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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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성웅 이순신. 난 이러한 말들을 싫어한다. 국뽕이라고 하나? 이러한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그리고 영화 <명량>도 싫었다. 마치 <국제시장>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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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얼마나, 무엇을 알았나 싶다. 물론 지긋지긋하게 세뇌된 덕분에 단편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 정도는 안다. 아직 12척이 남았다는,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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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알려진 이순신의 행적, 공적, 그리고 피상적인 선조와의 갈등, 아들의 죽음, 당시의 외교적인 상황, 그러한 것들을 베이스로 작가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그 사람의 마지막 2년의 기록을 소설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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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도 그의 전공을 미화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인간적인 고뇌, 가족에 대한 사랑, 임금에 대한 불신 등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어 마치 내가 그가 된듯한 착각에 분노하고, 좌절하며 어서 빨리 이 상황이, 이 생이 끝나길 바랐던 건 작가의 섬세한 묘사, 특히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탁월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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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적인 사건, 인물 등 전체적인 틀에 작가적인 상상력과 이순신에 대한 작가의 존경심이 그를 위대한, 실제로도 탁월한 지휘관이었던 한 인간에 대한 오마주가 이 책을 세상에 나오게 했고, 교과서에, 문고판 서적에, 광화문 광장에 항상 우리 곁에 있었지만 외롭고 잊혀졌던 이순신이라는 탁월한 지휘관을 - 그의 인간적인 면은 알지 못한다. 다만 순리에 맞는 삶을 산 것은 맞는 것 같다 - 다시 현대에 소환해 그의 위대한 전과를 생생하게 각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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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순신이 의금부에서 풀려나 '백의종군'하며 남해로 다시 내려가는 장면에서 시작해 다음 해 무술년(1598년) 철수하는 일본군을 맞아 노량에서 전사할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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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군통제사가 되어 전선 12척으로 적의 수 백 척의 적선을 물리친 '명량'에서의 전투, 아들 '이면'의 죽음, 명의 수군과의 갈등, 그리고 마지막 노량에서의 전사까지, 이순신은 끝없이 자신의 '사지(死地)'를 찾았고, 결국 본인이 원하는 '자연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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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과 부하들을 돌보며 자신의 안위보다는 나라를 위했고, 임금을 가엾이 여기었고, 백성 또한 가엾게 여기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듯 사사로운 혈육의 정보다는 부하들을 위했고 한때 통정했던 여인의 죽음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소금창고에서, 종의 숙소에서 아들을 위한 눈물을 흘렸고, 통정했던, 자신이 외면했던 그 여인의 몸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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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는 냉철하고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지 않는 지휘관이었지만, 항상 악몽에 시달렸고, 아들을 그리워했고, 여진의 몸을 탐하던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고, 명나라의 오만방자함에 무기력을 느꼈으며, 일본의 침략에 적의를 느꼈다.

임금을, 백성을 연민으로 대했고, 자신의 운명을 알았다. 그래서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의 '사지'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자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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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훈 작가의 글은 너무나도 세심하고 사실적이어서 사실 불편한 점이 많다. 냄새와 풍경 묘사가 특히 그렇다. 그의 글을 읽으면 냄새가 난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냄새도 있고, 모르는 냄새도 있다. 문제는 모르는 냄새도 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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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의 풍경 묘사는 자세하기도 하지만, 미학적이며 문체가 화려하다. 어떻게 여기서 이런 표현을, 또는 이렇게 생생한 묘사가 가능하구나라고 느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으면 '작가'라는 직업의 벽이 까마득하게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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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순신 장군의 '칼'은 어떠한 의미인가? 김훈 작가의 '칼'은 '펜' 또는 '글'인가? 나의 '칼'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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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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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저녁이면 먼 섬들이 박모속으로 불려가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먼 섬부터 다시 세상에 돌려보내는 것이어서,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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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9 칼의 울음

* 박모(薄暮)(Dusk) - 저녁의 어둠의 시작으로 땅거미라고도 한다. 일몰과 혼동된다. 저녁 박명의 끝

* 박명 - 일몰 후에 잠시 밝고 푸른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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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임금은 강한 신하의 힘으로 다른 강한 신하들을 죽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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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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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주기를 나는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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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길이 돌아간 지 보름 뒤에 임금이 보낸 '면사첩'을 받았다. '면사' 두 글자뿐이었다.

