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 이응준 연작소설집
이응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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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신체의 기능이 다하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아니면 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거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 땅 위에서 사라지는 것은 어색하지 않은 일이다. 매일 여럿이 죽고, 매일 죽어버린 여럿 이상의 숫자가 태어난다.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세계 인구로 75억이 넘는 숫자가 집계되어 있고,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다. (http://www.worldometers.info/world-population/) 대략 10년 전쯤 유행했던 숫자송의 가사 '6! 60억 지구에서 널 만난 건 7! 럭키야!'도 이제는 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기왕이면 60억 지구뿐 아니라 7 럭키까지 모두 말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죽음은 흔한 일이지만,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죽음은 흔치 않은 일이 된다. 일반화시키지 못하고, 계속해서 질문하게 된다. 세상에 대해, 신에 대해, 죽은 이에 대해, 그리고 죽은 이와 나 사이의 갈라져 버린 틈에 대해서. 이윽고 몹시 두려워진다.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이는 결국 죽은 이일뿐이다. 죽은 이는 과거형 안에 갇히게 되고, 나는 죽은 이가 갇혀버린 벽 옆에 머무른 채, 미래로 가야 하는데 한동안 떠나지 못한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모니터 속 Deaths this year에 일조한 내 대학 동기의 이야기다. 녀석이 왜 죽음을 결심했는지는 대략 짐작이 간다. 나는 녀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요 몇 년간 계속해서 지켜봐왔고, 그것은 한 인간의 완벽한 몰락이었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비극이었다. 나의 질문은 녀석의 죽음 자체 보다는, '왜 나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는가?'로 기울어진다. 녀석은 3월에 세상을 떠났지만 내가 녀석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5월이었다. 부고는 유가족이 내게 남겨둔 SNS 메신저 메시지를 통해서 전달되었다. OO이 자살을 했고, 딱히 연락할 만한 친구도 연락처도 없어서 이렇게 SNS로 메시지를 남긴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오래된 메시지는 확인과 동시에 증발해버렸고, 홀린 듯 클릭한 녀석의 SNS 페이지에는 녀석이 세상을 떠나던 날 작성한 마지막 게시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황당함에 눈물보다는 욕지기가 먼저 치밀어 올랐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생(生)보다는 마지막 가는 길을, 마지막 소주잔 한 잔을... 지금도 나를 제외한 대학 동기들은 녀석의 죽음을 모른다. 녀석에게는 친한 친구가 정말로 나 하나뿐이었던 모양이다. 다음 모임이 오면 동기들은 나에게 으레 질문할 것이다. 녀석은 요새 뭐하고 살고 있냐고. 그러면 나는 대체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


녀석을 알게 된 건 대략 10년 전쯤으로 돌아간다. 신입생이던 녀석과 나는 둘 다 6, 06학번이었고, 시끌벅적한 모임에서는 언제나 말수가 많지 않았다. 이유 없는 친절도, 안부도 모두 부질없다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술자리에서 딱히 할 말이 없다 보니, 술잔만 계속 비우게 됐다. 내가 술을 잘 마신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처음 만난 사람들일 것이다. 실제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입에 술이라도 물고 있는 편이 나았다. 녀석은 그런 나의 기분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단 한 명이었다. 별다른 말 대신 그냥 같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남기는 항상 끝까지 남아있었다. 막차가 끊기면 나는 녀석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혼자 살기에는 적당히 넓고, 네모난 창문으로는 서늘한 외풍이 불어오는 방이었다. 녀석과 나는 신기하게도 그곳에서만큼은 서로에게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 있었다. 술자리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으면 둘 다 지금쯤 친구가 백 명은 거뜬했겠다 싶을 정도로.


잠깐, 나는 지금 녀석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해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는데, 무언가에 홀린 듯 키보드를 두들기다 보니 이야기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에 먼저 다다른다. 사실 시작은 이응준 작가의 신작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에 대한 작은 감상을 쓰고자 했던 것이었는데 말이다. (녀석의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계속해서 이어가기로 한다.) 친구의 자살을 마주하게 된 내가 자살을 이야기하는 연작 소설집을 읽게 된 것, 그리고 그 소설집에 홀딱 빠져버린 것은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직접 겪고 공감할 수 있게 된 이야기에 쉬이 빠져들게 되어 있지 않던가? 심지어 명왕성의 이응준이니 말 다 했다. 문장은 냉소적이면서도 무겁고, 시(詩) 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지난한 문장을 무기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수록된 모든 이야기에 '자살(혹은 자살 충동)'이 등장하지만 결말은 예상을 조금씩 빗나간다. 불안정했던 주인공들은 타자의 죽음으로부터 질문을 시작하고 결국 새로운 생(生)의 국면을 맞이한다. 이미 죽은 이도 죽음을 고민하던 이도 모두 다시 태어난다. 나는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이라는 표제에서 '사랑'밑에 '죽음'을, '죽음'밑에 '추억'을 병기해두고 싶어졌다. 수록된 모든 소설을 읽고 나니, 나 또한 잠깐이나마 (녀석과 같이) 다시 한 번 태어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고,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 후에 남는 건 질문뿐이다. 정해진 답변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서,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된다. 나 역시 매일 질문하고 답변을 해나가는 중이다. 죽은 녀석이 갇혀있는 벽에서 한 발자국씩. 그렇게 점차 미래로 떠나갈 것이다. 6! 60억 지구가 75억이 된 것처럼, 그렇게 계속 늘어가는 것이 과연 7! 럭키한 일인지는 여전히 판단이 잘 서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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