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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 아동문학가 권정생이 걸어간 길
이충렬 지음 / 산처럼 / 2018년 5월
평점 :
권정생 선생님께
5월입니다. 선생님이 하늘 아이가 되신 달이기도 하지요. 올해 선생님의 하늘 나이는 열 한 살, 이틀 후면 하늘나라에서 조촐한 생일 파티가 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선생님은 하늘 여행 이야기를 동화로 쓰셨는지도 모르지요. 그곳에 있는 친구들에게 들려주시려고요.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려 봅니다. 동그랗게 둘러 앉아 동화를 읽는 선생님과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친구들을요.
제가 선생님의 이름을 처음 만난 건 14년 전입니다. ‘동심’에 관한 자료들을 보다가 <강아지 똥> 애니메이션을 보게 됐지요. 가장 하찮은 존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강아지 똥’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귀한 존재가 된다는 이야기에 전율했습니다. <강아지 똥>을 통해서 선생님이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필요치 않은 존재를 만들지 않으신다는 것을요.
그 후, 십 여 년이 지나 서울시청 도서관에서 선생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아이처럼 살다-이오덕, 권정생, 하이타니 겐지로의 따뜻한 만남>이라는 전시를 통해서였습니다. 이오덕 선생님과 선생님이 주고받은 편지가 전시된다기에 한 달음에 달려갔지요. ‘편지’에 관한 자료를 찾아서 한참 공부할 때였거든요. 전시관에는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유품과 유언장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유언장을 읽으며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 조금 알 수 있었어요. 정말로 어린이를 사랑하시는 분이란 것,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 분이란 것, 그리고 어쩌면 연애하기를 원하셨던 분이란 걸요.
이런 선생님의 모습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건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을 통해서였습니다. 이충렬 작가의 책이었지요.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충렬 작가의 차기작이 선생님에 관한 책이란 걸 알게 됐을 때부터 마음이 설렜습니다. 이충렬 작가는 <간송 전형필>, <아, 김수환 추기경>, <혜곡 최순우>,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등을 통해 역사 속에 박제되어 있던 분들을 이 시대로 불러오신 분이니까요. 방대한 자료들을 꼼꼼하게 조사해서 씨실과 날실로 촘촘하게 엮어 한 인물의 생을 복원해 가는 이충렬 작가가 어떻게 선생님의 삶을 말해줄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속에는 ‘함께 살아가는’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통해서 작은 희망 한 줌을 주려했던 선생님이, 그들이 가난한 것은 부모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돈과 권력 그리고 무기가 많은 것을 착취하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선생님이, 그러나 그들이 겪은 고난의 발자취가 곧 역사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이 말입니다. 그 속에서 선생님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있었지요.
선생님은 태어날 때부터 삶에 깃든 가난과 함께 살아야했습니다. 혹독했던 가난은 좀처럼 떨어져나가지 않았지요. 소작일을 하며 어머니가 모아 두었던 소 세 마리 값은 염소 한 마리도 살 수 없을 만큼 가치가 폭락했고, 동생과 고생고생하며 키운 100마리 닭은 장마비에 병에 걸려 죄다 죽어 갔지요. 고구마를 팔고, 재봉기 가게에서 배달을 하며 가난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병만 깊어졌을 뿐,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선생님이 깡통을 들고 거지 생활을 했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울컥거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온 선생님이기에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겠지요.
선생님은 한 나라의 운명이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을 어떻게 만드는지 뼈저리게 느끼셨습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유신정권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변형시켜 갔는지 너무 잘 아셨지요. 그래서 전쟁을 반대했고, 다시 태어나고 싶어도 폭군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면 환생하는 것은 그만둘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작품이 재단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 없던 시절이었지요. 그래도 선생님은 늘 용기를 내셨습니다. 북녘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우리 겨레의 아이들이 있다고, 좌우 이념을 떠나 굶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언젠가 선생님의 동화를 그곳에 있는 아이들도 읽을 수 있기를 바라셨고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선생님의 바람이 곧 이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남과 북이 화해를 선언하고, 평화를 위해서 함께 모색하기로 약속을 했으니까요. 이제 곧 북녘의 아이들도 <몽실 언니>, <초가삼간이 있던 마을>, <점득이네>를 읽고, 한국전쟁이 준 아픔에 공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간 우리 민족의 삶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오겠지요.
어쩌면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도 북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읽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그들도 <무명 저고리와 엄마>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 선생님이 떠올리신 많은 분들의 이름을 보면서 저처럼 엉엉 울게 될까요? ‘재봉기 가게에서 일할 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함께 읽었던 친구 기훈이, 다시 교회에 나가라며 찬송가와 성경책을 건네고 윤락가로 간 고아 출신 명자, 거지 생활을 할 때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깡통에 밥을 꾹꾹 눌러 주던 아주머니, 뱃삯이 없을 때 그냥 강을 건너게 해주던 뱃사공 할아버지, 함께 결핵약을 타러 다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 식모살이 도중 폐병쟁이라며 쫓겨 온 성애, 석탄가루를 마시던 철도기관사의 조수로 있다가 돌아온 태호, 산판에서 일하다 온 청수, 기덕이, 옥이, 성란이...’ 모두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들인데, 그들의 모습이 가슴에 박혀서 엉엉 운 저처럼 말이에요. 생애 가장 큰 기쁨 속에서 선생님이 떠올린 친구들의 이름을 읽으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모두가 작가 권정생을 만든 사람이구나...라고요.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을 읽으며, 선생님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친구들, 시련들, 아픔들, 사랑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연애를 하고 싶다’고 쓴 선생님의 유언장도 이해할 수 있었지요. 선생님의 삶을 복원해준 이충렬 작가에게 참 감사했습니다. 더불어 작가의 인터뷰에 응해준 지인들에게도 감사했어요.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선생님을 이토록 가까이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이제 이틀 후면 선생님이 하늘나라에서 맞이하는 열한번째 생일입니다. 선생님 숨결이 깃든 ‘빌뱅이 언덕’에서는 선생님의 친구들이 모여 ‘아름다운 사람’이었던 권정생을 기억하겠지요. 지상의 친구들이 선생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늘에 있는 친구들과 반갑게 손 흔들어 주세요. 선생님이 키우던 염소와 토끼, 그리고 얼어 죽을까봐 곁을 내주며 함께 지냈던 생쥐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고요. 그리고 그곳에서 정호경 신부님과 함께 기도해주세요. 선생님이 바라셨던 것처럼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해달라고요.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베트 아이들... 특별히 시리아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에요.
그 곳에서도 이 땅에 평화가 내리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동화를 쓰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종을 치고 계실 선생님을 그려봅니다.
2018년 5월 15일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을 읽고, 독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