(······)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p 44 / 57 / 60 / 110

전선들이 다가오자 연기 냄새는 더욱 짙었다. 죽은 여진의 가랑이 사이에서 물컹거리던 젓국 냄새와 죽은 면이 어렸을 때 쌌던 푸른 똥의 덜 삭은 젖냄새와 죽은 어머니의, 오래된 아궁이 같던 몸냄새가 내 마음속에서 화약 냄새와 비벼졌다.

p 137 누린내와 비린내

아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울음이 내 몸속에서 양쪽 다 울어지지 않았다. 몸속 깊은 곳에서 징징징 칼이 울었다. 가장 괴롭고 가장 선명한 길을 칼은 가리키고 있었다.

p 151 그대의 칼

내 어깨에는 적이 들어와 살았고, 허리와 무릎에는 임금이 들어와 살았다. 활을 당겨 표적을 겨눌 때 나는 내 어깨에 들러붙은 적을 느꼈고 칼의 세를 바꾸려고 몸을 돌릴 때 나는 내 허리와 무릎 속에서 살고 있는 임금을 느꼈다. 157

p 157 무거운 몸

끼니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

​

그해 겨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격군과 사부들이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나는 굶어 죽지 않았다. 나는 수군통제사였다. 나는 먹었다. (······)

그해 겨울의 밥은 무참했다. 끼니는 계속 돌아왔고 나는 먹었다. 나는 말없이 먹었다.

p 189 밥 / p 193~194 밥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p 294 서늘한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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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ㅣ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5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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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장미의 이름>(읽어보지는 않았다)이 워낙 유명해 소설가로 알고 있었는데, 소설은 그냥 취미일 정도의 이력이었다. 기호학이 가장 유명한 주류이고, 철학, 미학, 언어학, 역사학 등의 만능 제너럴리스트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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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잡지에 연재된 에세이들의 모음집이라고 하는데, 패러디가 주된 비평적이고, 비판적인 에세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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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러디 - 어떤 진지한 작품을 해학적으로(또는 풍자적으로) 개작한 것

* 파스티슈(Pastiches) - 어떤 대가의 기법이나 양식을 모방한 것

* 포스티슈(Postiches) - 가발이나 가짜 수염처럼 덧붙인 것, 인공적인 것, 거짓으로 꾸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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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쓸 것을 미리 쓰는 것이다. 패러디의 사명은 그런 것이다. 패러디는 과장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제대로 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 줄 뿐이다.

p 10 프랑스어판 서문 중에서

이 책의 내용들 중 일부는(조금 많이는) 시대의 특성상 지금은 식상하거나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내용들이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아니면 그러한 부분들은 스킵 하면서, 또는 시의성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사소한 사물들, 당연한 듯 그냥 넘어가는 일들, 아주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알아차릴 수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모든 일련의 일들, 이러한 것들을 작가는 비꼬고, 꼬집는다. 때로는 신랄하고 시니컬하게 때로는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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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생각되면, 책을 덮으면 되고, 작가의 관점에서 한 번 느껴보고 싶으면 또는 어떻게 묘사하는지, 어떠한 표현을 쓰는지, 생각할 거리가 필요하다면 붙들고 가볍게 읽으면 되는 책이다. 난 후자를 택해서 끝까지(끝으로 갈수록 어렵다. 전문적이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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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의 글이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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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미디어의 <계시>에 힘입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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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실용 처세법'은 빠르게 변화하는 삶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기 위한 처세법을 유쾌하게 또는 통렬하게 비판하며 폭소 또는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어 2부는 '성조기'로 공상과학소설의 형식을 빌린 미국(또는 강대국)을 조롱하는 내용이며 3부는 '카코페디아 발췌 항목'이다. 무지 어렵고, 다방면(수학, 과학, 철학, 기호학)에 최소한의 지식이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4부는 '내 고향 알레산드리아'로 작가의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회상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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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코페디아 - 그리스어의 <카코(나쁘다는 뜻)>와 <페디아(교육이라는 뜻)>를 합쳐 만든 것으로 <나쁜 백과사전>, <반지식 백과사전>등으로 옮겨질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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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서문을 쓰는 방법 - 에코는 이 책의 서문에서 감사의 말을 안 쓴 이유를 이 글에서 참조하라고 했다.(조금 길다)

(······)

감사의 말은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도 보여 줄 것이다. 품격 높은 전문가라면 마땅히 감사의 말도 능숙하게 작성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집필을 마치고 나서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설령 그게 사실일지라도 누구에게든 빚을 졌다고 꾸며대야 할 일이다. 빚을 지지 않고 이루어진 연구는 의심을 살 염려가 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 감사의 말을 바칠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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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칼럼을 쓰게 된 것은 오랫동안 학술 출판에 관계해 온 값진 경험 덕분이다. 또 내가 학술 출판과 친숙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이탈리아 공화국의 교육부와 토리노 대학, 피렌체 대학, 밀라노 과학 기술 대학, 볼로냐 대학, 그리고 뉴욕 대학, 예일 대학, 컬럼비아 대학 덕택이다.

만일 사비나 양의 귀중한 협력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기고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새벽 두 시경이면 담배꽁초와 찢어 버린 종이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내 작업실이 아침 여덟 시가 되면 그녀 덕분에 깔끔한 모습을 되찾았으니 말이다. 바르바라와 시모나, 가브리엘라에게 각별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내 관심사와 동떨어진 갖가지 주제의 학술 대회에 참가하라고 대서양 건너편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그들은 내가 방해를 받지 않고 집필에 몰두할 수 있도록 애써 주었다.

