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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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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서평가, 내가 즐겨 찾는 한 유명 블로거의 포스트 아래 얼마 전부터 이 같은 해시태그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각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독서량, 한눈에 쏙쏙 들어오는 읽기 쉬운 문장,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댓글과 공감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붙인 해시태그에는 타당성이 있다. 그저 웃고 즐기자고 붙인 태그가 아니었다. 지금은 스스로 태그를 달지만 머지않아 사람들이 나서서 그를 그렇게 부를 것이다. 반복된 노출의 힘은 언제나 강력하다.

 

사실 그 블로거만이 아니다. '서평 잘 쓰는 블로거'들은 진짜 많다. 내가 구독하는 블로그들만 봐도 그렇다. 좀처럼 그 숫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내 깜냥에는 과분한 일이지만, 문득 나는 그들 중에서 과연 몇 등이나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카테고리를 나누자면 이 블로그도 서평 블로그에 해당하니 말이다. 일단 글로 밥을 벌어먹고사는 프로들은 경쟁상대에서 제외. 내가 가장 잘 쓴 서평들을 보내 호날두(혹은 메시)들과 싸움을 붙이는 것은 모양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무대를 인터넷 서점 정도로 좁혀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의 서점들. 이들의 공통점은 나름 그럴싸한 유통망을 갖추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나 월단위로 우수 서평을 뽑아 적립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교보문고는 초대형 서점이지만 우수 서평에 대한 시상이 빈약해 제외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서평을 꾸준히 쓰는 블로거라면 대다수가 인터넷 서점들로 자신의 글을 나르고 있을 거라고 본다. 적게는 1,2곳 많게는 저 4곳 모두에 말이다. 서평 블로거는 계속 읽을 책이 필요하고, 각 서점은 소비자들을 솔깃하게 할 서평이 필요하다. 운이 좋으면 날려보낸 서평들이 적립금을 물고 돌아와 한 달치 책값을 충당해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단 한 번이라도 우수 서평 선정의 맛을 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서점 사이트를 기웃거리는 일이 어색하지 않게 된다.

 

일단 나부터가 그랬다. 처음은 쿤데라의 <우스운 사랑들> 서평이었다. 나의 글이 금주의 우수 서평으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게 된 그 날. 나는 곧바로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렸고 지인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우러러만 보던 파워블로거가 멀지 않아 보였다. 몰래 구독하던 우상들의 닉네임이 나의 닉네임과 같은 화면에 나열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느낀 희열은 실로 대단했다. 심지어 우상들 중 친절한 몇몇은 나의 글을 읽고 나서 댓글로 파이팅을 외쳐주기도 했다.

 

 

"센시니는 … 얼마 전에 내 글을 읽어봤는데 <일급 단편>이자 수준 높은 글이라 생각한다며(나는 아직도 편지의 원본을 보관하고 있다) 계속해서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그런데 내가 처음 이해했던 것처럼 글쓰기에 정진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모전에 정진하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도 그러겠노라고 다짐까지 하는 것이었다." - 18 ~ 19p

 

 

볼라뇨의 단편 <센시니>를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후 블로그 이웃이 된 나의 센시니들은 나에게 계속해서 이쪽(?) 세계를 안내해줬다. 서평은 작성하면 블로그에 썩히지 말고 서점들로 퍼 나를 것, 메이저 출판사의 주목받는 신간들을 놓치지 말 것, 때로는 흠을 내서라도 날카롭게 비난할 것, 감정은 풍부하게, 감탄사는 아끼지 말 것 등. 센시니들은 출판 관계자를 사로잡는 서평 쓰기 스킬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해냈다. 실제로 그들은 그 방식대로 자신들의 닉네임을 꾸준히 서점 사이트 위에 새겼다. 나도 몇 가지는 내 것으로 만들었지만 대다수는 내 스타일과 맞지 않아 포기했다. 다른 무엇보다 솔직함을 버려야 한다는 게 어려웠다. 그렇게 쓰는 서평 쓰기는 스스로에게 구토를 유발한다.

 

어쨌든 계속해서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다.(서평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감상이라고 쓴다.) 그러다 보니 나도 점차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서평을 쓰고 나면 이 서평이 적립금을 물어올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감이 온다. 요즘에는 거의 75% 정도는 적중한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내 글을 뽑아주는 서점 관계자들 덕분에 책값이 바닥나지는 않는다. 그건 참 다행이다. SNS에 자랑은 그만 하기로 한다.

 

다시 '나는 몇 등일까'로 돌아가 보자. 무대를 인터넷 서점으로 한정하고, 점수의 기준은 리뷰로 인해 얻는 적립금으로 산정해보면 어떨까? 신성한 독서 활동을 이런 식으로 줄 세운다 치면 속상할 분들도 많겠지만, 그리고 이 같은 산정 기준이 무척이나 세속적인 것도 다 인정하지만, 그냥 재미로 본다 치고 너그럽게 눈 감아 주시길 바란다. 실은 그 세속적인 면이 이 랭킹의 핵심이다. 랭킹의 이름도 소설 속 공모전 마스터인 작가 센시니의 이름을 따 '센시니 랭킹'으로 혼자 결정했다. 2015년 1월부터 지금까지의 수상작들을 조사하면 대략 자료가 나올 것이다. 기간이 너무 짧아 자료의 신뢰도가 낮다 하면, 조금 무리해서 최근 2년 정도까지는 취합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할 일이 없는 어느 주말 밤에 혼자 랭킹을 매겨볼 계획이다. 자료가 나와도 대놓고 공개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혹여나 자신의 랭킹이 궁금한 분들이 있다면 각 개인에게만 따로 공개를 하던지... 미리 예상해보자면 아마 나는 한 공동 150위권쯤에 있지 않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글은 어느 서점에서도 우수 리뷰로 뽑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에는 10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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