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25
서머셋 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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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예술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를 바로 예술가 그 자신의 개성이다. 그리고 그가 가진 개성이 특이하고 독자적이라면 그 외의 결점들은 기꺼이 용서할 수도 있다. 아마 벨라스케스는 엘 그레코보다 더 훌륭한 화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벨라스케스에 대한 칭찬을 이미 진부한 관습이 되어버렸다. 그에 비해서 관능적이고 비극적인 이 크레타 섬 사람은 자기 영혼의 신비를 마치 산 제물처럼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예술가란 화가나 시인, 음악가를 막론하고, 그 작품에 숭고하고 아름다운 장식을 하여 우리의 심미감을 만족시켜준다. 그리고 심미감은 성적 본능과 서로 통하는 것이 있어서 일종의 원시성을 느끼게 한다. 말하자면 그 자신이라는 큰 선물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9쪽

그 비참한 광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울화가 치밀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에겐 도대체 분별이나 위엄이라는 것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는 부인에게 경멸받을 만한 짓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해 보인셈이다. 아마 여자의 잔인성 중에서, 상대방은 사랑하지만 자기 쪽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 대한 잔인성만큼 잔혹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 여자는 부드러움은 고사하고 아량도 없고 다만 미칠 듯한 울화통만 더뜨릴 뿐이다.-178쪽

그는 너무 지쳐서 울 기력도 없는 듯했다.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버린 듯 벌렁 눕더니,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것은 그가 1주일 만에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잠든 것이었다. 때로는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자연도 자비를 베푸는 법이다. -198쪽

"당신은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갈 용기가 없군. 인생은 무가치한 것이오. 블란치 스트로브가 자살한 것은 내가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어리석고 마음의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 여자 이야기는 넌덜머리가 나오. 정말 하찮은 여자였소, 그보다도 내 그림이나 보러 오지 않겠소?"
마치 아이를 어르는 듯한 어투로 그가 말했다. 화가 났지만, 그것은 그에 대해서라기보다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해서였다. 몽마르트의 아늑한 화실에서 지내고 있던 스트로브와 그 부인의 행복한 생활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소박하고 친절하고 진심으로 나를 대해주던 두 사람이었다. 그들이 무자비한 운명의 손에 의해 그처럼 무참히 짓밟혀버리다니 정말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잔인한 것은 이러한 비극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며, 세상 사람들 역시 달라진 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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