내 아내의 한결같은 도움이 없었다면 이 칼럼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내는 존재의 중요한 문제들에 한없이 집착하는 한 학자의 기분과 무절제를 용케도 견뎌 왔고 지금도 잘 견디고 있다. 세상만사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그녀의 충고를 들으면 어두웠던 마음이 다시 밝아지곤 한다. 말로는 스코틀랜드산 최고급 몰트 위스키를 준다면서 언제나 사과 주스를 내게 주었던 그녀의 그 고집스런 배려는 나의 작업에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공헌을 했다. 이 글이 미약하나마 명징함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건 바로 그녀의 배려 덕분이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일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애정과 에너지와 자신감을 줌으로써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나의 일에 대해서 보여 준 아이들의 철저하고 초연한 무관심에 감사한다. 그 덕택에 나는 포스트모던한 사회에서 지식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와 씨름하면서 이 칼럼을 마감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고마워할 것이 또 있다. 그들과 가장 친하게 어울려 다니는 녀석들의 머리 모양은 나의 감성과 배치되는 미적 기준을 따르고 있다. 나는 우리 집 복도에서 그 녀석들과 마주치기보다는 차라리 서재에 홀로 틀어박혀 이 칼럼을 쓰고 싶었다. 그 완고한 의지가 내게 늘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글이 발표될 수 있었던 것은 카를로 카라치올로, 리오 루비니, 에우제니오 스칼파리, 리비오 자네티, 마르코 베네데토 및 <레스프레소>사의 여타 임원들이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 밀비아 피오라니 경리부장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는 다달이 거르지 않고 도움을 줌으로써 나의 연구가 중단되지 않도록 해주었다. 나의 이 변변치 않은 칼럼이 많은 독자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영업부장 귀도 페란텔리의 덕택이다.

본고를 작성하면서 올리베티사의 도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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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서 교수형 생중계를 보는 방법 - 사형의 반대자 입장에서 쓴 글

사형과 관련해서 세상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다. 반대하는 사람과 필요성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텔레비전에서 사형 생중계를 한다면, 반대하는 사람은 만일 비위가 약하다면 텔레비전을 꺼도 된다. 만일 당신이 사형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마땅히 사형수가 버둥거리고 껄떡거리고 지지직 타들어가고 소스라치고 움찔거리고 콜록거리다가 숨을 거두는 장면을 보아야 한다. 사형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 마치 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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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 - 이성 간의 성관계는 죽음을 유발한다 : 이성 간의 결합은 아이가 생긴다 → 누구든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

1. 자유직업 종사자들과 정치인들 : 실험적인 연극을 공연하는 작은 극장에서는 배우들이 튀기는 침의 사정권이다. / 국회 의원들은 마피아와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한다(대부의 손에 입을 맞추어야 한다. 성찬식을 피해야 한다. 사제의 손가락을 통해서 병원균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질 수 있다)

2. 일반 시민 : 치과 의사와 접촉을 피해야 한다(다른 사람들의 입안을 뒤적거리던 손가락을 당신의 입안에 집어넣기 때문) / 하루에 담배를 네 갑 이상 피우는 사람은 이것저것 만지던 손으로 담배의 필터 부분을 만진다 그래서 병원균이 자연스럽게 호흡기 속으로 들어간다. /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단두대의 칼날이 사용 전에 소독되어 있지 않을 경우가 많다)

3. 제3세계 거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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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 -

이카로스 - 한바탕 곤두박질을 치고 난 기분입니다

페르세포네 - 죽을 맛입니다

오이디푸스 - 질문이 복합적이군요

오디세우스 - 곧 돌아오겠소

에피메니데스 - 내가 그걸 말한다면 거짓말을 하는 게 될 거요

고르기아스 - 글쎄요

피타고라스 - 만사가 직각처럼 반듯합니다

히포크라테스 - 뭐니 뭐니 해도 건강한 게 최고지요

소크라테스 - 모르겠소

디오게네스 - 개 같은 삶이외다

플라톤 - 이상적으로 지냅니다

루시퍼 -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하느님이 아실 거요

케옵스 - 마음에 늘 태양이 가득하지요

세에라자드 -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단테 - 천국에 온 기분입니다

아벨라르 - 자르지 마세요!

