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여자, 작희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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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인 감상부터 말하자면 흡입력이 정말 강한 소설이었다. 이중 서사 구조인 플롯을 파악하고 그 안의 인물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설 속 세계관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게 이 소설에는 처음부터 흥미로운 소재가 등장한다.

화자인 은섬과 작업실을 같이 쓰는 드라마 대본 작가 경은과 시나리오 작가 윤희는 자신들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귀신이 있다며 '작가 전문 퇴마사'를 부르며 소설은 시작한다.

메인 플롯과 서브플롯을 이어주는 장치가 되는, 어쩌면 중심적 장치가 될 수 있는 퇴마 소재는 해당 소설의 맥락상 흔하게 등장하는 타이밍도 아닐뿐더러 그렇기에 흥미를 끌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띠지에 실린 문장이 눈에 밟혀 본격적으로 독서에 들어가기 앞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생각했다.

나는 소설 속 주요 인물인 은섬과 작희처럼 이야기 쓰기를 좋아하고, 말로는 전하기 어려운 내 진심이나 의미 있는 경험으로 인해 받은 감각을 글로 적어내리는 시간을 매우 귀하게 여긴다.

현재 나의 강한 열망도 보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자 책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에, 소설 속 '쓰는 여자'들에게 정말 많은 격려와 용기를 받았다.

홀로 방에 앉아 글을 쓰는 건 외로운 일이라 생각될 때도, 내 문장이 과연 힘이 있나 하는 의구심에 좌절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여성이 교육을 받으며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려웠던 시대에 살았던 중숙과 작희의 추진력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시대가 변했음에도 작희의 글을 되찾아준 은섬의 기적적인 결과가 나의 쓰기 의욕을 한껏 더 불어넣어 주었다.

이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닐 테다.

행복과 사랑만으로 하고 있는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당 소설이 깊게 스며들 거라 확신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표지에 대해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꺾인 나뭇가지에 피어난 두 송이의 꽃과 두 개의 꽃봉오리가 무엇을 의미하나 싶었지만, 독서를 마치고 다시 표지 디자인을 찬찬히 살펴보며 해석하자니, 진하게 남은 여운이 더욱 깊게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좌절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오직 쓰기의 열망으로 기적을 일으킨 두 여성의 연대를 꺾인 나뭇가지에 피어난 꽃으로 표현했다는 게... 경이롭다는 감상이 절로 나왔다.

꺾인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손은 이 책을 쥐고 있는 수많은 독자들을 표현한 것 같아서 감동받기도 했다.

시공간을 넘어 건네는 여성들의 따뜻한 연대의 손길은 소설 속에서만 한정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장 강력하게 가지고 있는 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게 만드는 것인 것 같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 무언가에 열중하게 만드는 힘.

사랑하는 일이 있고 현재 나의 위치에서 이룰 수 있는 목표를 확실하게 세워둔 나에게 이 책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 동력이었다.

각자의 이유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인물들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발효하는 순간에 집중했다.

그 순간이 결과로 나올 수 있도록,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사랑을 하며,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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