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새삼 자문해보았다.
만난 적이 없었으므로 물론 단정적으로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동시에 K는 H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생각했다. 지난 3년 동안 수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상대에 대한 온갖 사소한 정보가 누적돼 있는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서로의 얼굴이 등장하는 사진도 그간 여러 차례 주고받은 터였다. 다만 통화를 한 적이 없었으므로 목소리의 고유한 톤이나 울림은 여전히 미지인 채로 남아 있었다. 교신의 시간과 단계가 지날수록 오히려 서로 통화를 꺼렸던 것은 그간에자기 방식대로 쌓아놓은 상대에 대한 환상이 훼손될지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실제로 대면한다는 것은 언제나 엄중함과 두려움이 뒤따르게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K는 H를 만나는 일에 대해서도 지나친 기대를품지 않으려 했다.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만들어놓은 환상의 누추한 실체를 목격하면서 그때마다 조용한 절망과도 같은 체념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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