아베로이스 - 잘 지내면서 잘못 지냅니다

에라스뮈스 - 미친 듯이 잘 지냅니다

데카르트 - 잘 지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파스칼 - 늘 생각이 많습니다

프랭클린 - 벼락 맞은 것처럼 짜릿합니다

레오파르디 - 더할 나위 없이 잘못 지냅니다

만초니 - 하느님 덕분에 잘 지냅니다

자허 마조흐 - 하느님 덕분에 잘 지내지 못합니다

사드 - 좆나게 잘 지냅니다

칸트 - 비판적인 질문이군요

헤겔 - 총체적으로 보아 잘 지냅니다

마르크스 - 내일은 더 잘 지내게 될 거요

비트겐슈타인 -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게 낫겠군요

카뮈 - 부조리한 질문이군요

미시마 유키오 - 내 배가 텅 비어 있습니다

하이데거 - 바스 하이스트 게엔? (지낸다 함은 무엇을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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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씽 The One Thing (리커버 특별판)
게리 켈러 & 제이 파파산 지음, 구세희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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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분야의 책 중에서는 유명한 책이고 베스트셀러이다. 몇 번의 패스 끝에 읽어 보았다.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뜬구름이 아닌 실용적인 내용으로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다. 물론 실천이, 행동은 어렵다. 그렇기에 이러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아닐까? 위대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에 집중한다는 말, 진리이자 단순하지만 어려운 행동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일들을 벌려 놓았고,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은 도처에 물리적, 정서적으로 포진해 있다. 또한 우리는 언제라도 자기계발의 어려움을 변명할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 그렇게 많은 사람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도 않으면서 - 즉 전문적인 '단 하나' 없이 이것저것, 이곳저곳 일만 벌려 놓고, 발만 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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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러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단순하게 '단 하나'에 집중하라고 한다. 지금의 작은 시작이, 가장 처음에 쓰러뜨리는 작은 도미노가 결국에는 큰 성공을, 행복한 노후를 만들어 준다고. 성공에 관해 흔히들 진리라고 여기는 대부분의 것들이(멀티태스킹 능력, 자기관리라는 허상, 맹목적인 의지력, 모든 일이 다 중요하다는 생각, 일과 삶의 균형 유지하기, 처음부터 크게 벌이는 것보다는 작게 시작하기) 거짓말이며 '목적의식'을 가지고, '우선순위'로 일을 처리하고, 자신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사는 사람이 크게 성공을 한다는 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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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The One Thing)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이다. 이 방법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 자기계발법이자 성공에 이르는 우직한 진리이다. 자기계발 관련 책들 또는 재테크 책들을 보면 서로 상반되는 방법들에 대한 그럴듯한 논리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예를 들면 이 책과 같이 '단 하나' 중요한 한 가지에 집중해서 사는 삶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있는 반면 어떠한 책들은 멀티태스킹 또는 여러 가지 능력 개발을 통한 제너럴리스트가 되라는 책도 있다. 또 SNS와 인터넷을 이용해 돈을 벌라는 책이 있고, 또 어떤 책은 인터넷과 습관적인 SNS는 시간 낭비이며 거기에 빼앗기는 시간을 아껴 집중하고 깊게 일을 하라고 한다.(얼마 전에 읽었던 책이 바로 그러한 내용이었다 - '딥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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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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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단 하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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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도미노 효과 - 핵심은 오랜 시간이다. 성공은 연속하여 쌓인다. 단, 한 번에 하나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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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성공은 반드시 단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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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거짓말 - 헛된 믿음과 거짓도 오랫동안 자주 쓰이다 보면 결국 친숙하게 느껴지고 어느 순간 진실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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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모든 일이 다 중요하다

- 성과의 세상에서 모든 것이 다 똑같이 중요할 수 없다 / 중요한 일에만 파고들고, 극단까지 가서 '단 하나'만 남게 하고,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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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멀티태스킹은 곧 능력이다

"멀티태스킹은 그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망칠 기회에 지나지 않는다. - 스티브 우젤(영화배우)

-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한 번에 두 가지 일에 모두 효과적으로 집중할 수는 없다. / 멀티태스킹은 업무 속도를 늦추고, 우리는 바보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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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성공은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온다

- 자기 관리에 집착하지 말고, 한 번에 하나씩 습관을 들이되 습관 하나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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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의지만 있다면 못할 일은 없다

- 의지력만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타이밍'이라는 요소가 필요하다. 의지력은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의지력이 가장 높을 때(주로 오전) 가장 중요한 일을 우선으로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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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일과 삶에 균형이 필요하다

- 한 가지 일에 시간을 쏟는다는 것은 자연히 다른 일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인다는 뜻이다. 그러니 균형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 한 명과 가정주부 한 명으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출발하여 생계를 책임지는 두 명과 가정주부도 없는 가정에 도달했다. 회사일은 물론이고 집안일까지 해야 하는 기혼 여성들의 삶이 고달파졌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p 101

- 극단을 추구하는 것도 나름의 문제가 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무언가를 지나치게 극단으로 몰아가며 뒤로 미루다간 그것을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

어린 자녀에게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거나 유치원 생일잔치에 참석하는 일을 정말로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섯 살 아이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과 고등학교 친구들을 둔 십 대 자녀와 식사하는 것이 정말 같을까? 어린 자녀의 축구 경기에 응원하러 가는 것이 다 자란 성인 자녀의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과 같을까?

p 106~107

- 중요한 업무는 극단적일 정도로 시간을 투자하고, 개인적 삶에서는 어느 한 가지를 버려둔 채 너무 오래가서도, 너무 멀리 가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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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크게 벌이는 일은 위험하다​

