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것은 기억하고, 저것은 기억하지 않는가. 왜 그 과거의 작은 디테일들을 한 주 내내, 한 달 내내, 그보다 더 오래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시 어둠과 백지 상태로 가는가.
- 도리스 레싱

나는 종종 중학교를 다시 다니는 꿈을 꿨다. 중학 시절에 봄, 여름, 가을이 없던 것이 아닌데도 꿈속의 계절은 언제나 찬 겨울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나면, 중학교를 다시 다녀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도리스 레싱의 글처럼, 나는 내가 왜 이것을 기억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모든 기억들을 채집하고, 기록했다. 휴대폰 노트와 녹음기에, 일기장에, 메모장에, 적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영화 〈벌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초고는 너무 나 같았다. 모든 게 내 이야기 같았다. 그러나 수정 작업을 거치면서 그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 갔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는 내가 영지라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하지만 벌새를 완성하는 긴 시간 동안 내 안의 은희를 자주 만나게 되었다.

멋지고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내 모습 안에, 여전히 울부짖는 중학생 아이가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견딜 수가 없었다

벌새를 만드는 과정은 집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비로소 집을 찾게 되는 과정이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이 과정 속에서 인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때로 잔혹하고, 서늘하고, 아프고, 그리고 치유하고,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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