직한 시간으로 빚어져 흘러나온 고유한 온기 덕분일 테다.

타인의 기억을 함께 되돌아보며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발굴하는 법을 깨닫게 되고, 아픔을 스스로 어루만지는 문장에 덩달아 위로를 받기도 하고, 불편해도 누군가와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알아가면서 자연스레 내가 지나온 시간들의 물성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의 온기로 피어오른 문장들은 다른 이에게 어떻게 가닿을까.

누군가와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계절이 한 알 한 알 살뜰하게 가꾸었을 열매를 떠올리며 나라는 과실도 잘 보살펴볼 생각이다.

어느 날 문득 새잎을 틔울 수 있도록.

『다정의 온도』 29p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 어떤 형태로든 뻗어나갈 수 있을 거리라.

그럴 날을 고대하며 나를 잘 보살필 거다.

따뜻한 문장을 피어 올릴 수 있도록 건네받은 그녀만의 다정을 오래오래 간직하며, 많은 이들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꾹꾹 눌러 담아 기록하고 싶다.


사랑하는 것들을 결연히 지키는 태도


시인들의 작품을 읽을 때면 그들의 방식대로 시를 사랑하고 있다는걸, 온전히는 아니지만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문예지나 시인 인터뷰를 찾아보면 시를 사랑하게 된 일말의 사건이라든가 방식 등을 그들의 언어로 직접 들을 수 있기도 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시간과 시선, 만남과 손길을 거쳐 시를 만나게 되었고, 어떤 식으로 함께하고 있는지에 대한 누군가의 깊숙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기회는 없었다.

시가 아닌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의 목소리는 진득하게 달라붙는다.

남들에겐 소박하고 별 볼 것 없어 보이는 낡고 해진 옷, 밑줄이 잔뜩 그어져 있는 헌 책도 누군가의 결연한 목소리가 붙으면 함부로 폄하할 수 없게 하는 힘이 생긴다.

사랑하는 것에 흔들림 없이 지키는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인상 깊다.

공간과 시간을 머금은 사물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


귀하게 여기는 오래된 물건 하나둘씩 있는 사람을 종종 만나봤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낡은 물건 안에는 각자만의 사연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물건들을 소중히 어루만지는 그들의 눈빛이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때면 나도 조금이나마 그 기분을 함께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사연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족되지 못하는 그런 기분.

그들의 개인적이고 은밀한 마음에서 탄생한 세상의 공기를 감히 느껴보고 싶은 조금 파렴치할 수도 있는 충동.

그런 욕망을 조금 품고 있어서 그런지 시인의 물건과 관련된 문장들이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늘 변함없이 정적인 물건 안에는 지나간 시간이 압축되어 있다.

내 것이 아니어도 지금은 볼 수 없는, 조금 오래된 물건을 보았을 때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도 분명 이런 묵직한 이유 때문이었을 테다.

지나간 시절을 온전히 머금고 있는 물건이 가진 무게를 여전히 유지한 채 구체화하는 시인의 문장들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마음을 대변하는 자세


마음은 관념의 영역이라 형태로 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육체와 마음은 필연적으로 이어져있다.

애정을 공유하는 대상과 체온을 주고받기 좋은 최적의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고유한 다정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유독 매서운 시국의 겨울에 읽어 더욱 낭만적인 문장들이다.

사람들은 각자 어떤 다정의 자세를 갖고 있을까.

마음을 깊숙이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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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길에서 탄생된 문장을 따라읽으면서 어쩐지 선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단순 착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타인의 애정 가득 담긴 사람들과 반려견, 사물들과 시간들을 만나면서 책장을 덮을 때엔 입가에 미소를 띤 내가 있었다.

내 안에 깃들어있던 다정의 일부분이 꺼내어진 것임을 이젠 알 수 있다.

여전히 솔직해지는 건 어렵다.

하지만 한 해를 돌아보는 과정에 선 연말에 나는 다정한 마음이 끌어당기는 방향에 온전히 몸을 맡기려고 한다.

믿음이란 얼마나 많은 계절을 견딘 단어인지,

『다정의 온도』 177p

내가 걸어온 시간을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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