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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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정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멀어도 좋지 않지만, 너무 가까워도 좋지 않다. 사람 사이의 문제는 서로 간의 거리가 멀어질 때보다는 가까워질 때 더 많이 발생하고, 그래서 우리는 거리를 둔다. 객관적,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위치를 유지하려 애쓴다. 제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삶은 적정 거리 안쪽 (스스로 제어 가능한) 세계와, 적정 거리 너머  (외부 요인에 의해 흘러가는) 세계 간 영토 분쟁의 연속이다.

피아식별은 놀랍도록 빠르게 이루어진다. 침입자가 자신의 영역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걸 용납할 사람은 많지 않다. 먼발치에서 바라볼 때는 한없이 사람 좋던이라 할지라도 확신할 수 없다. 사람들 중 일부는 타인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급격히 부산해지기도 하고 예민해지기도 한다. 타인의 접근이 오랜 세월 쌓아 올린 벽을 허물어버리기라도 할 듯 두려워한다. 최악의 경우 가차 없이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벽을 지켜낸다. 이 경우 법은 폭력이 행해진 이후, 즉 사건에 대해서만 문서대로 판단한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적정 거리 바깥에서 보았던 사람과 적정 거리 안쪽에서 마주친 사람, 어느 쪽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OOO은 절대 그런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도 절대 그럴 일이 없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럴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때마침 OOO이 그런 사람일수도 있다. 나 자신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절대적인 믿음이란 섣부른 이야기다. 혹은, 무관심의 변명일 뿐이거나. 이도 저도 자신 없다면 차라리 OOO과 나 사이의 적정 거리를 가늠해보는 쪽이 안전할지도 모른다.

『적』은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와 살인자 장클로드 로망 사이의 거리감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1993년 한 가장이 자신의 일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프랑스 내 목소리 대부분이 사건의 가해자인 장클로드 로망을 악마, 싸이코패스로 몰아가는 가운데.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는 악마가 아닌 사람 장클로드 로망의 실체에 대해 추적해나간다.

거짓의 거짓으로 둘러싸인 로망의 실체만큼이나, 이 책의 장르 역시 단정 짓기 쉽지 않았다. 문학과 다큐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듯. 카레르는 분노나 경멸, 동정과 연민 등 그 어떤 감정의 개입 없이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글을 써 내려간다.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청하는 기분으로 읽어 나갔다. 카레르와 로망 사이의 거리를 나와 애인 사이의 거리로, 업체와 업체 사이의 거리로, 댓글과 댓글 사이의 거리로, 내 머리와 마음 사이의 거리로 무수히 치환해볼 수도 있었다. 각자의 세계에서는 이해받지 못할 일이 없었고, 각자의 세계 밖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넘쳐났다. 의심하지 않았기에 존재하지 않았던 몇 가지 일들은, 의심하는 그 순간 진실이 되어 내 눈앞을 아른거렸다.

소설에서 인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 대체적으로 소설의 결말은 어두워진다. 여름의 끝자락은 조금 더 밝은 소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꿉꿉보다는 드라이한 불쾌함과 허무함. 그리고 끝에서 따라 올라오는 혼탁함 정도를 테이스팅 노트에 끄적여 본다. 민성님이라면 이런 느낌의 칵테일을 제조해줄 수 있으려나.

P.S. 1.

7년이 지나 발표한 『적』의 후속작 『러시아 소설』에서 카레르 자신은 무엇을 위해서 글을 쓰는가, 자신의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고민으로 완전히 빠져버렸다. 타인과의 적정 거리는 끝끝내 유지했지만, 자신이 써낸 소설과의 적정 거리는 유지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호수에 빠져버린 나르시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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