- 큰일을 두려워하면 작은 사고가 당신의 하루를 지배할 것이고, 큰일은 결코 현실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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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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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미래의 크기를 바꾸는 초점 탐색 질문

제11장 도미노를 세워라

제12장 삶의 해답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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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위대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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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라

-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가 곧 우리의 하는 일과 성취하는 바를 결정짓는다. 목적의식에 따라 사는 삶은 그 무엇보다도 강력하고 그 무엇보다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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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우선순위에 따라 살아라

-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우선순위에 따라 살면 그 '어디'에 이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 미래의 목적의식이 현재의 우선순위와 이어진다 : 오늘의 목표를 바탕으로, '최종 목표 → 5년의 목표 → 올해의 목표 → 이번 달의 목표 → 이번 주의 목표 → 오늘의 목표'를 위해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단 하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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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생산성을 위해 살아라

1. 휴식 시간 확보하기

2. 단 하나의 일을 할 시간 확보하기

3. 계획할 시간 확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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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단 하나를 위한 세 가지 약속

제17장 생산성을 훔쳐 가는 네 종류의 도둑들

제18장 위대함으로 가는 변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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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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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또는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비슷한 제목이기도 하고 후자가 더 친절한 제목 같기도 하다. 책의 내용은 스탈린 시대의 소비에트 공화국의 온갖 사상범 - 그들의 입장에서 사상범이지, 실상 이들은 말도 안 되는 온갖 이유들로 수용되어 있다 - 들을 수용하는 수용소의 하루를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의 시선으로 아침 다섯 시부터 취침시간인 밤 열 시까지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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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다섯 시 기상부터 점호, 아침식사, 작업장으로 가는 여정, 작업장에서의 일, 점심시간, 오후 작업, 수용소 복귀, 중간중간의 인원점검, 저녁 시간, 점호, 취침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하루가 수용소에서는 모든 것이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다. 밥 한 끼 - 그래봐야 멀건 국물만 있는 양배추(그것도 썩은) 수프, 거기에 생선 머리와 몸통 뼈와 꼬리만 남은 건더기, 건더기도 없는 죽 등 -에 목숨 걸고, 담배 한 모금 얻어 피우기 위해 비굴하게 아양떨고, 영하 27도의 날씨에도, 작업도구가 없어도 맨땅에 헤딩하듯 작업은 알아서 꼭 완수해야 하며, 수용소에서의 생존을 위해서는 자존심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그런 일상의 나날들이 주인공 '슈호프'가 있는 소비에트 공화국, 스탈린의 수용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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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수용소 생활을 했던 작가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있는(솔제니친은 1945년 반소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8년이라는 세월 동안 강제노동 수용소에 있었다) 이 소설은 스탈린 시대의 강제노동 수용소의 실상을 묘사한 것으로 극도로 가혹한 환경에서의 중노동과 수용소 내에서 만연하고 있는 부패와 뇌물, 밀고, 그리고 인간 취급도 못 받는 약자들인 죄수, 감독관 등의 권력자들에게 빌붙어 같은 죄수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막사장이나 당번들, 소포 담당하는 사람, 물건 보관해주는 사람, 취사부들, 온갖 종류의 인간 군상들과 그들의 갑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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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시대의 소비에트 이야기이지만, 어느 시대에나 어느 나라에도 만연한 부패한 정치권력 이야기이며, 근본적인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문제, 자신이 속한 소집단의 이기주의로 인한 편가르기 등 이 소설을 읽는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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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끝에 나오는 침례교도 '알료쉬카'가 '슈호프'에게 하는 하느님에게 하는 기도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듯 보인다. 당장의 작은 만족을 위한 기도를 하지 말고 영혼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는 '알료쉬카'의 말은 종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인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예술에 대한 언급도 있다. '예술 과잉은 이미 예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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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슈호프'는 자유를 얻는다 해도 그 자유를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모른다. 이미 수용소에서의 생활에 길들여져. 막연히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은 하나 간절함은 없다. 10년의 형기를 마쳐도 다시 유형을 당할 거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 실제로 그런 죄수들이 태반이다 - 오직 수용소에서의 하루하루 견디어 나가며 영창에 안 가는 걸 감사하게 여기고, 그저 죽 한 그릇, 빵 한 개 더 먹을 수만 있으면 행복하다. 그에게는 미래나 희망은 없다. 단지 하루하루 견디어 나가는 똑같은 오늘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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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p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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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매일 철학 - 일상의 무기가 되어줄 20가지 생각 도구들
황진규 지음 / 지식너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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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한때 폐인과 같은 안 좋은 의미로 쓰였던 단어가 이제는 제법 좋은 의미로 쓰인다. 덕질이라고도 한다.- 혹시나 해서 폐인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폐인도 덕질, 오타쿠와 비슷한 의미로도 쓰인다는 걸 알았다 - 한때는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였던 오타쿠가 이제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를 이르는 말이 된 것이다. 물론 그것이 생산적이고 순기능으로 작용했을 때의 일이다. 그렇다 '오타쿠' 또는 '덕질'의 좋은 예는 이렇게 관련 분야의 책을 낼 정도의 내공이 있다던가 또는 덕질의 결과물이 유·무형적으로 생산되어 재화를 창출한다면 가장 좋은 이상적인 결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의 저자와 같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덕질이 아닌 그 자체가 기쁨인 경우에도 심적인 만족감을 주어 자신의 생활이 즐겁다면 그것이 최선, 최고의 삶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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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명의 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실생활에 적용하기도 하고,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도 구한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나 자신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대한 철학자들의 혜안을 느낄 수도 있다.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앎'의 철학과 '삶'의 철학에 대한 저자의 의도대로 '앎'과 '삶'의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어떻게 잘 조화를 시켜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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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명의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철학자들의 사상, 즉 서양철학사를 가볍게 흩어봤다. 그래서 - 지면도, 경제성도 고려했겠지만 - 심도 있지는 않다. → 관심 있는 주제나 철학자는 개별적으로 파고드는 걸로

