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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10,000일의 전쟁
마이클 매클리어 지음, 유경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8월
평점 :
읽은지 꽤 되었는데, 이 책의 리뷰를 안 쓴 것 같아 기억을 되짚을 겸.
몇 번의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여행지에 대한 나의 관심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여행서에 나오는 먹거리와 볼거리 찾는 것 말고는 없었다는 것이다. 여행가이드에 나오는 몇 줄 혹은 몇 페이지에 불과한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 요약을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또, 막상 여행 준비하는 기간에는 이런 책들은 잘 안 읽힌다. 그래서 과감히 배낭에 넣기로 결심했다. 여행에서만큼 책 읽기 좋은 시기는 없다고. 기차 안에서든 어디서든 한 번은 읽겠지- 하며.
이 책은 내 배낭 제일 밑바닥에 있었다. 크고 무겁고, 어렵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달내내 이 책을 짊어지고 다녔던 것은, 그만큼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사파에 들어서 이 책을 펴기 시작했고 하노이 쯤에 가서 덮었다. 사파에 있는 일주일 동안 읽어내려가면서 이 슬픈 역사를 품은 땅이 새롭게 보였다. 사파에서 디엔비엔푸로 가는 찜통버스에서 보이는 울창한 숲길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여행지로서 디엔비엔푸는 그저 간이역 역할 밖에 하지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뜨겁고 작은 땅이 이 나라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곱씹을 수 있었다. 덕분에 디엔비엔푸 전쟁기념탑에 땀을 흘리며 기어이 올라가보기도 했다.
하노이의 박물관에서도 유용했는데,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 책 덕분에 느낄 수 있을만한 게 많았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라는 자부심 아래 숨겨진 그들의 희생과 그로인한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책의 배경인 실제의 장소에서 읽지 않았으면 완독하기 힘들었을 책. 하지만 그만큼의 의미는 충분했다. 몇 해가 지났어도 이 책을 읽던 곳과 책의 내용들이 새록새록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