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 - 교유서가 소설
채기성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3월
평점 :
본 글은 교유서포터즈에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여덟 편의 소설은'죄의식'과 '죄악감'에 대해 고뇌하게 만들었다.
얼핏 보면 비슷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두 단어가 발휘하는 순간은 예기치 못하는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이런 모호성과 필연성은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로부터 해방될 수 없음을 자각시킨다.
일상생활을 하다 간간이 찾아오는, 이름 없는 불편한 감정과 연관성 있는 과거를 마주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하고 깨달아야 할 본질은 무엇일까.
아울러 어떻게 감당하며 좋을까.
여덟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본능적으로 외면하고자 하는 감정의 이면에 직면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무언가로부터 압박을 받고 억압받는 건 타인의 영향도 크지만, 자신의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나는 그의 단편들을 통해 과거의 나와 이야기하는 법과 족쇄처럼 나를 구속하고 있는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구원은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와 형식으로 우리 앞에 선다.
벗어날 수 없었던 시간의 굴레
쉼 없이 직진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개념을 비튼 부분들이 굉장히 흥미롭다.
책 소개 글에도 비슷한 맥락으로 나와있듯, 채기성 작가의 소설집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할 법한 상황과 문제들을 두고 그들의 욕망과 상흔에 접근한다.
그중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고, 모두 같은 영향을 받는 시간을 주제로 두고 시간의 여러 자취를 보여준다.
바쁜 현대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 과거의 상처를 잠시 멀리 두고, 불쑥 머리를 내미는 기억들을 외면하는 이는 제법 많이 존재할 테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특정 시간에 혹은 한 시절에 머물러 있어 남들보다 뒤처져 있는 듯 보이는 이를 초점 화자로 두어, 이들이 멈춰있는 본인의 시간을 어떻게 다루는지 주목해야 한다.
특히 「57분」에서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므로 인해 시간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로 인해 붙잡을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고 단정 지은 시간에 대한 무력감과 미련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는 구멍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를 표현한 묘사들이 참 흥미로웠다.
물론 방식은 모두 제각각이다.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여덟 편 속 인물들처럼.
외면하고자 한 죄의식이 휘몰아칠 때
몇 개의 단편은 우리가 흔히들 가해자라고 부르는 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차원적으로 보면 "가해자도 사연이 있다." "그들도 인간적인 따뜻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를 말하고자 하여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고 단정 지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들의 독백과 대사에 집중하면 가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거다.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자들의 죄의 무게가 같진 않더라도 그들에게서 본인의 모습이 겹쳐 보일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인터뷰 영상에서 작가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은 법과 질서의 적용을 받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럼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법과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나는 이들과 다르다는 착각, 자신의 악함과 추함을 감추기 위한 위선을 직면하게 만드는 단편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건넨다.
어떤 자세로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여야 할지.
누구든 좀처럼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무게감 있는 질문이다.
막막함과 동시에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뇌하게 만드는 질문은 언제나 흥미롭다.
해방에 다다랐을 때
자신을 억압했던 불분명한 감정과 감각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과정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 「소리 만들기」에서 정우로부터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던 여성 화자가 폭력을 가하던 정우에게 스스로를 때려달라고, 자신을 때리는 정우의 소리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렇다.
여덟 편의 소설 중 「소리 만들기」가 가장 세심하고, 구체적인 형태에 대한 묘사보단 소리라는 감각에 의지해 섬세하게 쓰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기에 더욱 독특하게 다가왔고 독창적인 개성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던 사람이 타인으로 인한 폭력으로 주체성을 갖게 되고 (간접적이지만) 해방된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소설은 이를 노린 듯하다.
자신이 한때 정우를 사랑했던 것도 정우를 구원이라 생각하는 것도 변함없지만, 그로 인해 나아갈 수 있는 통로는 아직 있다는 것을, 이 상황에서도 구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보았을지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현대인들의 감춰진 모습과 삶의 이면이 잘 드러난 여덟 편의 소설에서 모두 끝에는 해방을 암시한다.
처한 상황과 감정은 얼핏 비슷해 보여도, 개개인에게 있어 억압과 해방 그리고 구원은 모두 다르다.
구원의 실재를 증명하는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흥미로우면서도, 어떤 얽매임 속에서도 스스로 구원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이 반드시 존재함의 희망을 받기도 했다.
정말 현대소설답게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은 현대인들의 삶과 모습을 잘 드러냈고, 동시에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훼손되지 않은 채 머물러 있는 죄의식과 미련에 매달려 있는 인물의 감정 표현이 너무나 생생하고 섬세하여 무언가로부터 옥죄이는 듯한 기분에 조금은 괴롭기도 했다.
이를 통해 나 또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기에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외롭거나 나만 그럴 거라는 무의미한 생각에 허무한 감정을 느끼진 않았다.
우리 모두가 같을 거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감춰둔 죄가 있고, 죄책감과 열패감, 무력감이 깃들여 있다.
어떻게 보면 여덟 편의 소설들은 애써 외면하려 했던 감정의 실체들인데, 생각했던 것보단 많이 괴롭지 않았다.
여덟 편의 소설집을 엮은 이 책이 존재함으로써, 나 혹은 나와 가깝고 먼 이들과 비슷한 이들을 만남으로써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막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뇌해야 되는 지점은 반드시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되지만 말이다.
누군가와 진지한 속 이야기를 하게 될 테면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늘었다.
당신에게 있어서 구원은 무엇인가요.
나는 아직 이야기들이 건넨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