2. 설명이 쉽다. 친절하게 예를 남발해서 어려운 이론도 쉽게 이해가 됐다.

3. 각 철학자 별로 '아는 척 매뉴얼'을 뒤에 두어 가볍게 읽다가도 핵심 사상에 대한 원 포인트는 호오가 갈린다.(개인적인 의견이다)

→ 원 포인트는 괜찮은 시도이지만, '아는 척'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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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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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 데카르트의 '코기토'

선입견과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은? - 바로 의심이다. 의심하면 된다. 내가 확실하다고, 옳다고 믿는 것들을 모조리 의심해 보자.

내가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은 반드시 무언가로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진리는 매우 확고하고 확실한 것으로써...<방법서설>

p 20

- 코기토(cogito) : '생각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cogitare의 1인칭 / 데카르트는 '의심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만은 어떤 식으로든 의심할 수 없다'라는 확실한 사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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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사람들에게 관심 받고 싶은가요? - 파스칼의 '허영'

왜 sns와 '셀카'에 열광하는가? "인간은 허영을 가진 심정coeur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 파스칼

- '심정' : "지금 울고 싶은 '심정'이야"라고 할 때 그 '심정'을 생각하면 된다. / 우리의 삶에 더 가까운 건, 데카르트가 아니라 파스칼이다. '이성'적으로 울면 안 되는데 '심정'적으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 허영(虛榮) - '비어 있는虛, 꽃榮

아름다운 외모에 집착하는 것만 허영이 아니다. 그 반대도 허영이다. "중요한 건 외모가 아니라 내면이야"라는 말도 때론 허영이다. 심지어 초야에 묻혀서 살고 싶다는 책을 쓴 철학자도 그 책에 자신의 이름이 빠지는 것은 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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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좋아하는 일로 성공할 수 있나요? -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스피노자는 욕망이 '인간의 본질 자체'라고 이야기한다.

* 코나투스 : 모든 사물은 '자신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는 노력'을 하는데, 이것이 '코나투스'다. / 코나투스는 인간의 정신에서는 '의지'로 드러나고, 정신과 육체를 모두 포함하는 온전한 인간에게는 '충동'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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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 흄의 '동정심'

데이비드 흄David Hume - "착함은 동정심sympathy에 달려 있다" / '인과관계는 근본적으로 논증 불가능하다' / '세상에 자명한 법칙이나 진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진리.

흄의 '동정심'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한 뒤에 발생하는 나의 고통에 대한 경험(회상,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고통 자체가 나의 마음에 직접 느껴질 수는 없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타인의 고통을 추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동정심'이 일어난다. 추운 날씨에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동정심'이 드는 이유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추위에 떨었던 유사한 '경험'이 나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바로 착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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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까요? - 칸트의 '아 프리오리'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 경험주의는 '참된 앎이란 이성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다'라고 주장한다. 반면 합리주의는 '참된 앎이란 경험이 아니라 이성을 이용한 덕분에 얻을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칸트는 참된 지식, 확실한 지식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 '아 프리오리a priori' : '선험적', '경험적'의 반대말. 즉, '선험적'은 '경험하기 전에 이미 주어진 것'이라는 의미

- 연필, 볼펜, 사인펜이 있다. 이것들은 '필기구'라는 공통된 형식을 갖고 있다.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이것이 연필이냐, 볼펜이냐, 사인펜이냐는 경험을 통해야 알 수 있지만, '쓸 수 있는 어떤 것(필기구)'이라는 동일한 형식은 경험 이전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 이전의 동일한 어떤 형식이 칸트의 '선험적 조건'이다.

* '선험적 감성 형식' - '공간'과 '시간'

* '선험적 지성 형식' - '크다 - 작다' / '하나 - 다수'라는 '범주'는 경험 이전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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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어떻게 '나'를 찾을 수 있을까요? - 피히테의 '자아'

"나는 누구일까?" - "나는 자아다"(피히테) / 명제 'A는 A다(A = A)' → 나 = 나. 나는 나다 / A(밥) = A(밥) :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 때문에 A(밥) = A(밥)'일 수 있다.

