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하이쿠.센류 그림 시집 - 한 줄짜리 日本詩 에피파니 에쎄 플라네르
이수정 편역 / 에피파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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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시집 매대를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오프라인 시집 분야 베스트셀러는 거의 테마가 있는 좋은 시 모음이다.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일단 시집의 형태는 의외로 선물하기 좋은 완벽한 두께와 표지와 가격의 삼박자로 구성되어 있다. 너무 두껍지도 않고, 너무 도발적인 표지도 없고, 또 너무 비싸지도 않다. 애초에 선물하기 좋은 책의 형태로 되어 있는 셈이다.

게다가 시선집들의 경우 대개 보편적인 공감대를 타겟으로 하기에 거슬리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 분야 평면 매대의 베스트셀러가 시선집이 아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와카. 하이쿠. 센류 그림 시집>도 시선집이지만 주제가 뚜렷해 내용에 교양과 맥락이 있고, 또 표지와 디자인이 아름다워 선물하기에도 좋은 시집이다.

우키요에의 거장 호쿠사이의 파도가 그려진 표지만큼이나 내지 또한 아름다운데, 계절감이 가득한 그림이 쉼표처럼 고요히 실려 있다.

특히 이 시집은 원문과 독음, 번역된 단시가 한 페이지에 함께 실려 있어 천천히 읽어나가며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뛰어나다. 원문 밑에 독음이 있어 원어로 어떻게 발음이 되는지, 어떤 음과 리듬을 가지고 있는지까지 가늠할 수 있는 점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시의 내용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짧고 생활감 넘치는 것이 시라면 나도 써볼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독자의 마음을 간파하듯 저자의 자작 와카, 하이쿠, 센류가 챕터의 말미에 함께 실려 있는 것도 재미있다.

 

그야말로 시는 삶을 들여다보고, 삶은 시를 들여다보는 '한 줄짜리 일본시'가 가득한 그림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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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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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허블에서 제공한 가제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2회 과학문학상 대상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포함한 7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사로잡힌 작품은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한국인 우주인 후보로 선정된 가윤은 터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젊은 엘리트 여성이다. 터널은 저 너머의 다른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초소형 블랙홀의 외관을 한 일종의 연결통로다.

터널을 통과하기 위한 우주인 후보로 선발된 가윤은 터널 통과를 위해 압력과 중력가속도에 견디기 위한 신체 개조를 받아야 한다. 사이보그 그라인딩이라 불리는 이 신체 개조 과정은 가윤의 이모나중에 밝혀지지만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사이가 아닌이자 최초의 터널 프로젝트를 수행한 우주인이었던 재경 역시 겪었던 과정이다.

 

최초의 터널 우주 비행사이자, 한국인 여성, 그것도 마흔 여덟 살의 중년 여성인 재경은 그녀를 향한 사회적 압박을 물리치고 사이보그 그라인딩을 견뎌낸 유능한 여성이었다. 그런 재경은 당연히 가윤의 롤모델이자 영웅이었다.

그러나 터널 프로젝트를 수행할 우주인 후보로 선발된 후 가윤은 자신만 알지 못했던, 감춰진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영웅이었던 재경이 터널 프로젝트 과정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최종 테스트까지 견뎌 냈음에도 도망치듯 자살했다는 사실이었다.

 

재경은 터널 건너편의 새로운 우주로 넘어가기 위한 혹독한 신체 개조 과정을 마쳤지만, 터널로 가는 캡슐에는 탑승조차 하지 않았으며,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했다.

재경을 영웅으로 생각하며 그녀의 길을 따라 걸었던 가윤은 신체 강화 훈련을 견디며 어째서 재경이 출발 직전 그런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인지 생각한다.

 

가윤은 재경이 자살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만, 그녀를 비난하지는 못한다. 여성이 여성을 쉽게 비난하지 못하는 그 지점을 소설은 이렇게 드러낸다. 여성이기에 맞닥트리는 사회적 압박,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와 자신의 존재가 여성 대표인 것처럼 강제로 붙여지는 주홍글씨 같은 타이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떻게 가윤이 모를 수 있겠는가. 자신의 영웅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가윤은 재경의 선택에 대해 이유를 찾기 위해 고민한다.

그리고 가윤은 이유를 찾아내는데, 그 이유야말로 이 단편에서 가장 유머가 넘치고, 가장 당황스럽고, 가장 타당하여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재경은 신체 개조로 완성된 강인한 육체가 극한의 장소인 심해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스스로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만 놓고 보면 재경은 자신이 성취해 낼 최고의 성과를 눈앞에 두고 모든 사람거의 전인류에 가까운의 기대와 신뢰를 무참히 박살 낸 사이코패스 혹은 부적합자, 낙오자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이 한 장면을 통해 만약 이 세계와 우주를 관망하는 하나의 시선이자 기술력을 신이라 부른다면,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런 신의 논리가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다면 여성인 내가 어디까지 내 맘대로 살 수 있을까를 상상했다.

