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 어떤 형태로든 뻗어나갈 수 있을 거리라.
그럴 날을 고대하며 나를 잘 보살필 거다.
따뜻한 문장을 피어 올릴 수 있도록 건네받은 그녀만의 다정을 오래오래 간직하며, 많은 이들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꾹꾹 눌러 담아 기록하고 싶다.
사랑하는 것들을 결연히 지키는 태도
시인들의 작품을 읽을 때면 그들의 방식대로 시를 사랑하고 있다는걸, 온전히는 아니지만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문예지나 시인 인터뷰를 찾아보면 시를 사랑하게 된 일말의 사건이라든가 방식 등을 그들의 언어로 직접 들을 수 있기도 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시간과 시선, 만남과 손길을 거쳐 시를 만나게 되었고, 어떤 식으로 함께하고 있는지에 대한 누군가의 깊숙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기회는 없었다.
시가 아닌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의 목소리는 진득하게 달라붙는다.
남들에겐 소박하고 별 볼 것 없어 보이는 낡고 해진 옷, 밑줄이 잔뜩 그어져 있는 헌 책도 누군가의 결연한 목소리가 붙으면 함부로 폄하할 수 없게 하는 힘이 생긴다.
사랑하는 것에 흔들림 없이 지키는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인상 깊다.
공간과 시간을 머금은 사물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
귀하게 여기는 오래된 물건 하나둘씩 있는 사람을 종종 만나봤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낡은 물건 안에는 각자만의 사연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물건들을 소중히 어루만지는 그들의 눈빛이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때면 나도 조금이나마 그 기분을 함께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사연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족되지 못하는 그런 기분.
그들의 개인적이고 은밀한 마음에서 탄생한 세상의 공기를 감히 느껴보고 싶은 조금 파렴치할 수도 있는 충동.
그런 욕망을 조금 품고 있어서 그런지 시인의 물건과 관련된 문장들이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늘 변함없이 정적인 물건 안에는 지나간 시간이 압축되어 있다.
내 것이 아니어도 지금은 볼 수 없는, 조금 오래된 물건을 보았을 때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도 분명 이런 묵직한 이유 때문이었을 테다.
지나간 시절을 온전히 머금고 있는 물건이 가진 무게를 여전히 유지한 채 구체화하는 시인의 문장들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마음을 대변하는 자세
마음은 관념의 영역이라 형태로 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육체와 마음은 필연적으로 이어져있다.
애정을 공유하는 대상과 체온을 주고받기 좋은 최적의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고유한 다정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유독 매서운 시국의 겨울에 읽어 더욱 낭만적인 문장들이다.
사람들은 각자 어떤 다정의 자세를 갖고 있을까.
마음을 깊숙이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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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길에서 탄생된 문장을 따라읽으면서 어쩐지 선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단순 착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타인의 애정 가득 담긴 사람들과 반려견, 사물들과 시간들을 만나면서 책장을 덮을 때엔 입가에 미소를 띤 내가 있었다.
내 안에 깃들어있던 다정의 일부분이 꺼내어진 것임을 이젠 알 수 있다.
여전히 솔직해지는 건 어렵다.
하지만 한 해를 돌아보는 과정에 선 연말에 나는 다정한 마음이 끌어당기는 방향에 온전히 몸을 맡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