자아(자기의식)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로 생각할 수 있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가진 기억의 총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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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꿈과 현실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 헤겔의 '변증법'

헤겔의 '변증법' - 정正 → 반反 → 합合

'정신(정)'원시 주거 공간' → 대상(반)'움막' → 정신(합/정) '더 안락한 주거 공간' → 대상(반) ' 기와집' → 정신(합/정) '함께 살 큰 주거 공간' → 대상(반) '아파트'

어떤 '정신'이 '대상'을 만들고, 그 '대상'이 다시 '조금 더 높은 단계의 정신'을 만드는 원환 운동이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 꿈과 현실은 양자택일해야 하는 모순적인 것이 아니다. 꿈을 꾸었을 때 비로소 현실이 보이고, 그 현실이 우리가 꿈을 이룰 방법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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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노력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요? -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

유물론은 '물질이 근본적인 실재'라고 여기는 이론 / 유물론자는 컵이라는 물질이 실재라고 생각하고, 관념론자는 컵을 보고 우리의 정신에 생긴 관념(컵의 이미지)이 실재라고 생각한다.

대상(성 - 호텔)을 규정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실천'인 것이다. /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노예가 된다."

마르크스가 말했던 '실천'은 더 인정받는, 더 순종적인, 더 경쟁력 있는 노예가 되기 위한 실천이 아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세상에 저항하는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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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 니체의 '힘의 의지'

'꿍꿍이'의 철학자, 니체 - 니체 철학의 핵심은 진리라는 것 속에 어떤 것이 표현되거나 혹은 숨어 있는 것이 없는지 묻는 것이다.

고정불변의 본질, 본성 같은 건 없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그것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가 세상에 휘둘리며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에게 날이 선 비판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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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생각하고 말해야 하나요? - 소쉬르의 '랑그'

* 랑그(langue) - 언어를 사용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

* 파롤(parole) - 화언 또는 발화로 번역됨. 어떤 말이 성대를 울려서 나오는 소리를 의미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도 랑그는 변하지 않는다. 소쉬르는 "랑그야말로 언어학이 다루는 대상이며, 모든 언어 활동의 사회적 규범이자, 사회적 제도"라고 말했다.

'전화기'를 '후하기', '턴하기'로 사용해도 상관없다는 의미 - ☎를 '전화기'로 발음하기로 한 건 사회적 약속일뿐, 실제로 서로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를 '후하기'나 '턴하기'로 발음해도 파롤만 달라질 뿐 랑그는 달라지지 않는다.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소쉬르의 말처럼, 말(언어)이 생각을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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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음이 왜 마음대로 안 될까요? - 프로이트의 '초자아'

비합리적인 사람의 두 부류 - 1. 비합리성을 정당화하는 경우 2. "마음이 마음대로 안 돼"라고 말하는 부류

프로이트 - 인간의 마음은 '이드 - 자아 - 초자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드'는 본능이다. '자아'는 이드를 타이르고 달래서 현실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게 하는 것. '초자아'는 사회적 질서, 규율, 법 같은 것

'이드'와 '초자아'는 항상 충돌한다. 그래서 자아가 둘을 화해시키고 절충한다.

우리가 자발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들이 실은 초자아의 발현이다. - 부모와 선생의 훈육에서 비롯된 초자아이다.

임제 스님의 <임제어록>이 바로 '초자아'를 죽이라는 것이다.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이 있거든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p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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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왜 시간은 늘 부족할까요? - 베르그손의 '지속'

베르그손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인간의 의식적 작업은 '시간'이 아닌 '공간'과 연결된다. 즉 '시간의 의식'은 어린 시절에는 없었던 고층 건물, 사라진 놀이터 같은 '달라진 공간'때문에 발생한다.

베르그손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두 가지 형태로 나눈다. 전통적이지만 왜곡된 시간 개념인 '공간화된 시간', 그리고 새롭지만 진정한 시간 개념인 '지속'

체험적 시간은 질의 영역이다. 나와 타자의 시간은 질적으로 다르다. 베르그손은 이처럼 '개별적으로 체험되는 시간'이 지속이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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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남자와 여자는 왜 이렇게 다를까요? - 라캉의 '신경증'

얕은 관계로 지내면 상대를 잘 몰라도 잘 지낼 수 있다. 갈등과 다툼은 언제나 깊은 관계에서 발생한다.

라캉 -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명품 가방을 사는 그녀에게 라캉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네가 그 가방을 사고 싶은 이유는 세상 사람(타자)들이 그것을 원한다(욕망)는 사실이 무의식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명품 가방을 갖고 싶다면, 그 이유는 내 스타일이라서가 아니라 타자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욕구'는 언제나 '요구'를 통해서 표현되고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 충족은 어제나 불충분하다. '욕구 - 요구' 사이에는 결코 메울 수 없는 틈이 있다. 바로 여기서 '욕망'이 출현하게 된다.