나 역시도 최고의 과학기술로 강화된 신체를 통해 온전히 나 자신의 능력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시험해 볼 기회가 온다면, 재경과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강화된 신체에 대한 욕망은 여성으로 살아온 내게 늘 존재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주인공인 가윤을 재경을 비추는 거울이나, 영웅의 뒤를 좇는 존재로 끝내지 않는다. 가윤은 재경이 보지 못한, 혹은 보지 않기를 선택한 또다른 우주의 존재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를 갈망하고 노력하는 어엿한 한 여성이며, 소설의 결말은 가윤과 재경, 두 명의 여성을 온전히 지지한다.

 

신체를 강화하는 기능적 의미의 개조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의미심장하게도 단편집의 맨 끝에 실려 있다.

여성 우주 비행사의 임무 수행에서 생리가 신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제대로 연구되지 않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는, 놀랍도록 균형을 잃은 시대다.

 

모두들 읽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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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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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표제작으로 쓰인 <종이 동물원>은 수록된 14편의 단편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켄 리우 단편의 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종이 동물원>에서 독자가 가장 처음 만나는 강력한 문장은 바로 아빠는 엄마를 카탈로그에서 골랐다.”일 터이다. 이 하나의 문장은 어느새 한국사회를 행해지고 있는 매매혼의 모습을 스치고 지나가게 만든다. 그리고 아시아 국가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이라면 이 문장이 어떤 기쁨과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모르고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인공 칸 역시 이 하나의 문장으로 가족의 뿌리를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 충격적인 문장은 칸이 성장하며 자신의 가족, 특히 엄마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이 변하고 태도가 바뀌게 될 것인지 갈등을 내포하며 독자를 끌어당긴다.

   칸의 엄마는 종이로 동물을 접어 혼을 불어넣는 마법을 가진 사람이다. 칸의 세계가 아직 중국어와 영어라는 두 가지 언어로 갈라지기 전 이 마법은 칸과 엄마 두 사람 모두에게 안락한 세계를 담보했다. 영어라는 언어가 바탕이 되는 세계에서 칸은 엄마의 언어를 부정한다. 그리고 엄마와 자신이 만든 <종이 동물원>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봉인한다.

   칸이 다시금 종이 호랑이인 라오후를 만나게 된 건 부모와 자식의 갈등이 해소되는 시점에서다. , 자신의 부모가 이미 사라지고 자식이 지은 과오만 남은 시점이다. 칸은 그때서야 비로소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이 거부한 엄마의 언어로, 칸은 엄마가 겪은 세계를 받아들인다.

   <종이 동물원>은 어렸을 적 읽고 듣고 자란 전래동화 같은 지점이 있다. 전래동화는 나라마다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재미는 세계 공통적인 감각이지만 사회적 차별과 억압, 관습을 아직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느끼는 전래동화의 재미는 어른이 느끼는 재미보다 훨씬 농밀할 것이다. 켄 리우의 단편소설은 내게 그런 농밀한 재미를 주었다. 많은 번역 소설들, 비단 장르를 떠나 수많은 이야기들이 특정한 인종이 주인공인 고정값을 갖고 있었다. 가끔은 내 문화권의 세계관을 위협하기도 했다. 하지만 켄 리우의 소설은 그 고정값을 바꾸어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호랑이를 상대로 분투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타국의 사람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품을 들여 찾아봐야 할 여러 고정값이 들어있다. 하지만 한국인인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재미있다고 웃고 떠들고 즐기면 된다. 켄 리우의 소설 역시 그렇다. 나와 반대의 고정값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가 여기 있다. 단지 숨으로만 소통할 수 있는 세계를, 마법의 존재인 종이 호랑이 라오후를 켄 리우가 우리에게 접어 주었다.

 

  너무 착한 이야기라 시시한가?

  당신은 아직 켄 리우를 읽지 않은 사람이다.

"엄마는 카탈로그의 맨 마지막 쪽에 있었단다." -<종이 동물원> 중

친구가 필요했다.
태평양 이쪽에서 친구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파자 점술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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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민족사진연구회 지음 / 리슨투더시티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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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기록된 89년에서 93년까지의 역사는 내게 교과서 속 한 페이지였다. 교과서의 밋밋한 문장에는 이 시기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리고 2016년 서울, 나는 깊이 분노한 사람들 한가운데 서 있었다. 모두가 이렇게 분노했는데, 그른 것을 그르다 외치고 있었는데도 나는 이기지 못할까 두려웠다. 실체도 없는 거대한 악 같은 것이 내 삶을 통채로 기울게 만들어 맨 땅에서도 깊이 가라앉아버릴까봐 두려웠다. 두려워하며 분노했다.
<싸움>속 사진들에서 나는 역시나 깊이 분노한 사람들을 보았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나는 다시 한 번 깊이 분노한 사람들 속에 서 있었다.
어쩌면 이 세계가 태어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자신과 가장 긴밀했던 세계를 기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과 공간을 잇는 가장 뜨거운 욕망, 기록. 그리하여 어떤 책은 세상에 출간됨으로써 기록의 책임을 충족시킨다.
아직도 이토록 가까운 '싸움'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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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챌린지 : 한국환경보고서 2017
녹색사회연구소 지음 / 알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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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대한민국의 대표 환경 이슈 분석과 그 사례를 모았다. 뉴스를 통해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온 환경이슈지만 책으로 정리되어 읽으니 한결 간결하고 맥락이 명확하다. 2017년 우리의 환경지표까지 제시하고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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