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

 

이 책, 그리고 공동선 총서의 기획을 담은 취지문을 옮겨 올린다.

 

 

혁명은 언제 오는가 이것은 혁명의 시대를 관통한 후 다시 고통의 세계를 살아가는 세계시민들의 영원한 물음이다. 혁명의 시대는 과거에 종속되고 미래의 혁명은 메시아적 기다림만을 강요한지 오래다. 혁명의 불가능한 도래는 기원에 찬 세계의 손아귀를 차갑게 결빙시켰다. 21세기 자본주의의 찬란한 풍요와 자유의 바깥에 거주하는 존재들의 입마저 얼어붙게 했다.

 

지금은 자본의 환영이 지배하는 시간이다. 천궁으로 날아간 역사의 천사는 날개를 접었고 물신주의의 환영 속에서 세계시민 역시 혁명의 날개를 접었다. 자유와 평등, 해방의 공동체를 향한 비상의 기억은 기나긴 침묵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뒷골목에서 가까스로 마주친 어느 혁명가의 결기 어린 눈빛은 여전히 뜨겁고 위태로웠다.

 

2011년, 우리는 혁명의 가능성을 마주했다. 튀니지에서, 이집트에서, 리비아에서 타오르던 불꽃은 월가마저 점령하였다. 역사의 천사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결빙된 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자유와 해방의 불길은 세계시민들의 심장으로 번져갔다. 스스로의 이름을 지웠던 혁명은 ‘재스민 혁명’으로, ‘월가를 점령하라’로 되살아났다.

 

무엇을 위한 혁명인가. 새로운 탄생을 고대하며 아직 깨어나지 못한 혁명의 간절한 이름들을, 혁명의 무수한 이름들을 알고 있다. 혁명의 불가능한 도래는 혁명의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 과거의 유산이 될 것임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신들린 듯 춤을 추는 자본의 광기를 걷어내고 사랑과 윤리로 무장한 혁명의 이름을 새롭게 써내려가야 한다.

 

혁명은 공동선을 향한 투쟁이다. 차별과 배제의 높은 장벽을 넘어 서로의 손을 맞잡는 공동선을 향한 투쟁. 이 공동투쟁은 잔혹한 자본의 횡포와 불평등을 넘어선 진정한 공동선의 세계를 향해 있다. 이 간절함은 암울한 세계의 끝자락에서 어느 순간 점화되어 자유와 해방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세계시민의 오랜 기원과 맞닿아 있다.

 

‘공동선 총서’는 불가능한 꿈에 과감히 도전한다. 공동선을 열망하는 철학자의 사유와 더불어 불가능한 미래를 가능한 미래로 바꾸고자 한다. 공동선의 사유를 통해 자유와 평등을 향한 공동투쟁의 장에서 잠재된 혁명의 무수한 이름들을 이 세계에 살려낼 것이다. 불가능한 꿈의 시도야말로 인문학의 본질이자 가능한 미래의 징후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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