남자는 대체로 '강박증'적이다 - 강박증자의 구호는 "내 맘대로 할 거야!"다.

여자는 대체로 '히스테리'적이다. - 히스테리 환자의 구호는 "네 맘대로 해"이다.

-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욕구'를 온전히 '요구'할 수 없어서 남겨진 결핍인 '욕망'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우리는 대부분 신경증자다. 남자는 '강박증'이라는, 여자는 '히스테리'라는 신경증을 안고 사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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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일할 때 왜 주눅이 들까요? -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세상 사람들의 표상 체계'라고 설명한다. / 이데올로기는 세계에 대한 상상적 표상이지만, 각각의 개인에게 그것은 현실적 세계라는 말이다.

지금의 병적인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자본가적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주입했다. (······) 서글프게도 우리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적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다. 그 때문에 일할 때 주눅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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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천직을 찾으면 행복할까요? - 사르트르의 '탈존'

사르트르의 '존재'와 '실존'

'존재' - 본질이 미리 정해져 있는 사물들이다. 가방, 연필은 존재다

'실존' - 실존은 본질에 앞서서 온다. 바로 인간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존재'가 아닌 '탈존'인 이유를 무無에서 찾는다.

(내가 문제의 웨이터라고 한다면) 그 웨이터는 내가 되어야만 하고 동시에 내가 아닌 사람이다. ··· 설령 내가 나를 웨이터로 표상한다고 해도, 나 자신은 웨이터가 아니다. 나는 주체로부터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웨이터와 분리되어 있다. 즉 나는 무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이 무가 나를 그 웨이터로부터 구별하는 것이다. 나는 웨이터로 단지 연기할 수 있을 뿐이다. <존재와 무>

p 247

-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나'는 할 수 없이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를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 웨이터가 바로 '나'인 것은 아니다. 웨이터는 내가 되어야만 하고 동시에 내가 아닌 사람이기도 하다. 돈만 생기면 당장 웨이터를 때려치울 테니까. 단지 나는 웨이터를 연기할 뿐이다.

- 그래서 이 '웨이터 아닌 나'는 '무無'다. '웨이터 아닌 나'는 '웨이터인 나'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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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계획 없이 살면 안 되나요? - 레비-스트로스의 '브리콜뢰르'

레비-스트로스 - '야생의 사고'는 우리(문명인)와는 전혀 다른 원주민들만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공유하고 있는 근원적이고 무의식적인 사고방식이다.

계획은 '야성의 사고'관점에서 보면 의미 없는 것이다.

'브리콜뢰르' - '손재주꾼' / 무엇이든 손수 만드는 일에 능통한 '잡역부'같은 사람 '장인'과는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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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을까요? -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세대 차이? - 세대 차이 때문에 대화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가 안 되기 때문에 세대 차이가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에서 '언어'란 - 특정한 언어(영어, 독일어, 한국어 등)만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맥락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언어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문재인과 심상정은 빨갱이야!"라는 언어 규칙을 가진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문재인과 심상정을 빨갱이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건 '문재인'과 '심상정'이 아니다. '빨갱이'다. (······) 그들의 삶의 맥락을 읽어 낼 수 있어야 비로소 그들과 대화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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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요? -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패러다임 - '사고방식의 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패러다임은 '자본주의'다.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을 '성숙한 과학자 사회에 의해 수용된 문제 풀이의 표본'이지만, 그것은 '어느 주어진 시대'의 산물이라고 했다.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 자체가 바뀐다는 의미 -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을 대체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우리가 슬럼프를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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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자유로운데 왜 답답할까요? - 푸코의 '생체 권력'

'감시와 처벌' - '감금은 처형보다 인간적인 형벌인가?' / 보복은 길들임으로 바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감옥은 단순한 '처벌 권력'에서 '길들임 권력'으로 변화한다.

'생체 권력' - 영화 <쇼생크 탈출>을 생각하면 된다. 평생을 감옥에 있다가 출소한 흑인 노인이 화장실에서 하는 독백 "40년 동안 허락을 받고 오줌을 누러 갔다. 허락을 안 받으면 한 방울도 안 나온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육체와 내면이 이미 길들여져 있다. 집, 학교, 군대, 직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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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인생을 리셋 하고 싶나요? - 들뢰즈의 '아장스망'

'아장스망agencement' - '배치arrangement'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 유(부모)에서 유(아기)가 나오지만, 나온 유(아기)가 특정한 바로 그 유(나)가 되는 이유는 '아장스망'때문이다. 이미 존재하는 특정한 유(존재하게 만든 유)들의 '배치'에 의해 단독적이고 유일한 바로 그 유로 생성된다는 것

씨앗(실재성) = 알맹이(현실성) + 꽃(잠재성) - 어떤 존재(실재성)도 겉으로 드러난 모습(현실성) 이외에 앞으로 다르게 '생성'될 수 있는 잠재성을 이미 가지고 있다.

삶을 '리셋'하지 않아도, 아니 삶을 '리셋'하지 않아야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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