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다산이오 - 유배 18년, 다산 정약용의 내면 일기
김형섭 지음 / 산처럼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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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교과서에서 본 편지 한 통 때문이었다. 아버지 정약용이 세상을 떠난 막내아들을 기억하며 쓴 편지였다. 정약용이 아들의 무덤 앞에 바치는 편지를 읽으면서 거대했던 정약용이 평범한 사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이토록 정약용을 파게 될 줄.


‘정약용’이라는 이름을 파헤치게 된 건 그가 유배지에서 쓴 편지들 때문이었다.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 된 정약용이 마재에 남아있던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말이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쉬운 얘기가 아니었다. 정약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충분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정약용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중에서 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골라 읽었다. 정민 교수가 정리해 놓은 『다산의 재발견』과 『삶을 바꾼 만남』, 『다산 증언첩』을 시작으로 여러 판본의 다산 자료들과 다산의 일생을 정리해 놓은 『다산의 한평생』을 읽었다. 그리고 다산의 둘째 아들의 시선으로 다산의 삶을 정리한 『다산의 아버님께』도 펼쳤고, 그가 쓴 산문을 번역한 책들에 이어 그가 남긴 지인들의 묘지명까지도 훑었다. 거기에 정약용이 관여했다고 전해지는 한국천주교회사 초창기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 초기 교회에 관한 교황청 자료 모음집』까지 들여다봤다. 그래도 나는 다산을 ‘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조각 이어붙인 정보들을 가지고 그가 남긴 편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훨씬 잘 읽혔다. 편지를 읽을 때마다 조선시대에 박재돼 있는 편지를 ‘지금 여기’로 불러오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고지식하고 꼰대같은 학자 아버지 말고, ‘사람이 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 정약용’의 말들을 쉽게 전하고 싶은 열망. 나는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내 삶의 에피소드를 얹어 그의 편지를 소개하는 『다산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를 쓰기 시작했다.


다산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과거의 편지를 읽고 현재의 이야기를 엮어가기에 내 깜냥이 부족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작년 말까지 서른여섯 개의 꼭지를 쓰는 것이 목표였는데, 스무 개의 꼭지를 완성했을 뿐이다. 열여섯 개의 꼭지를 더 쓰기 위해서 내겐 더 많은 생각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른 자료들을 살피기 시작했고, 그 무렵 ‘도서출판 산처럼’에서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다산이오』 (이하 『나는 다산이오』로 표기)를 출간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책을 주문했다.


『나는 다산이오』는 다산의 유배생활 18년을 일기 형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정조가 다산의 재기를 돕기 위해 사람을 보내어 책을 선물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정조의 죽음과 정약종의 책롱 사건으로 다산이 옥에 갇혀 취조를 당하고 장기(포항)으로 유배를 떠나는 일로 이어진다. 그리고 황사영 백서 사건 때문에 한양으로 압송돼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가고 그곳에서 해배될 때까지 살아가는 다산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책의 장점은 다산의 유배 생활을 한 흐름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살펴 본 편지 관련 책을 통해서는 장기에서 다산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다산이오』는 다산이 쓴 편지 뿐 만 아니라 그가 남긴 많은 기록들을 살펴 다산의 삶을 재구성했기에 그동안 여러 책에서 생략했던 다산의 날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다산이 시골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장기에서 『촌병혹치』라는 의서를 쓰고, 큰 아들 학연이 「종축회통」이라는 농서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다산이 장기에서도 백성을 위한 저술을 했다는 것을 몰랐고, 둘째 아들 학유만 농사에 관련된 책을 썼다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편지 속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아내를 향한 깊은 마음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두 사람의 관계를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어 기뻤다. 무엇보다 유배인으로 살았으나, 하늘이 허락한 날들을 허투루 쓰지 않고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그를 만날 수 있어서 고마웠다.


혹시 다산이 유배지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한 흐름에 읽고 싶다면, 그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냈는지가 궁금하다면, 다산의 삶이 궁금한데 다른 책들이 어려워서 시작하기가 두렵다면 이 책을 펼쳐보시라!


소설인 듯 수필인 듯 술술 읽히지만,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다산에 관한 사료를 읽었다는 뿌듯함으로 스스로가 한 뼘 더 성장했음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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