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근대와 일본
윤상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문학과 근대와 일본>

 역사란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똑같이 근대는 현대의 연장성일뿐 책에만 서술되어있는 단편적인 사건과 텍스트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근대는 어지러우면서도 슬픈 역사다. 우리나라 만큼 슬픈 역사가 어디있느냐 라고 소리를 펑펑 쳐도 될 정도다. 강대국 사이에 끼여있는 슬픈 나라의 역사.

 한반도의 근대는 일제강점기와 함께 한다. 그래서 우리의 과거는 늘 그림자가 져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모든 문화는 일제강점기의 냄새가 베여있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까? <문학과 근대와 일본>에서는 그것에 대한 해답이 나와있지 않다. 가벼운 에세이집 처럼 나쓰메 소세키 중심으로 근대문학과 현대일본 문학이 흥하는 이유를 간단하게 말해주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은 이 책은 무거운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 우리는 일본문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식민지 시대 문학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친일을 한 문학가들을 부정하면 아마 우리 문학사 반은 없어질 것이다. 친일청산을 하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친일에 대한 정의부터 필요할 것이다. 복거일의 <죽은자들을 위한 변명>은 말 그대로 친일을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보자고 한다. 책 속에 있는 구체적인 자료에 대해서는 운운할 처지는 못되지만 그의 새로운 시각을 주목할 만하다.

 책에서는 나쓰메 소세키 중심으로 일본문학을 살펴본다.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 제국주의에 반발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적극적인 반전론자가 아니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러일전쟁을 이기고 난 후 나쓰메 소세키는 이제 문화만 서양에 이기면 된다고 하고 있다. 당시 일제가 주장한 대동아공영권은 아시아인에게는 참 달콤한 사상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역사를 전체적으로 보니 잘못되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이인직과 같은 신소설 작가는 일본이 곧 서양=근대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그만큼 힘과 개방성을 가지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일본의 문학이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 문학은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나는 모르겠다. 내가 지금 문예지를 꼬박꼬박 읽어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길을 읽었다는 것 정도다. 그만큼 방황하고 전달력이 없으니 독자들은 찾아주지 않는 것이다. 물론 독자들의 잘못도 있다. 하지만 소비하는 입장인 독자는 소설 보다 재미있는 컨텐츠가 많은데 굳이 소설을 소비하려 들까? 일본의 사소설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똥철학이나 펼치고 있는 소설은 누가 읽어도 재미가 없다. 왜냐만 나는 당신의 속사정과 살아온 배경에는 관심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문학이 가야할 길은 무엇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